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3. 빌드 업-98-
구씨는 뒷배로 부산 근거의 조폭을 두고 있지만, 밑의 수하 중 상당수는 연변 출신의 조선족이었다. 듣기론 조직에서 독립하면서 부하들을 새로 모집했는데, 따르는 이가 적어 어쩔 수 없이 조선족들을 받았다고 했다.
'개쫄리네 시발. 진짜 서준이 자식이라도 같이 데려올 걸 그랬나?'
태오는 뒤늦게 혼자 이곳을 방문한 것을 후회했지만, 사실 서준이 옆에 있었더라도 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대는 돈 몇 푼만 쥐여주면 누구든 죽여준다는 인간 백정.
어디 가서 싸움 좀 한다고 무모하게 덤볐다간 그날로 이 세상과 하직할 게 뻔했다. 그만큼 잔혹하고 포악한 자들이었다. 같은 한국인끼리면 목숨을 살려줄 것 같은 일도, 뿌리부터 다른 민족이라 그런지 가차없이 칼을 휘두르곤 했다.
조선족 부하들을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예전에 봤던 드럼통이 눈에 들어왔다.
'윽!'
갑자기 PTSD가 온 태오가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니 뭐하니?"
"아, 아닙니다."
드럼통 위로 불꽃이 넘실거리는 것을 본 태오는 그것이 온기를 위해 장작을 피워놓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겨우 발걸음을 뗐다.
'식겁했네! 시발. 아직 겨울도 아닌데 왜 저기다 불을 피우는 거야? 사람 헛갈리게.'
10월은 저녁이 되면 제법 밤 기온이 쌀쌀한 편이었다. 폐공장은 커다란 체육관처럼 텅 빈 곳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한기가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드럼통이 있는 곳을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자, 구씨의 다른 부하들이 보였다. 대략 10여명 정도일까? 정장을 입은 조폭보다, 노숙자처럼 넝마를 걸치고 있는 놈들이 훨씬 더 많았다.
태오는 이곳이 한국인지 연변인지 점점 헛갈리기 시작했다.
"조태오, 왔네?"
간이 의자에 앉아있던 사내 한 명이 벌벌 떨고 있는 태오를 불렀다. 태오는 곧바로 구씨를 알아보고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형님, 조태옵니다."
"그래. 이쪽으로 와."
구씨가 앉은 자리 옆에는 캠핑장에서나 볼법한 화로대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쇠로 된 그릴이 올려져 있었는데, 마침 붉은 핏덩이가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중이었다.
치익-치익-
고기 타는 냄새에 태오가 반사적으로 코를 벌름거렸다.
"아직 저녁 안 들었겠네? 마침 신선한 고기가 생겨서 굽는 중인데 같이 와서 한 젓가락 들래?"
"고, 고기를 말입니까?"
구씨의 부름에 태오가 조심스럽게 맞은편 낚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정면에 앉은 구씨는 일견 평범한 얼굴이었다. 걸치고 있는 의상도 지나치게 단출해서, 조직의 보스라기보다 고시원에 주로 출몰하는 공시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평범한 인상 속에 소름 돋을 정도의 잔인함을 감춘 사내였다.
그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태오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참, 이 고기가 무슨 고긴 줄 알아?"
"네, 네?"
순간 태오는 섬뜩한 기운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고 보니 생고기는 생전 처음 보는 형태로 썰려 있었다. 전문적인 발골사가 도축했다기 보다, 아무 식견도 없는 사람이 억지로 살덩이를 도려낸 느낌이었다.
핏물도 제대로 빼지 않았는지, 숯불에 고기가 익어갈 때마다 밑으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며 피비린내를 풍기며 기화되고 있었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먹어보면 알려나? 아마 태어나서 처음 먹는 고기일지도 모르겠는데."
구씨가 젓가락으로 채 익지도 않은 핏덩이를 집어 건넸다.
핏물이 줄줄 흐르는 고깃덩어리의 모습에 태오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씨, 씨발 이게 대체 뭐지? 설마 이 새끼들 하다하다···.'
태오는 스스로 공장을 찾아 온 것에 후회 막급이었다.
겁도 없이 인간 백정 사이에 자진해서 목을 들이밀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런 씨발, 서준이 새끼 말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나도 이제 저렇게 고깃덩어리가 되고 마는 건가?'
태오가 부들부들 몸을 떨자, 안 그래도 무미건조한 구씨의 표정이 더 딱딱해졌다.
"뭐하냐? 팔 떨어지겠다. 어설프게 구운 것보다 아예 생고기로 드려?"
"아, 아닙니다!"
태오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이었다.
거부하면 죽는다.
태오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기를 입에 넣자, 구씨가 이죽거리며 물었다.
"맛이 어때? 꼭꼭 씹으라고. 육즙이 터지는 게 아주 일품이지 않아?"
태오는 구토감이 밀려왔지만, 꾹 참고 질겅질겅 고기를 씹어댔다. 구씨가 직접 건넨 정체불명의 고기를 입 밖으로 뱉는 순간 자신의 몸이 몇백 조각으로 토막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꿀꺽-
조태오가 억지로 고기를 모두 삼키자, 그제야 구씨가 만족스러운 듯 껄껄 웃었다.
"크크, 멧돼지 고기는 생전 처음이지?"
"예, 예?"
"야. 고기 좀 더 가져와라. 태오가 마음에 드나보다. 꼭꼭 다 씹어 먹었어."
그의 명령에 그의 조선족 부하 한 놈이 도축된 멧돼지 고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다가왔다. 태오는 그제야 자신이 삼킨 고기가 야생 멧돼지라는 걸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씨, 씨발. 개새끼가 사람 가지고 놀고 있잖아!'
"글쎄 이놈들이 야산에서 멧돼지를 사냥해 왔더라고. 연변에서는 나름 귀한 음식이라나? 수컷이라 그런지 잡내가 심하긴 한데, 그래도 돼지는 돼지니까. 어때? 맛 좋으면 집으로 좀 가져갈래? 챙겨줄게."
"아, 아닙니다."
태오가 극구 사양했다.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멧돼지 고기를 익히지도 않고 삼켰으니, 당장이라도 구충제를 입에 들이붓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 입맛에 안 맞나 보네? 난 맛있던데."
부하가 멧돼지 고기를 바닥에 철푸덕 내려놓자, 구씨가 품에서 사시미 칼을 뽑아 들었다. 어떻게 잠바 주머니 안쪽에 저렇게 긴 칼이 숨겨져 있는지 미스터리할 정도였다.
푹-!
멧돼지 고기 한 가운데에 사시미 칼날을 박아넣은 구씨가 무식한 방식으로 살점을 도려냈다. 어찌나 칼이 날카로운지 케익을 자르는 것처럼 멧돼지의 근육과 힘줄이 뎅겅 잘려 나갔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핏물이 올라오는 모습에 태오는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어졌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도축을 이어 가던 구씨가 불쑥 말했다.
"···근데 말이야,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네, 네? 무, 무엇을 말입니까?"
구씨가 보이는 엽기적인 행동에 정신을 못차리던 태오가 벌벌 떨면서 되물었다.
"마약 유통하겠다는 네 제안. 기억 안나? 그 얘기 하러 온 거잖아."
"마, 맞습니다."
구씨는 맨손에 피를 묻혀가며 커다란 살점을 뜯어냈다. 털도 제거하지 않은 살덩이에서 핏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그 피가 구씨의 손을 붉게 적시는 모습은 오줌을 지릴 정도로 잔인했다.
"태오 네가 갑자기 그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 하고 내가 살짝 뒷조사를 해봤걸랑?"
"예, 예?"
불 옆에 앉아있는데도 태오는 지독한 한기를 느꼈다.
구씨는 옆에 있는 사람을 칼로 찌를 적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사이코패스다.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고깃덩어리 쯤으로 취급했다.
태오는 이 다음 맨살이 도려 나가는 게 죽은 멧돼지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너 사고 쳤던데?"
"아, 아니 그게···."
태오는 자신의 실수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구씨는 새끼 마담들에게 완벽한 자율성을 보장했지만, 근본적으로 마담의 생리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호빠 업장이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 빠삭했다.
그가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선수나 웨이터 중에 끄나풀을 심어 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면 누군가가 자신을 배신했거나.
'밀고자!'
후회는 언제나 늦을 뿐이었다. 어제 그 사건을 지켜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정신없이 수습하느라 입단속을 못 시킨 것이 패착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째서 나한테 보고를 안 했지?"
"어, 저 그게···."
태오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조금이라도 말실수하는 순간,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구씨는 거짓말 하는 부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 뭐. 어느 가게나 진상을 상대할 때가 있긴 하지. 그것 가지고 마담을 탓하진 않아. 그냥 운이 없는 거니까. 근데 합의금을 그렇게 털려놓고도 나한테는 입도 뻥긋 안 한 것은 좀 그렇지 않냐?"
"죄송합니다. 제 돈으로 처리했다고 생각해서···. 혀, 형님 한테 드릴 상납금엔 문제 없습니다."
"···이 놈 봐라?"
구씨가 멧돼지에 박아 두었던 사시미를 훅- 뽑아냈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태오의 옷과 얼굴도 순식간에 핏방울로 얼룩졌다. 돈얘기가 나오자 구씨가 처음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다시 말해봐, 이 개새끼야. 니 돈? 아하, 니가 벌었으니 다 니 돈이다 이거야?"
"저, 그게 아니고···."
"내가 생각이 짧았네, 내가 멍청했어. 밑의 새끼 마담이 딴 주머니를 그렇게 두둑하게 차고 있었는데 감쪽같이 속았지 뭐야? 내가 병신이지."
"아닙니다, 형님 저는 그냥···."
"그래서 빵구 난 돈을 메꿔보시겠다고 이젠 마약까지 손대시겠다? 왜? 걸리면 나를 공급책이라고 다 불어 버리게? 경찰들하고 형량 거래하려면 그 정도 미끼는 던져줘야 겠네? 안 그래, 조태오씨?"
"저, 절대 입도 뻥긋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조태오가 극구 부인했지만, 구씨는 들은 척도 않고 피가 묻은 칼날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뱀처럼 길게 뻗어 나온 혓바닥이 아슬아슬 칼날 위를 스쳐갔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릴 것 같은 위험천만한 행위를 하는데도, 그의 눈빛은 미동도 없었다. 가늘고 뾰족한 그의 눈매가 마치 뱀을 닮아있었다.
태오가 목숨을 구걸하며 급기야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십시오, 형님! 저, 절대 형님을 속이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쫄지 마. 안 죽이니까."
"예, 예?"
"내가 왜 내 손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겠어? 갈라봐야 저기 돼지 새끼처럼 핏덩이밖에 더 돼?"
"그, 그러시면···."
"두 배."
"네?"
"조태오, 넌 오늘부터 매주 사납금 두배씩 내는 거야. 진심어린 사과란 원래 돈으로 하는 거거든."
"······."
태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사납금은 장사가 되든 안 되든 무조건 구씨에게 바쳐야 하는 돈이다. 고정비를 갑자기 두 배로 올리면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했다. 아니, 어떻게 계산해도 무조건 적자였다.
결국 구씨는 사형선고를 내린 채 마른 수건을 끝까지 쥐어짜보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넌 업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나한테 숨긴 것만으로 이미 죽을 죄를 지은 거야. 하지만 난 널 죽이지 않아. 돈으로 사과받겠어."
"혀, 형님.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은 일이 그렇게까지 된 것은 창민이라는 놈이···."
"또또."
구씨가 칼을 들어 무릎 꿇은 태오의 머리통을 툭툭 두들겼다.
태오는 제 머리 위에 칼 날이 떨어지는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닿는 촉감은 둔탁한 쇠막대의 느낌이었다.
구씨가 칼등으로 두들긴 것이었다.
"내가 변명하지 말랬지? 내가 그것도 파악 못하고 널 불렀을까 봐? 선수들 관리 못 했다고 내 앞에서 지금 실토하는 거냐고!"
"혀, 형님!"
"하여간 근본없는 웨이터 출신이라 그런지, 하는 짓도 멍청하기 짝이 없다니까? 마담이 돼가지고 그깟 선수 새끼한테 휘둘려? 그것도 사고를 칠 때까지? 넌 진짜 이 자리에서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아, 이 좆만한 새끼야!"
"흐, 흐흑!"
"대신."
구씨가 다시 히죽거리더니 울먹이는 태오에게 말했다.
"네 제안대로 마약 유통 쪽을 지원해 줄게. 부족한 사납금을 메워야 할 테니까. 어디 한 번···."
"니 누기야? 여기가 어디라고, 컥!"
퍽-!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우당탕 누군가가 나자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구씨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태오에게 물었다.
"너 꼬리까지 달고 왔어?"
"예, 예?"
"하-.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뭐하냐 니들은? 밥값 안 할래?"
구씨의 신경질적인 명령에 조선족 출신 부하들이 저마다 흉기를 꺼내 들었다. 칼은 물론 자전거 체인에 손도끼까지 등장할 정도로 무기의 면면이 화려했다.
그러나 이미 상대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등장하는 중이었다. 불타는 드럼통을 옆으로 눕힌 채 발로 굴리면서 오는 바람에 시끄러운 소리가 공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는 애초에 기습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거참, 담뱃불 좀 빌리러 왔더니 사람을 이렇게 문전박대 해도 되는 거야? 어디서 배운 싸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