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2. 빌드 업-77-
VIP룸으로 도훈을 안내한 찬호가 테이블에 양주를 세팅하면서 말했다.
"남자분이랑 같이 오시는 여자 손님은 처음 보네요."
"아···, 전 그냥 오빠 따라 왔어요."
"하하, 농담입니다. 태오 형님 지인분이시라니까, 초이스는 따로 안 부르겠습니다."
"네. 혹시 태오 형 좀 불러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쇼!"
찬호가 깍듯이 인사하더니 룸을 나갔다.
둘만 남게 된 도훈과 주아가 양주와 함께 딸려나온 과일 안주를 먹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태오가 들어왔다.
"왔섭, 브로!"
좌우로 크게 팔을 벌리며 태오가 격한 환영 인사를 건넸다. 일전에 봐왔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에 도훈이 떨떠름 하면서도, 태오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가슴을 부딪히며 마주 안았다.
"태오형, 오랜만이에요!"
"어, 그래. 이게 몇년 만이지?"
"1년 전 명절 연휴 때 뵌 거 같아요."
"어, 그랬지?"
태오와 도훈은 즉흥으로 간만에 만난 사람 연기를 했다. 도훈이 바로 주아를 소개했다.
"이쪽은···."
"반가워요, 와, 예쁘시다. 혹시 고등학생은 아니죠?"
"저요? 대학생인데요?"
"학생증 한 번 꺼내봐요."
"네?"
"농담, 농담. 너무 어려 어려보여서요. 아시겠지만, 미성년자한테 술 팔다 걸리면 영업정지 당하거든요. 하하핫!"
태오의 과한 연기에 도훈이 속으로 눈쌀을 찌푸렸다.
'쟤는 왜 저렇게 오버하는 거야?'
[컨셉은 좀 이상한게 잡은 것 같은데요?]
태오는 억지로 텐션을 바짝 끌어올린 모습이었다.평소의 진중해 보이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전혀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걱정마세요. 민짜는 진짜 아니니까."
"하하핫, 우리 서준이가 데리고 왔으니까 당연히 믿어 드려야죠. 아시죠? 서준이랑 저랑 부랄친구···."
"예?"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태오가 급하게 말을 바꿨다.
"···처럼 친한 사이거든요. 맞지, 브로?"
"네, 뭐. 하하. 같이 알바하다 만난 사이긴 하지만요."
도훈이 넌지시 힌트를 줬다. 부랄 친구 같은 사이는 아니니 앞으로 오버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맞아요. 예전에 같이 알바 했었어요, 거기 어디냐 술집 이름이···."
"술집이요? 서준 오빠랑 생동성 알바 하신 거 아니에요?"
주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도훈이 급하게 말을 받았다.
"어, 맞아. 태오 형이 말한 술집은 우리가 알바 끝난 뒤에 만났던 술집 말하는 거야. 형, 모닝 글로리 잖아요. 저녁에 마시면 아침해 뜨는 거 보고 돌아가는 가게라고."
"맞다! 모닝 글로리! 거기 안주가 진짜 맛있었는데."
유난히 과한 연기에 도훈은 슬슬 부담감을 느꼈다.
'저렇게 어설픈 연기라니. 합을 전혀 못 맞추어.'
[나름 열심히 하는데 센스가 영 꽝이네요.]
"암튼,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서준이가 여자친구 있다는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은데, 두 분 어떻게 아시는 사이에요?"
더 이상 쓸데 없는 말을 했다간 의심을 사겠다는 생각에 태오가 질문을 던졌다.
"그냥···. 어쩌다 만났어요."
"그러셨구나. 암튼 서준이 이 놈 진짜로 괜찮은 놈이에요."
"네에."
주아는 벌써부터 따분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태오가 어딘가 못 마땅한 모양이었다.
"맞다. 저 잠깐만 서준이 빌려갈게요. 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
"네. 다녀오세요. 전 담배 피우고 있을게요."
주아가 재떨이를 끌어 당겨 혼자 담배를 피우는 사이 태오가 도훈을 어깨동무 하며 룸 밖으로 끌고 갔다.
"이게 진짜 얼마 만이냐, 서준아."
부쩍 친한척 하던 태오는 룸 밖으로 나오자마자, 곧바로 표정을 싹 바꾸더니 도훈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막내, 잘했어. 와꾸 보니까 딱 사이즈 나온다. 처음 치곤 굉장한데?"
"감사합니다, 형님."
"아마 저 정도면 +2까진 붙일 수 있을 거야. 얼굴도 어려 보이고, 가슴도 커서."
도훈은 짧은 시간동안 빠르게 주아의 외모를 스캔해낸 태오의 안목에 혀를 내둘렀다.
'농담 따먹기나 하는 줄 알았더니, 그 사이에 나 몰래 견적 따고 있었구나. 하여간 앙큼한 녀석 같으니.'
[그런데 +2가 뭡니까?]
'저번에 한 번 설명 하지 않았나? 오피에선 아가씨들 등급에 따라 추가 옵션이 붙거든. 기본 비용에서 조금 더 받을 수 있다는 소리야.'
[아하, 한마디로 몸 값이 차이난다는 뜻이군요. 기억 납니다.]
'태오 저새낀 여자 볼 때 오피에서 값어치를 얼마 쳐줄지 생각하는 새끼야. 쓰레기같은 새끼. 브로는 니미, 호로다 새끼야. 호로새끼 같으니.'
"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서준이 네가 술 좀 먹여서 분위기 좀 야릇하게 띄워나. 그때 창민이든 휘겸이든 적당한 시점에 투입시켜 줄게."
"근데 갑자기 호빠 선수들이 끼어들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전 아직 선수라고 안 밝혔거든요."
"월요일이라 다른 방에 손님이 없어서 잠깐 놀러 왔다고 하면 돼. 절대 돈 받는 거 아니라고."
"아···."
"어차피 여자들은 처음에만 싫은 척 하지, 잘생긴 남자들이 옆에 와서 말 걸어주면 다 좋아하게 되어 있어,"
"그런가요?"
"새끼, 아직 순진하네. 야, 여자들이 남자보다 어떤면에선 더 밝히는 법이야. 분위기만 타면 그냥 입술 쪽쪽 빨다가 가슴도 내주고 나중엔 밑에까지 싹 다 준다니까?"
"음···. 근데 주아는 경계심이 많아 보이더라고요. 처음에 저한테도 몇일동안 연락 안한 이유가, 바람둥이 같아 보여서라고 했거든요. 자긴 얼굴값 하는 남자들 별로라고."
"걱정 붙들어 매. 어차피 맨정신으로 작업하는 거 아니니까."
"혹시 저번에 말씀하셨던···."
"응, 어떤 여자든 술에 물뽕 한 번 타면 정신 못 차리지. 이거 완전 최음제라니까?"
"그 정도라고요? 어떻게 생겼는데요? 한 번 보여줄 수 있어요?"
도훈이 약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자 태오도 살짝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아까 전 휘겸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 것이었다.
-혹시 서준이 이 새끼 쁘락치 아니에요?
갑자기 휘겸의 경고가 떠오른 태오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지금은 없어. 휘겸이 한테 줬거든, 근데 그게 왜 궁금해?"
"네?"
"넌 어차피 여자애 데려오는 것까지가 끝이잖아. 너한테 작업은 직접 안 시킬테니까,"
"아···."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서준이 네가 신경쓸 필요 없어."
태오의 싸늘한 태도에 도훈도 뭔가 달라진 낌새를 눈치챘다.
'태오가 나를 경계하는 느낌인데?'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멍청한 줄 알았더니, 눈치가 제법 있네.'
도훈은 전략을 바꿔 태오에게 읍소하기 시작했다.
"저기, 실은 다른게 아니라요."
"뭔데?"
"주아, 제가 작업하고 싶어서요."
"뭐?"
"솔직히 존나 꼴리게 생겼잖아요. 형님 말대로 동안에 가슴 큰게 딱 제 취향이라···."
"그러니까 서준이 니가 직접 따먹고 싶다고?"
"네."
"흠, 원래 헌팅조는 작업조랑 겸상 안 시키는데···."
"이번 한 번만 어떻게 안 될까요?"
평소의 태오였다면 도훈을 좋게 봤기 때문에 쿨하게 수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휘겸과 나누었던 대화가 마음에 걸렸던 태오는,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아무래도 그건 좀 그래. 이제까지 막내를 바로 작업조에 투입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음, 그렇군요."
도훈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태오의 마음도 약해졌다. 벌써 휘하의 선수 3명이 나가 떨어진 마당에 도훈의 값어치가 훨씬 높아진 탓이었다.
'서준인 분명 나중에 에이스인 휘겸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할 놈이야. 저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거절하면 삔또 상해서 나한테 앙심 품을지도 몰라.'
"너 진짜로 쟤 따먹고 싶냐?"
"네. 형님."
"진심이야? 아무리 봐도 니가 아쉬워할 급은 아닌것 같은데···."
"그래도 제가 여기와서 처음으로 공사쳐서 데려온 애니까요. 원래 처음은 누구에게나 특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 맘은 충분히 알겠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휘겸이든 창민이든 물뽕 타서 영상 한편 찍고나서, 너도 같이 먹는 거야. 어때?"
"그러니까, 돌림빵 하라고요?"
"왜? 후순위라서 싫어? 인마, 이것도 내가 널 아끼니까 챙겨주는 거야. 헌팅조 애들은 원래 미끼만 물어오고 맛도 못 봤거든. 그게 우리 방식이야."
도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림빵을 말하는 태오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꾹 참았다.
"···감사합니다, 마담 형님."
"그래. 먼저 먹으나 뒤에 먹으나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원래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막내가 먼저 맛보면 그것도 모양새가 좀 그렇잖아."
"네."
'위아래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저 개새낀 내 손으로 창자를 뽑아다가 위아래로 뒤집어 놔야 직성이 풀리겠어.'
[그러다 사람 잡습니다.]
'하여간 지금 장면 다 녹화 떴으니까, 증거는 충분히 확보했어.'
[주인님 목소리가 나오는 부분은 어떻게 하려고요?]
'어차피 내 얼굴은 안 나오고, 목소리는 기계음으로 변조하면 그만이야. 중요한 건 놈들이 여기서 범죄를 계획하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는 사실이지. 증거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어.'
"그럼 여자애 혼자 외롭게 두지 말고, 가서 쎄쎄쎄라도 하면서 잠깐만 놀고 있어, 창민이든 휘겸이든 먼저 끝나는 놈 바로 투입시킬 테니까."
"형님들은 뭐 하고 계시는데요?"
"일찍부터 지명 손님 들어와서 아마 룸에서 한참 떡치고 있을 거다."
"아···."
"작업조들도 지명 들어오면 일반 손님 받거든. 둘이 각각 룸에 들어갔는데, 언 놈이 먼저 나올지 궁금하긴 하네."
"네."
"암튼 들어가봐. 술 필요하면 찬호 호출하고. 찬호 알지? 저번에 니가 싼 똥 치워준 애다."
"아, 네."
"그럼 나중에 보자."
태오와 헤어진 도훈은 다시 룸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연타로 담배를 피우던 주아는 도훈을 보자마자 버럭 짜증을 냈다.
"뭐예요? 나 혼자 계속 방치시키고. 오빠만 따라 온 저한테 너무 무심하신 거 아니에요?"
"미안. 나도 형이랑 오랜만에 봐가지고. 그간 밀린 이야기 좀 했어."
"저 분이 태오라는 분이죠?"'
"응. 잘 생겼지?"
"우엑. 오빠 진짜 보는 눈 없네요."
"내가 뭘?"
"딱 봐도 성형빨인데요."
"성형이라고?"
"제가 눈썰미는 좀 있는 편이거든요. 눈이랑 코랑 다 했네. 옛날부터 저 얼굴이었어요?"
"응.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럼 수술 되게 일찍했나보네. 암튼 성형빨이에요. 원래 잘생긴 건 절대 아니고요,"
"신기하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여자들은 워낙에 성형을 많이 하니까, 대충 얼굴만 봐도 알아요. 물론 티가 많이 안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저 분은 딱보니까 알겠던데."
"그래? 암튼 뭐 고쳐서라도 잘생기면 된 거지."
"쯧쯧. 솔직히 인상도 별로 안좋아요."
"인상이?"
"저 솔직히, 호빠 놀러간다고 해서 엄청 기대했거든요. 호빠선수들은 얼마나 잘생겼는지 궁금해서. 근데 막상 오빠보다 못 하네요."
"진짜로? 나 기분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그렇게 믿으시던가요. 칭찬을 해줘도 참."
"미안미안. 암튼 술이라도 한 잔 할까? 형이 술 값 걱정 말고 얼마든지 먹으래."
"혹시 오빠한테 덤터기 씌우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형이 오랜만에 봤다고 자기가 쏜다더라고. 내가 사는 거 아니야."
"진짜요? 양주 테이블인데? 이거 엄청 비싸지 않나?"
"손님으로 와서 시켜 먹을 때나 비싸지, 자기들끼린 원가로 받겠지. 원가로 치면 얼마나 나오겠어?"
"와, 잘 됐네. 양주나 실컷 마셔요 우리."
"너 술 잘 마셔?"
"못 마시는 편은 절대 아니죠."
"그래?"
'저러다 좀이따 물뽕 마시고 헤롱헤롱 거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괜찮을가요? 최음제 종류라곤 하지만, 그래도 마약의 일종인데 괜히 몸이라도 상하면.]
'섹스는 어차피 나랑 할 건데, 굳이 마약을 먹일 필요 없어.'
[하지만 휘겸이든, 창민이든 와서 직접 약을 탈텐데 놈들의 눈을 피할 수가 있을까요?]
'내가 누구냐?'
[누구긴요. 국성대 난봉왕이라고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아니. 마술사잖아. 그 점은 걱정마. 쥐도 새도 모르게 바꿔치기 할 테니까.'
도훈은 주아와 양주를 나눠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몇가지 카드 마술을 보여줬는데, 평소 마술에 관심이 많던 주아는 너무나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