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09화 (1,689/2,000)

1709. 빌드 업-44-

'그런 것 같군.'

[이론상 6.6 주사위 조합의 확률은 1/36. 즉, 공평한 게임이 아니라 53:47의 확률로 주인님께 불리한 룰 입니다.]

'뭐, 그러려니 해야지.'

[아니, 명백한 사기도박에 응하시겠다고요?]

'바텐더에게 술을 산다는 명목으로 칩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전략 같은데, 바텐더랑 노가리까는 요금이라고 이해해야지 어쩌겠어? 어차피 외모 반반한 바텐더들로 쫙 깔아 놓은 이유가 작정하고 미인계 펼치겠다는 건데.'

"좋아요, 한번 해보죠."

바텐더가 씩 웃더니 컵에 주사위 두 개를 넣고 흔들었다. 컵 안에서 촤르륵-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주사위가 멈춰 서자 바텐더가 말했다.

"먼저 베팅하시고 홀짝을 고르시면 됩니다. 단 칩은 5개 이하로만요."

[마치 선심 쓰듯 말하는군요. 먼저 고른다고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닌데요.]

'그러게.'

[근데 왜 베팅액에 제한을 두는 건가요?]

'마틴 게일 베팅을 못 하게 막으려는 거겠지. 대부분 카지노 게임에 걸려있는 기본 룰이야. 저번에 한 번 설명하지 않았나?'

[기억납니다. 승부에 지면 다음 판에 무조건 2배씩 걸어 이길 때까지 베팅액을 올리는 수법 말이죠?]

'그렇지. 베팅 상한이 없을 경우, 2배씩 올리다 보면 무조건 최종적으로 참가자가 따게 되거든. 게임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딜러가 아니라 참가자니까.'

[그렇겠네요.]

'어디 한 번 오늘의 운을 확인해 볼까?'

도훈이 칩 1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5만원을 주고 11개를 샀으니 개당 5000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짝이요."

"네, 그럼 저는 홀을 선택하겠습니다."

딜러가 컵을 들어 올리자 주사위가 나타났다.

"4,6 짝이네요. 축하드려요."

딜러가 칩 함에서 흰색 칩을 꺼내 도훈에게 내밀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네."

딜러가 다시 주사위를 흔들기 시작했다.

도훈은 주아가 출근하기 전까지 성희라는 바텐더를 통해 이곳의 정보를 캐보기로 했다.

"근데 원래 여긴 이렇게 손님이 많은 편인가요?"

"지금요? 아직 절반도 안 온 건데요?"

"이게요?"

도훈이 놀라서 물었다. 지금도 게임하는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인원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게 절반도 안 온 거라니.

"원래 금요일하고 토요일이 가장 손님 많아요.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렇지만, 자정쯤 되면 게임에 참여하기도 힘드실 만큼 손님이 바글바글할 걸요?"

"그렇구나."

생각보다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어쩐지 규모에 비해 굉장히 바텐더가 많다는 생각은 들었다. 잠깐 고개를 돌려도 10명이 넘는 바텐더들이 손님들과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많은 직원들 모두 월급 주려면 어지간한 매상으론 어림도 없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바텐더는 시급도 제법 높은 편 아닙니까?]

'당연하지. 와꾸 봐서는 얼굴 좀 되는 애들만 골라 뽑은 것 같은데 시급을 적게 부르진 않았을 것 같아.'

[대체 어디서 수익이 나는 걸까요? 이 정도 규모를 돌리기엔 기대 수익률이 너무 낮은 것 같은데.]

다이스 게임은 거의 5:5에 가까운 확률.

이 정도로 수수료를 가지고선 직원들 월급을 주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구나. 이건 미끼야.'

[네?]

'이런 게임은 일종의 미끼 상품이라고.'

[무슨 미끼 말씀이십니까?]

'왜 마트에 보면 가끔 왕창 세일해서 파는 품목들을 광고할때가 있잖아. 누가 봐도 원가 이하로 파는 것 같은.'

[네.]

'하지만 마트에 들른 사람들이 꼭 그것만 사는 건 아니거든. 기왕 행차를 한김에 다른 것도 하나씩 집어 들다 보면 결국엔 마트 입장에선 미끼 상품으로 발생한 손실을 다른 상품의 마진으로 메꾸는 거지. 일종의 판촉물처럼 말이야.'

[호오.]

'애초에 이 게임은 카지노 측에서 돈 벌려고 놔둔 게임이 아니야. 그래서 칩 상한도 5개가 최대잖아. 그냥 바에 앉은 손님들이 관심있는 바텐더에게 작업이나 걸라고 만든 게임이지. 6,6에 걸리면 바텐더에게 술을 사는 것 만봐도 알 수 있지.'

[그렇군요. 그럼 대체 뭐가 메인 게임일까요?]

'지금 봐서는 아직 모르겠는데, 아마 인원이 많이 참여하는 룰렛이나 바카라 쪽에 뭔가 수를 쓴 게 아닌가 싶어. 결국 게임에 빠져들다 보면 점점 욕심이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번엔 홀이요."

"그럼 저는 짝으로 하겠습니다. 앗, 또 이기셨네요."

칩 한 개를 걸었던 도훈이 2연승을 거두었다. 물론 도훈에게 이런 시시한 게임에서의 승리는 의미가 없었다. 결국 주아를 꼬시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시네요."

"실력이 아니고요?"

"어머, 주사위를 굴리고 있는 건 전데요?"

성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차피 운빨 게임, 무슨 실력을 운운하냐는 반문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다시 말했다.

"전 진짜로 알고 맞춘 건데?"

"정말요? 설마 컵 안이 보이시는 거예요?"

"아뇨. 소리를 들었죠."

"소리요?"

컵을 흔들게 되면 안에서 주사위들이 부딪치면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소리만 들어서는 절대 어떤 주사위가 올라올지 알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아잉, 농담도 잘하시네요."

"농담 아닌데요? 제가 또 맞추면 어쩔 건데요?"

"3연속이요? 그치만 저는 손님께서 베팅한 만큼 칩을 내드리고 있는데···."

"제가 진짜로 알고 맞추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려고요."

"진짜라고요?"

"네."

도훈은 최대 상한액까지 베팅했다. 칩 5개.

앞서 두 개를 따긴 했지만, 만약 이번에 지게 되면 본전 이하로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주인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진짜 운으로 맞추신 거 아니었습니까?]

'맞아. 그냥 주아 오기 전까지 심심해서.'

[그렇다고 확신도 없는 승부에 그렇게 큰 베팅하신다고요?]

'확신은 있는데?'

[네? 제가 알기론 주인님께선 분명 투시 능력이 없으실텐데···.]

'투시는 당연히 아니지.'

[설사 마음의 소리를 쓴다 한들, 딜러 역시 컵 안의 주사위 배열은 알지 못 합니다. 이건 자기 패를 보고 하는 카드 게임 종류가 아니니까요.]

'마음의 소리 쓴다는 말도 아니었는데?'

[그럼요?]

'잘 봐. 내가 어떻게 맞추는지. 숫자까지 정확히 맞춰 줄테니까.'

"음···."

"그럼 제가 3연승 하면 인정해 주실 거예요?"

"무슨 인정요?"

"제가 진짜로 알고 맞춘다는 걸요."

"뭐, 그런 걸로 하죠."

"에이, 진짜로 못 믿으시는 거 같은데 저랑 내기 할래요?"

"내기요?"

"제가 이번에 못 맞추면 그 쪽한테 칵테일 한 잔 살게요."

"손님이 이기면요?"

"성희씨가 저한테 한 잔 대접하셔야죠. 여기서 제일 비싼 칵테일로."

"흐음."

성희는 도훈의 제안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풉- 귀여워. 그냥 작업 거는 거잖아?'

어차피 이겨도 져도 서로 술을 사는 내기.

자신을 취하게 만들어 어떻게 해보겠다는 수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희는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상대가 무척 잘생긴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볼 때부터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맥주를 주고 계속 머물렀다. 바텐더도 기왕이면 잘생긴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까.

'나야 뭐 손해 볼 건 없지.'

"원래 최대 베팅 금액을 넘는 내기는 안 되지만, 이번만 특별히 허락할게요."

"진짜죠? 제가 맞추면 성희씨가 칵테일 사는 겁니다?"

"알았어요. 이제 맞춰봐요. 홀이에요, 짝이에요?"

도훈이 바로 답을 말하지 않고 갑자기 주머니를 뒤져 지포라이터를 하나를 꺼냈다.

"여기 실내 흡연 상관없죠?"

"네 가능하세요."

"일단 주사위 다시 굴려 보세요."

촤르르륵-

성희가 평소보다 오랫동안 주사위를 굴렸다.

"자, 고르세요."

"잠시만요. 담배만 마저 피우고요."

'로시 시간 카운트.'

[네?]

'지금부터 10분간. 시작.'

카운트가 정확해야 성공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도훈은 시간을 끌기 위해 느릿느릿 담배를 피웠다. 성희가 그 모습을 보더니 팔짱을 끼며 웃었다.

"갑자기 자신 없어지신 건 아니죠?"

"제가요? 왜요?"

"지금 일부러 시간 끄는 것 같은데?"

"전혀요. 시간 끈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요. 일단 담배 다 피울때까진 기다려 드릴게요."

도훈은 담배를 피우면서도 계속 로시에게 시간을 확인했다.

하지만 10분이란 시간은 생각외로 길었기 때문에 대화를 길게 유도하며 버텨야 했다.

도훈이 불쑥 물었다.

"성희씬 남자친구 있어요?"

성희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배시시 웃었다. 남자들의 작업멘트는 열에 아홉은 저런 질문이었다.

"너무 대놓고 들이대시는 거 아니에요?"

"왜요, 말 안 해줄 거예요?"

"있다면 안 들이대시게요?"

"물론 있어도 들이대죠."

성희가 다시 웃었다.

웃음이 헤픈 여자였다.

"어떻게 들이댈 건데요?"

"성희씨한테 일단 잘 보여야겠죠?"

"전 아직 그쪽분 이름도 모르는데요?"

"서준이라고 해요."

"서준씨는 무슨 일해요?"

"일 안해요."

"네? 아, 대학생? 지금보니까 어려보이긴 하네요."

"아뇨. 백순데."

"아···. 학생이 아니고 백수예요? 왜요?"

"일할 필요가 없어서요."

"왜요? 왜 일을 안 해요?"

"성희씨는 그럼 이 일을 왜 하는데요?"

"왜 하냐뇨?"

"그러니까, 황금같은 주말에 남자친구랑 데이트도 못 하고 왜 펍에서 바텐더 일을 하고 있느냐고요."

"그야 돈 벌려고."

"그쵸. 일은 돈 벌려고 하는 거죠? 저는 그래서 일 할 필요가 없어요."

"서준씨 혹시 부자예요?"

"네."

"에이, 거짓말. 차가 뭔데요?"

"차는 의미없어요."

"왜요? 돈 많다면서 차는 별론가 보네?"

성희가 다시 웃었다. 사실 도훈은 얼굴부터가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빈털터리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허세를 부리는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에 일부러 계속 캐묻는 것이었다.

"제 말 뜻은 차만 좋은 빈 깡통들이 많다는 뜻이에요. 카푸어라고 들어봤죠? 영끌 할부 땡기면 월 200만 있어도 마이바흐 몰 수 있다잖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이 부자인건 아니죠. 차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해요."

"그럴 수 있다고 쳐요. 대신 서준씨가 부자라는 건 어떻게 저한테 증명할 건데요? 말로는 저도 부자예요."

"증명이라. 혹시 이거면 되려나?"

도훈이 불쑥 스마튼 폰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코인 거래소 어플을 열어 잔고를 보여주었다.

"이게 뭐예요?"

"코인 알아요?"

"비트코인? 당연히 알죠."

"이게 제 계좌예요. 원화로 보여드릴게요."

도훈이 잔고화면을 띄워 보이자 성희가 잘 안보이는 지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에 나온 숫자를 천천히 세기 시작했다. 단위가 WON으로 끝나는 걸 보면 한화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이상할 정도로 자릿수가 많았다.

"일십백천만···, 자, 잠깐. 이거 뽀샵 아니에요?"

억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성희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목소리가 떨려왔다. 도훈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거래소 안에서 메뉴 버튼을 누르며 사진이 아님을 증명했다.

"보시면 현 시각 기준으로 다른 코인 시세도 나오죠? 진짜 제 계좌예요."

"헉!"

성희가 진심으로 놀랐는지 입을 틀어 막았다. 단순히 잘생긴 청년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의 계좌에 수백억이 찍혀 있었던 것. 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썰은 인터넷으로 하도 많이 접했기 때문에, 그의 말이 신빙성이 있었다.

"실은 이것보다 훨씬 많았는데, 최근 가격이 빠지면서 많이 떨어진 거예요. 뭐, 그래도 죽기 전까진 다 못쓰겠지만요. 이제 제가 부자라는 게 믿어져요?"

성희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마치 범죄자를 발견한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의 젊은 사내가 수백억대의 부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면 큰 일이 날것 같았다.

"이, 이게 그러니까, 전부 서준씨 재산이라는···."

"전 재산은 아니고. 대충 절반 정도? 나머진 현금으로 인출해 놨고요."

"세, 세상에···."

'로시 지금 몇분이지?'

[9분 45초입니다. 15초 남았습니다.]

"그래서 전 일할 필요가 없다고 한 거예요. 돈을 벌 필요가 없거든요."

"지, 진짜로 부자셨구나. 전 살면서 이렇게 돈 많은 사람 처음 봤어요. 얼굴도 잘생기시고."

"갑자기 남자친구를 갈아타고 싶은 생각이 팍 들어요?"

"소, 솔직히 말하면. ···네. 제 남친이 갑자기 너무 초라해 보이네요."

도훈이 씩 웃으며 지포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성희씨.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따르면,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우리 관계. 여기 라이터 보이죠?"

"네, 네!"

성희가 침을 꿀꺽 삼키며 도훈의 라이터에 집중했다.

[주인님, 딱 10분입니다.]

"레드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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