1766. 빌드 업-101-
"네. 아마 놈들에 대한 경찰 조사가 곧 들어갈 것 같은데, 섯불리 움직였다간 괜히 석산파까지 같이 엮이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어차피 손 안대고 코풀 수 있으니, 적당한 거리에서 감시만 하십시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저희 수고를 덜어주셨군요.
"별 말씀을. 그럼 사진 하나 보내겠습니다."
-네.
도훈은 전화를 끊고, 수첩에 적힌 매장 이름을 찍어 보냈다.
그러다 상납금으로 적힌 액수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헐, 이 게다가 일주일 단위로 수금하던 금액이라고?'
[네. 주마다 돈을 바친다고 했으니까요.]
'장난 아니네. 설마 이것들이 이 돈으로 사채업체까지 같이 돌린 건가?'
[네?]
'놈들의 자금줄이 어디서 나오는가 했더니, 호빠에서 번 돈을 수금해서 사채를 돌린 모양이야. 아가씨들 빚지우도록. 그리고 그걸 약점 잡아서 지방 오피에 팔아먹으면서 또 돈 벌고.'
[놀라운 선순환 구조군요. 구충모의 사업 감각이 의외로 탁월했네요.]
'그래봐야 조폭 새끼지. 아니 저런건 조폭도 아닌 그냥 인간 쓰레기에 불과해. 같은 조폭이라도 민수처럼 약자는 괴롭히지 않는 가오가 있어야지.'
[혹시나 주인님의 개입으로 석산파와 부산 오성파 사이에 전면 전이 나는 건 아닙니까?]
'구충모도 머리가 있으면 그렇게까지 못 할 거야. 어차피 두 조직이 전쟁해봐야 박살나는 건 오성파거든. 아마 자기 업장 싹 철수하고 혼자서 안고 죽겠지. 그 정도면 석산파도 체면은 세운 셈이니 그쯤에서 마무리할 테고.'
[그 이후 경찰 수사가 시작되겠군요. 방송에서 다루게 되면 빠져나가기도 힘들거고요.]
'맞아. 어차피 놈들은 결국 빵에 가게 되어 있어. 시간이 좀 걸릴 뿐.'
[아무튼 주인님께서 이번에 정말 큰 일 하셨습니다.]
'나야 뭐, 놈들이 우리학교 학생 노리니까 빡친 것 뿐이야. 놈들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어.'
도훈은 혼자 담배를 피우며 바이크를 세운 곳까지 걸었다.
성난 도훈의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영락없는 건달이었다.
'이건 대충 해결했으니, 이제 다른 업적을 해결하러 가볼까?'
[바람바람바람 업적 말씀이시죠?]
'응. 시간이 좀 지났으니 성희도 다시 한 번 눌러줘야 하지 않겠어? 얼른 호감도 100 만들고 치워버려야지.'
[근데 신성희 양은 이미 출근하지 않았을까요? 지난 번에 보니 퇴근하려면 새벽 2-3시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몇신데?'
[현재 저녁 8시 조금 넘었습니다.]
'아, 너무 많이 남았는데.'
바람바람바람 업적에 도전하는 신성희는 사실혼 관계의 남편을 둔 카지노펍 바텐더였다. 호감도 100을 만들면 달성되는 업적이었기 때문에, 도훈은 시간이 남는 대로 그녀를 작업할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지. 카지노에 가서 직접 데리고 나오는 수밖에.'
[데리고 나오다뇨?]
'조퇴하라고 해야지 뭐. 그렇다고 내가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잖아?'
[하지만 갑자기 조퇴를 하는 게 가능할지···.]
'안되는 게 어딨어? 핑계야 대기 마련이지. 내 좆 맛을 본 이상 어차피 거부 못해. 대물은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강하니까.'
[하여간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도훈이 폼나게 오토바이에 올랐다.
* * *
도훈은 채이의 하야부사를 이용해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헬멧을 벗던 중 움찔 놀라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본 도훈은, 그제야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맞다. 여전히 성난 도훈의 얼굴이었지?'
역용마스크가 가진 아이템 특성상 변화된 얼굴 근육이 장시간 유지되고 있었다. 얼굴도 험악한 사람이 커다란 바이크를 몰고 나타났으니, 폭주족으로 오해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몰골로 성희를 만나러 갈 순 없는데···. 이거 대체 언제 풀리지?'
[아무리 빨라도 3시간은 족히 걸릴 겁니다. 역용마스크의 유지 시간이 있으니까요.]
'더 빨리 풀리는 건 불가능한가?'
[더 빨리요?]
'어. 이 상태라면 성희도 나를 못 알아 볼 거 아니야. 기껏 왔는데 변장 때문에 만나지도 못 하다니'
[늦추는 건 힘들지만 더 빨리는 가능합니다. 근육 경직 효과를 중화시키면 되니까요.]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중화 포션을 구입해 해독하면 됩니다. 본래는 몸 속에 유입된 해로운 성분들을 제거하는 물약인데, 역용 마스크 성분 역시 인공적으로 합성된 물질이기 때문에 깨끗히 중화될 겁니다.]
'그래. 그거 사서 빨리 푸는 게 낫겠다. 어차피 남는 게 포인튼데.'
[넵. 마켓에서 구입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중화 포션을 인벤토리에서 전달받은 도훈이 허공에 손을 집어 넣어 포션을 꺼냈다. 박카스 크기의 갈색 병에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우, 왠지 맛 없어 보이는데.'
[중화 포션은 무색 무취 무미가 특징입니다. 초순수에 가까운 맛일 겁니다.]
'내가 초순수를 먹어 봤어야 알지.'
도훈은 중화 포션을 단숨에 들이켜더니 헬멧을 뒤집어 썼다.
잠시 후 다시 헬멧을 벗었을 때는 그의 얼굴도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문신 스티커 역시 탈착하여 피부도 깨끗하게 만들었다.
원래 모습으로 변한 도훈은 카지노 펍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문자를 보냈다.
-도훈 : 오늘 시간 돼?
-성희 : 어? 곧 시험기간이라고 하지 않았어?
-도훈 : 그건 맞는데, 잠깐 머리 좀 식힐까 해서. 나와.
-성희 : 나오라니? 어딘데?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도훈 : 나오라니까? 카지노 펍 앞이야.
-성희 : 가게 앞이라고? 연락도 않고 언제 왔어?
-도훈 : 방금.
-성희 : 잠깐만. 나 출근한지 얼마 안돼서 바로는 못 나가.
-도훈 : 조퇴한다고 하면 안 돼?
-성희 : 음···. 가능은 한데 갑자기 조퇴한다고 하면 지배인님이 싫어하실 거야. 눈치 봐서 아프다는 핑계로 슬쩍 찔러볼게. 하지만 당장은 곤란해.
-도훈 : 진짜 이럴 거야? 나 지금 시험 공부도 포기하고 너 보러 온건데.
-성희 : 일찍 좀 말하지 그랬어? 그럼 대타 구해서 빠질 수 있었는데.
-도훈 : 난들 갑자기 꼴릴 줄 알았나?
-성희 : 꼴렸어?
-도훈 : 당연하지. 그럼 내가 널 왜 보러 왔겠어?
-성희 : 아이참. 아무때나 꼴리지 말라고.
-도훈 : 하기 싫음 말든가.
-성희 :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아무튼 지금 당장은 곤란해. 조금만 기다려봐. 심심하면 가게 들어와서 게임 좀 하고 있어. 내가 최대한 빨리 조퇴 허락 받아 볼게.
-도훈 : 일단, 알았어.
거리 한복판에서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문자질을 하고 있는 도훈을 보고 로시가 물었다.
[그냥 들어가서 얘기 하시지 그러십니까? 얼굴보고 얘기하는 게 더 설득하기 쉬울텐데요.]
'나도 그럴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주아도 일하고 있을 거 아니야.'
[아. 그렇군요. 주아양도 여기서 같이 일하죠?]
'주아는 나 때문에 월요일에 이미 연차를 썼으니까 오늘은 무조건 출근해 있을 거야. 괜히 가게 들어가서 돌아다니다가 주아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자기 찾아 온 줄 착각할 게 뻔하잖아.'
[흐음, 곤란하군요. 한 장소에서 두 명의 바텐더를 동시에 공략하는 바람에 괜히 일만 복잡해 졌네요.]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이럴 줄 알았으면 역용마스크 풀기 전에 미리 연락부터 해 볼 걸. 그럼 성난 모습으로 들어가서 죽치고 있었으면 어차피 못 알아 봤을텐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다시 쓰시렵니까?]
'뭐? 역용마스크? 됐어. 언제 또 변해서 언제 또 풀고 있어?'
[으음, 그럼 카지노는 아무래도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희 조퇴할 때까지 어디서 기다린담?' 도훈이 카지노 펍 건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누군가가 가게에서 나오던 중 손에 든 칩을 공중으로 튕기며 말하는 것이었다.
"에이, 술 값으로 쓰기도 애매하네. 이건 그냥 기념품으로 가져가야겠다."
'칩?'
도훈은 문득 자신이 일전에 카지노에서 땄던 칩을 떠올렸다. 불쑥 경찰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환전도 못하고 인벤토리 한 구석에 짱박아 놓았었다. 인벤토리를 뒤져보니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칩을 꺼낸 도훈은 황금색으로 코팅된 칩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맞네. 주아랑 성희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네? 그곳이 어딥니까?]
'2층 VIP룸. 거긴 아예 다른 바텐더들이 일하고 있잖아. 1층과 2층은 서로 교류도 않는다 했고. 거기면 도박도 하면서 두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지.'
[그렇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근데 VIP룸에 입장이 가능하시겠습니까?]
'칩이 곧 입장권인데, 뭐.'
도훈은 카지노 펍의 카운터로 다가가 일전에 딴 골드 칩을 내밀었다.
"혹시 지금 VIP룸 입장 가능한가요?"
"가능 합니다만, 혹시 초대권을 받으셨을까요?"
"아뇨. 저번에 거기 갔다가 경찰 단속 뜨는 바람에 게임도 못하고 빠져나왔거든요. 보시다시피 아직 칩이 잔뜩 남아서."
"아···. 잠시만요."
도훈의 대답에 카운터 직원이 누군가를 호출했는지 정장을 입은 직원이 나타났다.
"이쪽 손님 분께서 VIP룸에 입장하신답니다."
"그래요?"
"근데 초대권은 따로 받은 게 없으시다고."
직원은 도훈을 쓱 훑어보더니, 곧바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죄송하지만 초대권이 없으신 분은 VIP룸 입장이 불가합니다."
"초대권이 뭔데요?"
"저희 쪽에 등록된 VIP고객님들께 핸드폰 문자로 초대권을 보내드리거든요. 그게 있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게 아니라 저번에 한 번 갔었다니까요?"
"아마 토너먼트가 열리는 날이라 1층에서 바로 올려보냈나 보네요. 토너먼트는 일종의 이벤트 경기라 그렇고, 평소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회원제라고요?"
"네. 회원 가입을 원하시면 저희 사무실에 들르셔서 가입 서류를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서류 작성만 하면 입장할 수 있나요?"
"물론 심사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신원에 문제가 없는 지 저희 쪽에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니까요. 아, 보증인이 따로 계셔서 말씀해 주시면 좀 더 빠르게 확인이 가능합니다."
복잡해지는 요구에 도훈도 슬슬 짜증이 났다.
"아니 제가 거길 처음 가보는 것도 아니고, 저번 주에 갔다가 경찰 단속 때문에 게임도 못 해보고 쫓겨났다니까요?"
"말씀하신 단속 문제 때문에 VIP룸 운영 방식을 부득이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절차가 그러니 양해 바랍니다."
사실상 입구 컷을 당하게 된 도훈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처음엔 잠깐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들를 생각이었지만, 웨이 터의 깐깐한 태도에 갑자기 오기가 솟구친 것이었다.
[이런. 아무래도 VIP룸 입장은 포기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말도 안 돼. 이런 식으로 사람 차별하는 게 어딨어? 올려 보낼 땐 언제고 이제와서 안된다는 건데?'
뿔이 난 도훈은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돈이라면 차고 넘치는 도훈이었기에 다른 곳도 아닌 도박장에서 문전박대 당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곳을 통째로 사버릴 수도 있는데, 단지 회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저기요."
"네?"
"혹시 얼마 드리면 VIP룸에 입장할 수 있어요? 제가 오늘 꼭 게임을 하고 싶거든요."
"손님. 그게 아니라, 요새 경찰 단속이 잦아져서 검증된 회원들을 대상으로만···."
"아니. 그러니까 다른 말은 필요 없고, 얼마면 되냐고요."
도훈이 갑자기 들고 있던 황금 색 칩을 직원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이거 하나에 30만원 짜리 맞죠? 이거 받고 저 입장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음···. 손님.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도 절차라는 게."
"그걸론 부족해요?"
도훈이 손바닥 위에 칩 하나를 더 얹었다. 골드칩 두개니 도합 60만원에 이르는 현금이었다. 칩에 환금성이 있다는 것은 직원도 알고 도훈도 알았다. 손바닥 위에 골드칩 두개가 쌓이자 직원이 갑자기 말수가 없어졌다.
[혹시 모욕감을 느끼는 거 아닙니까? 돈으로 자신을 매수하려 한다고요.]
'···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큰 금액일지도.'
"···손님 정말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직도 곤란해요?"
도훈이 칩 한개를 더 올렸다.
그 순간 직원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도훈을 몰래 들여 보내주면 하룻 밤 사이 100만원에 가까운 뒷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밤새워 일해도 벌 수 없는 돈이었다. 특히 자신은 홀 매니저도 아니었기 때문에 별도로 팁을 받는 일도 거의 없었다.
"···정말 이걸 저한테 주시겠다는 말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