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1. 빌드 업-66-
윤재가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무릎 꿇은 자세를 풀었다간 정말로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갑이 끌려온 도훈은 왜 자신과 대우가 다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헌팅은 같이 했는데, 왜 나만 처맞고 있는 거지?'
억울한 마음에 왜 도훈은 안 패냐고 따지려던 윤재는, 자칫 민수의 화만 돋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민수가 다시 물었다.
"이번엔 멍든 걸로 안 끝낸다. 너 어디 식구야? 어떤 새끼 사주 받고 내 여친한테 접근했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윤재가 다급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조직이 아니고 사실 호빠 선수인데···."
"호빠? 이 새끼 방금 호빠라고 했냐?"
"네, 형님."
"저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민수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콧방귀를 꼈다.
"그러니까, 여자 등 처먹고 사는 버러지 새끼 주제에 감히 내 여친에게 빨대를 꽂으려고 했다는 거야?"
"서, 설마요 제가···."
"그 입 내가 다물라고 했지!"
민수가 갑자기 무릎 꿇은 윤재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소리와 함께 놈의 목이 돌아갔다. 입안에선 피 맛이 느껴졌다.
"크헉!"
"감히 족보도 없는 호빠 새끼가, 우리 석산파를 우습게 보고. 야, 이 새끼 일으켜 세워."
민수의 명령에 덩치 두 명이 달려들더니, 윤재의 두 팔을 양옆에서 붙들어 세웠다. 윤재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 할 만큼 다리를 후들거렸다. 오줌을 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는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제발 살려 주십···."
"그럼 죽을 짓을 말았어야지. 입 벌려 새끼야."
"···입은 왜?"
"자, 아~."
민수가 살벌한 표정으로 치과 의사 흉내를 냈다.
윤재는 말을 안 들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러자 민수가 윤재의 앞 이빨을 손가락으로 붙들었다.
"잘못했으니까, 혼나야지?"
"엑엑,"
"대답할 필요 없어. 고개만 끄덕이면 돼."
"카학, 사, 살···."
"고개를 안 끄덕이네?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거야?"
"아닙···."
"입 다물기만 해 봐. 넌 오늘 내 손에 죽는다."
민수가 갑자기 손끝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윤재의 앞니를 손가락으로 붙잡고 있던 그가 힘을 주어 들어 올리자 윤재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
뚝-!
뼈가 부러지는 듯한 괴이한 소리가 들리고 난 뒤, 민수가 윤재의 입에서 앞 이빨을 하나를 뽑아냈다. 뿌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니, 맨손으로 생니를 발치해 버린 것 같았다.
[와 민수가 저렇게 악독한 사람이었습니까?]
'조폭이 괜히 조폭이겠어? 그것도 최선봉에 서는 행동대장인데.'
[주인님 앞에선 순한 양처럼 행동했잖습니까?]
'그거야 내 실력을 인정했으니까 그게 맞게 예우해 준 거지. 민수한테 생이빨 하나 뽑은 게 뭐 대수겠어? 모르긴 몰라도 지금껏 살면서 사람 몇 명은 직접 담갔을 텐데.'
[그렇게 들으니 좀 무섭군요.]
윤재의 생니를 뽑아낸 민수가 피를 철철 흘리는 윤재를 보고 말했다.
"다시 입 벌려 새끼야. 두 개는 뽑아야 좌우 균형이 맞지."
"흐끄, 흐끅, 제발, 살려···."
"이 새끼 봐라? 그러니까 애초에 혼날 짓을 말았어야지. 남의 여자 건드려 놓고, 그것도 내 여자를 건드려 놓고 무사하길 바랬어? 좆만한 새끼가 석산파를 뭘로 본 거야?"
혼자 말하다 급발진해 버린 민수가 주먹으로 놈의 복부를 올려 쳤다.
퍼억-!
두 발이 공중으로 들릴 만큼 충격을 받은 놈이 의식을 잃고 기절했다.
"얼레? 고작 이거 맞고 기절해? 존나 약골이잖아?"
"이제 그쯤 하시죠."
"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도훈은 계속 민수를 놔뒀다간 윤재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를 말렸다.
조금 전까지 악귀처럼 굴던 민수였지만, 도훈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폭행을 그쳤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도훈의 말이 몹시 거슬렸다. 특히 사전에 작전을 전달 받지 못한 체 무작정 따라온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겁도 없이 우리 형님한테 명령을!"
그러고는 민수가 말리기도 전에 도훈의 목덜미를 움켜쥐기 위해 달려들었다. 도훈이 어이없다는 놈의 공격을 피하더니 마당쓸기 방식으로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그 동작은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민수를 제외한 누구도 제대로 못 볼 정도였다.
거구의 조폭은 와사바리 한 방에 공중에서 180도 회전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쿵-!
"아니!"
"이 새끼가 감히!"
동료가 순식간에 당하자 덩달아 흥분한 조폭들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는 모습에 민수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쳐 돌았나!"
민수가 빠르게 달려들더니 자기 부하들을 직접 패기 시작했다.
주제도 모르고 도훈에게 덤비는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던 것이다.
퍽, 퍽퍽-!
결국 도훈이 나서서 민수를 말려야 했다.
"전 괜찮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하들 교육도 제대로 못 시켜가지고."
순식간에 다섯 명을 때려 눕힌 민수가 고개를 숙이며 도훈에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저 때문에 괜히 저 친구들만 상했군요."
"제 불찰입니다. 사전에 도훈씨에 대해서 알렸어야 했는데, 아직 얼굴도 모르는 놈들이 대부분이라. 야, 니들 뭐 하고 있어? 어서 정식으로 사과 못 해? 이도훈씨는 큰 형님께서 스카웃하신 분이다."
민수의 으름장에 조폭들이 절뚝거리며 일어서더니 도훈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모,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도훈이 부담스럽다는 듯 사과를 물리며 민수에게 말했다.
"아무튼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정도로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호빠 선수가 앞니가 나갔으니, 한동안 활동 못 하겠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원래는 반 죽여 놓을 계획이었는데···."
"아닙니다. 그나저나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부하들 아무나 보내도, 혼내 주기엔 충분했을 텐데요."
"이도훈 씨 부탁인데 제가 어떻게 밑에 애들만 시키겠습니까? 당연히 직접 와야죠."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대충 정리된 것 같은데, 담배나 한 대 피우실까요?"
"그러죠. 야. 니들은 저 새끼 감시하고 있어."
두 사람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었다.
민수는 조금 전 보인 도훈의 기술에 감탄했다.
"전보다 더 실력이 느긴 것 같군요. 제대로 보지도 못 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는바람에 부하분이 크게 다쳤을까 걱정됩니다."
"괜찮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깝쳤으면 대가를 치어야죠. 그리고 애들이 워낙에 튼튼해서 세멘 바닥에 대가리 쯤 깨져도 끄떡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주인님이 힘 조절해서 머리부터 안 떨어뜨려서 다행이지.]
'민수는 너무 과격해서 문제라니까. 사람이 적당히가 없어.'
"저, 그리고 김 비서는···."
"받아주십시오. 아니, 받아주셔야 합니다. 김 비서를 붙여 드린 건 저희 조직의 성의입니다. 착한 아이니 말썽을 피우진 않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
"부담 가지실 필욘 없습니다. 다만, 저희도 도훈씨와 연결고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형님도 틈 날 때마다 이도훈씨 영입에 대해 여쭈시는데, 저도 할 말이 있어야 하니까요."
"아···."
'그게 아니라 너무 무식하다고 말하려고 했던 건데···.'
[민수가 김 비서를 이용해 주인님과 끈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군요. 돈을 받지 않는다니까 여자를 이용해서요.]
'이른바 색계를 쓴 것인데, 그게 통할 거라고 본 건가?'
[주인님은 호색한이잖습니까?]
'그게 아니라, 내가 김 비서를 구워삶아서 내 편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쩌려고?'
[그것까진 생각 못 했을 겁니다. 김 비서에게 월급은 주는 쪽은 어쨌든 도원 그룹이니까요.]
'나는 뭐 돈 없냐? 내가 마음먹으면 도원 그룹도 현찰 박치기로 살 수 있을 걸?'
[그렇게 말씀하시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아무튼, 저렇게까지 부탁하니까 무작정 내칠 수가 없네.'
[그냥 주말마다 방문 청소해주는 가정부 하나 생긴 셈 치십시오. 안 그래도 청소하기 귀찮아하시잖습니까?]
'8선녀 로테이션 돌때는 애들이 알아서 청소해 줬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이젠 로테이션 안 도십니까?]
'당분간은 무리야. 업적 때문에 외부 활동이 많아져서, 주기적으로 만날 시간도 없잖아. 그냥 틈 날 때마다 눌러 주는 정도로 달래야지.'
"알겠습니다. 민수씨도 입장이 있을 테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고도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할 일 있으면 편하게 연락하십시오. 저는 도훈씨가 하루빨리 저희 조직에 합류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건 차차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놈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인데, 혹시나 세력간 전면전이 벌어지면 괜히 일이 커질까 우려됩니다."
도훈이 일부러 조직 싸움을 언급하자, 민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안 그래도 오늘 밤 큰 형님 만나서, 도훈씨가 얘기한 건에 대해서 논의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솔직히 도훈씨는 잘 모르시겠지만, 조직들은 자기 나와바리에서 약 장사하는 걸 결코 두고 보지 않습니다. 괜히 불똥이 튀면 저희만 피보니까요. 분명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도훈씨 때문만은 아니고, 저희 조직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합니다."
"알겠습니다."
임무를 완수한 민수가 부하들을 끌고 사라지자, 도훈은 기절해 있는 윤재를 깨웠다.
"형, 형 일어나 봐요!"
"으으···.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깨어나셨어요?"
정신을 차린 윤재가 주변을 헐레벌떡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뭐야? 어디 갔어?"
"그놈 들이요? 방금 갔어요. 저보고 형 병원이나 데려가라면서."
윤재는 피가 줄줄 흘리는 입을 틀어막더니 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큭, 내 이빨. 내 앞니 못 봤냐?"
"앞니요?"
"크흑, 앞 니를 찾아야 다시 박아넣지."
도훈은 구석에 떨어진 윤재의 앞니를 발견했지만 일부러 발로 밟은 체 모른 척했다.
"놈들이 가져갔나 봐요."
"으, 씨발. 임플란트 박아야겠네."
핸드폰 셀카를 보며 치열을 살피던 윤재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도훈에게 물었다.
"뭐야? 근데 넌 왜 멀쩡해?"
"네?"
"넌 한대도 안 맞았어?"
"네. 전 안 때리던데요?"
"아니 씨발···. 왜 나만···."
윤재는 도훈이 안 맞았다는 사실에 몹시 억울해하다 갑자기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도훈이 옆에서 통화를 엿들었다.
"흐, 흑. 태오 형님."
-뭐야? 넌 목소리가 왜 그래?
"죄송합니다. 제가 앞 이빨이 나가가지고."
-뭐라고? 사고났어? 야이 새끼야. 내가 요새 마가 끼었다고 조심하라고 했어, 안 했어?
"저, 그게 아니라···."
윤재는 조금 전 있었던 구절구절 설명했다.
태오는 '석산파'라는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 새끼가 석산파라고 했다고?
"네. 제가 틀림없이 두 번이나 들었습니다. 본인이 석산파 행동대장이라고···."
-너 혹시 우리 소속 말했냐?
"아, 아뇨. 입 꾹 다물었습니다."
-옆에 서준이 있다고 했지?
"네."
-서준이한테도 물어봐. 우리 호빠 말 했냐고.
"야. 너 우리 호빠 이름 말 했냐?"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뇨. 저한텐 아무것도 안 물어보던데요?"
"형님. 아무것도 안 물어 봤답니다."
-휴, 그나마 다행이네.
"혹시 저 말고 시우랑, 서원이도 석산파한테 당한 게 아닐까요?"
-아닐 거야. 시우는 교통사고였고, 시우는 길가다 시비가 붙어서 맞았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너 석산파가 어떤 조직인지 몰라서 그래? 그놈들이랑 엮이면, 아무리 우리 형님이라도···. 아무튼 얼른 병원부터 가 봐.
"진짜 아파 죽겠어요. 재수가 옴 붙었나 진짜, 걸려도 그런 놈한테···."
-야. 서준이는 괜찮냐? 걔도 다친 건 아니지?
"저 새낀 한대도 안 맞았데요. 제가 옴팡 뒤집어썼다니까요? 하, 씨발 내가 고른 것도 아닌데···."
-그나마 다행이네.
"네? 아니 형,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세요? 저 생이빨 나갔다니까요? 저 새낀 한대도 안 맞고요!"
-인마. 어쨌든 니가 헌팅 실수 한 거 아니야! 그리고 가뜩이나 애들 하나둘씩 쓰러져서 선수도 부족한데, 막내까지 다치면 되겠냐? 형이 돼 가지고 동생 안 맞았다고 억울해 하긴. 속 좁은 새끼 같으니라고.
"······."
-얼른 병원이나 가 인마.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너 또 괜히 폭행으로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 석산파랑 엮여서 좋을 것 하나도 없으니까. 진짜 좆된다 우리.
"알았어요."
윤재가 전화를 끊더니 도훈을 쳐다보고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