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53화 (1,733/2,000)

1753. 빌드 업-88-

* * *

도훈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태오는 머리가 띵해지는 지 이마를 짚었다.

'좆됐다.'

이번 사건은 형사 입건되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돈 많은 사모들이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보니 합의를 유도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끄으으···."

팔목이 부러지고, 반쯤 고자가 된 창민이 끙끙거리는 신음을 토해냈다. 등에 유리조각이 박힌 채 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도 없었던 태오가 옆에 서 있던 찬호에게 말했다.

"찬호야. 내 차 키 줄 테니까, 애들이랑 같이 창민이 실어서 병원으로 데려가라."

"제가 직접요? 앰뷸런스 안 부르시고요?"

"사고 난거 광고 낼 일 있냐? 앰뷸런스 사이렌 울리고 구급요원들이 업장 들락거리면 볼만 하겠다 인마. 다른 손님들 다 쫓아낼 거야?"

"아, 넵,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병원에서 왜 다쳤다고 물으면 술 처먹고 혼자 넘어졌다고 해. 괜히 일 키우지 말고. 넘어졌는데, 병조각에 찔린 것 같다고."

"네, 넵!"

태오는 창민을 급히 병원으로 후송시켰다. 이제 룸 안에는 사건 당사자인 혜미와 미향, 그리고 도훈만 남았다.

상황을 대강 수습한 태오가 두 여자를 향해 무릎 꿇었다.

"손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방금 일은 제가 대신 사죄드리겠습니다."

무릎까지 꿇은 태오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혜미는 팔짱을 낀 채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사죄? 마담 니가 왜 사죄를 하는데? 넌 잘못 없잖아?"

"그 새끼 우리한테 협박까지 하더라? 남편한테 싹 알리겠다고? 참나. 우리 남편 이미 죽었는데 저승에 알리시게?"

"야야, 긴 말 필요 없어. 마담이 경찰 안 부르면 내가 직접 신고 할 거야."

잔뜩 화가 난 혜미가 핸드폰을 꺼내자 도훈이 나서서 혜미를 말렸다.

"누님, 제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뭐라고? 서준이 너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잖아? 아까 그 새끼가 너한테 깨진 병 휘둘렀을 때 다칠 뻔 한 거 잊었어?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진짜 산송장 치르는 줄 알았다니까?"

도훈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쨌든 안 다쳤잖아요. 다른 건 아니고, 지금 경찰 부르면 참 고인 진술도 해야 할 텐데···. 제가 떳떳하지 못한 직업이라 가족들한테 이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거든요."

"흠···."

사실 오래전에 남편을 사별한 미향과 달리 혜미 역시 마찬가지 처지였다.

쇼윈도 부부라곤 하지만, 남편은 지금도 자기 분야에서 잘나가는 대학 병원 교수였다. 부인이 몰래 호스트 빠에 놀러갔다가, 범죄에 휘말렸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가면 어차피 곤란해 지는 건 똑같았다.

[굳이 왜 말리십니까? 그냥 콩밥 먹이는 게 낫지 않습니까? 증거부터 증인까지 명백한 사건인데요.]

'어차피 방송국에 영상 제보되고 수사 들어가면 나중에 알아서 잡혀갈 거야. 벌써부터 일을 키울 필요는 없지. 놈들이 쫄아서 몸사릴 지도 모르고.'

[하긴 그렇겠네요. 그리고 미향은 몰라도 혜미는 가정이 있으니 사건화 되는 게 난처하긴 하겠군요.]

'맞아. 그래서 어차피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도 다 뻥카겠지. 다른 걸 얻어내기 위한.'

[확실히 미시들이라 사회 생활 경험이 많으니, 협상을 할 줄 아는 군요.]

'미향이도 그렇지만, 혜미는 본인 힘으로 부동산 대박을 낸 여장부나 다름 없으니까. 어지간한 남자들은 다 찜쪄 먹을 걸. 그리고 내가 나선건 태오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도 있어.'

[조태오에게 말입니까?]

'태오 휘하에 있던 선수들이 모조리 날아갔잖아. 그 와중에 유일하게 멀쩡한 내가 그의 편을 들어준다면, 나한테 얼마나 고마워하겠어?'

[그렇군요. 헌팅조는 나란히 병원행에, 원투 펀치 중 하나인 창민마저 반병신이 되었으니···. 주인님의 입지가 더 올라가겠군요.]

'그럴수록 놈은 나에게 의지할 거고, 윗선에 닿을 확률도 높아 지겠지. 어쨌든 내 목표는 조태오같은 조무래기가 아니라 마약 유통책인 구씨라는 놈에게 닿는 거니까.'

"서준이 네 입장이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을 겪었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어."

"맞아. 나도 살다가 이런 적 처음이야. 놈이 깨진 병을 우리한테 휘둘렀으면 어쩔 뻔 했어? 이건 엄연히 살인 미수라고!"

급기야 살인미수라는 발언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태오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애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희 서준이가 사태를 수습한 점을 고려하셔서, 부디 너그러운 처분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언니 어떻게 할래?"

"참나. 골때리게 됐네. 미쳐 날뛴 것도 선수고, 그걸 뜯어 말린 것도 같은 선수라니."

"여봐, 마담."

"네."

"다른 사람 같으면 합의금 적당히 쥐여주고 끝내겠지만, 우린보면 알겠지만 돈이 그렇게 아쉬운 사람들이 아니에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없던 일로 넘어가기엔 너무 일을 크게 만들었어. 그건 마담 너도 인정하지?"

"네. 맞습니다."

"마음 같아선 그 새끼 확 콩밥 먹여 버리고 싶은데, 서준이가 곤란하다고 하니까 그럴수도 없고···. 좋아, 이렇게 하자."

"네. 말씀하십시오."

"위로금으로 각각 한 장씩. 어때?"

"그럼 이천···. 네 가능합니다."

태오의 대답에 미향이 혜미를 쳐다보더니 미친듯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들었어?"

"마담 너 진짜 우릴 졸로 보고 있었구나?"

"예, 예?"

"한 장이 어떻게 천이니? 우리가 그렇게 없는 사람으로 보여?

우린 기분 내키면 하루에 천만원 정도는 우습게 쓰는 사람들이야."

"그러게. 내 빌딩 한 채에서 나오는 한달 임대료도 그보단 많겠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안 되겠다, 언니 그냥 신고해. 마담이 진심으로 사죄해서 합의 해 주려고 했더니, 말 귀가 전혀 안 통하는 것 같아."

"그래. 서준아, 네 사정은 딱하지만 어쩔 수 없겠다."

"아, 아니···. 잠, 잠시만요."

그제야 각각 한장이라는 금액이 2억이라는 걸 깨달은 태오가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돈 이천 쯤이야, 여자애 한 명 작업하면 금방 벌 수 있는 돈이었지만, 2억은 그에게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그 정도 합의금을 주고 사태를 수습하느니, 그냥 창민을 경찰에 넘긴 뒤 그에게 돈을 먹여 입단속시키는 편이 더 싸게 먹힐 판이었다.

"왜?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안 되겠지?"

"합의는 물 건너 갔으니, 그냥 신고해."

혜미가 진짜로 핸드폰으로 112에 전화를 걸려고 하자 도훈이 다시 손을 뻗어 그녀를 만류했다.

"누님들. 잠시만요."

"왜?"

"저랑 따로 얘기 좀 하시면 안 될까요?"

"뭐라고?"

"서준이 너랑만 따로?"

"네."

두 사람은 서준 덕분에 화를 피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선 감정이 각별한 상태였다. 굳이 나선 걸 보면 다른 생각이 있으리라 보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들었지? 마담. 넌 잠깐 밖에 나가 있어."

"네? 아, 아 네."

태오가 마담으로서의 체면을 구기며 룸 밖으로 나갔다.

도훈은 셋만 남게 되자 두 사람에게 말했다.

"누님들. 화가 많이 나셨겠지만 2억은 마담 형님 입장에서도 커버하기 힘든 금액입니다."

"그거야 너네 마담 사정이고."

"우리가 정말 한 몫 챙기려고 이러는 것 같니? 그 돈 받아서 너 챙겨 주려고 한 거야. 맞지 언니?"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구나. 서준아. 우린 그 돈 없어도 충분히 잘 사는 사람들이야. 그냥 너한테 고마워서 챙겨주고 싶어서 세게 부른 거야. 네가 우릴 구해줬으니, 그만한 보답은 받아야지."

"맞아. 우리가 신고해 봐야 그 새낀 끽해야 감옥 가고 끝날 건데, 그럼 너한테는 아무 이득도 없잖아. 너 돈 필요해서 이 일 하는 거라며?"

"말씀은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말은, 마담 형님 입장에선 2억으로 합의를 해줄 바에야, 그냥 창민을 폭행죄로 경찰에 넘겨 버리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뜻이었습니다. 어쨌든, 호스트 빠 선수 개인의 일탈이라면서 손절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런가?"

"그리고 어차피 창민이는, 두번 다신 선수 일은 못 할 겁니다.

마담 형님 입장에서도 계속 두고 쓸 수 없는 자원이라는 뜻이죠."

"듣고보니 그렇네? 하긴 마담이 걔가 뭐가 이쁘다고 합의금까지 내주겠어?"

"그래도 이천에 합의해 주는 건 너무 존심 상해. 금액이 작으니까 마치 푼돈 뜯으려고 떼 쓰는 거 같잖니, 우리가."

"음. 그래서 제 생각인데, 금액을 조금 깎으면 마담 형님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보고 흥정을 하라는 거야?"

"관용을 베풀어 주시라는 거죠."

"우리가 왜?"

"그래. 맞아.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저를 봐서라도요."

도훈이 계속 간청하자 미향과 혜미도 점점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무리한 합의금을 요구하다가, 한푼도 못 받고 형사처벌로 끝나는 것보다 금액을 줄이더라도 도훈을 챙겨주는 것이 결과적으론 더 큰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럼 서준이 네가 생각하는 합의금은 얼만데?"

"한 장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한장이면 1억. 두 당 오천이라는 건데."

"이건 너무 깎아주는 거 같은데."

"어쨌든 마담 형님한테도 퇴로를 열어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1억도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럼 우린 마담 사정 봐주고 뭘 얻는 거야?"

"맞아. 우리만 너무 양보하는 거 아니야?"

[정말 둘 다 지독하군요. 솔직히 이 정도 폭행 사건 합의금으로 1억을 받는 것도 적은 금액은 절대 아닌것 같은데요.]

'저러니 부자가 됐겠지. 약점을 잡으면 상대를 물어 뜯고 놔주질 않으니까. 어차피 이 정돈 예상했어.'

두 사람의 속셈을 미리 예상한 도훈이 답정너를 해주었다.

"그럼, 누님들 필요하실 때 제가 봉사해 드리면 어떤가요?"

"서준이 네가?"

"몸으로 때우겠다는 거야?"

"어차피 합의금 받으면 저한테 주신다고 하셨으니, 저도 맨입으로 날름 받을 순 없죠. 저도 상도덕을 아는 사람이니까."

도훈의 제안이 솔깃했는지, 혜미와 미향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근데 주인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너무 밑지는 거래 같은데요?

저 성욕 넘치는 미시들이 주인님을 얼마나 불러댈줄 알고요?]

'그냥 상황만 무마하려는 거야. 나도 두 사람에게 더 볼 일 없어.'

[네? 볼 일이 없다면 왜 그런 약속을···.]

'나중에 기회봐서 손절하면 그만이란 뜻이야. 돈이 필요 없는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코 묻은 돈 가지고 누굴 오라가라 불러대려고? 확 돈다발로 뺨을 쳐버릴까 보다.'

[아하. 역시 부자인 주인님은 거리낄 게 없으시군요.]

두 사람과 협상을 마무리한 도훈이 밖에서 기다리는 태오에게 나가서 말했다.

"형님, 얘기 끝났습니다. 이제 들어가시죠."

"어떻게 된 거야?"

"제가 합의금을 네고했습니다."

"네고했다고? 어떻게?"

"일단 들어가서 얘기 하시죠."

미향과 혜미는 도훈의 얼굴을 봐서 합의금을 절반으로 낮춰주겠다고 했다.

1억도 물론 큰돈이었으나, 2억에 눈 앞이 캄캄하던 것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선이었다.

괜히 창민이가 경찰서에 끌려가서 마약이나 인신매매와 관련된 범죄 사실을 실토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으로 보였다. 입막음을 시키려고 해도 그 정도 지출은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괜히 창민이 다른 범죄 사실을 실토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요소를 안고 가는 것보단, 그냥 없던 일로 만드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1억으로 합의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정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서준이한테나 해."

"그래. 서준이가 우리한테 어찌나 간청하던지. 서준이 아니었으면 절대 양보 안했어."

"네···."

태오는 바로 금고로 가 현금을 챙겼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힘들게 모은 돈이 이렇게 털린다는 것이 억울했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5만원권 다발로 묶은 현금을 박카스 박스에 넣은 태오는, 백지에 합의 내용을 작성한 뒤 두번 다시 오늘 건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은 뒤 돈을 건넸다.

현금으로 1억을 챙긴 혜미와 미향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게를 나섰다. 도훈이 끝까지 따라가 배웅했는데, 미향이 그를 향해 말했다.

"그럼 나중에 연락해. 우린 아직 계산할 거 남았지?"

미향이 현금이 잔뜩 든 박카스 박스를 흔들어 보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