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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34화 (1,714/2,000)

1734. 빌드 업-69-

밤 늦게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서현이었다.

* * *

고양시까지 왕복하느라 어느덧 저녁 10시가 훌쩍 넘었다. 더구나 일요일 저녁이었기 때문에, 데이트하던 연인들도 모두 헤어지는 시각.

서현의 방문을 전혀 예상을 못 했던 도훈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무슨 일 있었어?"

8선녀들은 도훈의 집을 여러 번 드나들었기 때문에 대부분 집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테이션을 정한 뒤로 예고 없이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일요일 늦은 저녁의 서현의 방문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도훈이 무리하게 로테이션 일정을 소화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서로 겹치는 일을 최소화 하기 방편이었던 것이다.

"헤헤, 오빠 기다리고 있었죠."

서현이 계단참에서 엉덩이를 탁탁 털며 일어났다.

"왜 기다린다고 연락 안 했어? 전화라도 하지."

"혹시나 싶어서요."

"혹시나라고?"

"오빠가 저랑 약속한 걸 깜빡하고 다른 사람 만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

도훈은 그제야 서현이 집 앞에 기다렸던 이유를 깨달았다. 지난 번 사범대 벤치 앞에서 그녀를 돌려보내며 주말에 저녁을 먹자는 약속을 했던 것이었다.

서현은 그말을 철석같이 믿고 내내 불 꺼진 집 앞에서 기다렸으나, 도훈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을 까봐 연락도 못하고 무작정앉아있던 것이었다.

도훈은 미안함 마음에 몸둘 바를 몰랐다.

"미안. 내가 진짜로 깜빡해버렸어."

"괜찮아요. 오빠 얼굴 봤으니까 됐어요. 전 이제 가볼게요."

서현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지만 도훈은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잘못은 자신이 했는데, 일요일 저녁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한 서현이 화도 내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에게 연락을 못 한 이유마저, 다른 사람과의 데이트를 방해할까봐서 라니···. 도훈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너무나 창피했다.

[주인님. 제 불찰입니다. 서현양과의 약속을 놓쳤습니다.]

'아니야. 내 실수야.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을, 서현이 저렇게 소중하게 여길 거라고 예상 못 했어. 오면 온다는 연락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서현이라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서현은 도훈의 난봉꾼 기질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후배중 하나였다. 그것 때문에 한때는 스토킹을 할 만큼 집요하게 그를 감시했으나, 이후 마음을 비우고 도훈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보내는 멤버이기도 했다. 오늘의 사태도 그 충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서현아. 내가 미안."

"아니에요, 오빠. 왜 계속 사과하세요. 전 정말 괜찮아요."

"그래도 어떻게 널 그냥 보내겠어."

도훈이 서현의 손을 붙잡았다.

"집에 잠깐이라도 들렀다가. 늦었으니까 내가 바래다 줄게."

"정말 괜찮은데···."

하지만 도훈은 예의상 하는 말임을 직감했다.

서현이 아무리 자신을 좋아하더라도 오늘 일은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것이다.

"추운데 밖에서 내내 떨었을 거 아니야. 따뜻한 차 한잔 줄 테니 마시고 가. 그냥 보내면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

"아···."

"알았지?"

도훈은 서현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서현은 민망해 하면서 마지 못한 척 뒤따랐다.

"잠깐 소파에 앉아 있어. 금방 타 줄게. 차는 뭘로 마실래?"

"전 아무거나 괜찮아요."

"늦은 시간이니 커피는 좀 그렇고···. 혹시 홍차 좋아해?"

"네."

"그럼 홍차로 준비해 줄게."

서현은 집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냉기가 도는 지 두 팔로 스스로를 껴안으며 몸을 움츠렸다. 10월의 저녁은 외투없이 다니기엔 너무나 쌀쌀했다.

"대체 언제부터 기다렸던 거야?"

"얼마 안 기다렸어요."

도훈은 서현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재차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잠바도 안 입고 온 걸 보니 일찍 나왔던 거 아니야?"

"음···. 오빠가 저녁 먹자고 하길래 7시 정도였나? 그렇게 일찍은 아니었고요."

[하필 주인님이 김 비서 옷을 챙겨 나갈 때 쯤 동선이 엇갈린 것 같군요.]

'···정말 엇갈렸을까?'

[네?]

'어쩌면 서현이 그 장면을 목격했을지도 모르지. 내가 김비서를 태우고 나가는 걸.'

[아···.]

'김 비서야 아직 어장관리 대상이 아니니 충돌 경보가 뜨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집 앞이라 방심해서 서현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 했을지도.'

[그러면 서현양이 너무 불쌍해지는데요. 주인님이 다른 여자를 차에 태우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연락도 못하고 혼자서 집 앞에서 기다렸다는 뜻이 되는데···.]

'젠장. 하필 타이밍 한번 지랄맞네.'

도훈은 서현에게 죄책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억울했다.

막말로 김 비서와 모텔가서 떡을 치고 온 것도 아닌데, 서현의 입장에선 정황상 그렇게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도훈은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필 그때 엇갈렸구나. 사촌 누나 바래다 준다고 막 집에서 나간 시간인데."

"사촌 누나···요?"

"응. 이모 딸인데, 나보다 한 살 누나. 고양시에 살거든."

"아하···. 사촌 누나 바래다 주셨구나."

서현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훈은 왠지 그 모습에서 그녀가 목격했음을 직감했다.

'봤네, 봤어.'

[저도 그런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심하겠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주인님이 여자를 차에 태워서 가는 모습을 봤으니까요. 더구나 주인님 전적도 화려하고.]

'다른 날이면 모를까, 오늘은 너무 억울한데?'

[어쩔 수 없습니다. 그간의 업보라고 생각하십시오.]

'아니, 김 비서 학자금 대주려고 허벅지 한 번 쓰다듬은 게 전분데, 내가 이런 오해를 받고는 못 참지.'

홍차를 탄 도훈은 진열장에서 양주를 꺼내더니 뚜껑을 열었다.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현이 놀라서 물었다.

"그건 뭐예요?"

"어, 브랜디."

"브랜디면 술 아니에요?"

"맞아. 몸을 덥히는데는 이것만 한 게 없거든. 살짝만 탈게."

"아···."

서현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만 마시고 바래다 주겠다던 도훈이 차에 술을 타 마신다는 건, 바래다 줄 생각이 없다는 뜻과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오빠도 피곤할 테니까. 그냥 저녁 식사처럼 인사치 레로 꺼내본 말이겠지. 혼자 택시타고 가면 돼.'

실제 서현은 도훈이 김 비서를 태우고 가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었다.

그와 저녁 식사를 하는 줄 알고 신이 나서 집 앞까지 찾아온 서 현에겐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약속을 까먹은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그 이유가 다른 여자와 데이트 때문이었다니···.

주변에 여자도 많고, 원래 바람기도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눈 앞에서 그런 대접을 받자 서현은 몹시 우울해졌다.

전화기를 손에 쥔 채 몇번이고 도훈에게 연락을 할까말까 고민했지만, 괜히 연락했다가 그에게 미움 받을까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과거에 스토킹 전적이 있던 그녀로선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그에게 또 버림받을 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결국 속이 문드러지는 중에도 하염없이 그의 집 앞에 쪼그려 앉아 도훈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약속했기 때문에 얼굴이라도 보고 가자는 마음이었다.

그가 안 돌아온다면 새벽까지도 내내 기다릴 생각이었다.

브랜디를 탄 홍차를 들고 도훈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한 번 마셔봐. 몸이 좀 뜻뜻해질 거야."

"고마워요, 오빠."

서현은 도훈이 타 준 홍차를 음미했다. 비싼 찻잎을 썼는지 굉장히 깊은 맛이 났다.

"좋네요. 홍차는 잘 모르지만···."

"나도 원래 커피를 더 자주 마셔. 근데 가끔씩 마시면 이것도 좋더라고."

"네. 원래 사람은 한 가지만 계속 먹으면 금방 질린다잖아요."

서현의 말에서 뾰족함을 느낀 도훈이 속으로 뜨끔했다.

'저거 나 돌려까는 건가?'

[역시 서현양은 주인님을 의심하고 있군요.]

'하아. 여자들이 나를 좋아하는 게 무조건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거야 주인님 입장이고, 주인님만 오매불망 지켜보는 여자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겠죠.]

'그러고 보니 서현이가 후배들 중에서 가장 집착 심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진짜 많이 성숙해 졌구나. 김 비서에 대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해주고 말이야.'

[지금껏 여러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도훈이 서현을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데이트를 하는 줄 알고, 한 껏 꾸미고 온 서현은 오늘따라 무척 깜찍한 의상이었다.

하지만 체육과 최고의 바스트를 소유한 장본인 답게, 어떻게 옷을 입어도 가슴이 앞으로 툭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현을 젖가슴을 보자, 도훈은 불쑥 성욕이 치솟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누구와도 섹스 하지 못했다. 도훈에게는 그런 날이 드물었기 때문에, 마치 하루 종일 양치를 한 번도 안한 것 마냥 찝찝했다.

"너 그거 알아? 홍차에 우유를 타 먹어도 맛있다던데."

"그게 밀크 티 아니에요?"

"맞아. 밀크 티."

도훈이 음흉한 표정으로 서현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혹시 나 밀크티 해 줄 수 있어?"

서현은 도훈의 19금 드립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우유가 냉장고에 있으면 제가 타 드릴까요?"

"아니 우유는 없어. 근데 갑자기 밀크티가 먹고 싶은데 어떡하지?"

"아···. 그럼 제가 지금 편의점 가서 사올게요."

서현이 소파에서 벌떡 얼어나자 도훈이 그녀의 손을 휙 낚아채더니 자기 쪽으로 잡아 당겼다. 예상치 못한 힘에 이끌려, 서현이 '어어!'하는 비명과 함께 도훈의 허벅지 위에 풀썩 주저 앉았다.

"오, 오빠···."

"우유를 왜 밖에서 사와? 큼직한 맘마 통이 여기 두 개나 있는데."

[와, 진짜 대체 그런 저질스러운 드립은 어디서 자꾸 배워오시는 겁니까? 시집도 안 간 처녀한테 맘마통이라니.]

'창의력 대장이라 그래.'

[무슨 개똥같은 소리를···.]

"아···."

도훈에게 껴안긴 자세가 되자 서현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솔직히 하루 종일 도훈을 기다리느라 약간 화난 상태였는데, 그의 품에 안기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화가 스르륵 풀려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마성의 사내였다.

"근데 저 우유 안 나오는데···."

"짜봐야 아는 거 아니야?"

"아무리 짜도 우유는···, 흡!"

도훈은 더 이상 대답을 듣지도 않고 곧바로 서현의 젖가슴에 얼굴을 처박았다. 옷을 받쳐입고 있어도, 워낙에 풍만한 가슴이었기 때문에 도훈의 두 볼이 완전히 파묻힐 정도였다.

"아, 아··· 오빠."

"서현아. 오늘 일은 정말 미안. 내가 어떻게 사과를 해야할지 모르겠어."

"괘, 괜찮아요. 오빠한테 사과 받으려고 기다렸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

"그냥···. 보고 싶었어요. 오빠를. 자꾸 안 보면 잊혀지는 거잖아요. 잠깐이라도 더 봐야죠."

"음. 내가 널 왜 잊어?"

"오빠는···. 저 말고도 다른 여자도 많으니까···."

서현이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도훈이 사촌 누나라고 둘러댄 변명을 믿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서현아.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오늘은 진짜로 다른 여자 안 만났어. 내가 사촌 누나라고 했잖아."

"믿어요. 오빠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말만 그렇고 마음으론 못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

"좋아. 이렇게 하자."

"네?"

"내가 만약 다른 여자랑 오늘 잤으면, 정액도 별로 안나올 거 아니야. 아님 점도가 묽어지거나. 이미 한 발 쌌으면 말이야."

"···그, 그렇겠죠?"

"그럼 네가 뽑아서 직접 확인해 봐. 내가 다른 여자랑 했는지 안 했는지. 그게 가장 확실할 것 같아."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왜? 나랑 하기 싫어?"

"예?"

"하고 싶어, 하기 싫어? 확실히 말해. 나도 억지로 하긴 싫으니까."

도훈이 서현을 윽박질렀다. 적반하장에 가까운 태도였지만, 미적거리는 것보다 태도를 분명히 해주는 것이 서현의 고민을 덜어줄 것 같았다.

서현이 잠시 고민하더니, 도훈을 향해 사랑스럽게 말했다.

"···정말로 제 밀크티 드시고 싶으세요?"

"당연히 주면 절하고 먹지!"

"그럼 드셔요."

허락을 받자마자 도훈이 서현의 상의를 순식간에 벗겨냈다. 윗옷이 벗겨지자, 서현의 폭탄같은 가슴이 브래지어에 담긴 채 튀어 나왔다.

출렁-!

'캬. 언제봐도 탄성이 나오는 가슴이란 말이지? 어떻게 저렇게 부드럽고 커다란 게 있을까?'

[하여간 가슴 성애자.]

'맞아. 난 가슴이라면 환장해. 그게 뭐?'

도훈은 브래지어 마저 모두 풀어 내더니 서현을 소파에 눕힌 채 젖가슴을 빨기 시작했다.

쪽쪽-

서현은 젖가슴이 빨리는 순간, 밖에서 3시간 넘게 도훈을 기다리면서 쌓였던 원망의 감정이 눈녹듯 사라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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