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2. 빌드 업-87-
"정해진 시간 안에 싸는 것도 능력이죠. 지루가 아니라면."
"아니 그래도 이건 상황이···."
창민은 본의와 무관하게 섹스가 중단된게 억울했는지, 미향에게 구차하게 애걸했다.
"누님, 정 그러시면 입으로라도 한 발 뽑아주시면···."
"너 미쳤니?"
미향이 곧바로 역정을 내더니 창민의 뺨을 거세게 올려붙였다.
짝-!
난데없이 뺨을 맞은 창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미향을 쳐다보았다. 미향이 표독스럽게 변한 눈빛으로 창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서 근본도 없는 새끼가, 손님한테 감히 이래라저래라 명령질이야? 니가 그러고도 호스트 빠 선수니?"
"아, 아니···."
여자한테 뺨을 맞은 게 처음이었는지, 창민은 뺨을 어루만지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미향이가 확실히 창녀 출신이라 성깔이 보통이 아니구나. 서비스 마인드가 형편없으니까 바로 까버리는 거 봐.'
[따지고 보면 미향은 동종 업계 선배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이젠 유산 상속으로 재산도 많겠다, 호빠 선수 따위한테 꿀릴게 없지. 이 승부의 결과는 들을 필요도 없겠군.'
"하, 씨발. 무슨 이런 좆같은 새끼가 다 있담? 이 승부는 서준 이가 이겼어. 언니는 어때?"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던 혜미 역시 도훈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게 실례가 되는 수준이야. 서준이 승!"
섹스 중 퇴짜를 맞은 창민은, 뺨도 맞고 승부마저 져버리자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 이런 개좆같은! 가정도 있는 년들이 뭐가 어쩌고 어째? 확니들 남편한테 다 불어 버린다?"
창민이 결국 추한 꼴을 드러냈다.
그는 혜미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함께 온 미향 역시 유부녀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승부에 졌다고, 갑자기 돌변하는 그의 찌질한 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뭐, 뭐라고?"
"너 미쳤니?"
"씨발, 내가 못 할 줄 알아? 나야 어차피 호빠 일하는 놈이라 이미지 좆창나도 타격 없거든? 근데 니년들은 어떨까? 이런데 출입하는 거 남편이 알아도 상관없어? 위자료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게 해드려?"
창민이 미쳐 날뛰자 한 성깔 하는 미향이 대번에 양주병을 집어 들더니 놈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뭐 이런 좆같은 새끼가 어디서 되지도 않는 협박질이야!"
하지만 창민도 두 번은 당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양주병을 피하더니 미향의 손목을 붙잡아 소파로 휙 밀쳐 버렸다.
"악!"
"이 씨발 년이 한 대 맞아주니까 내가 좆밥으로 보여? 어디서 까불어!"
손에 쥔 양주 병을 떨군 미향이 충격으로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그나마 소파로 나가떨어졌기 때문에 큰 부상을 안 입은게 다행일 정도였다.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도훈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이래서 호빠 선수들이 양아치 소리 듣는 거라니까?"
"뭐라고?"
"어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아. 너 지금 손님한테 협박하고 손찌검한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도훈도 똑같이 옷을 벗고 있었기 때문에 천둥벌거숭이라는 표현은 스스로를 디스한 것이기도 했다.
창민은 도훈의 근육질 몸에 위협을 느낀 듯 미향이 그랬던 것처럼 양주병을 거꾸로 집어 들었다.
"너 이 개새끼, 잘 걸렸다. 너 내가 오늘 죽이고 만다."
창민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주병을 테이블 모서리에 내리쳐 병을 깨뜨렸다.
"꺄아!"
"어, 얼른 경찰 불러!"
깨진 병이 날카로운 흉기로 변하자, 여자들이 놀라서 비명을 질러댔다.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며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도훈은 그 모습을 보고도 오히려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이야, 이젠 살해 협박까지? 너 어디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셈이야?"
"또라이 같은 새끼. 허세 부리는 것도 지금 뿐이야. 내가 못 찌를 줄 알지?"
"뭐라고?"
"내가 옛날에 야구하다 왜 그만뒀는지 몰라? 술 먹다가 시비거는 새끼, 야구 방망이로 뚝배기 깨버렸거든. 그 새끼 지금 제 손으로 젓가락질도 못한다더라? 난 한다면 하는 놈이야. 그러니까 날 자극하지 말았어야지!"
깨진 양주병을 든 창민이 벌거벗은 채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도훈도 같은 나체 였기 때문에, 유리병에 찔리면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는 위기였다.
보다 못한 혜미가 창민에게 소리쳤다.
"야! 너 돈 때문에 그래?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당장 그만 둬!"
혜미가 가방에서 현금 다발을 꺼내더니 창민을 향해 뿌렸다.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창민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돈으로 자신을 매수하려 드는 여자들에게 발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 씨발 년들이, 내가 무슨 거지 새낀 줄 알고!"
흥분한 창민이 급기야 도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도훈의 입장에선 하품이 나올 만큼 느린 동작이었다.
'로시. 흉기를 들고 덤벼드는 상대라면, 확실한 정당방위 맞지?'
[네. 문제 없습니다.]
'놈이 날 죽이려고 했으니, 나도 죽여도 무방하겠군.'
[그렇다고 죽이진 마시고요. 일만 더 복잡해 질겁니다.]
'그래도 버릇은 고쳐줘야 겠어."
횡으로 크게 휘두르는 유리병을 가볍게 피한 도훈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어 가슴팍을 밀쳤다.
퍽-!
눈으로 보기엔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미약하게나마 내공이 실린 장법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창민은 그대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어억!"
날아오른 창민은, 하필 자신이 양주병을 깨뜨린 곳을 향해 등부터 추락했다.
쿵-!
"크악!"
유리 파편에 등을 찔린 창민이, 뭍으로 올라온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에게 도훈이 다가와, 맨발로 손목을 지그시 밟았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놀면 안 되지."
우득-
"으, 으악!"
가볍게 밟은 듯 보였으나, 도훈의 발은 천근에 가까운 무게가 실려 있었다.
순식간에 팔목뼈가 박살난 창민이 양주병을 놓쳤다. 도훈이 깨진 양주병을 들어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리고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뭐해요? 당장 호출 벨 누르지 않고."
"어, 어 알았어!"
공포 분위기에 얼어있던 여자들은 창민이 제압되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 호출벨을 눌렀다. 도훈이 다시 미향과 혜미를 향해 말했다.
"사람들 몰려올테니 옷은 입으시고요."
"어, 어!"
"고마워, 서준아."
팔목이 부러진 창민은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도훈을 향해 욕을 멈추지 않았다.
"크흑, 너 이 새끼 니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너 밤 길 조심해라. 확 야구 빠따로 뒤통수를 후려버릴 테니까!"
"거 존나게 시끄럽네, 애새끼도 아니고."
도훈은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창민의 물건을 향해 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넌 이 기회에 구슬이나 빼라. 보기 흉하더라."
"뭐, 뭐하는!"
빡-!
도훈이 가차없이 놈의 물건을 짓밟아버렸다.
"흐아아아악!"
급소를 짓밟힌 창민이 룸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귀두가 납작하게 뭉개졌으니, 다시는 예전같은 성관계를 못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평생.
* * *
한편 도훈을 4번 룸으로 투입시킨 태오는 사무실로 돌아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진상 같은 년들 같으니. 매상만 아니었어도 당장 내쫓아 버리는 건데.'
하지만 그는 눈썰미가 예리한 편이었다. 미향과 혜미가 입고 있던 옷, 그리고 들고 온 가방만 보고도 그녀들이 돈 많은 집 사모님이란 걸 단박에 꿰뚫었다.
'그래. 옛말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돈이랬지. 창민이랑 서준이가 조금만 고생하면 되는 거니까. 고생한 만큼 챙겨주면 섭섭해 하진 않겠지.'
그는 서준을 떠올리다 문득 VIP룸이 생각났다.
'근데 왜 휘겸이 이 자식은 왜 안 나오지? 서준이가 이미 마무리 했다고 하지 않았나?'
태오가 시간을 확인했다. 휘겸이 나올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태오는 뭔가 이상한 생각에 혼자 VIP룸으로 향했다.
똑똑-
"휘겸아? 나야. 안에 별 일 없지?"
"······."
"응? 뭐야. 왜 대답이 없어?"
태오는 혹시 몰라 한 번 더 문을 노크했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순간 불안한 예감이 든 태오가 벌컥 문을 열었다.
"엥? 너 거기서 뭐하는 거야?"
놀랍게도 휘겸은 소파에 쓰러져 기절한 상태였다.
작업했다는 여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이게 대체···."
도저히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4번룸으로 들어간 도훈을 다시 불러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태오가 기절한 휘겸의 뺨을 툭툭 때렸다.
"일어나 인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제법 세게 뺨을 때렸는데도 휘겸은 일어나지 못했다. 놀란 태오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코에 손가락을 대며 호흡을 확인했다.
호흡은 다행히 정상이었다.
쉽게 말해 휘겸은 잠든 것과 흡사한 상태였다.
'이런 적이 이제껏 한 번도 없었는데? 여자애는 또 어디로 간 거야? 분명 서준이가 작업 끝냈다고 하지 않았나?'
갈피를 못 잡던 태오는 문득 이곳에 자신들이 미리 설치해둔 몰카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 카메라로 이전 상황을 돌려보면 되겠구나.'
태오는 VIP룸에 설치 된 카메라를 꺼내 들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휘겸을 깨워볼까도 했지만, 어차피 당분간은 정신을 못차릴 것 같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조그만 몰래 카메라에서 플래시 드라이브를 꺼낸 태오가 노트북의 SD슬롯에 꽂아 넣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태오는 빨리 감기를 이용해 불필요한 내용을 스킵했다. 중간 중간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딱히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휘겸과 도훈은 분명 정석에 가깝게 여자를 꼬시는 중이었다. 서로 티키타카를 이어가며, 여자애가 술에 취하도록 유도했다.
'이상한데? 작업은 별 문제 없었던 것 같은데?'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한 태오가 빠르게 화면을 돌리는데, 도훈이 잦이를 꺼내 눈을 가린 주아의 입에 밀어넣는 장면이 들어왔다.
"엥? 저게 뭐야?"
보면서도 어이없는 장면에 태오가 잠시 영상을 중지시켰다.
"왜 휘겸이가 아닌 서준이가 나선 거지?"
이해가 안되는 장면이라 태오가 다시 정상 속도로 영상을 재생했다. 서준이 시선을 끄는 사이, 휘겸이 여자애한테 양주를 권하고 있었다.
"어, 저때 물뽕을 먹였구나. 영상만 봐서는 별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심지어 여자애가 원샷으로 다 마시기까지 했고."
하지만 영상 속의 여자는 물뽕 탄 술을 마시고도 쓰러지지 않고, 뒤늦게 양주를 마신 휘겸이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것처럼 소파에 픽- 쓰러졌다.
태오는 자신이 본 장면이 믿기지 않아, 다시 뒤로 돌려 재차 확인했다. 두번을 돌려 보고 나서야, 태오는 한가지 가설을 세웠다.
"이 자식 설마, 실수로 물뽕 탄 술을 자기가 마셔버린 건가?"
쓰러지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물뽕 증상이었다.
어떤 종류는 30분에 걸쳐 천천히 의식을 잃게 만들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사용하는 종류는 프롬알데히드 마취약에 당한 것처럼 순식간에 사람을 기절시킨다.
부지불식간에 의식을 잃고 기절해 버리기 때문에, 당한 상대는 잠깐 졸았다가 잠에 들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심지어 깨고나면 블랙 아웃이 온 것처럼 직전의 기억이 삭제되기 때문에 그 사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도 모르는 여자들이 태반이었다. 강간을 당하고도 전혀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데이트 강간 약물이라고도 불렸다.
태오가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푸념했다.
"어떻게 에이스라는 놈이 저런 초보적인 실수를!"
몰래 카메라의 각도상 테이블 쪽은 촬영이 안 되었기 때문에, 태오는 도훈이 중간에 술 잔을 바꿔치는 장면을 전혀 보지 못했다. 설사 카메라에 찍혔다고 해도, 마술처럼 빠른 손동작이었기 때문에 눈치를 못 챘을 테지만.
휘겸이 쓰러지자 도훈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아, 서준이가 마무리했다는 말이 이 뜻이었구나. 휘겸이 실수로 물뽕 마시고 뻗어버리니까, 자기가 직접 영상을 찍었다는 소리였어. 기특한 녀석 같으니라고.'
상황을 완전히 오해한 태오는 도훈이 기지를 발휘해, 실패할 뻔한 작업을 마무리 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역시 크게 될 놈은 떡잎 부터 다르네. 자칫하면 물뽕을 타 먹이려는 게 들통날 수도 있는 위기였는데, 휘겸이가 취해서 뻗은 걸로 스리슬쩍 넘기면서 직접 영상을 확보했어. 심지어 상대는 물뽕을 먹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태오가 도훈의 훌륭한 임기응변에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벌컥-!
노크도 없이 웨이터 박찬호가 문을 열었다.
놀란 태오가 황급히 노트북을 덮으며 화를 냈다.
"야! 어디서 허락도 없이 문을 벌컥···."
"매, 매니저님, 큰 일 났습니다!"
태오는 찬호가 그렇게 당황한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에 덩달아놀라고 말았다.
"이번에는 또 뭔데?"
"직접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4번 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