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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23화 (1,703/2,000)

1723. 빌드 업-58-

주아는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도훈과 데이트 약속을 잡긴 했지만, 아직 무슨 사이로 발전한 것도 아닌데, 퇴근할 때까지 자신을 기다렸다는 게 살짝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아니. 월요일에 보기로 했는데 연락처를 못 받았더라고."

"아···. 그냥 가게로 전화하시지."

"전화하려고 했는데, 아까 준 명함을 잃어버렸어. 다시 들어가자니 경찰들이 있을까봐 쫄아서 못 들어가겠더라고."

"세상에. 그럼 언제부터 절 기다리신 거예요?"

"아니 계속 기다린 건 아니고, PC방에서 그냥 게임하고 있었지. 퇴근 할 때 된 거 같아서 방금 나와본 거야."

"아···."

주아는 살짝 감동한 눈치였다.

경찰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쫓겨난 도훈이 2시간 넘도록 자신의 연락처를 받기 위해 밖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물론 도훈은 그 사이 성희를 모텔에 데려가서 신나게 따먹고 있었지만, 주아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굳이라니?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처도 모르면 어떻게 월요일 날 보겠어?"

"미안해요. 기다리는 줄 알았으면 최대한 빨리 나올 걸."

"아니야. 어차피 내가 있는 줄도 몰랐잖아. 근데 어떻게 된 거야? 경찰들은 다 갔어?"

"네. 오인신고였대요."

"오인 신고?"

"글쎄 누가 저희 가게에서 현금 도박이 이루어진다고 신고를 넣었다지 뭐예요? 어이가 없어서."

"진짜? 난 경찰들 오니까 쫄아서 밖으로 나가버렸잖아.."

"왜 쫄아요?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그렇긴 한데, 괜히 카드 게임 하고 있는데 경찰들이 들어오니까 죄 지은 것 같아서."

"상관없어요. 저희 가게는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니까. 경찰들도 한참 둘러보다가 매니저님한테 오인 신고 들어온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하고 갔어요."

"그랬구나."

"덕분에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끝나긴 했어요. 다른 손님들도 오빠처럼 다 나가버려서, 손님들이 거의 안남아 있었거든요."

"헐. 가게 입장에선 엄청난 민폐네."

"가끔 이런 일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매니저님 말로는 저희 가게가 장사가 잘되니까 다른 가게에서 일부러 신고해서 엿먹이는 거라고 하던데."

'그럴리가. 진짜로 2층에서 사행성 도박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주아양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군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죠?]

'분명 조직에서 1층과 2층의 고용인들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거야. 주아는 VIP룸이 있는 2층은 구경도 못 해보지 않았을까?'

[그렇군요.]

'또 모르지. 주아처럼 전공자라면 나중에 포섭해서 사기 도박에 이용할 지도.'

[흐음. 위험한 곳이군요. 그건 범죄에 동참하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알바한다고 들어갔다가, 괜히 잘못 엮여서 범죄에 연루되는 거지. 나중에 호빠 공략 끝나면 주아를 여기서 빼내줘야겠어.'

"그랬구나. 암튼 얼마 안 기다렸어. 어차피 게임하고 있었으니까."

"풉-. 암튼 고마워요. 연락처 드릴게요. 폰 줘보세요."

도훈이 스마트폰을 내밀자 주아가 자신의 폰 번호를 찍고, 통화를 눌렀다.

"이건 제 번호예요. 저장해주세요."

"응."

번호를 교환한 도훈이, 사복으로 갈아입은 주아에게 말했다.

"많이 늦은 것 같은데 바래다 줄까?"

"괜찮아요. 저 택시 타고 들어가면 돼요. 마감조는 택시비 챙겨 주시거든요."

"그러니까 택시 승강장까지만."

"···그럴까요, 그럼?"

주아도 자신을 기다려준 도훈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택시 승강장까지 함께 가는 건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내심 도훈이 먼저 그렇게 말해주길 기다린 눈치였다.

두 사람은 가게에서 택시 승강장까지 새벽 길을 함께 걸었다.

3시가 넘어가자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던 거리도 조금씩 불이 꺼지고 있었다. 길거리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들만 드문드문 보였고, 가로등이 어두운 곳은 약간 스산한 기운이 돌기도 했다.

"맨날 늦은 시간에 혼자 택시 타러 가는 거야?

"그렇죠?"

"밤길 무서울 거 같은데?"

"히히, 괜찮아요. 맨날 가던 길이라."

"취객들이 막 시비 걸지 않아?"

"저한테요?"

"응. 주아 너 귀엽게 생겼잖아."

"앗···. 안 그래요. 밤 늦게 다녀도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던데?"

"쯧쯧, 남자들이 보는 눈이 없네."

"오빠가 절 좋게 봐주시는 거겠죠."

"그런가?"

도훈과 주아는 손이 닿을락말락한 애매한 거리를 유지했다.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라 손을 잡기도, 팔짱을 끼기도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아는 점점 더 도훈에게 마음이 이끌리고 있었다.

'의외네. 바람둥이처럼 생겼는데 매너는 좋고.'

사실 주아는 도훈을 의심하고 있었다.

애인이 있으면서 자신에게 들이대는 게 아닌가 하는.

"오빠, 나 근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결국 주아가 못 참고 도훈에게 말을 걸었다.

"뭐?"

"솔직하게 대답해 줄 거예요?"

"내가 언제 거짓말 한 적 있어?"

"오빤 마술사라면서요."

"그게 뭐?"

"마술사는 원래 사람 속이는 게 일이잖아요. 그러니 거짓말도 잘 하겠죠."

"전혀 아닌데? 뭐 물어보려고 이렇게 밑밥을 깔아?"

"오빠 여자친구 있죠?"

"아니. 없는데."

"에이,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요. 오빠 같은 사람이 여자친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정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모르겠네?"

"그야···."

-없으면 내가 대시하려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주아는 꾹 참았다. 괜히 먼저 들이댔다가 자신에게 흥미가 식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리섹스 주의자인 그녀는 모르는 남자와 섹스하는 것에 딱히 거부감이 없었지만, 도훈은 하룻밤 상대로 끝내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사내였다.

"아니에요. 믿을게요. 오빠가 그렇다니까."

도훈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주아에게 대답했다.

"실은 헤어진지 얼마 안됐어."

"네? 정말로요? 죄송해요, 괜히 물었나봐요."

"아냐 괜찮아. 어차피 다 잊었으니까."

"그랬구나."

[왜 그런 거짓말을 하십니까?]

'내가 생각해도 이 얼굴에 여자가 없다면 거짓말 같아서.'

[굳이 최근에 헤어졌다고 말한 이유는요?]

'그래야 주아가 나에게 더 호감을 가질 테니까?'

[네?]

'원래 연인이랑 막 헤어진 사람들이 외로움을 못 참고 쉽게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경우가 더 많거든. 이별의 아픔을 달랜다는 이유로 말이야.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전 여자친구는 새로운 여자친구로 잊는다는.'

[주아양에게 미끼를 던지는 거군요.]

'맞아. 주아가 나에게 흥미를 가져야, 나중에 호빠에 끌어들이기 쉬울테니까.'

"그냥 이것저것 잘 안맞더라고."

"안 맞아요?"

주아가 부쩍 흥미를 드러냈다.

"뭐, 그런 거 있잖아. 처음엔 호감이 있어서 사귀었는데, 성격차이로 헤어지는."

"아···."

"잘 잊고 지냈는데 괜히 생각하기 싫다."

"죄송해요, 전 그것도 모르고."

"넌 어때?"

"네?"

"넌 지금 사귀는 사람 있어?"

"있으면 제가 오빠한테 밥 먹자고 했을까요?"

"넌 나한테 있을 것 같다고 했잖아."

"그거야···."

주아가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오빠는 엄청 잘생겼잖아요.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너도 예쁘잖아."

"에이, 저처럼 생긴 애들은 널렸죠. 흔해 빠졌어요."

"아닌데."

"뭐가 아니에요. 심지어 저 보고 너무 어려보인다고 별로라는 남자들도 많아요."

"별로라니?"

"뭐···, 저랑 있으면 범죄 저지르는 것 같다나? 풉."

주아가 은근슬쩍 동안을 자랑했다.

베이글인 그녀로서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를 꺼내든 것이었다.

대체로 남자들은 어린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도훈에게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범죄?"

"요샌 미성년자랑 만나면 쇠고랑 찬다면서요."

"너 미성년자야?"

"아뇨. 그럼 제가 어떻게 바에서 일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요새도 현금 내고 버스 타면 기사 아저씨가 고등학생 요금으로 거스름돈 주실 때가 많거든요."

"아하. 그 말이구나."

"제가 아직 젖살이 안 빠져서."

도훈이 불쑥 주아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무슨 살?"

"젖살요. 아, 아니 잠깐만요. 거기가 아니고요! 이 오빠 은근히 엉큼하네?"

"아니야? 내가 오해했나?"

"아 진짜 뭐야. 볼살 같은데 말이에요. 가슴 말고."

"그랬구나. 갑자기 젖살이라고 하니까 난 진짜 거기가 살찐 줄 알았지."

"뭐래 진짜. 이 오빠 완전 어이없다."

주아는 어이없다고 하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도훈의 엉뚱한 행동이 귀엽게 느껴졌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강점 중 하나인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여긴 빠지면 안 되죠. 제 유일한 장점인데."

"그래?"

도훈이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아가 갑자기 가슴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얼굴은 어려보여도 여긴 안 그렇거든요."

맨투맨 티를 입고 있어 별로 티가 나지 않던 그녀의 가슴은, 앞으로 내밀자 의외로 상당한 볼륨을 과시했다.

'D컵?'

[보면 바로 아십니까?]

'대충은. 내가 A부터 H까지 다 만나 봤잖아. 딱 보면 척이지.'

[크, 역시. 그나저나 주아양이 은근히 끼를 부리는군요.]

'은근히가 아니고 대놓고지. 쟤도 겉보기보단 엄청 까졌다니까? 뭐랬지? 정보창에도 나와 있었잖아. 프리섹스주의자라고.'

[하긴. 그럼 지금은 내숭 떠는 것이겠군요.]

'내숭 떠는 게 저 정도면 친해지고 그냥 바로 덮쳐도 무죄라는 말이지.'

"난 잘 모르겠는데."

도훈은 내민 가슴을 보고도 일부러 잘 모르는 척 했다.

주아가 민망했는지 다시 가슴을 집어넣었다.

"흠흠. 뭐, 모르시겠다면야."

"근데 너도 인기 많을 것 같은데, 바에서 남자들이 많이 들이대지 않아?"

"많이 들이대죠."

"진짜?"

"네, 뭐 하루에 한 두 명 정도는 개인적으로 연락처도 물어보고 그래요."

"그럼 알려줘?"

"음, 제 맘에 드는 사람한테만?"

"나한테 연락처 준 걸 보면 마음에 들었나 봐?"

"오빤···. 오빤 처음 볼 때부터요."

"진짜?"

"그럼 제가 괜히 가게 명함 뿌렸을까 봐서요? 제가 무슨 호객행위하는 삐끼도 아니고."

"난 영업하는 건 줄 알았지."

"영업이라뇨?"

"왜, 바텐더들 보면 자기 단골 만들려고 일부러 연락처 주고 그런다면서. 술 많이 팔아 달라고."

"풉-. 우린 그런 바 아니거든요? 저는 바텐더보단 딜러일을 훨씬 많이하고요."

"하긴, 전공자라고 했으니까."

"네. 어, 다 왔다. 저기가 택시 승강장이에요."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은 택시 승강장에 도착했다.

할증이 적용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손님들을 기다리는 택시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준 오빠, 바래다 줘서 고마워요."

"응. 조심히 들어가."

"오빤 근데 어디로 가요?"

"나?"

도훈은 순간 마음의 소리를 실행시켰다.

'행암동 방향이면 좋겠다.'

"나 행암동."

"네? 진짜요?"

"왜?"

"저도 거기 살거든요!"

"어 진짜? 그럼 같이 타고 갈까?"

"오빠집 어딘데요?"

"넌?"

"저는 그 은행나무길 지나서 첫 번째 골목이요."

"난 거기 지나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면 돼."

"잘됐다. 그럼 택시비 아낄 겸 같이 타요."

"그럴까?"

[집까지 따라가시려고요? 오늘은 공략 안 하신다지 않았습니까?]

'안 할 건데?'

[근데 굳이 왜···.]

'집 앞까지 바래다 줬는데, 끝까지 매너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그럼 주아가 나를 더 신뢰하지 않겠어?'

[역시 주인님은 다 생각이 있으시군요.]

'당연하지. 괜히 섹서겠어?'

도훈과 주아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시답잖은 내용이었지만, 도훈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 주아는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어느새 주아의 집 앞에 도착한 택시가 멈춰 서자, 도훈이 요금을 계산하고 함께 내렸다.

"어? 오빠 여긴 저희 집 근천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집 앞까지 바래다 주려고."

"아···."

이쯤 되자 주아도 도훈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실 평소의 그녀라면 도훈과 당장 원나잇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오래 만나고 싶은 상대가 본격적으로 흑심을 드러내자 살짝 실망했다.

'아···. 역시 서준 오빠도 다른 남자랑 똑같구나. 길게 만날 수 있는 상대였으면 좋았을텐데.'

주아가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살고 있는 원룸 앞에 도착했을 때 도훈이 물었다.

"여기야?"

"네. 혹시 들어···."

"그럼 조심히 들어가."

"네?"

"집에 들어가는 거 봤으니 안심하고 갈 수 있겠다."

도훈의 말에 주아가 충격을 받았는지 자기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저랑 라면 먹으려고 따라오신 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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