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05화 (1,685/2,000)

1705. 빌드 업-40-

"안녕하세요."

"속은 좀 어때? 한우 사주려다가 괜히 기름진 음식 먹으면 탈날 것 같아서 한정식으로 골라봤는데."

"괜찮아졌습니다. 육회 때문에 잠깐 배탈이 났었나 봐요. 안 익힌 음식 먹으면 종종 그러거든요."

"그래. 얼른 앉아. 코스로 시켜서 음식 몇 번 더 나올 거야."

"넵."

도훈이 마주 앉자, 태오가 숟가락을 들더니 식사를 권했다.

"편하게 들라고."

"근데···. 여기 꽤 비싼 곳 아닌가요?"

도훈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재산이면 매끼 이런 한정식을 먹어도 상관없지만, 사회 경험이 적은 대학생이 비싼 음식점의 분위기에 눌린 것처럼 일부러 어수룩한 모습을 연출했다.

기대했던 반응이었는지 태오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인당 10만원 밖에 안 해."

"시, 십만원이요?"

도훈은 스스로 연기를 하면서도 속으로 웃음이 터질뻔 했다.

'지랄. 고작 10만원짜리 한정식 사주면서 더럽게 생색은.'

[주인님이 정말로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러라지. 돈으로 날 매수하려는 작전인가 본데, 얼마나 부르나 한 번 보자고.'

"왜? 선수가 이 정도 식사 정돈 먹어야지."

"그, 그래도 이건 좀 많이 비싼 것 같은데요."

"하하, 걱정하지 마. 오늘은 내가 쏘는 거니까. 설마 아직 주급도 정산 못 받은 너한테 쏘라고 하겠어?"

"감사합니다."

"얼른 들어. 음식 식겠다."

도훈은 일부러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싼 음식을 먹는 것처럼 반찬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감탄하는 표정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가증스러운 연기였다.

"와, 여기 음식 진짜로 맛있네요."

"입맛에는 맞는 것 같아?"

"네! 종종 다니던 맛집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반찬하나하나가 일품 요리 같아요."

"음식이 맛있다니 다행이군."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이렇게 비싼 점심도 사주시고."

"그래. 내 말만 잘들으면 이런 음식은 언제든 먹을 수 있게 해줄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무슨 충성까지!"

태오는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그만큼 도훈의 순진한 연기가 실감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표정과 달리 도훈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저 병신은 나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23살의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생?]

'내 실제 나이가 자기보다 10살 이상 많다는 걸 알면 기절 초풍하겠군. 대기업 선임 연구원이었던 내가 이런 접대도 안 받아봤을 까봐?'

"아닙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실은 어제 갑자기 조퇴하는 바람에 너무 죄송했는데, 이런 비싼 음식까지 사주시고···."

"서준이 넌 참 책임감이 무척 강하구나."

"네? 제가요?"

"솔직히 우리 가게에 있는 선수 몇 놈은 뻑하면 출근 째고, 나한테 말도 않고 조퇴해 버리거든. 이 새끼들 대가리 좀 컸다고 말도 존나게 안 들어요. 마담을 호구로 아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 그런가요?"

"반면에 서준이 넌 참 사람이 됐더라. 군대를 일찍 다녀와서 그런가? 나이답지 않게 매우 믿음직스러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일을 하나 맡기고 싶거든."

"일이요?"

운을 띄운 태오가 본격적으로 도훈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실은 말이야. 저번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우리 호빠에서 돈되는 일은 따로 있어."

"네."

"시우가 말했었나? 자기가 한 달에 얼마나 버는지."

"잘 번다고는 들었는데 정확히는···."

"최소 월 천."

"처, 천만원이요?"

"그래. 그것도 막내일 때 그정도고, 일을 잘하면 보너스도 두둑이 챙겨 주지."

"그럼 2차를 얼마나 나가야 하는지···."

"아니아니. 지금 얘기하는 건 2차 얘기가 아니야. 2차를 전혀 안나가도 그렇게 벌게 해준다는 뜻이지."

"어떻게요?"

도훈은 몰래 단추에 달아놓은 카메라를 켰다.

증거 채증을 위해서였다. 태오가 입질을 시작했다.

"서준이 너 헌팅 좀 해봤어?"

"헌팅이요?"

"어. 처음보는 여자들 꼬시는 거."

"그게···."

"왜? 너 정도 와꾸면 대충 말만 걸어도 번호따는 건 문제도 아닐 거 같은데?"

"저한테 먼저 연락처 달라는 애들은 좀 있었는데···."

"있었는데?"

"제가 직접 헌팅을 해본 적은 별로 없어요."

"왜?"

"여자가 궁한적이 없어서···."

"아!"

태오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네. 여자가 있는데 또 꼬시는 건 바람둥이나 하는 짓이지."

'내가 그 난봉왕이다 자식아.'

"암튼, 마음 먹으면 금방 꼬실 순 있다는 거지?"

"음, 뭐 어느 정도는요?"

그때 방문이 열리며, 도훈을 방으로 안내했던 한복 입은 아가씨가 음식을 들고왔다. 코스요리라더니, 다음 요리가 나온 모양이었다.

"너비아니입니다. 식기 전에 드셔요."

"감사합니다."

고급 한정식 집이라, 점원에게도 굳이 한복을 입힌다는 점이 특이했다. 태오가 묘한 눈길로 여직원의 행색을 살피더니, 직원이 나가자마자 도훈에게 말했다.

"서준아."

"네?"

"너 방금 저 아가씨 번호 딸 수 있겠냐?"

"여직원이요?"

"어. 끽해야 네 또래로 보이는데. 어때? 가능하겠어?"

"혹시 테스트인가요?"

"일종의? 물론 실패해도 상관없고. 그냥 한 번 해봐. 네가 과연이 일을 잘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태오가 팔짱을 끼더니 씩- 웃었다. 도훈이 과연 헌팅으로 처음보는 여자의 번호를 딸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여직원은 아주 예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럭저럭 평균 이상의 외모였다.

남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도훈 정도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당연히 작업조에 들길 원했던 도훈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해보겠습니다."

"호오. 진짜?"

"네."

두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었다. 시간이 흐른 뒤 한복입은 여직원이 또 다시 방문했다. 과일과 수정과등이 담긴 것으로 보아, 마지막 코스인 후식으로 보였다.

"후식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도훈이 평소처럼 감사를 표하며 여직원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처음 도훈을 안내할 때부터 부끄러워하던 여직원은 감히 도훈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수줍게 고개를 돌렸다.

[주인님께 호감이 있어 보이는데요?]

'당연하지. 버프가 풀로 걸려있으니까. 어지간한 여자라면 날 싫어할 이유가 없지. 잘생긴 아이돌을 직접 보는 것처럼 볼 때마다 설렐걸?' 태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도훈이 불쑥 작업멘트를 날렸다.

"혹시 종교가 뭐예요?"

"네? 저요?"

도훈이 불쑥 말을 걸자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뭘 믿고 그렇게 예쁜가 해서요."

"···예?"

"일은 몇시에 끝나요? 번호 좀 알려줘요.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데."

여직원의 당황하는 모습에 태오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어이쿠. 설마 저걸 작업 멘트라고 날린 건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구리잖아?'

얼굴만 잘생겼지, 화술은 영 꽝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여직원이 얼굴을 붉히더니 도훈에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러면 안되는데, 폰 주시면 제 번호 찍어 드릴게요."

도훈이 여직원에게 폰을 건네자 여직원이 수줍어하면서 자기 번호를 찍어주었다.

"그, 그럼 맛있게 드세요!"

번호를 남긴 직원은 부끄러운 듯 후다닥 방을 나섰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태오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냐 방금?"

"네? 번호 따보라고 하셔서···."

"아니 그런 구질구질한 멘트가 먹혔다고?"

"저도 될 줄 몰랐는데, 이게 되네요?"

태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도훈을 쳐다보더니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멘트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어. 여직원이 처음부터 도훈에게 호감이 있었던 거야. 저런 거지같은 멘트가 먹힐 정도로 와꾸가 잘생겨버리니까, 말 걸자마자 넘어가는 거지. 역시 헌팅의 완성은 와꾸고, 멘트는 거들 뿐이었나?'

태오가 다시 한 번 도훈을 천천히 살폈다.

평범한 대학생처럼 차려입은 간소한 옷차림이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수수한 느낌이 들었다.

호빠에 출근할 때처럼 세미정장이나, 격식있는 옷이었다면 오히려 너무 프로처럼 보여 감점을 당했을 것이다. 여자들도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젊은 남자가 너무 패셔너블하게 꾸미고 다니면 화류계 종사자라고 오해하고 거부감을 가질 수 있었다.

'휘겸이 말이 맞았구나. 확실히 일을 맡기면 기대 이상을 보여줄 놈이야.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한 것도 오히려 장점같아. 일단 한 번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잘하면 휘겸이랑 맞먹을 정도의 포텐을 가지고 있을지도.'

태오가 확신을 가지고 도훈에게 말했다.

"좋아, 합격!"

"네?"

"테스트 통과라고. 너 헌팅조 바로 시작해라."

"헌팅조라면···."

태오가 구체적으로 일에 대해 설명했다. 자질구레한 내용을 다쳐내고 핵심만 정리하면 헌팅조의 역할은 다음과 같았다.

이제부턴 호빠에 출근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일주일 기본 주급은 200에 맞춰준다. 성공보수는 회당 50. 즉 일주일에 한 팀 이상 호빠로 유인해야 월 천을 제공한다.

룸에서의 작업은 직접 참여해도 되지만, 휘겸과 창민에게 맡기고 뒤로 빠져도 상관없다.

"저 그러니까, 대학생을 꼬셔오라는 말씀이시죠?"

"응. 직장인 말고 대학생."

"20살, 21살짜리도요?"

"오히려 좋아. 한 살이라도 어린 애들이 벗겨 먹기도 좋으니까."

"아···."

"기왕이면 반반한 애로. 어차피 못생긴 애들은 오피에서 안 받아주거든. 그러면 보도나 노래방으로 빠지는데 거긴 돈이 안 돼."

"···네."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가 듣고 있는데 화가 나는군.'

[참으십시오. 대의를 위해.]

도훈이 분노로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태오가 오해하고 계속 설득했다.

"서준이 너한테 꼭 강요하는 건 아니야. 만약 네가 찝찝하면 그냥 여자애들만 호빠로 데려다 주기만 하면 돼. 호객행위 좀 했다고 문제 삼을 사람은 없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이 일은···."

"상관없습니다."

"응?"

"저도 시우형한테 들은 게 있으니까요. 할 생각이 없었으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태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보면 볼수록 탐스러운 원석이었다.

호빠 선수로의 자질을 완벽히 타고난 천재.

물론 의심이 많은 태오는 여전히 도훈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었다. 뒤통수를 치지 않게 하려면 확실한 담보를 잡아두어야 했다.

"그리고 서준아, 아니 정우야. 이건 형이 진지하게 말하는 거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 줬음 좋겠다."

"네. 말씀하세요."

"형이 친하게 지내는 형님들이 대부분 생활하는 형님들이야.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이 일도 그쪽으로 연관되어 있고."

"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만약 네가 우리 조직을 배신하면 ···."

"아···."

"물론 우리끼리야 같은 동료니까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위에 형님들은 화나면 굉장히 무서운 사람들이거든.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어. 가족까지 해코지할지 모르고."

"음···."

"그러니까 신중하게 대답해. 내가 너 진짜로 믿어도 되겠냐?"

[이건 완전 대놓고 협박 아닙니까?]

'그런 것 같네. 하여간 돼먹지 못한 새끼. 가족관계부 먼저 받아 놓고 협박하는 거 보니까 싹수가 아주 노랗네. 이 새끼야말로 가장 쓰레기 아니냐?'

[어차피 태오도 구씨의 수하일 뿐입니다. 몸통은 따로 있죠.]

'문제는 저런 놈이 한 두 놈이 아니라는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들이 계속 속출하고 있고. 얼른 찾아내서 밟아 버려야 겠어.'

도훈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연기를 했다.

"음···."

태오가 괜찮다는 듯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성급하게 대답할 필요는 없어. 최대한 신중하게 고민해봐."

태오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도훈이 불쑥 물었다.

"···형님. 저도 한 대만 펴도 될까요?"

"어? 그래라. 중요한 결정을 할 땐 담배만 한 게 없지."

태오가 담배를 건네자 도훈이 초조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사실 하나도 긴장하고 있지 않지만, 연기를 위해 고민하는 척을 해야 했다.

담배 한 대를 모두 피울동안 침묵을 지키던 도훈이 태오를 보고 말했다.

"형님."

"결정했냐?"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이건 너한테도 아주 좋은 기회야."

"네. 저도 돈 벌려고 이 바닥에 뛰어들었습니다. 언젠가 형님처럼 폼나게 살고 싶어서요."

"새끼, 솔직해서 마음에 든다. 어쭙잖은 명분 대는 새끼들보다, 그런 이유가 훨씬 낫지. 형만 믿고 따라와. 니 나이에 만지지도 못할 돈을 벌게 해줄 테니까. 하하하!"

'병신 육갑하고 있네. 확 숟가락으로 눈깔을 파버릴까 보다.'

[차, 참으십시오 주인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