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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62화 (1,742/2,000)

1762. 빌드 업-97-

* * *

"하아, 시트는 어떻게 하지? 다 젖어 버렸는데."

"모텔인데 뭘 어째? 어차피 빨아줄 텐데."

도훈과 채이는 뻑쩍지근한 섹스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도훈은 나른한 기분으로 채이와 담배를 피우며 생각했다.

'담배 피우는 여자를 만나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

[함께 피울 수 있어서요?]

'응. 난 한발 뽑고 나면 평소보다 훨씬 담배가 당기거든. 근데 비흡연자랑 하고나서 혼자 담배 피우고 있으면 괜히 내가 민망하더라고.'

[그게 왜요? 주인님 담배 피우는 걸 싫어하는 여자분은 여지껏 못 본것 같은데요.]

'그게 아니라 마치 섹스 끝나고 현타 온 것처럼 보이잖아. 여자들이 섭섭해 하거든. 꼭 그런건 아닌데도.'

그때였다.

도훈의 스마트워치가 갑자기 부르르 진동을 울렸다.

'어? 이게 뭐야? 이런 건 처음보는데?'

[위치추적기 작동 신호입니다. 추적 대상자의 동선이 평소의 행동 반경을 크게 벗어날 시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위치 추적기? 누군데?'

현재 추적하고 있는 대상은 모두 둘이었다.

제주도에 있는 여성 플레이어 윤보미와 또 다른 한 명은 어젯밤 설정해 둔 호빠 마담 조태오.

[조태오입니다.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다.]

'에이씨, 하필 이때. 어디로 가는 거야?'

[아직 목적지는 모릅니다. 방향으로 보면 마포대교를 건너 강북 방면으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집도 업장도 아닌 걸 보면 구씨 인가하는 인물과 접선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북이라고? 언제 또 거기까지 간 거야?' 도훈이 스마트워치를 쳐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자 같이 누워 있던 채이가 물었다.

"연락왔어? 표정이 심각해 보이는데?"

"채이야. 혹시 지금 바로 움직일 수 있어?"

"왜? 나가봐야 해?"

"어. 급한 일이야."

"하아. 나 지금 바이크 못 몰 거 같은데."

"못 몰다니?"

"너 때문에 다리가 완전히 풀려버렸단 말이야. 걷지도 못하겠어."

채이는 격렬한 가위치기로 인해 지쳐버린 것이었다. 마치 아다를 막 뗀 여자처럼, 아장아장 겨우 걷는 수준이었다.

도훈이 난처해하며 말했다.

"큰일이네.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인데?"

"말하긴 힘들어."

"알았어. 자세한 건 안 물어볼게."

채이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섹스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쉽게 토라지고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최대한 도훈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도훈이 달라진 채이의 태도를 기특해하며 말했다.

"그럼 혹시 바이크 좀 빌려줄 수 있어?"

"내 바이크?"

퀵 기사인 채이에게 바이크는 분신과도 같았다.

보통 때라면 가족의 부탁이라도 절대 안 빌려주는 물건이었지만, 도훈의 다급한 태도를 보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거 같으면 괜찮아. 택시 타고 가면 돼."

"아, 아니. 그건 아니야. 근데 너 내 바이크 몰 수 있겠어?"

"당연하지. 운전면허도 있는데."

"그 말이 아니라···. 내 바이크 엄청 빠르거든. 제로백까지 3.2초 걸리고 최대 시속은 300km 까지 올라가."

채이가 우려하는 것은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자신의 바이크였다. 초보자가 몰았다간 곧바로 황천길로 쏠 수 있는 흉기나 마찬가지. 경험없는 사람이 산다고 하면, 바이크 동호회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뜯어 말리는 모델이었다.

"그게 그렇게 빠른 거였어?"

"으, 응. 바이크를 많이 안 타봤으면 위험할 거야. 그냥 내가 데려다 줄게."

채이가 무리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곧 힘이 빠진 듯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하읏. 너무 심하게 했나봐. 제대로 서질 못 하겠어. 지금 몰았다간 사고 날 것 같아."

"그냥 내가 몰고 갈게."

"정말로 괜찮겠어? 바이크는 망가져도 상관없는데, 도훈이 네가 다칠까봐 그래."

"걱정마. 많이 몰아봤으니까."

"진짜?"

[주인님, 제주도에서 탄 게 처음이지 않습니까?]

'맞아. 그거면 충분해. 내 운동신경 몰라?'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키를 건넸다. 도훈은 그새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로시가 알려주는 조태오의 위치는 시시각각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힘들면 여기서 좀 쉬었다가 가. 바이크는 내일 돌려줄게."

"으, 응."

"그럼 급한 일 때문에 먼저 가볼게."

도훈은 채이의 볼에 뽀뽀를 하더니 급하게 무인텔을 빠져 나갔다.

이불을 끌어안은 채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근데 쟤는 체력도 좋네? 나만 힘든가?"

* * *

부아아아아앙-!

채이의 하야부사를 몰고 나간 도훈은 간만에 스릴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와우씨, 이거 존나 빠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너무 당기시는 거 아닙니까?]

'걱정 마. 충분히 컨트롤 하면서 달리고 있으니까. 이미 감은 다 잡았어. 넌 조태오 가는 방향이나 알려줘.'

[넵.]

로시가 음성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며 방향을 알렸다. 도훈이 총알같은 속도로 칼치기를 하며 달린 결과, 불과 20분 만에 조태오의 차량 뒤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저기 보이는 흰색 고급 세단이 조태오의 차량 같습니다.]

'흰색 베엠베? 마담 새끼가 꼴에 비싼 차 끌고 다니긴.'

[오히려 눈에 확 띄어서 좋군요.]

'근데 이 오토바이 진짜 빠르다. 나도 차 말고 오토바이 타고 다닐 걸 그랬어.'

[너무 위험합니다. 생명을 단축시키고 싶지 않으시다면 자중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무리 주인님이라도 교통사고를 버티는 건 무리일 테니까요.]

'하긴.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다른 사람이 날 쳐버리면 의미 없지.' 조태오의 차량 뒤에 바짝 붙은 도훈은 속도를 줄여가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근데 어디로 가는 거지? 구씨 일당이 있는 쪽이 강북이었나?'

[더 위로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도로 표지판으로 봐선 의정부 방향이군요.]

'흐음,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일까?'

도훈은 조태오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속도를 맞추었다.

헬맷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들킬 위험도 없었고, 최근에는 도로 위에 오토바이가 많다보니 딱히 수상해 보이지도 않았다.

한참을 조태오의 차량을 추적하던 도훈은 점점 도로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걸 느꼈다. 도심에서 벗어나 외곽의 이면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차선폭도 좁아졌고, 지나다니는 차량도 부쩍 줄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완전 시골인데?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경기도와의 접경 부근 입니다. 정확한 주소를 불러 드릴까요?]

'아냐. 그나저나 주변에 차가 너무 없어서 너무 따라 붙었다간 발각될 것 같아.'

도훈은 일부러 길가에 바이크를 세우더니, 태오의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약 5분이 지났을 때 도훈이 추격을 재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시가 태오의 위치를 알려왔다.

[주인님. 조태오의 차량이 막 멈추었습니다. 주차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딘데?'

[폐공장 지대입니다.]

'폐공장? 이런 곳에 공장이 있어?'

[네. 과거 공장부지로 쓰였던 곳입니다. 공업화 시대 때 지어졌다가, 나중에 공장들 대부분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버려졌습니다.]

'호오, 그런 곳에 구씨의 아지트가 있었군. 혹시 마약 만드는 공장이 여기 일까나?'

[그건 아직 모르겠군요.]

로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바이크를 천천히 몰고 가니 과연 버려진 공장지대가 나타났다. 대부분이 사람이 없는 건물인 듯 입구가 바리게이드로 막혀 있거나 유치권 행사 플랑카드가 붙어 있었다. 재개발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았다.

'분위기 한 번 을씨년스럽네. 서울 외곽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바이크를 안 보이는 구석에 세운 도훈은 목적지 300m 밖에서부터 도보로 바꾸었다.

[근데 지금 모습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태오는 주인님의 얼굴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

뒤늦게 생각이 든 도훈이 잠시 길가에 멈춰서서 역용 마스크를 착용했다. 성난 도훈의 모습으로 변장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내친 김에 문신 스티커를 이용해 온몸에 문신을 둘렀다.

변장이 모두 끝났을 때 그는 영락없는 건달이었다.

'어때?'

[역시 주인님은 이 모습이 가장 어울린단 말이죠?]

* * *

'아이씨, 왜 하필 공장으로 부르는 거야? 사람 불안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태오의 발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조태오는 오늘 점심 쯤 구씨에게 연락했다. 도훈이 제안했던 새로운 사업에 대한 내용이었고, 구씨가가 흥미를 보였다.

-마약을 직접 유통해 보겠다고?

-네, 도전해 볼 만한 사업 같습니다. 효과는 제가 충분히 확인했으니까요.

-사람이 욕심이 과하면 다치는 수가 있어. 기존에 하던 장사나 열심히 하지 그래?

-언제까지 여자 장사나 할 순 없으니까요. 저 한 번만 밀어 주십시오. 저도 형님처럼 큰 물에서 놀고 싶습니다.

-흠. 큰물이라···. 일단 내쪽으로 와. 얼굴 보고 얘기하자.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번에 한 번 온 적 있지? 공장.

-고, 공장요?

-왜?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시간 맞춰 가겠습니다.

-그래.

태오가 처음 공장을 방문한 것은, 새끼 마담으로 낙점되던 날이었다. 태오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밤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좆만한 새끼가,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사, 살려주십시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그럼 애초부터 죽을 짓을 말았어야지?

폐공장 한 가운데에 드럼통이 있었다.

그리고 드럼통 안에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들어 있었다.

-너희들도 똑똑히 봐두라고. 조직은 배신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상납금을 밀린 채 해외로 튀었던 마담 하나를 필리핀까지 날아가 붙잡아온 구씨는, 새롭게 임명된 마담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려는 듯 눈앞에서 잔인하게 살해했다. 일부러 최대한 고통을 느끼게끔 방치해 두고는, 그 비명을 안주삼아 맥주까지 곁들였다.

심지어 목숨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나중에 드럼통에 시멘트를 부어 바다에 내 던진다면서 트럭에 싣기까지 했다. 태오는 아직도 트럭에 실린 다른 드럼통에도 시체가 묻혀 있었을까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하곤 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야. 절대로, 절대로 나를 배신할 생각하지 마. 알았어?

"잠시 후 좌회전 하세요. 다음 안내시까지 직진입니다."

그 순간 내비 음성이 흘러나오자, 태오가 화들짝 놀라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끼이익-

급격한 좌회전으로 타이어가 밀렸지만, 다행이 다른 차량이 없어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에이씨, 깜짝이야. 이 빌어먹을 내비는 왜 이렇게 방향 전환을 늦게 알려주는 건데?"

애꿎은 내비게이션에 화풀이를 한 태오가 크게 심호흡했다.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 없어. 공장에 볼 일이 있으니 그쪽으로 나를 불렀겠지.'

태오는 늘 상납금을 충실하게 냈다. 따라서 구씨에게 책잡힐 구석은 전혀 없었다. 그의 무서움을 알았기에 한번도 배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별일이야 있으려고? 어차피 물건 받으려면 만나긴 만나야 하니까."

태오가 차량 창문을 내리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이드 미러에 오토바이를 탄 사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근데 저 새낀 아까부터 왜 나를 따라오는 것 같지? 여긴 차량 통행이 뜸한 곳인데?'

태오가 의심스럽게 쳐다보는데 바이크가 인도에 붙더니 멈춰 섰다.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도 바이크를 탄 사내를 다신 볼 수 없었다.

'내가 신경이 너무 예민한 모양이군. 누가 나같은 걸 미행한다고···.'

어느새 내비게이션에선 목적지 근방이라는 알림이 들려왔다. 태오가 음침해 보이는 공장 안으로 차를 돌렸다. 누가 봐도 버려진 공장이었으나, 그곳은 구씨가 온갖 나쁜 짓을 할 때 들르는 일종의 아지트였다.

차를 대고 내리자 어두컴컴한 공장 안에서 꾸질꾸질해 보이는 사내 두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엔 땟꾹물이 줄줄 흐르고, 넝마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태오는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구씨가 고용한 조선족 칼잡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니 누기야?"

섬뜩한 함경도 사투리에 태오가 바짝 긴장한 채 대답했다.

"구씨 형님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태오라고 합니다."

"조태오?"

"니 혼자 왔니?"

"네."

놈들은 인상부터가 승냥이처럼 무시무시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내일이 없는 사람이라던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칼질을 잘해서 무서운 게 아니라, 오늘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하루살이식 사고방식이 사람을 겁나게 했다.

놈들은 멀끔한 조태오를 한참 뚫어지게 노려보더니 고갯짓으로 방향을 지시했다.

"따라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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