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5. 빌드 업-100-
"이, 이 새끼가 뭐, 뭐하려는!"
도훈이 발을 쳐들더니 무릎 꿇고 있는 구씨의 가슴팍을 밀쳤다.
퍽-!
압도적인 괴력에 구씨의 몸이 뒤로 넘어지며 몇바퀴를 굴러갔다.
"크헉!"
도훈이 멀찌감치 쓰러진 구씨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난 말이지. 허세 부리는 놈들이 그렇게 꼴보기 싫을 수가 없더라. 사람이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를 알고, 수학을 익혔으면 분수를 알아야 하지 않겠냐?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안 그래?"
"흐, 흐윽, 흐윽!"
발차기 한 방에 갈비뼈가 모조리 나간 구씨는 제대로 숨을 쉴수도 없는지 가쁜 호흡을 헐떡거렸다. 도훈이 무표정한 얼굴로 쓰러진 구씨 옆에 쪼그려 앉았다.
"단 1초면 니 목을 뽑아 버릴 수도 있어. 근데 난 그렇게 안 해.
왜냐고? 죽으면 고통을 못 느끼잖아. 난 니가 제명대로 살다가 뒤지는 그 날까지 오랫동안 고통 받기를 원하거든."
"쿨럭-. 이, 미···친···"
"아직도 입이 살아 있네? 좋아.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뭐, 뭐?"
도훈이 구씨의 왼 손목을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손가락 하나를 잡고는 옆으로 꺾었다. 사람 뼈가 엿가락처럼 똑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뚝-
"으아아아아악!"
발버둥 치는 구씨를 쳐다보며 혀를 차던 도훈이 조태오를 불렀다.
"넌 거기서 뭐해? 이리와서 나 좀 도와."
"네, 네?"
"이 새끼 못 움직이게 잡으라고. 발광하니까."
"아, 넵!"
태오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맞은 편에서 구씨의 손 발을 붙잡았다. 어찌보면 배신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구씨 또한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죄책감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아이러니 하지만, 석산파에서 자신을 잡으러 오지 않았다면 구씨에게 말려 죽는 건 오히려 그였다.
"아직 아홉 개 남았다. 신나지 않냐?"
"끄읏, 흐으, 이,이 개새끼 내가 니 가족까지 찾아내서 모조리!"
또각-
손가락 하나가 더 부러졌고, 끔찍한 비명이 텅 빈 공장 전체를 울렸다. 도훈은 그제야 놈들이 폐공장을 아지트로 정한 이유를 알것 같았다.
"이야, 여기 참 좋네. 사람 하나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르겠다, 그치?"
"하윽, 흐윽. 그, 그만···."
"뭐라고? 아니야. 넌 그러면 안 되지. 계속 허세 부려. 아직 8개나 남아있거든."
똑-!
"흐아아아아악!!!"
"목청 한 번 우렁차네. 자,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하나씩 물어볼건데 솔직하게 대답해야 돼. 안 그러면."
또각-!
"흐아아아아악!"
"아이고. 이제 6개 밖에 안 남았네? 어차피 물어볼 질문이 그것보다 적으니까 괜찮겠지, 뭐."
[주, 주인님. 오늘따라 너무 잔인하신 것 아닙니까?]
'잔인은 무슨? 이 새끼가 이제까지 죄없는 사람 몇명이나 담갔을 거 같은데? 사이코메트리로 열어 보면 기절초풍할 걸?'
[그렇긴 하지만···.]
'겁을 모르는 놈에겐, 정말로 무서운 게 뭔지 친히 알려줘야지. 그게 내 오래된 생각이야.'
고통에 울부짖고 있는 구씨에게 도훈이 질문했다.
"마약은 네가 직접 공수하는 거야, 아니면 부산쪽에서 공급하는 거야?"
"······."
"정신 못 차리지?"
또각-
"흐아아악!"
"네가 지금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손가락 10개 다 부러질 때까지만 버틴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사람 몸에 뼈가 모두 몇개 인지 알아?"
"흐윽, 흐윽."
"대충 206개야. 이게 신기한 게 태어날 땐 300개가 넘는데 성장하면서 지들끼리 서로 붙는다더라고. 그러다보니 206개에서한 두개쯤 부족하거나 많은 사람도 더러 있고."
"흐으으."
"내가 네 몸 속에 든 뼈라는 뼈는 모두 조각조각 내줄까? 혹시 못 할 것 같아서 한 번 개겨보는 거야? 진심으로?"
"부, 부산에서···."
"뭐라고? 내가 귀에 좆박아서 잘 안들리거든? 크게 좀 말해줄래?"
또각-!
"흐아아아악! 제, 제발 그만 해, 이 미친 새끼야."
고통을 못 참던 구씨가 악다구니를 질렀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도훈을 자극했다.
"미친?"
또각-!
거의 초 단위로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도훈을 보자, 태오는 자기도 모르게 바지를 적실 뻔 했다. 이제껏 살면서 본 사람 중에서 구씨가 가장 잔인한 줄 알았는데, 석산파에서 보냈다는 해결사는 구씨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미친놈이 있다더니, 그가 정녕 미친놈이었다.
'도, 돌았어. 석산파가 서울 최대 조직이라더니 과연 허명이 아니었구나! 구씨 형님 정도가 상대할 레벨이 아니야. 저, 저게 전국구 깡패의 클라스.'
"손가락 끝나면 다음은 발가락이야. 거기도 10개 더 있거든.
그 다음은 생니를 하나씩 발치할거고. 진짜로 다 부러지고 싶은 거야?"
"부산입니다! 부, 부산에서 공수해 주는 걸 호스트 바를 통해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참교육(?)에 고분고분해진 구씨가 존댓말까지 써가며 소리쳤다.
그제야 도훈이 굳은 얼굴을 풀었다.
"대답 잘하네, 진작 그랬으면 손가락 몇개는 더 건질 수 있었잖아. 젓가락질은 해야 밥은 먹으니까."
"예, 예? 그 그게 무슨···."
"어? 설마 지금 이게 단순 골절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특별히 신경까지 싹 끊어줬어. 아마 뼈가 붙어도 다신 예전처럼 못움직일 걸 지금 부러진 손가락."
"하, 하윽!"
"아직 질문 남았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해. 두 발로라도 걷고 싶으면."
"예, 옙!"
"부산 오성파랑 넌 무슨 관계야? 왜 놈들이 서울에 진출하는 거지?"
"저, 저는 오성파의 방계입니다. 큰 형님에게서 분가해 나왔습니다."
"그래? 넌 이름이 뭔데? 아무리 봐도 족보도 없는 새끼 같은데?"
"구충모입니다."
"구충 뭐?"
"구충모 입니다. 아마 모르실수도 있습니다. 정통 계보가 아니라···."
물론 도훈은 설사 충모가 정통 계보였다고 해도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조폭들은 대체로 어디 식구라고 하면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는데, 애초에 조폭 출신이 아닌 도훈으로선 알길이 없었다.
"그래, 충모야. 서울은 왜 올라왔어? 느그 오야가 시키드나?"
"그, 그게···."
"대답 똑바로 해. 니 대답 여하에 따라 네 놈 뒷배인 오성파는 우리 석산파랑 전쟁 치를 각오를 해야 할 테니까."
"···제 독단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의리는 있네. 그래, 혼자서 모두 뒤집어 쓰시겠다?"
"······."
"내가 한가지 재밌는 얘기를 해줄까? 이쪽에 있는 태오가 아주 큰 일을 했어. 감히 우리 행동 대장의 여자를 작업했더라고."
"헉!"
충모는 이제야 석산파가 갑자기 끼어든 이유를 알게 된 것처럼 분노로 치를 떨었다. 도훈이 두 사람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려는 듯 계속 설명했다.
"감히 제비 새끼가, 겁도 없이 말이야. 그래서 뒷조사를좀 해보니까, 아주 가관이더라? 너네들 우리 나와바리에 굴러 들어와서 허락도 없이 여자 장사를 했던데? 그것도 약까지 몰래 타 먹여가면서?"
"그, 그것은···."
"우리 형님이 다른 건 몰라도 마약이라면 치를 떨거든.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 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간판 내리는 게 좋을 거야. 난 지금 그걸 경고하러 온 거거든."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충모 네 놈이 관리하는 가게 명단 싹 다 넘겨."
"며, 명단이라면···."
"태오네 가게 하나만 있지 않을 거 아니야? 왜? 우리 손으로 직접 하나씩 찾아서 박살내 줄까? 우리 조직에 나만한 조직원이 몇이나 될 것 같은데?"
도훈이 확실하게 위협을 가했다.
사실 석산파를 통 틀어도 도훈만한 해결사는 없었다. 조직 내에서 제일 싸움을 잘하는 민수라도, 무기를 든 10여명과 단신으로 싸우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정도였다.
그것이 석산파에서 도훈을 스카우트하고 싶어 하는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도훈의 압도적인 실력을 눈으로 직접 본 이상, 충모는 도훈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괴물이 한 두명이 아니라면, 부산의 오성파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개박살이 날게 뻔했으니까.
"자, 장부가 이 안에 있습니다."
"장부?"
눈치 빠른 태오가 구충모의 품에서 조그만 수첩을 대신 꺼냈다.
상납금을 정리해둔 장부였는데, 그곳엔 어떤 업장에서 언제 얼마를 받았는지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수첩을 쓱 훑어보던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5개 군데네. 매주 상납 받는 곳이. 그러니까 여기가 태오처럼 새끼마담을 풀어서 관리하는 곳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오케이. 앞으로 딱 3일 준다. 3일 안에 네 스스로 정리 못하면 업장마다 찾아가서 다 박살내 버릴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들어?"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네 사채 써서 지방으로 팔려간 아가씨들. 일주일 안에 집으로 다 돌려 보내."
"그, 그건···.이미 저희 손을 떠난 상황이라···."
"왜? 업소에 여자들 팔면서 받은 돈 뱉어내면 될 거 아니야? 아니면 진짜로 오성파까지 날려 버려야 말 귀를 알아들으려나?"
"아, 아닙니다. 그것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손가락 병신 만든 걸로는 성에 안 차는 것 같은데."
"예, 예?"
"우리 조직의 나와바리를 침범한 놈인데,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드려야지. 널 멀쩡하게 돌려보내면, 다른 조직에서 우리 석산파를 우습게 보거든."
"이, 일주일 안에 무조건 정리하겠습니다. 이후에는 서울 쪽에는 얼씬도 않겠습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뻔한 얘기를 대체 왜하는 거야?"
"그, 그러면···."
"발목 하나만 자르자. 깔끔하게."
[주, 주인님. 그건 좀.]
'왜? 저런 범죄자 새끼를 그럼 손 병신만 만들고 풀어주라고?'
[그렇다고 해도 발목을 자르는 건 너무 잔인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고문만으로도 신벌을 면책받기 아슬아슬한 상황이거든요.]
'흐음. 범죄자 새끼 발목 자른 대가가 신벌이라면 곤란한데.'
충모의 부하들을 죽인 것은 무기를 들고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당방위였지만, 그를 고문하는 것은 불필요한 가해라는 뜻이었다.
로시의 만류에 도훈도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다. 뒷수습까지 한다는데, 발목을 자르는 건 좀 지나친것 같긴 하네."
"가, 감사합···."
"그래도 마음에 안드니까 한 군데만 더 부러뜨릴게."
"예?"
도훈이 몸을 일으키더니 쓰러져 있는 충모의 오른 발목을 발로 콱- 내리찍었다.
콰직-!
"흐아아아아악!!!"
그대로 발목 뼈가 골절된 충모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수첩까지 챙긴 뒤 상황을 모두 마무리한 도훈이 태오를 향해 말했다.
"저 새끼 여기 계속 눕혀놓으면, 진짜로 다리 병신 된다. 태오네가 책임지고 병원으로 데려가라."
"제, 제가 말입니까?"
"그럼 내가 가리? 이 새끼를 확- 그냥!"
도훈이 뺨을 때릴 것처럼 손을 쳐들었다가 바짝 쪼는 태오를 보고 마음이 약해졌다.
'하, 조태오 이 새끼도 똑같이 나쁜 새낀데. 그간 정이 있으니 패기 미안하네.'
[왜 조태오만 봐주십니까? 창민이나 충모에 비하면 너무 처벌이 약한 거 아닙니까? 태오도 똑같은 범죄자라는 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렇긴 한데, 태오가 또 나한테 그렇게 못 되게 군 건 없잖아?'
[그야 주인님이 태오를 이용하기 위해 위장했으니까 그렇죠.]
'뭐, 어차피 경찰 조사 들어가면 여지없이 빵에 갈 놈인데 굳이 내 손을 더럽힐 필욘 없지. 로시 네 말대로 난 정의의 심판자도 영웅도 아니니까.'
[주인님의 정의관은 확실히 독특한 것 같네요.]
"얼른 저 새끼 데리고 꺼져 인마. 마음 바뀌기 전에."
"가, 감사합니다!"
태오가 구씨를 겨우 부축해 데리고 나갔다.
도훈은 홀로 폐공장에 남아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훈씨.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저희 비서가 실수라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보던 중 놈들 업장리스트를 찾은 것 같아서요. 왜, 저번에 마약 유통한다는 놈들요."
-엇, 정말입니까? 안 그래도 저희 쪽에서도 찾고 있는데···.
혹시 저한테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도훈은 조폭이긴 하지만 민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이번 일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랐다. 같은 조폭인 구충모의 조직을 박살 낼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주소는 알려드릴 수 있는데, 일주일만 기다려보시죠."
-일주일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