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8. 빌드 업-73-
"갈 거야?"
"그래요, 가요. 나도 호빠 구경이나 한번 해보게. 사실 한 번도안 가 봐서 궁금하긴 하네요."
"알았어. 형한테 전화 좀 하고 올게."
"네."
도훈은 가게 밖으로 나간 뒤 태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서준아. 무슨 일이야.?
"형님. 여자애 한 명 낚은 것 같습니다.
-그래? 어떻게? 어제 그런 일을 겪고도 혼자 헌팅을 나간 거야?
"아뇨. 오늘 헌팅을 한 건 아니고요, 저번에 연락처 받은 여자 앤데, 오늘 갑자기 연락이 왔길래 같이 저녁 먹었거든요. 슬쩍 가게로 놀러 오라고 꼬셔봤는데, 가겠다는데요?"
-그래? 잘됐네. 학생은 맞고?
"네. 처음엔 저도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요. 너무 어려 보여서. 근데 대학교 2학년이더라고요. 지금은 휴학 중이고요."
-어려 보이면 더 좋지. 어릴수록 몸 값은 더 잘쳐주니까.
"형님 근데, 제가 선수라고 밝히진 않고 아는 형 가게 놀러 간다고 했거든요? 형님이 좀···."
-어. 걱정 붙들어 매. 그런 연기야 내 전문이지. 일단 테이블 앞에 앉혀만 놓으라고. 휘겸이랑 창민이도 대기하고 있으니까 오늘 한 번 제대로 작업해보자.
도훈은 휘겸과 창민의 이름을 들으며 뿌득- 이를 갈았다.
'이 개새끼들 제삿날이 바로 오늘이군.'
도훈은 이제껏 많은 선수들을 처리했다.
번개에게 붙잡혀 온 시우의 경우에는 교통사고로 위장해 병원에 입원 시켰고, 헌팅조에 속했던 서원과 윤재 역시 코뼈를 부러뜨리거나 앞 니를 뽑아버리는 식으로 응징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악독한 놈들은 바로 에이스라고 불리는 휘겸과, 운동선수 출신의 양아치 창민,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꾸미고 지시한 태오였다.
다 같은 나쁜 놈들이지만 죄의 경중을 묻자면 저 셋이 가장 악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데 주인님은 원래 구씨만 상대하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건 맞는데, 조태오 일당 정도는 내 손으로 박살을 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혹시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건 아니시죠?]
'개인적인 감정이라니?'
[···아닙니다.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네요.]
'아니야. 편하게 말해 봐.'
[저는 주인님이 휘겸과 창민을 의식하는 줄 알았거든요.]
'의식해? 내가 걔들을? 왜?'
[휘겸은 주인님과 비견될 정도로 잘 생겼고, 화술도 뛰어나죠. 창민의 경우는 20cm를 넘는 대물을 과시하기도하고요. 별명이 대왕 해바라기 라던가요?]
로시의 말을 들던 도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하-. 그럼 내가 놈들한테 질투라도 느낀다는 소리야?'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주인님이 보기에 거슬릴 특징을 지녔으니까요. 솔직히 그렇잖습니까? 일반인 중에 주인님과 비빌 인물을 찾기는 어렵죠. 주인님은 그야말로 생태계 파괴자니까요. 하지만 호빠에서는 성적인 매력만 놓고 보면 주인님과 견줄만한 사내들도 있으니까요. 물론 종합적인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 고요.]
하지만 도훈은 그런 설명에 더 자존심 상해했다.
'어이가 없네. 로시, 내가 만약 조태오 일당을 조진다면, 그건 놈들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기 때문이지 개인적인 질투심하곤 전혀 관계없어.'
[알겠습니다.]
'아니. 확실히 말해 두겠는데, 휘겸이나 창민이는 절대 내 상대가 못 된단 소리야. 갖다 붙일 걸 붙여야지.'
[주인님이 너무 역정내시니 제가 역시 괜한 소릴 한 것 같습니다.]
'참나, 사람을 비교해도 무슨 그런 쓰레기들이랑'
도훈은 진심으로 열이 받았는지 담배를 꺼내 피우며 열을 식혔다.
동시에 자신이 그렇게 화가 난 이유가 어쩌면 약간이긴 하지만 로시가 감추고 싶었던 진실을 들추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휘겸이랑 창민이라···.'
둘 중 더 마음에 안 드는 놈을 꼽으라면 당연히 창민이었다. 대학교 때까지 야구를 했다는 놈은 호빠 선수치고는 드물게 몸이 좋은 편이었다.
확실히 운동을 오래 해온 놈이라 그런지, 피지컬이 일반인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폭행에 연루되어 선수생활을 접을 만큼 폭력적인 성향 때문인지, 자신을 쳐다보는 눈도 영 거슬렸다.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도 있는 존재가 주제도 모르고 거들먹 거리는 꼴이 도훈의 처지에선 당연히 가소로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튜닝까지 한 20cm 대물의 소유자라는 점도 마음에 안들었다. 도훈이 이제껏 자기보다 잦이가 더 큰 사람을 안 만나 본것은 아니었지만, 순수 크기만으로 자신을 뛰어넘는 사람에겐 묘한 경쟁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선수인 휘겸.
박스 최고의 에이스란 명칭에 걸맞게, 무척 잘생긴 미남이었다.
어제 만난 민수도 조각 같은 외모를 자랑하긴 했지만, 고전적 미남상에 가까운 민수와 달리 휘겸은 요즘 여자애들이 좋아할 법한 외모였다.
헤어 스타일이나 패션도 그렇고, 훤칠한 키에 적당한 근육까지 요즘 젊은 여자들이 환장할 만한 요소는 두루 갖추고 있었다.
만약 증명 사진 만으로 남자 친구 선호도를 묻는다면 도훈은 자신이 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말솜씨 또한 빼어나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적인지 아군인지 헛갈릴 정도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도훈은, 단순히 그들을 때려 눕히거나 콩밥을 먹이기만 해서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놈들을 실력으로 누르지 못하니까 다른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섹서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 결심했어.'
[네? 무슨 결심이요?]
'그 두 놈은 아주 개박살 내버려야겠어. 다신 선수 생활 꿈도 못꾸게.'
[그렇게까지요? 그냥 놈들의 범죄 현장을 녹화하고 언론사에 제보만 하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걸론 도저히 성에 안 찰 것 같아. 물론 그것도 하긴 할 건데, 선수로서도 짓뭉개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거든.'
[혹시 제가 괜한 말해서···.]
'꼭 그런 건 아니야. 주제도 모르고 깝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 서니까.'
[흐음. 방법이야 어쨌든 목표만 달성하면 되겠죠.]
도훈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 주아를 데리고 나왔다. 호빠의 오픈 시간이 8시였기 때문에 지금 출발하면 문을 열자마자 입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저녁을 일찍 먹는 바람에 너무 시간이 이른 데.'
[어디 가서 차라도 한 잔 하시지 그러십니까?]
'그래야겠다. 타이밍이 너무 일러.'
"주아야. 저녁도 먹었으니 커피 한잔할래?"
"아는 오빠 가게 놀러 간다지 않았어요?"
"방금 통화했는데, 오픈하고 가게 정리하려면 9시는 넘어야 될 것 같다나 봐. 지금 7시니까 너무 시간이 이른 것 같아."
"그래요?"
"테이크 아웃해서 드라이브 하면서 마시자."
"좋아요. 차가 있으니까 이런 것도 되는 구나."
주아는 드라이브란 말에 애처럼 좋아했다. 도훈은 드라이브 인이 가능한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산 뒤 한강 변을 타고 천천히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오빠, 음악 틀어도 돼요?"
"응."
"이 차 블루투스도 되죠?"
"될걸? 통화도 하니까?"
"그럼 제 폰으로 연결할게요."
주아가 차량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자기 폰을 연결해 음악을 틀었다. 요즘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랩이었는데, 도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었다.
"히히, 신난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죠.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속물 같긴 한데, 친구들도 전에 그러더라고요, 차가진 남친 한번 만나면, 뚜벅이랑은 다시는 못 만난다고."
"그래? 이거 별로 좋은 차도 아닌데?"
"차가 있는 게 어디예요? 그리고 제가 볼 땐 충분히 좋아 보이 는데요."
확실히 주아는 어려서 그런지, 차량의 가격이나 모델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까 킹크랩 대신 새우를 먹자는 것도 그렇고, 중고차만 타도 좋아하는 걸 보면 확실히 어리긴 어리구나.'
[개념이 없는 타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커피값도 본인이 계산한 걸 보면요.]
'그러니까. 애가 남자를 많이 밝혀서 그렇지 나쁜 애는 절대 아닌 것 같아.'
[이제 와서 설마 죄책감을 느끼시는 건 아니죠?]
'죄책감이라기 보단 뭐랄까···. 주아가 휘겸이나 창민한테 따먹힌다고 상상하면 그건, 못 참을 것 같은데.'
[흐음. 하지만 놈들의 악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선 다소간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놈들의 범죄 수법이 밝혀져야 증거로서 인정받을 테니까요.]
'물론 그렇긴 한데···.'
도훈은 동의 없이 이번 일에 주아를 끌어들이는 데 부담을 느꼈다.
차라리 주아가 천하의 쌍년이라 아무렇게나 굴려도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 모를까, 너무 착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녀는 가정 형편 때문에 카지노 펍에서 알바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일할 때는 누구보다 프로다웠고,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걸 보면 심성도 착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자를 지나치게 밝히고 섹스를 프리하게 생각한다는 것만 빼면 도훈이 만나는 대학교 후배들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이런 주아를 꼬드겨 놈들에게 미끼로 던져 준다는 게 양심에 찔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면 놈들은 더욱더 악행을 저지를 것이고, 피해자는 계속 늘 것이다.
도훈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타깃을 잘못 정한 것 같아. 차라리 이럴 거면 돈 주고 모르는 사람 하나 구해 오는 건데.'
[이제 와서 되돌리긴 너무 늦었습니다. 조태오랑 약속도 잡으셨고요.]
'아니면 이건 어떨까?'
[뭐요?]
'차라리 내가 주아를 따먹는 거야. 놈들의 수법을 이용해서.'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주인님이 제보 영상에 찍힐 수도 있다는 소린데요.]
'알지. 하지만 그렇다고 주아를 휘겸이나 창민이한테 바칠 순없잖아. 얼굴만 안 나오게 촬영하면, 경찰도 나를 못 찾지 않을까?'
[흐음. 나중에 조태오가 잡혀가도 신분증이나 소속 대학 역시 가짜니까 추적당할 일은 없긴 하겠네요. 하지만 저는 굳이 주인님이 리스크를 감수하셔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주아는 어차피 오늘 나랑 섹스하러 나온 거니, 나랑 하는 건 괜찮을 거야.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물뽕탄 술을 마시고 다른 놈들한테 강간당하는 건 계획에 없었겠지. 영상까지 찍힌다는 건 더더욱. 연관도 없는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순 없어.'
[흐음 주인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다만 휘겸과 창민이 주인님에게 기회를 줄 지는 모르겠군요.]
'기회를 주다니?'
[놈들의 작업 방식에 따르면 헌팅조는 목표 대상을 호빠까지 데려오는 것까지 입니다. 약을 타 먹여서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작업조의 역할이고요. 주인님은 지금 그들의 룰을 깨고 직접하시겠다는 거니까요.]
'뭔 상관이야. 내가 하겠다는데, 누가 나를 막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해.'
"오빠, 이 노래 좀 야하지 않아요?"
"무슨 노래?"
"지금 나오는 랩이요. 가사 내용 가만히 보면 완전 19금 이라니까요?"
"그래?"
"풉, 일부러 못 들은 척하는 건가?"
"그게 아니고 말이 너무 빨라서 가사가 잘 안 들려서 그래."
"헐. 이 정도로? 오빠 완전 옛날 사람!"
실제로 옛날 사람인 도훈은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사람인가 보지."
"히히. 오빠, 그냥 바로 들어갈래요?"
"들어가다니?"
"나 술 안마셔도 상관없어요. 저 취하게 하려고 괜히 돈 쓸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
"응?"
도훈이 계속 모른 척하자 주아가 노골적으로 들이대기 시작했다.
"오빤 나랑 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음. 그건."
"바로 모텔 직행하자고요. 전 상관없으니까."
"아니 주아야."
"왜요? 제가 혼자 오버 한 거예요? 그럼 너무 민망한데···."
주아가 부끄러워하자 도훈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 형한테 가게 놀러 간다고 약속했는데 갑자기 취소하긴 좀 그래."
"아···. 전 또 저만 마음 있는 줄 알았네."
"그건 아니야."
"치. 근데 왜 하나도 티를 안 내요?"
"내가?"
"다른 남자 같으면 차에 태웠을 때 바로 스킨십 했을 텐데 지금껏 제 몸에 손도 안대셨잖아요."
주아는 못내 그것이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무턱대고 막 만지라는 말이야?"
"뭐 어때요? 어차피 할 건데···. 오빤 나랑하고 싶지 않아요?"
"너 너무 들이대는 거 아니야?"
"풉-. 오빠가 절 너무 순진하게 게 보는 것 같아서 그래요. 저 보기보다 훨씬 까졌어요. 오빠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주아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도훈은 이쯤 되자 자신이 그녀를 작업하는 것인지, 그녀가 자신을 노리는 것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호빠 가기도 전에 달아 오르면 완전 나가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