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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25화 (1,705/2,000)

1725. 빌드 업-60-

'어차피 회사 운영하는 직원들은 따로 있겠지. 원래 조폭들이 건설판에 뛰어든 건 재건축 같은 골치 아픈 일을 해치우기 위해서였으니까. 처음엔 철거 용역등을 지원하면서 건설사와 유착하던 조폭들이, 이게 생각보다 돈이 될 것 같으니 자기들이 직접 회사를 차렸다고 보면 돼. 그 과정을 거치면서 심지어 합법의 영역으로까지 올라온 거고.'

[호오. 독특한 방식이군요.]

'보호비 명목으로 자릿세 요구하는 시대는 진작 쌍팔년도에 범죄와의 전쟁 치르면서 끝났지. 그때 진짜 우리나라 조폭들이 거의 씨가 말랐는데.'

[하지만 어제 봤던 사설 도박장을 관리하는 조폭들은 갖은 범죄를 다 저지르고 있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구씨라는 놈은 대학생들을 유인해서 여자 장사까지 하고 있고요.]

'그런 놈들을 삼류 양아치라고 부르는 거야. 아주 겁대가리를 상실한 거지. 전국구로 방귀 꽤 뀌는 조직들은, 이미 반쯤은 합법의 영역으로 넘어왔다고 봐도 무방해. 그럴 역량과 자본이 안 되는 잔챙이들만 불법을 저지르는 거야. 검경에 한 번 잘못 걸리면 하루아침에 탈탈 털려서 와해되는 애들이 그런 애들이거든.'

[그렇군요.]

도훈이 도원 그룹 빌딩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 양복을 입은 떡대 둘이 도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훈이 차에서 내리자 두 놈이 헐레벌떡 달려와 90도로 인사를 박았다.

"혹시 도훈 형님 되십니까?"

"그런데?"

"실장님께서 안내하시랍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민수의 부하로 보이는 떡대들은 한눈에 봐도 일반적인 회사원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주말인데도 회사에 나와 있는 걸 보면 정상적인 업무와는 거리가 먼 직원들 같았다. 도훈이놈들의 목에 걸린 신분증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 팀 애들이구나.'

[보안 팀이요?]

'회사 소속의 사설 경호원이랄까? 일종의 가드같은 존재지. 조폭 주제에 출세했구먼.'

[아하.]

빌딩의 꼭대기인 7층에 이르자 떡대가 도훈에게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실장님께선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대학생 차림에다 얼굴도 어려 보이는 도훈이 반말을 했음에도, 가드들의 표정엔 미동도 없었다. 민수가 자기 손님이라고 미리 언질을 줘서 그런지, 도훈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민수네 조직은 근본이 있어. 쫄따구들 기강부터가 다르잖아.'

도훈이 실장실이라는 명패가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역 의자에 앉아 있던 민수가 벌떡 일어서서 그를 반겼다.

"오랜만입니다, 이도훈씨."

"안녕하세요."

"간만에 저한테 연락을 다 주시고. 누추하지만 앉으시죠."

도훈이 볼 땐 전혀 누추하지 않았다.

석산파의 실질적인 2인자에 걸맞게 값비싼 가구들로 꾸며진 화려한 집무실을 누추하다고 표현할 정도면, 어지간한 회사 중역 사무실은 고시원 원룸 쪽방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였다.

방금 민수가 앉아 있던 책상만 해도 수백만원을 호가할 것 같은 최고급 브랜드였고, 그 위에 올려진 사과 컴퓨터도 최신형 제품으로 값비싼 가격으로 유명했다. 기껏 해야 인터넷 쇼핑이나 할 용도로는 너무 과한 느낌이 있었다.

소파 역시 초호화 이탈리아 브랜드로, 가죽의 때깔부터 달랐다. 그밖에 조명이나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전문가가 공들여 손을 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야, 민수가 생각 이상으로 잘나가는 조폭이었구나.'

도훈이 집무실을 쓱 훑어보더니 감상을 말했다.

"여전히 잘 나가시나 보네요."

"하하,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합니다. 요즘 들어 재개발 지구가 부쩍 늘어서. 이봐, 김 비서."

민수가 문밖으로 소리치자 오피스룩을 입은 젊은 여성이 하이힐을 신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그에게 배속된 비서로 보였는데, 모델 뺨치는 미모가 첫눈에도 이목을 끄는 미인이었다.

좆소 경리처럼 싼티가 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공중파 아나운서나, 일등석 전담 스튜어디스처럼 지적이고 기품이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실장님."

"여기 차 한 잔만 부탁해. 도훈씨는 무슨 차를 드십니까?"

"커피요. 블랙으로요."

"들었지, 김 비서? 나는 쌍화차로."

"네, 실장님."

젊은 여비서는 도훈을 힐끔 보더니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도훈이 물러나는 여비서를 쳐다 보면서 물었다.

"···여기 회사는 주말에도 직원들이 출근합니까?"

"네?"

"일요일인데 뜻밖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많아 보여서요."

"아닙니다. 평직원들은 당연히 쉬는 날입니다. 보안팀 일부하고 제 직속 비서만 근무 중입니다. 저는 쉬는 날이 따로 없고 가끔 휴가를 내고 있습니다. 나름 임원급이라."

"아하, 그래서 비서도 있으시구나."

도훈이 비서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민수가 씩 웃으며 물었다.

"도훈씨가 저희 조직에 들어오신다고만하면 차량과 운전기사, 전속 비서를 붙여드리겠습니다. 큰 형님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니까요."

갑작스러운 영입 제안에 도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오늘은 그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민수가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도훈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그를 어떻게든 석산파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큰형님이라 불리는 보스에게 도훈을 적극 추천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하면 무슨 일로···."

"지난번에 저한테 빚지신 거 기억나시죠?"

"물론입니다. 언제든 부탁할 일 생기면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혹시 그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네. 손 봐주고 싶은 녀석이 하나 있어서요."

"어떤 놈인지 말씀만 해주시죠.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 버리겠습니다."

민수가 너무 진지하게 얘기하는 통에 도훈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 죽여 달라는 뜻까진 아니었는데···.'

[조폭은 조폭이군요. 겉만 번지르르하지, 폭력을 쓰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네요.]

그때 비서가 노크를 하더니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트레이 위에는 도훈이 주문한 커피와 민수가 말한 쌍화차가, 딱 봐도 수십만원은 넘을 것 같은 값비싼 찻잔에 담겨 있었다. 사무실 집기 하나하나, 싸구려를 찾아볼 수 없었다.

'뜻밖에 민수 취향이 고급스럽네.'

[그냥 돈이 넘쳐나서 가격에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닐까요?]

'그럴지도.'

"실장님, 말씀하신 음료 가지고 왔습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김 비서는 민수와 도훈을 번갈아 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민수야 맨날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손님으로 왔다는 도훈을 보는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누구지? 실장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실장님께서 깍듯이 존댓말을 쓰다니···.'

석산파의 행동 대장인 민수는 본래 말투가 투박하고 터프한 상남자였다. 그가 존댓말을 쓸 경우는 오로지 큰 형님과 통화할 때뿐이었고, 그 밖에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간부들에게도 딱히 존대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도훈에게 큰형님과 통화할 때와 같은 말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엄청 잘생겼네? 설마 실장님 숨겨둔 애인이려나?'

민수는 조각같이 잘생긴 얼굴에도 여자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걸로 유명했다.

때문에 그가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가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았는데, 마침 잘생기고 몸 좋은 도훈이 주말에 손님으로 방문하자 김 비서가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깝다. 저런 미남 둘이 그런 취향이라니. 잘생긴 사람 두 명이 선택도 못하고 삭제되는 거잖아?'

찻잔을 내려놓는 짧은 순간 오만 상상을 다하는 김 비서를 향해 불쑥 민수가 말했다.

"김 비서는 이만 나가 봐. 손님과 긴히 나눌 얘기가 있으니,"

"네."

"큰 형님 전화 아니면 나한테 돌릴 필요 없으니 김 비서가 알아서 처리해."

"네, 실장님."

김 비서가 아쉬운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녀의 속마음을 읽고 있던 도훈은 속으로 어이가 없어서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았다.

'미친. 너도 들었지? 지금 저 여자가 나랑 민수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오해한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어이가 없네. 미쳤다고 남자랑···. 내가 어쩌다 이런 오해를. '

민수는 도훈이 김 비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 도훈이 다시 말했다.

"대화가 좀 끊긴 것 같으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손 봐 달라는 말이 죽여 달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적당히 병원 신세 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오해했군요. 알겠습니다. 누군지 알려주시면 오늘 중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근데 무슨 연유인지 여쭤도 될까요?"

"네?"

민수가 쌍화차를 들이켜더니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도훈씨 실력이야 제가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고작 이런 일로 저를 찾아오실 것 같진 않은데요. 진짜 이유가 뭔가요?"

"음."

'역시 예리하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적당히 둘러대야지. 어쨌든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게 아니니까.'

"실은 제가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동생요?"

"대학 후배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여자 후배입니다."

"아, 그렇지, 지금 대학생이시죠?"

"네. 근데 이 친구가 최근 호빠 놈들한테 걸려서 공사를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호빠라면···."

도훈은 그간 있었던 일을 민수에게 털어놓았다. 호빠 선수들에게 공사를 당해 윤락가로 팔려간 이야기를 요약해 전달하자 민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잠시만요. 말 끊어서 죄송한데, 진짜로 놈들이 저희 나와바리에서 그런 짓을 벌였다는 말씀입니까?"

"네. 저도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하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서울 곳곳에 퍼져서 그 짓을 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마약도 일부 유통하는 것 같고요."

"하-. 이 새끼들이 겁대가리 없이."

갑자기 민수의 관자놀이 쪽 혈관이 도드라졌다.

그가 진심으로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도훈이 계속 말했다.

"저도 아는 동생이 당했다는 소릴 들으니 너무 화가 나서 당장 쓸어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데다가, 부산 쪽 조폭이 뒷배를 봐준다고 해서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아무리 도훈씨라도 단신으로 큰 조직을 상대하긴 힘드시겠죠."

'아닌데. 정확히는 놈들을 상대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PK단에 걸릴까 봐 몸 사리는 건데.'

[민수는 지금 주인님의 실력을 모를 겁니다. 그와 겨룰 때만 해도 무공을 익히기 전이었으니까요.]

'그랬나?'

[당시 주인님은 타고난 피지컬과 재능 약탈을 통해 획득한 무술 만으로 그를 제압하셨습니다. 그사이 무공을 익힌 주인님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지셨고요. 아마 지금 상대하시면 민수 정도는 1초 컷으로 끝나지 않을지.]

'그 정도였나? 당시 호각으로 겨룬 기억이 나서 민수가 굉장히 세다고 생각했는데···.'

[최민수도 아마 인간계에선 상위 0.1%안에 드는 강자가 아닐까요? 프로 격투기 선수급을 빼면 일반인 중에선 맞설 상대가 없을 겁니다. 심지어 프로 선수들도 링 밖에서 무규칙으로 싸우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고요.]

'그럴 것 같아.'

[하지만 0.1% 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주인님은 탈인간급이시니, 애초에 비교 불가죠. 차가 아무리 길어도 기차에는 비빌 수 없는 것처럼요.]

'갑자기 웬 칭찬?'

[팩트를 말한 것뿐입니다.]

"아무튼 제 손으로 직접 복수는 할 생각입니다. 아끼던 후배가 사창가로 팔려 나갔다는 말을 듣고도 모른 체하면, 그건 사내도 아니죠."

도훈의 말에 민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는 비록 조폭이지만, 열혈의 상남자였다. 만약 도훈이 자신에게 대리 복수를 부탁했다면 분명 실망했을 사내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도훈이 이쯤에서 살짝 브레이크를 걸었다.

"저, 근데···."

"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아까도 말했지만, 놈들이 무턱대고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벌이는 게 아닙니다. 뒷배를 봐주는 조직이 부산에서 잘나가는 오성파라고 하던데, 자칫하면 석산파와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도훈은 일부러 민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가오가 생명인 조폭들에게 있어서 다른 조직과의 비교는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예상대로 단순한 민수가 발끈하며 대답했다.

"오성파요? 참나, 그런 허접쓰레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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