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4. 빌드 업-99-
구구궁-
구르는 드럼통에서 불이 붙은 장작들이 쏟아지며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간나 새끼가!"
구씨의 부하들은 상대를 발견 하자마자 무기를 들고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구씨가 놈들을 곧바로 저지했다.
"야, 잠깐 멈춰 봐."
"예?"
"얘기 좀 하게."
구씨는 드럼통을 굴리며 접근하는 도훈을 저지하지 않았다. 그와 10여 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한 상태에서 부하들로 에워싸인 구씨가 물었다.
"넌 뭐하는 참신한 새끼니?"
"나? 지나가던 행인."
"하하-. 이 새끼 이거 완전 똘갱이 새끼잖아?"
구씨가 어이가 없는지 저도 모르게 부산 사투리를 쓰며 크게 웃었다.
그는 팔에 문신이 가득한 근육질의 사내를 향해 다시 물었다.
"어느 조직에서 보냈어? 혹시 3대 조직이냐?"
구씨가 언급한 3대 조직이란 서울을 주름잡고 있는 석산파를 비롯한 정통 조폭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문신 사내는 새끼 손가락으로 제 귀를 후비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씨발, 어디서 모기 새끼가 앵앵거리나?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내가 가는 귀가 먹어서 잘 안 들리거든? 좀 더 크게 말해 볼래?"
"푸하하하하하하하!"
구씨가 광소했다.
문신 사내의 말과 행동은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구씨는 그 생소한 감정에 간만에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늘 바짝 쫄아서 고분고분 대는 사람들만 대하다, 오랜만에 당당한 태도의 호적수를 마주한 것이었다.
"너 배짱 하나 맘에 드는 구나. 혼자 왔니?"
"어, 나 싱글이야."
문신 사내가 계속 농담으로 일관하자, 구씨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상대가 정말로 실력을 믿고 까부는 건지, 무모한 만용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야, 저 새끼 목만 남겨놓고 다 토막 쳐라. 숨만 붙여놓으면 상관없어."
구씨의 명령에 대기 중이던 조선족 부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문신 사내, 즉 도훈은 여유 넘치게 이죽거릴 뿐이었다.
'저거 생각보다 위험한 놈이네? 부하들 상태도 정상이 아닌 것 같고.'
[석산파 같이 기강 잡힌 조폭과는 천지차이군요. 근데 저 사람들 한국 사람은 맞는 겁니까? 말투가 생전 처음 듣는 사투리던데요.'
'외국인들이야. 연변 거지 새끼들.'
[연변 거지라뇨?]
'조선족 말이야. 국내법이 이상해서 조선족이 아무렇게나 막 들어오기 딱 좋거든. 외노자 새끼들이 감히 자기 집 안방처럼 당당하네?'
[흐음, 아무튼 조심하십시오. 각목도 아니고 죄다 냉병기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그럼 나도 무기 하나 들어야 형평에 맞겠군.'
성난 얼굴로 위장한 도훈이 드럼통에서 굴러 떨어진 각목을 하나 집어 들었다. 끝은 여전히 불타고 있어, 흡사 횃불을 든 것처럼 보였다.
"너희들 한국말 다 알아듣지? 뒤지고 싶은 놈만 덤벼. 난 사정 안 봐주니까."
"쟤 뭐래니?
"이 개보대 같은 새끼가!"
손도끼를 든 놈이 가장 앞에서 달려들었다. 도훈은 가볍게 도끼를 피하고는 그대로 놈의 뒤통수를 향해 불타는 각목을 냅다 휘둘렀다.
뻑-!
뼈가 함몰되는 괴이한 소리가 나면서 도끼를 휘두르던 조선족 한 놈이 바닥으로 픽- 쓰러졌다. 미동도 없는 걸 봐선 기절이거나 즉사였다.
이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일순 뇌정지가 온 것처럼 몸이 굳어 버렸다. 단 일합으로 실력을 증명한 것이었다.
도훈이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다음 죽고 싶은 놈, 누구?"
"야! 동시에 덤벼!"
"이 간나 새끼가!"
"확 토막쳐 버리갔어!"
동료가 한 방에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놈들은 조금도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악다구니를 쓰며 개떼처럼 달려드는 모습이, 보통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살벌했다.
물론 도훈은 전혀 쫄지 않았지만.
'명을 단축하고 싶은 놈들이 이렇게 많다니.'
[손속에 사정을 두셔야 합니다. 아무리 정당방위라도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시면 면책이 어렵습니다.]
'나는 사정을 봐주고 싶은데, 각목엔 눈이 안 달려서 말이야.'
도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육질의 몸이 크게 부풀자,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조선족 거지들이 난쟁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퍽-!
퍼벅-!
빡!
일격 즉살.
도훈의 각목에 머리를 얻어맞은 놈들은, 그 순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도저히 나무 토막에서 나올 수 있는 파워가 아니었다.
평범한 각목에서 메이저리그 출신 홈런왕이 쇠파이프를 들고 풀 스윙을 해야 낼 수 있는 괴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각목에 그의 내공이 실린 탓이었다.
"하-. 이 새끼들 진짜로 무서운 게 없구나?"
벌써 절반이 바닥으로 쓰러졌지만, 놈들의 공격성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쓰러진 동료들을 방패막이로 삼을 만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엇!"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한 놈이 등 뒤에서 손도끼를 던졌다. 날아오는 기세로 보아, 한두 번 던져본 솜씨가 아니었다. 북한군 특수부대에서 배운다는 손도끼 투척술을 배운 놈 같았다.
하지만 재빨리 고개를 돌린 도훈이 도끼의 회전반경을 한눈에 꿰뚫어 보더니, 순식간에 공중에서 손잡이를 낚아챘다.
"얼레? 이건 선물이냐?"
"미, 미친!"
"저, 저새끼 대체 뭐야?"
날아오는 도끼를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받아내는 서커스 같은 묘기에 놈들이 처음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뒤에서 기습을 했는데, 고개만 슬쩍 돌리더니 캐치볼을 하듯 자연스럽게 손잡이를 낚아채는 기술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로시, 이거 분명 정당방위다?'
[인정합니다.]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놈들을 겁먹게 할 필요가 있었다. 도훈은 도끼를 던진 놈에게 곧바로 되돌려 주었다. 가볍게 던진 것 같았으나, 놈이 던진 것보다 두배는 빠르게 날아간 도끼가 그대로 이마에 처박혔다.
퍼억!
도끼 날이 안 보일 만큼 깊이 박힌 놈은, 머리가 두쪽 나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보나마나 즉사였다.
"흐, 흐윽!"
"괴, 괴물이다!"
"도저히 우리 상대가 아니야!"
사람 하나가 잔인하게 죽고 난 후에야 놈들이 주춤거렸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 치는 놈도 있었고, 아예 무기를 놓고 달아나기 까지 했다.
그 광경을 어처구니 없게 지켜보고 있던 구씨가 스스로 사시미를 들고 나섰다.
"좆같은 문신충 새끼가 감히 어디서 설쳐!"
사시미를 잡고 달려드는 구씨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도훈은 복부를 찌르려는 동작에 맞춰 발차기를 했다.
퍼억-!
내내 각목만 휘두르던 도훈의 기습적인 발차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국대 수준의 태권도 발차기 실력의 보유자였고, 심지어 그 위력은 세계 챔피언도 한 방에 기절 시킬 정도였다.
손목을 정통으로 강타당한 구씨가 곧바로 사시미를 놓쳤다.
"으, 으윽 내 손목!"
발차기 한 방에 손목이 뒤로 꺾이긴 했지만, 구씨는 포기를 모르고 계속 덤벼들었다. 무기로 안되면 육박전이라도 벌일 기세였다.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돼?"
도훈이 맨손으로 달려드는 구씨의 면상에 칠성권의 일타를 날렸다.
퍼억-!
내공이 실린 주먹에 구씨의 안면이 함몰되듯 뭉개졌다. 뒤로 넘어질 것처럼 주춤거리는 놈을 향해 도훈이 한 번 더 복부를 올려쳤다. 칠성권의 2타였다.
퍼억-!
두발이 공중으로 붕 떠오를만큼 강력한 타격!
특히 칠성권의 2타는 1타에 비해 2배나 강력했기 때문에, 구씨는 내장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주먹이 아니라 해머에 정통으로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우욱-!"
개싸움이라면 머리털나고 수도 없이 해본 구씨였다.
난다긴다 하는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도, 칼을 들고 달려드는 그에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진정한 무규칙 룰은 링위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목숨을 건 승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 앞의 상대는 감히 자신이 상대할 수도 없는 레벨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트럭에 덤벼드는 꼴이었다.
"누구 앞에서 허세를 부려? 뒤질라고."
배를 잡고 쓰러진 구씨의 뒤통수에 도훈이 칠성권의 3타를 갈겼다.
아니 갈기려던 참이었다. 로시가 다급히 말리지만 않았다면.
[주인님. 뒤통수에 칠성권을 때리면 상대가 죽습니다!]
로시의 경고에 겨우 정신을 차린 도훈이 마지막 순간 주먹을 손바닥으로 바꾸더니 뒤통수를 세게 후리는 것으로 끝냈다.
뻐억-!
그러나 그의 장법 또한 만만치 않은 힘이 실렸기 때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구씨는 5미터 위에서 추락하듯 엄청난 속도로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기절하고 말았다.
도훈이 10명이 넘는 조선족과 구씨를 때려 눕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 남짓. 무릎 꿇은 채 멀리서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조태오는 얼이 빠진 채 도훈을 응시했다.
'괴, 괴물이다. 누구지 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온 거야?'
모든 상대를 쓰러뜨린 도훈이 터벅터벅 태오를 향해 걸어왔다.
"넌 불 있냐?"
"예, 예, 예? 부, 불만 없습니다."
"뭔 소리야? 담뱃불 있냐고."
"아, 아아아. 네, 있습니다."
도훈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조태오가 허겁지겁 고급 금장 라이터를 품에서 꺼내 불을 붙였다. 도훈은 문득 그가 사무실에서 자신에게 맞담배를 허락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직접 불을 붙여 주었다.
"···불 한 번 잘 붙이네. 웨이터 출신이라 그런가?"
"예, 예? 호, 혹시 절 아십니까?"
"잘 알지. 너 혹시 석산파라고 들어봤냐?"
석산파의 이름을 팔며 도훈이 씨익 웃었다.
* * *
구씨 일당을 모조리 쓰러뜨린 도훈은 멀쩡한 놈들을 불러 바닥에 기절한 놈들을 모두 공장 밖으로 쫓아냈다. 확인 결과 이마에 도끼를 맞은 놈을 포함 3명은 그자리에서 즉사, 나머진 중상이었다.
안면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게 찝찝했지만, 칼과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상대를 사정 봐줘 가면서 때린다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았다. 놈들의 지독한 근성으로 볼 때 내공을 실어 패지 않았다면 분명 죽기 전까지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더 큰 사고가 났을지도 몰랐다.
이제 폐공장에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조태오와, 반쯤 의식을 잃은 구씨만 남게 되었다. 도훈은 화로대 옆 간이의자에 앉아 두 사람을 무릎 꿇렸다.
"조태오. 내가 왜 널 찾아온 줄은 잘 알고 있지?"
"······."
"입을 다무시겠다? 넌 저 새낀 무섭고 난 하나도 안 무서운가 보네?"
도훈은 밝은 귀를 이용해 구씨와 태오의 대화를 멀리서 엿들은 상태였다. 따라서 구씨가 태오를 겁박해 사납금을 두 배로 뜯어내려고 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이유가 뭔데?"
"제 밑의 동생이 석산파에 큰 실수를 했다고···."
"그걸 아는 놈이 지금까지 입을 싹 다물고 있었어? 너 우리 석산파가 우습게 보여?"
"저,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너 설마 이런 좆밥 새끼 믿고 설친건 아니지? 야. 넌 고개 안 쳐들어?"
도훈이 손바닥을 높이 들자 피투성이가 되어 얼굴이 퉁퉁 부운 구씨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비록 도훈 앞에 무릎 꿇고 있긴 했지만 구씨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도훈은 그 점이 몹시 거슬렸다.
'밑의 부하 놈들이 구씨라는 놈을 닮았던 거군.'
[어찌보면 대단하군요. 주인님에게 그토록 두들겨 맞았는데도, 여전히 기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근성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근성은 무슨, 아직 덜 맞아서 그래.'
[네?]
'원래 겁 없이 행동하는 애들 있잖아. 세상에 무서운 거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그게 다 덜 맞아봐서 그렇다니까? 사람이 진짜로 죽기 직전까지 맞아보면, 감히 개길 생각도 못하는 게 정상이야.'
"뭐야 그 눈빛? 뒤질래?"
"그래, 죽여라."
구씨가 피가래를 탁 뱉으며 도훈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도훈이 어이없이 쳐다보자 구씨가 아예 일갈하듯 소리쳤다.
"죽여보라고, 이 좆만한 새끼야! 석산파에서 보냈다고? 니들은 뭐 뱃대지에 철판 둘렀어? 칼로 찌르면 뒈지는 건 다 똑같아 새끼야! 다 죽여버리겠어!"
악다구니를 쓰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구씨를 보자 도훈은 진심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너는 내가 볼 때 뇌에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뭐라고?"
"그게 아니면, 고통을 전혀 못 느끼는 사람이거나."
"이 개새끼가 자꾸 뭐라고 씨부리는···."
도훈이 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긴. 어차피 쓰레기 같은 인생, 재활용도 안 될 것 같으니 평생 방구석에 누워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