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1. 빌드 업-76-
"그래요. 근데 거기서 일하신다는 선수분이랑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예요?"
"선수?"
"아는 형이 거기 선수라면서요."
"아아, 난 또. 다른 알바하다 만났어."
"무슨 다른 알바요?"
"그게···."
도훈은 또다시 거짓말을 지어내야 했다.
"그 뭐지? 생동성 알바라고 혹시 들어 봤어?"
"생동성? 그게 뭔데요?"
"쉽게 말하면 생체실험 알바 같은 거야."
"오빠 생체실험도 당했어요?"
주아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생체 실험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었기 때문에 도훈이 다시 해명했다.
"말이 그렇지, 그냥 의약품 같은 거 승인 받기 전에 하는 사전 테스트 해주는 알바야. 나 같은 경우는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 테스트했고."
"오. 그런 알바도 있구나. 처음 들어봐요."
"별로 좋은 건 아니야. 안정성 승인을 받기 전이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는 사례도 종종 있거든. 그래서 실험에 참가하기 전에 미리 각서 같은걸 받기도 해. 문제가 생겨도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아···. 듣고 보니 조금 무서운데요."
"대신 하는 일에 비해 페이가 세지. 태오 형도 거기서 만난 거야."
"태오가 그 분 이름?"
"응. 같은 조에 포함돼서 테스트 받다가 알게 됐는데, 나중에 술 먹으면서 친해졌지."
"그렇구나. 근데 그분은 왜 호빠 일하는 거래요?"
"나도 몰라. 근데 그때 그런 말을 하긴 했었어."
"뭐라고요?"
"인생 날로 먹고 싶다나? 자긴 일하면서 돈 버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대. 그래서 생동성 알바도 한 거고, 그러다 결국 호빠까지 흘러 들어간거지. 그 형 나름 잘생겼거든."
"아하. 오빠도 잘생겼잖아요."
"난 뭐···."
"오빠도 혹시 인생 날로 먹고 싶어요?"
"아니. 내가 그렇게 보여?"
"모르죠. 오빠를 안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근데 도박 좋아하는 거 보면 그 뭐야,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 같기도하고···."
"난 그냥 마술 배우면서 카드 만지는 걸 좋아하다 보니 포커를 배운 것뿐이야. 카지노 펍도 네가 오라고 해서 간 거고. 사실 태어나서 그런 곳은 처음 가 봤어."
"정말요? 엄청 능숙하길래 평소에도 도박하는 거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돈 내기 말고 카드 치는 건 원래 좋아했지."
"그럼 진짜 카지노 펍 처음 가서 그렇게 칩을 많이 땄다고요?"
"응. 초심자의 행운? 뭐 그렇게들 부르지 않나? 원래 도박은 그날 처음 하는 사람이 돈 딴다며."
딜러인 주아는 자기 전공 분야가 나오자 신이 나서 떠들었다.
"꼭 그렇진 않아요. 차라리 룰렛이나 빅휠 같이 운으로 맞추는 거면 몰라도···. 오빠가 더 잘 아시겠지만, 포커는 확률 게임인데다 심리전도 치열하거든요. 그런 게임에서 초보가 돈을 따긴 쉽지 않죠. 심지어 싹쓸이 하셨잖아요. 모든 참가자들 올인내고."
"그런가?"
"오빤 가만 보면 엄청 신기한 사람 같아요."
"갑자기?"
"왜, 마술도 잘하고, 도박도 잘하고···. 심지어 어제는 시험 공부한다고 하루 종일 연락도 안 할 만큼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다른 것도 잘해."
"쯧쯧. 겸손할 줄은 모르시네요. 또 뭘 잘하는데요?"
"아까 봤잖아. 난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한니까?"
도훈이 손가락 두 개를 포개더니 주아 앞에 내밀었다. 꼬인 손가락을 보자 주아의 표정이 확 달아올랐다. 오르가즘을 선사하던 마술 같은 손가락을 보자 또다시 흥분해 버린 것이었다.
"흐음···. 뭐, 손가락은 어차피 손가락이죠."
"뭐라고?"
"본 게임은 아직 안 해봤잖아요."
"내 크기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크다고 장땡은 아니죠. 테크닉이 중요하지. 안 그래요?"
"허허."
도훈은 그저 웃었다.
이만하면 패배를 선언할 때도 됐는데, 여전히 자신을 도발하는 주아였다.
'귀엽네.'
[주아양은 대관절 지칠 줄을 모르는군요.]
'아직 어려서 그래. 그게 아니면 일부러 날 자극하려는 거겠지. 얼른 자길 따먹어 달라고.'
[그러다 도로변에서 노상 방뇨까지 했는데도 여전하군요. 어찌 보면 근성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이젠 안 넘어갈 거야.'
도훈은 주아의 계속된 도발에도 차분히 응대할 뿐이었다. 어차피 호빠에 도착하면 밤 새 즐길 수 있었다. 벌써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 * *
4/15
* * *
조태오는 도훈의 방문 전 미리 사전 작업을 마쳤다. 웨이터와 다른 선수들에게 도훈이 소속 선수인 것을 밝히지 말라고 전하는 한편, 미리 VIP룸으로 달려가 카메라를 세팅했다.
"좋아, 오늘도 한 건 해 보자."
함께 카메라를 설치한 휘겸에게 태오가 물었다.
"오늘 신참이 물고 오는 거라면서요?"
"어. 내가 말했지? 걔 일 잘할 것 같다고.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근데 헌팅조 더 보강해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신참말고 다 나가리 됐다면서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어제 형님한테 존나 깨졌다. 애들 관리 제대로 못 냐고. 에이 씻팔, 멍청한 놈들이 밖에서 두들겨 맞고 다니는 게 어떻게 내 책임이냐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구씨 형님이요?"
"어. 전화 통화로 30분을 내리 갈구더라."
"형 혹시 석산파 얘기도 말씀하셨어요? 윤재 두들겨 팬 놈이 석산파 소속이라면서요?"
휘겸의 물음에 조태오가 누가 엿들을까 두려운지 목소리를 확 낮추며 속삭였다.
"쉿-. 그 얘기는 어디 가서 꺼내지도 마라."
"네?"
"이건 너랑 나만 아는 비밀이야. 윤재한테도 입단속 단단히 시켜놨으니까 우리 선에서 묻자고."
조태오의 발언에 휘겸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태오 형도 슬슬 감이 떨어지는 구나. 이걸 숨긴다고?'
하지만 휘겸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저 입 무거운 거 아시잖아요."
"그래. 내가 너만 믿는 거 알지? 창민이 보다 널 더 아낀다니까."
"하하, 저야 형 오른팔이니까요."
하지만 휘겸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속으론 전혀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었다.
'이거 구씨 형님한테 몰래 찌르면, 조태오 이 새끼 날려 버릴 수도 있겠는데? 확 그냥 하극상 저질러봐?'
휘겸은 원래 겉과 속이 다른 사내였다.
말로는 태오를 믿고 따르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상은 웨이터 출신 주제에 마담 자릴 꿰찬 그를 멸시했다.
'운 좋게 구씨 형님 눈에 띄어서 마담까지 오른 주제에 대가리가 너무 굵었어. 하긴, 이젠 나도 올라갈 때가 되긴 했지.'
휘겸은 가게에서 제일 잘나가는 에이스였지만, 그 정도에 만족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루빨리 마담에 올라, 최종적으론 사장자릴 꿰차고 싶었다.
어차피 호빠 선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일 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처럼, 결국엔 위로 올라갈수록 돈을 쉽게 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어차피 조태오 저 새낀 실력이라곤 좆도 없는 게, 똥고 잘 빨아서 일찍 승진한 케이스 아니야? 뭐니 뭐니 해도 호빠 마담은 에이스 출신이 맡는 게 정석이지. 내가 언제까지 지 시다바리 노릇할 줄 알고.'
휘겸이 마음속 꿍꿍이를 감추며 어수룩한 표정으로 태오에게 물었다.
"형, 근데 석산파가 그렇게 무서운 조직이었어요? 구씨 형님도 나름 뒷배가 든든하다지 않았나?"
"너 조폭 쪽은 전혀 모르냐?"
"저야 뭐···. 저희 가게 기도 정도만 알 뿐이니까요."
"서울 기반의 전국구 조폭하면 크게 3군데 꼽거든. 석산파랑, YB로터리파, 그리고 재은이 파."
"어, 재은이 파면 그 사시미로 유명한 양재은이요?"
"어."
"거기 오야지 지금 깜빵 들어갔지 않았어요?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보스가 빵에 갔다고 무너질 조직이면 3대 조직으로 꼽히지도 않았겠지. 암튼 석산파는 방금 말한 3대 조직에 꼽힐 만큼 거대 조직이야. 요즘은 건설업쪽으로 완전히 틀었다곤 하는데, 워낙 쪽수가 많아서 인원 동원력은 전국 최고라고 하더라고. 서울 경기 뿐 아니라, 지방 재건축 분야는 거의 다 걸치고 있다고 보면 돼."
"오호."
"괜히 주제도 모르고 덤볐다간 한순간에 쓸려나갈 수도 있다는 거야. 근데 다행히도 윤재가 이빨이 뽑혀 나가면서도 우리 조직은 안 불었다더라,"
"이빨이 뽑히다뇨?"
"몰라. 뭔 미친놈이 손가락으로 생니를 뽑아 버렸다지 뭐야? 진짠지 구라치는 건지 모르지만."
"헐. 완전 또라이 새끼들이네요?"
"암튼, 우리만 덮고 넘어가면 개인적인 일탈로 끝날 일이야. 괜히 구씨 형님 귀에까지 들어가면 일만 복잡해 질거야. 부산 쪽에서도 난처해할 테고."
"알겠어요. 하여간 윤재 이 자식은 헌팅을 해도 하필···."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자리에 서준이도 있었는데 걔는 한 대도 안 맞았다더라."
"엥? 서준이가 윤재랑 같이 있었다고요?"
"어. 윤재가 헌팅하는 법 알려 준다고 해서 같이 데리고 나간 거였거든. 내가 그러라고 시켰어."
휘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윤재만 맞았고요?"
"응."
"같이 있었는데?"
"그렇다던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조폭들이 윤재만 패고 신참은 털끝도 안 건드렸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거야···."
이제껏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태오도 그제야 이상한 점을 느꼈다.
"말하고 나니까 좀 이상하긴 하네. 암튼 윤재가 그렇게 말했거든."
"혹시 서준이 이 새끼 쁘락치 아니에요?"
"서준이가? 석산파랑?"
"그게 아니고선 왜 그놈은 그냥 돌려 보낸 건데요? 둘이같이 헌팅을 했는데, 윤재만 생이빨을 뽑을 정도로 맞고요? 전 그게 더 이상한데요?"
"에이, 설마 그러려고. 서준이가 무슨 빽이 있다고 석산파랑 줄이 닿겠냐?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석산파가 할 일 없이 호객행위 하는 호빠 선수 잡아다 두들겼다고? 그게 더 억측 아니냐? 윤재 말로는 자기가 헌팅한 여자가 석산파 조직원의 여자라서 맞았다고 하더먼."
"음. 암튼 우연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긴 해요. 최근 들어 저희 선수들이 계속 다쳐나가는 것도 그렇고요."
"그냥 마가 낀 거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그 무슨 다마냐?"
"호사다마요?"
"그래. 암튼, 요새 일이 좀 풀리다 보니까, 마가 낀 거 같아. 이럴 때일수록 더 몸 사려야 해. 휘겸이 너도 조심해라."
"흠."
휘겸이 속으로 의문을 품고 있는데, 조태오가 갑자기 농을 던졌다.
"다마 얘기하니까 갑자기 나도 다마나 박아볼까?"
"예?"
"아니 창민이 해바라기 말이야. 그거 괜찮아 보이던데."
"아니 형은 무슨 뜬금없는 소릴 하세요? 멀쩡한 좆에다 흉하게 왜 그런 걸 박아요? 여자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거기가 커지잖아."
"제가 솔직히 화류계 애들 많이 만나잖아요. 다들 하는 소리가, 다마 박은 남자들 상대하는 게 제일 끔찍하대요."
"그래? 창민이 말로는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자극이라면서."
"그거야 일부 마니아 들이겠죠. 아니면 출산하고 늘어질 대로 늘어진 아줌마들이거나. 열에 아홉은 다마 안박은 남자를 더 좋아할걸요?"
"흐음. 암튼 궁금하긴 해."
휘겸은 내색은 안 했지만, 심각한 얘기 중에 갑자기 다마를 박겠다는 태오를 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완전히 맛탱이가 갔구나. 예전엔 그래도 총기는 있어 보였는데, 배가 좀 부르니까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네. 다마는 무슨 씨발···. 저런 걸 내가 형님이라고 받들어 모셔야 하다니.'
휘겸은 한심한 소리나 하는 태오를 보며, 조만간 그를 갈아 치워 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바지사장으로 앉힌 자리, 언제든 부품처럼 교체할 수 있는 게 이 바닥 생리였다.
* * *
호스트 바 주차장에 차를 댄 도훈이 주아와 함께 내렸다. 주차장에 서 있던 웨이터 한 명이 쪼르르 달려왔다.
"어서 오십쇼!"
그는 일 전에 만난 박찬호라는 웨이터였는데, 조태오에게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도훈을 보고도 일절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저희 가게는 여성 전용입니다만···."
"혹시 태오 형님 여기 일하시는 거 맞아요?"
"아, 조태오 형님이요? 혹시 태오 형님 지인이세요?"
"네. 오늘 가게 놀러오라고 해서요."
"진작 말씀하시지.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찬호가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도훈과 주아를 가게 내부로 안내했다.
주아는 처음 와보는 호빠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보고 놀라 도훈에게 물었다.
"여기 엄청 비싸 보이는데요?"
"괜찮아. 형님이 싸게 준댔거든."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