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 빌드 업-90-
"설마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싶다는 거야?"
"네. 그것만 있으면 어떤 여자든 눕힐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서준이, 네가 못 눕히는 여자도 있어?"
태오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헤헤, 당연하죠. 바람둥이 같은 남자들 별로 안 좋아하는 애들 있잖아요. 특히 집안 좋고 콧대 높은 애들."
"하긴. 그렇지. 그런 애들은 지들이 무슨 귀족인 줄 알잖아. 사람을 아래로 내려보는 애들."
"맞아요. 콧대를 확 꺾어 버리고 싶은데, 절대 저한테는 안 주더라고요. 근데 물뽕만 있으면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태오도 본인의 과거 경험이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껄껄 웃었다.
그런 여자들을 시쳇말로 못 오를 나무라고 불렀다. 누구에게나 가슴 한 켠에 미련처럼 남아있는.
"하하. 무슨 말인지 알겠다. 너근데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그냥 달라는 건데?"
"얼만데요?"
"소량 판매하는 거면, 1회분에 40만원 줘도 구하기 힘들어."
"40만원이요? 꼴랑 그거 한 개에요?"
"물론 더 싼 것도 있지. 데이트 약물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종류가 워낙 다양하거든. 요샌 하도 찾는 사람이 많아서 모조품도 많은 편이고. 근데 이것만큼 효과 빠르고 뒤탈 없는 물건은 없다고 보면 돼. 다른 건 막 구토를 유발하거나, 몸에 안 맞는 사람한테 억지로 먹였다가 죽는 사례도 있거든."
"헐, 죽을 수도 있다고요?"
"아니, 그 왜 무슨 알러지 반응 있잖아. 벌 잘못 쏘이면 죽는거. 암튼 진짜 훅 가는 종류도 많아. 꼼수 써서 여자 한 번 따먹어 보려다 느닷없이 살인자 되는 거지."
"생각보다 위험한 물건이군요."
도훈이 계속 받아주자 태오가 신이 났는지, 묻지도 않은 내용까지 떠들기 시작했다.
"또 어떤 약물은 약효가 도는 데까지 30분이 넘게 걸리는 것도 있다더라."
"30분이요?"
"어. 그런 건 중간에 여자애가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야. 기껏 골뱅이 만들어 놨더니 딴 놈한테 가서 씹대주는 경우지."
"그건 진짜 억울하겠네요.
"암튼 효과도 직방이고, 뒤탈 없기론 이게 최고라니까? 이제까지 부작용 한 번도 없었어. 그나마 특이사항이라곤 정신을 잃기 전에 몽롱해져서 성욕이 들끓는 건데, 그건 발정제 효과랑 비슷해서 오히려 좋지."
"그렇군요."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필름이 완전히 끊겨 버린다는 거."
"필름이 끊겨요?"
"응. 기억을 못하니까 자기가 잠든 사이 강간을 당한 줄도 모른다니까? 정액만 안 남기면 일종의 완전 범죄랄까?"
"대박이네요."
"흐흐. 개인적인 용도로 구매하는 거면, 내가 20만원까지 줄게."
도훈은 그 와중에 자신에게 딜을 거는 태오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저 새낀 아까까지 내가 1억을 몸으로 때웠다고 자기만 믿고 따르라더니, 그 와중에 장사 질을 하네?'
[혹시 원가가 20만원인 게 아닐까요?]
'아마도 그런 듯. 손해 보고 안 팔겠다는 마인드로군. 장사치 같은 새끼.'
"20만원이면 완전 거저 아니에요?"
도훈이 생각과 반대로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며 태오를 추켜올렸다. 우쭐해진 태오가 인심을 쓰는 척 말했다.
"인마. 너니까 형이 싸게 주는 거야. 안 그래도 지인 중에서 구해달라는 사람 많다."
"구해주다뇨?"
도훈은 또 다른 범죄의 증거를 찾은 것 같아, 카메라를 태오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자기한테 팔아 달라고."
"그걸 따로 팔기도 해요?"
"당연하지. 돈 되는 거라면 난 다 해."
"오, 그렇구나."
"암튼 너한테만 싸게 준거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네."
태오가 주머니에서 1회용 인공눈물 형태의 물뽕 약을 꺼냈다.
5개가 세트로 붙어 있었는데, 하나씩 분리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설마 5개에 20만원은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5개 세트면 원래 150이야."
"무지 비싸긴 비싸네요."
"그만큼 효과가 끝내주니까."
태오가 물뽕을 하나 뜯더니 도훈에게 건넸다.
"너 혹시 현금 있냐?"
"아, 네. 누님들한테 팁 받은 거 있어요."
도훈이 뒷주머니에서 20만원을 꺼내더니 태오에게 건넸다.
"하, 씨발. 그년들이 준 팁이면 원래 내 돈인데."
태오는 아까 일이 떠오르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거액의 합의금을 내준 게 무척이나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주인님. 근데 마약 거래 현장을 직접 녹화하면 괜히 주인님까지 위험한 거 아닙니까?]
'난 어차피 영상에 안 나오니까 상관없어. 뭣하면 이 영상은 제 보할 때 빼버려도 그만이고. 그나저나 이것들이 공장을 돌리고 있는 것 같은데?'
[완제품 형태로 거래되는 마약을 보니 그렇게 보입니다.]
'물약 형태라서 포장에 더 신경 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제 증거까지 확보했군.'
도훈은 주머니에 물약을 챙기며 뒤로는 몰래 손을 뻗어 노트북에서 USB를 뽑았다. 복사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충분히 끌었기 때문에, 증거로 쓸 파일은 모두 복사를 마친 상태였다.
"영상은 어땠어? 잘 찍혔지?"
"네. 각도가 예술이네요. 여자애 얼굴이랑 다 나왔어요."
"흐흐. 이제 그걸로 슬슬 옭아 매보자. 수틀리면 학교랑 친구들한테 싹 다 뿌려버린다고 뻥카 좀 치고."
"네, 형님이 잘 지도해 주십시오."
"그래. 아무튼 이제 나한테 너랑 휘겸이 밖에 없다. 다른 선수들은 내가 차차 섭외해 볼 테니까, 일단은 우리끼리라도 똘똘 뭉쳐보자."
[주인님. 채증은 모두 완료된 것 같은데, 구씨에게는 어떻게 접근하실 예정입니까?]
'지금부터 한 번 그걸 뚫어 볼 생각이야.'
"근데 형님. 다른 선수들 모집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 운 좋으면 두 달? 이게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입이 무거워야 하거든. 기존에 데리고 있는 선수 중에서 눈여겨본 애들이 있긴 한데, 걔들이 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큰일이네요. 선수가 저랑 휘겸이 형밖에 없으면 한동안 저희 손가락 빨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 안되면 나라도 선수로 뛰려고. 상납금 못 맞추면 내가 먼저 죽게 생겼거든."
"상납금이요?"
태오가 담배를 꺼내 물더니 의자에 앉았다. 책상 앞에 펼쳐진 노트북에는 도훈을 찍은 영상이 중지되어 있었다. 태오가 도훈을 쓱 한 번 쳐다보며 생각했다.
'영상까지 남긴 이상 어차피 도훈이도 한배를 탄 몸이야. 게다가 오늘 보여준 모습으로 봐선 당장 에이스로 올려줘도 제 몫은 충분히 할 놈이고.'
"서준아, 너도 어차피 이제 우리 식구니까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 같아."
"네, 형님. 말씀 하십시오."
"솔직히 내 경력에 마담 자리 꿰찰 수 있었던 건 구씨 형님이 뒷배를 봐줬기 때문이야."
"구씨 형님이라면 저번에 말씀하셨던···."
"어. 우리 같은 업장 여러 곳을 돌리시는 분이지. 난 그분을 대신해서 이곳을 관리하는 거야."
"쉽게 말해 큰 형님이군요."
"그렇지. 암튼 나 같은 마담들은 구씨 형님한테 일주일에 한 번씩 정산을 해줘야 해."
"정산이요?"
"일종의 사납금이랄까? 이곳 업장 관리하면서 나온 수익이랑, 여자애들 오피에 팔아먹으면서 받는 돈, 그리고 물뽕 공급받는 비용까지."
"흠, 얼마나 드려야 하는데요?"
"단위가 좀 커. 구체적인 건 말할 수 없지만."
"근데 지금은 부득이한 상황이니, 구씨 형님께서 사정을 말하면 봐주지 않을까요? 당장 뛸 선수도 부족한 마당인데···."
"아니지. 그런 말 해봐야 구씨 형님 입장에서 내가 능력 없는 마담으로 비칠 뿐이야. 휘하의 선수 하나 제대로 관리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으로 찍히겠지."
"아···."
"그리고 내가 방금 사납금이라고 했잖아. 돈이 얼마나 벌리건간에 무조건 맞춰야 하는 돈이란 뜻이거든. 장사가 안되면 내 돈으로 메꿔서라도."
"정말요? 형님 오늘 합의한다고 돈 많이 쓰셨잖아요?"
"그러니까. 근데 그년들이 진짜로 경찰 신고해서 일 커졌으면, 내가 먼저 잘려나갔을 걸?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게다가 창민이가 경찰서 잡혀가서 무슨 얘길 털어놓을지 모르니 입단속도 필요했고. 그 돈이나 그 돈이나. 퉁친 셈 치는 거지."
"큰일이네요. 그럼 지금 심각한 상황 아닌가요?"
"골치 아프긴 한데,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걱정 마. 그간 모아 둔 돈도 있고, 한 달 정도는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사납금 방식이 좋은 게, 무조건 일정 금액을 받쳐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거 제하고 남는 돈은 내가 다 먹는 다는 말이거든."
"그렇군요."
태오의 이야기를 듣던 도훈은, 뭔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잘하면 구씨와 접선해 볼 수 있겠는데?'
[어떻게 말입니까?]
'지금부터 태오를 구워삶아 볼게.'
도훈이 잠시 헛기침을 하는 척,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면서 빠르게 립밤을 발랐다. '오빠 믿지 립밤'으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저, 형님. 혹시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그냥 제 생각입니다."
"말해. 편하게."
"당장 선수 수급이 어려우니, 업장 운영이나 여자애들 오피에 넘기는 건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그렇다면 아예 저희가 물뽕을 판매하는 건요?"
"물뽕을 외부 유통을 하자고?"
태오가 솔깃해하며 도훈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네. 클럽 같은 데서 직접 판매를 해보는 거죠. 형님 말대로 효과는 보장되어 있으니, 시장성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흠···. 나도 그걸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너무 위험해."
태오 역시 마약의 직접 판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업장 안에서 몰래 소량으로 쓰는 것과, 시장에 유통을 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특히 마약류 유통은 경찰 단속에 걸릴 위험도 컸고, 경찰이 아니더라도 다른 세력과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마약 유통 사업은 이문이 엄청 남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기존 나와바리가 형성되어 있어, 무조건 다른 조직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훈이 주춤하는 태오를 계속 설득했다.
"아예 판 깔아놓고 본격적으로 하자는 게 아니고요, 선수 수급이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요. 잠깐만 하고 치고 빠지면 괜찮지 않을까요?"
"한시적으로 치고 빠진다?"
"네. 한 두달이면 부상 당한 다른 선수들도 돌아올테니, 그때까지만 하는 거죠. 사납금 때울 정도만."
"흠···."
태오가 턱을 쓸어내리며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자기 돈으로 메워야 했다. 그렇게 버티는 것도 고작 한 달 남짓. 어떻게든 자금 마련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는데, 도훈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었다.
"근데 어떻게 팔자는 건데? 유통할 방법이라도 있어? 설마 클럽에 가서 아무 놈이나 붙잡고 데이트 약물 사라고 하자는 건 아닐 거잖아."
"요새 마약은 오픈 채팅이나 텔레그램 메신저로 많이 거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걸로 한두명씩 따로따로 접촉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먹힐까?"
"형님은 영상도 많이 가지고 계시잖아요. 효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솔깃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한 번쯤 따먹고 싶은 여자들이 있으니까요. 저도 그렇고."
"흐음···."
영상을 미끼로 제품을 홍보하고, 구매자들과 추적 불가능한 메신저로 단발성 거래를 하자는 뜻이었다. 도훈의 아이디어가 일리가 있다고 느낀 태오는 그다음을 고민했다.
"구매자들은 그렇게 모집한다 치더라도, 애초에 물뽕을 내가 들고 있는 게 아니야."
"그걸 누가 공급해주는데요?"
"구씨 형님이 직접 보내줘. 일주일에 소량씩."
"음, 그럼 이번 한 번만 많이 달라고 부탁하면 안 될까요?"
태오가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많이는 좀···. 배달하는 애들한테 대량으론 안 맡길 테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부피는 작아도 같은 무게의 금덩이만큼 비싼 물건이거든. 중간에 배달 사고 나면 진짜 현금 수송차량 털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럼 어떻게 하죠? 물건을 구할 방법이 없나요?"
"내가 직접 구씨 형님을 접선해 보는 수밖에."
"아···."
태오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만약 도훈의 계획대로만 일이 풀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이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꾸준히 유통하는 것은 언젠가 꼬리를 밟히겠지만, 추적이 힘든 메신저를 이용해 잠깐 치고 빠지는 방식이라면 한 두달정도는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음, 진짜로 한 번 해버려?"
"괜찮으시겠어요?"
"말 나온 김에 시도는 해봐야지. 일단 내일 구씨 형님한테 연락좀 해봐야겠다."
도훈이 이쯤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형님. 그럼 제가 같이 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