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 빌드 업-94-
채이는 입을 꾹 담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터져 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참는 것처럼 보였다. 뒤에 탄 도훈이 애무를 해주는 사이 어느새 두사람은 방송국 앞에 도착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니 금방이었다.
"다 왔어. 내려."
"땡큐."
도훈이 오토바이에서 내리자 바지 끝이 불룩 튀어나왔다. 채이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고 방송국 들어갈 거야? 변태로 잡혀간다 너."
"티 안나게 해결해 볼게."
도훈은 바지춤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꼴린 대물을 수직으로 올려 배꼽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좆 끝엔 살짝 쿠퍼액이 맺혀 있었다.
'거참, 한 발 빼지도 못할 거 괜히 만졌네.'
[그러게 왜 더듬은 겁니까? 아주 버릇처럼 여자 몸을 더듬는군요.]
'오토바이는 어쩔 수 없다고. 워낙에 접촉이 심하니.'
"얼씨구. 잘도 숨기네."
"넌 여자라 티 안나 좋겠다."
"됐거든? 너 때문에 찝찝해 죽겠어."
"여기서 기다릴 거야?"
"응. 다시 태워다 줄게."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그늘에서 담배 좀 피우고 있어. 연락할게."
"그래."
도훈은 헬멧을 그대로 쓴 채 방송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시사팀에 서류를 전달하는 것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국내 굴지의 공중파 방송국이다 보니, 의외로 출입이 까다로웠고 택배 기사라 할지라도 보안팀에서 출입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헬멧 벗으시고, 간이 출입증 받으신 뒤 들어가세요."
"제가 다른 퀵 배달이 많은데, 금방 전달만 하고 오면 안 될까요?"
"그거야 그쪽 사정이죠. 다른 기사들도 다 규칙을 따르는데 어떻게 그쪽만 봐줘요?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절차에 응하지 않으시면 출입은 불가합니다."
"하, 미치겠네."
일부러 익명제보를 위해 온갖 방법을 썼는데, 서류를 전달하는 일로 신원을 노출할 순 없는 일이었다. 도훈은 일단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군. 간만에 투명인간 한 번 써야지.'
[그냥 밖에서 기다리는 윤채이양에게 부탁하는 게 더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본인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다잖아. 아마 이것 때문에 그랬던것 같아. 결국 배달한 사람도 자기 신분을 노출시켜야 하니까.'
[일이 너무 복잡해졌군요.]
'차라리 이메일 같은 걸로 보낼 걸 그랬나ㅗ바. 괜히 인편 제출하려다 이게 무슨 꼴이람?'
도훈은 화장실 안에서 옷을 훌훌 벗고 간만에 투명 인간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몸은 투명하게 변했어도 손에 든 서류가 문제였다. 소지한 물건까지 투명화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차. 이걸 어떻게 들고가지?'
[인벤토리를 이용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맞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벗은 옷가지와 헬멧, 전달할 서류를 모두 인벤토리에 처박은 도훈이 알몸 상태로 다시 출입구로 다가갔다. 지하철처럼 개찰구가 열려야만 입장할 수 있는 방식이었지만, 도훈은 간단한 도약으로 뛰어넘었다.
내공을 발휘하자, 육중한 몸이 바닥에 착지하는데도 깃털처럼 가벼운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들이 잡아 놓은 엘리베이터에 함께 오른 도훈은, 시사기획팀이 위치하는 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엘리베이터도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도훈은 발소리를 줄여 <추격 60분 팀> 이라는 팻말이 적힌 책상 위에 서류봉투를 꺼내 올렸다. 담당자는 마침 부재중이었다.
[PD가 서류를 바로 확인할까요?]
'그러길 바라야지.'
배달 임무를 완수한 도훈이 자리에서 물러나려는데, 마침 안경을 쓴 여성 한명이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젖은 손을 청바지에 문지르는 걸 보니,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온 모양이었다.
'응? 여자 PD였잖아?'
알고보니 <추격 60분>같은 제보 프로그램에는 PD가 여러 명이었던 것이다. 도훈은 부디 그녀가 뛰어난 PD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응? 이게 뭐지?"
도훈이 책상위에 몰래 올려둔 서류를 발견한 여 PD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 직원들에게 출처를 물었다.
"이거 누가 올려 놨어요?"
"그게 뭔데, 강PD?"
"글쎄, 난 못 봤는데?"
당연히 목격자는 있을리 없었다. 강PD라 불린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그 새 퀵 서비스 기사라도 다녀간 건가?"
강PD가 별 생각없이 서류 봉투를 개봉했다.
발가벗은 도훈은 뒤에서 팔짱을 끼고 그녀의 행동을 조용히 훔쳐보았다.
투명 인간 상태의 최대 단점은 알몸으로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들에게 안 보인다고 한들, 모두가 일하는 사무실 한 가운데 발가벗고 서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변태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PD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난 시사 프로그램이라고 하니까 40대 이상 아저씨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저분은 끽해야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군요. 안경을 쓰긴 했지만, 얼굴은 제법 미인 같습니다.]
'그거야 뭐···.'
도훈도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PD는 별로 꾸미지 않아서 수수하고 털털해 보였지만, 화장하고 옷만 예쁘게 입히면 분명 눈이 돌아갈 만큼 빼어난 미인같았다. 얇은 금속 안경태와 PD라는 직업 덕분인지 지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흐음, USB랑 인공 눈물인가? 이게 대체 뭘까나?"
강PD는 내용물을 쓱 확인하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서류 봉투에 다시 물건을 쑤셔 넣고는 구석에 처박았다.
'아니 저걸!'
강PD는 컴퓨터를 켜 다른 사무를 보기 시작했다. 화면에 떠오른 사내 메신저 내용을 보니, 다른 기획 건으로 국장과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젠장, 완전 잘 못 걸렸네.'
[네? 왜 그러십니까?]
'메신저로 나눈 대화 내용을 보니까, 이번 주 방송분이 이미 다 완성된 모양이야. 저러면 내 제보가 후 순위로 밀릴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죠. 주인님은 그래도 할만큼 하셨습니다.]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도훈은 포기를 모르는 사내였다.
일부러 강PD의 옆으로 다가간 그는 책상위에 걸쳐있던 볼 펜을 옆으로 툭 밀어 떨어뜨렸다.
"응? 이게 왜···."
강PD가 바닥에 굴러 떨어진 볼 펜을 줍는 사이, 도훈이 재빨리 봉투에서 USB를 꺼내 키보드 앞에 다시 올렸다. 바닥에서 볼 펜을 집어 든 강PD가 무실겸에 키보드 위로 손을 올리다가 USB가 올려진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잉? 내가 이걸 안 넣었던가?"
강PD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안경을 벗은 강PD가 손끝으로 눈 주변을 둥글게 돌리며 마사지했다.
"어으, 편집 때문에 며칠 날 밤 샜더니 이제 막 기억이 헛갈리기 시작하네. 커피를 때려 부었는데도 안되는 건가?"
눈 마사지를 마친 강PD가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 도훈이 그녀의 안경 벗은 얼굴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확실히 안경 벗으니 더 예쁘네. 왜 저런 얼굴에 굳이 안경을 쓰고 있담? 렌즈라도 맞출 것이지.'
[여자는 안경을 쓰면 안 되나요?]
'그건 아닌데, 그냥 벗고 다니는 게 훨씬 더 예쁘잖아.'
[화장도 안 한 거 보면 딱히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타입 같긴 합니다.]
'흐음. 워커 홀릭 사회 고발 프로그램의 여자PD라. 왠지 열혈일 것 같은데.'
[열혈이라뇨?]
'그 왜 쓸데없는 일에 막 피 끓는 애들 있잖아. 인권이니 정치적 올바름이니 따지면서. 아무튼 가까이 지내면 골치 아픈 타입일 것 같아.'
[주인님은 가끔보면 편견이 좀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어쩌겠어.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은걸.'
혼자 스트레칭을 이어가던 강PD가 무심결에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 뒤에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던 도훈의 심볼을 손끝으로 툭건드리고 말았다. 물컹하는 느낌에 화들짝 놀란 강PD가 고개를 돌렸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뭐, 뭐였지 방금? 분명 뭔가 손에 닿았던 것 같은데? 너무 피곤하니까 머리가 이상해진 건가?"
강PD가 스스로 머리를 쥐어짜면서 피로를 호소하는 사이, 도훈이 조용히 그녀와 거리를 더욱 벌렸다.
'헉, 들킬 뻔 했다.'
[그러게 왜 바짝 붙어서 서 계십니까?]
'내가 기지개 켤 줄 알았나. 그나저나 왜 USB를 들여다 볼 생각조차 안 하는 거지? 보라고 친절히 꺼내서 올려두기까지 했구먼.'
[다른 일이 더 중요한가 보죠.]
'흐음.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제발···.'
도훈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강PD가 손에 USB를 들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근데 대체 이게 뭘까? 내용만 잠깐만 확인해 볼까?"
강PD가 사건 보고서 파일을 클릭하는 모습을 확인한 도훈은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휴-. 다행이다. 어쨌든 PD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군.'
[그런데 저 PD가 다른 방송 때문에 해당 제보를 늦게 다루면 어떻게 합니까?]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니 우선 순위를 바꾸든가 하겠지 뭐.
아니면 다른 PD에게 넘기거나. 여기 PD가 저 여자 한 명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군요. 어쨌든 수고하셨습니다.]
'얼른 가서 옷이나 입어야 갈아입어야겠어. 발가벗고 사람들 사이 지나다니까 영 껄끄럽네.'
[어차피 안 보입니다.]
'내가 신경 쓰인다고!'
다시 화장실로 간 도훈이 복장을 갖춰 입으려는데, 채이에게 문자가 들어왔다.
-윤채이 : 도훈아 나 건물 화장실 들어왔어. 혹시 먼저 나오면 기다리고 있어.
'잉? 화장실이라니?'
[왜 그러십니까?]
'심심하니까 잠시 구경이나 하다 갈까? 아직 투명화 시간 남아 있지?'
[여자 화장실을요? 혹시 변태세요?]
'한 번은 써먹어야지.'
[다른 여자들 훔쳐보려는 건 아니고요?]
'그건 아닌데, 채이를 찾다가 우연히 다른 여자를 볼 순 있겠지.'
[그걸 보통 사회에선 그런 사람을 변태라고 부릅니다만.]
'기껏 포인트 써서 투명인간까지 됐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너무 섭섭하잖아. 남자들 100명한테 물어봐라. 투명 인간 되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그게 여자 화장실이라고요?]
'아니. 여탕이지, 당연히.'
[주인님. 지난 번 투명 인간 처음 되셨을 때 후배들 샤워실 훔쳐보다가 신벌 받으신 건 기억하고 계시죠?]
'당연히. 그걸 어떻게 잊겠어? 그것 땜에 팔자에도 없던 발기부 전까지 걸렸는데.'
[근데 그 짓을 또 하신다고요?]
'이번엔 진짜로 구경만 한다니까 그러네. 그땐 허락 없이 성추행해서 그런거고.'
[하여간 주인님은 못 말리겠군요.]
'잠깐만 구경이나 하자.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도훈이 남자 화장실을 빠져나오더니 옆에 있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총 6개의 좌변기 칸 중 2개가 문이 닫혀 있었다.
'오, 윤채이 말고 한 명 더 있는 것 같은데?'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에 도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다지만, 발가벗은 채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가슴이 떨릴 법 했다.
도훈이 문이 닫힌 옆 칸으로 가서 좌변기를 밟고 올라섰다. 위가 개방된 구조였기 때문에 큰 키를 이용하면 반대편을 볼 수 있었다.
'오오 보인다, 누구지?'
도훈은 기대를 갖고 옆 칸을 훔쳐보다가 갑자기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를 뻔 했다.
'억! 할카스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젠장. 하필 함정 카드에···.'
도훈은 못 볼걸 본 것처럼 얼른 고개를 돌리더니 화장실 칸막이를 빠져나왔다. 잠시 후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할머니 한 분이 밖으로 나오더니 손도 안 씻고 서둘러 화장실을 나갔다.
음흉한 심보로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다 내상을 입은 도훈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으윽, 눈갱 당했네.'
[그러게 왜 훔쳐보기 같은 못된 짓을 하십니까? 천벌 받은 겁니다.]
'설마 그 칸에 할머니가 있을 줄 낸들 알았냐?'
도훈은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잔상을 겨우 떨쳐내고는 닫혀 있는 마지막 칸에 주목했다.
'그럼 저기에 채이가 있겠군.'
[근데 윤채이양은 이미 공략이 끝난 대상 아닙니까? 이미 볼장다 봤는데 딱히 훔쳐볼 이유라도?]
'그게 또 느낌이 다르거든.'
[어디가요?]
'암튼, 그런 게 있다니까?'
도훈은 아까처럼 옆 칸으로 가서 좌변기를 딛고 올라섰다. 예상대로 짧게 숏컷을 한 채이가 좌변기에 앉아 있었다.
"흐음···."
그런데 뭔가 동작이 수상했다.
그녀의 손이 자꾸 가랑이 사이를 들락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으으···."
터져나오려는 신음을 참고 채이가 점점 더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화장실 칸 위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던 도훈은 어이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실소할 뻔 했다.
'헐. 설마 자위하려고 여자 화장실에 들른 거였어? 충격인데 이건.'
[혹시 주인님이 아까 만져대서 그런 거 아닙니까?]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