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 빌드 업-37-
도훈은 거의 콘돔을 써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됐어. 콘돔만 쓰면 대부분 성병은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혹시 나중에 2차 나간 여자들이 생으로 해달라고 해도 절대로 안된다고 해. 이런 데 들락거리는 여자들 대부분 성병 하나씩은 달고 있다고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닐걸?"
"그런가요?"
"차라리 업소에서 일하는 애들이 더 깨끗하다니까? 걔들은 혹시나 해 매달 보건소 들러서 검사받잖아. 자기들도 찝찝해서."
"네."
'로시. 근데 나 이제까지 어떻게 성병 한 번도 안 걸렸지? 콘돔 한 번도 안 쓴 것 같은데?'
[단지 운이 좋으셨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문란한 여성들은 대부분 직업여성들이 많았고요.]
'그런가? 아니면 혹시 나도 모르는 성병 걸린 게 있으려나?'
[마지막 신체 스캔에서는 딱히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내가 너무 건강해서 어지간한 병에 안 걸리는 체질이라 그럴까?'
[물론 자잘한 질병은 대부분 이겨내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면역은 아니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진짜 면역이 되고 싶으면, 숨겨왔던 나의···. 업적을 수행하셔야 하고요.]
'아니야. 그 짓을 하느니 그냥 병 걸리고 나서 약 먹고 말지.'
"암튼 서류 준비해 오느라 고생했겠다. 대기실 가서 쉬고 있어. 오늘은 불금이라 초이스가 많을 테니 준비 잘하고."
"네."
도훈은 태오의 룸을 나와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불이 꺼져 있던 대기실 소파 위에는 누군가가 모포를 덮고 자고 있었다.
'응? 저 사람은···.'
도훈은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정수리만 보고도 그가 한결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 날 새서 도박하고 휴게실 와서 잠든 모양이군.'
도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불도 켜지 않고 구석 의자에 가서 앉았다. 불 꺼진 대기실에 앉아있던 도훈은 어떻게 하면 태오의 신뢰를 얻어 작업조에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한 지 이틀 밖에 안 돼서 아직까진 입질이 없네. 분명 어제 작업조 투입 어쩌고 하는 얘기를 했는데 말이야.'
[어쩌면 두 명이라서 주인님이 배제된 게 아닐까요?]
'무슨 뜻이지?'
[작업 대상이 두 명이니까, 주인님까지 기회가 안 간 게 아닌가 해서요. 어차피 이곳엔 범죄에 동참한 선수들이 두 명보다 많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굳이 내가 필요 없는 상황이라는 거지?'
[그런 것 같습니다. 차라리 밖에 나가 헌팅하는 쪽을 노려보는 게 어떻습니까?]
'헌팅?'
[그때 하는 말로는 밖에서 여대생들을 헌팅해 오는 팀이 따로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여기서 죽치고 기다리지 말고 차라리 내가 나가서 꼬셔 오겠다고 나서라는 거야?'
[그렇죠.]
'흐음. 그것도 일리가 있긴 한데.'
문제는 도훈이 먼저 그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시우의 추천으로 어제부터 일을 시작한 도훈에게, 이틀 만에 그들의 범죄 행위에 합류시켜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일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뢰를 쌓기 위해 장기간 호빠 일을 병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학기 중이었고, 오전에 수업을 갔다가 오후에 호빠 알바를 뛰는 이중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순 없었다. 최대한 빨리 놈들의 범죄에 합류하기 위해선 무언가 확실한 계기가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태오가 나를 필요하게 만들 수 있을까?'
도훈이 고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파에 시체처럼 누워있던 한 결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올인!"
"네?"
잠에서 깬 한결은 갑자기 어두운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신이 꿈꾸었다는 걸 깨닫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어쩐지,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쉽게 뜬다 했더니, 시발 꿈이 네."
"형?"
"어? 뭐야?"
잠에서 깬 한결은 한동안 어둠에 적응하지 못하더니 곧 의자에 앉아있는 도훈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
"서준이? 너 여기서 뭐하냐? 불도 안 켜고."
"형이 주무시는 것 같길래요."
"나참, 나 같은 걸 왜 신경 써? 그냥 불 켜도 돼."
"잠은 다 주무셨어요?"
"혹시 지금 몇 시냐?"
"8시 조금 넘었어요."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애들 출근할 시간이네. 저녁이나 먹어 야겠다."
도훈이 대기실에 형광등을 켜는 사이 한결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담배부터 무는 걸 보니 어지간히 골초인 모양이었다.
"너도 한 대 피울래?"
"네."
도훈도 맞담배를 피우며 한결과 마주 앉았다. 밤새 사설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고 왔는지 잠에서 깨어난 한결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머리는 부스스하게 떠 있었고, 피부도 푸석푸석한 게 어제 봤을 때보다 3살은 더 늙어 보였다.
"후-. 어제 결국 다 꼴았다."
"또 도박하고 오셨어요?"
"어. 매일 그렇지 뭐. 너도 내가 한심해 보이냐?"
"아닙니다."
물론 도훈은 속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속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할 정도로 사회성이 없진 않았다.
"오죽하면 자면서까지 패 돌리는 꿈을 꾸냐? 시발, 진짜 스티플 잡았다고 좋아했는데 시발 꿈이라니···."
"잘 되는 날도 있겠죠."
"아니야.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나잇살 처먹고 아직도 도박이나 하고 있으니."
"그만두시면 되지 않아요?"
한결이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이제 본전 생각나서 못 끊어. 그간 꼴아 박은 돈이 얼만데."
"얼만데요?"
"몰라. 안 세 봤는데 거의 1억은 넘지 않았을까? 어쩌면 2억일수도 있고."
"와···."
"여기서 일하면서 번 돈 고스란히 날렸으니까 뭐. 이젠 계산도안 돼."
"혹시 사기도박 당하신 건 아니죠?"
"사기? 차라리 사기면 좋지. 어차피 난 공사당 할 견적도 안 나오는 거지라고. 나 같은 빈털터리 사기 쳐서 뭐 하겠어? 하루에 10만원, 20만원 푼 돈가지고 덤비다가 맨날 깨지고 오는 건데."
"아···."
"에이 됐다. 너 혹시 돈 좀 있냐?"
"예?"
도훈은 한결이 돈을 빌려달라는 줄 알고 자기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도박중독자에겐 한 푼도 빌려주기 싫었던 것. 도훈의 떨떠름한 반응에 한결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얀마. 나도 염치가 있지, 동생한테 돈 빌려서 도박하겠냐?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뜻이었어. 오늘 주급 정산일이니까 좀 이따갚아줄게."
"괜찮아요. 저녁은 제가 사드릴게요."
도훈이 저녁을 산다고 하자 한결이 정색하며 말했다.
"야. 나 비참하게 만들지 마라. 형이 아무리 돈이 없어도 한참 어린 동생한테 삥 안 뜯어. 나 오늘 주급 받는 날이라니까?"
"알았어요. 나중에 주세요. 저녁은 뭘로 드실래요?"
"요 앞 큰 거리 나가면 뼈해장국 집 있어. 혹시 뼈해장국 좋아해?"
"네, 음식은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어요."
"그래. 거기나 가자."
도훈은 한결을 이용해 작업조에 합류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오래 일했던 그의 연륜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뼈해장국 집에 도착한 한결은 도훈과 마주 앉았다.
"새끼. 다시 봐도 잘 생겼네."
"감사합니다."
"내가 니 와꾸였으면 진짜 돈을 쓸어 담았을 거야."
"형님도 잘생기셨잖아요."
"나? 그것도 옛날 말이지. 이젠 늙어서, 마담도 잘 안 써 주잖아."
"근데 마담 형님이 한결이 형보다 동생 아니에요?"
"맞아."
"그럼 형님이···."
"내가 왜 마담 못하고 태오가 맡았냐고? 태오 이 새끼 순 낙하산이야."
"낙하산이요?"
도훈이 귀를 쫑긋했다.
"원래 태오 웨이터 출신인 거 알지?"
"네. 어제 들었어요."
"이쪽 업계에서 제일 선수 취급 못 받는 게 웨이터 뛰던 애들이거든. 팁이나 받아먹던 접시닦이 새끼들이 갑자기 선수하고 맞먹으려고 드니 얼마나 짜증나겠냐? 막말로 내가 잘 나갈 때 태오는 내 발끝도 못 미쳤는데."
"그랬군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구씨라는 사람이 태오 뒷배를 봐주기 시작한 거야."
"구씨요?"
도훈은 처음 들은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결이 계속 말했다.
"그런 사람 있어. 여기 호빠의 실질적인 마담. 보통 마담들이 선수들 관리하잖아. 태오는 구씨 대신 선수들을 관리하는 새끼 마담이야 사실."
"아···. 그럼 구씨라는 분은 어디 있는데요?"
"나도 잘은 몰라. 구씨가 관리하는 호빠가 하도 많아서 자기 밑에서 일하던 애들 새끼 마담으로 올려서 업장 관리한다는 것밖에는. 태오는 솔직히 구씨 때문에 갑자기 마담에 오른 거지, 사실 좆도 없는 새끼였거든. 아 그건 잘하네."
"뭐요?"
"남 똥꼬 빠는 거."
"아···."
"하-. 근데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나는 이렇게 쫄딱망했고, 태오는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개새끼, 성형까지 해가지고 지금은 와꾸도 존나 잘 생겼잖아."
"태오 형님, 성형하신 거였어요?"
"몰랐냐? 남자도 성형 존나 해. 잘 돼서 용된 애들도 많고. 넌 얼굴에 칼 안 댔어?"
"네."
"와, 이 새끼는 진짜 타고났네."
한결은 도훈을 계속 부러워했다.
어리고 잘생긴 도훈이 몹시 샘나는 모양이었다.
도훈이 슬쩍 한결을 찔렀다.
"근데, 형 혹시 작업이라고 아세요?"
"작업?"
"네, 어제 마담 형이랑 같이 있는데 작업 어쩌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누구지, 창민이 형 들어왔을 때."
"창민이도 만났어?"
"네. 어제 우연히요."
"창민이 새끼 조심해라. 성질이 포악해서, 같은 선수끼리도 봐주는 거 절대 없다."
"준후 형도 그 말 하더라고요."
"암튼, 작업에 대한 건 나도 잘은 몰라.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태오가 자기랑 친한 선수 몇 명이랑 따로 VIP룸에서 이상한 짓을 한다는 것밖에는."
"이상한 짓이라뇨?"
"너 여기 추천한 시우도 작업조 멤버였을걸? 시우한테 따로 말들은 거 없어?"
"네."
"흠, 내가 알기론 여기 작업조는 모두 다섯이야."
도훈은 한결이 들려주는 고급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창민이랑 휘겸이, 그리고 너 추천했던 시우랑 가게에 잘 안 나오는 윤재랑 서원."
[작업조 명단이 확보되었군요.]
'역시 한결이 짬밥이 있으니까, 대충 흘러가는 흐름정도는 꿰고 있었구나. 잘 됐다.'
[가게에 잘 안 나온다는 윤재와 서원이 밖에서 헌팅하는 사람일까요?]
'그렇겠지? 잠깐, 그래서 아직 나를 안 불렀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들어보면 작업조가 모두 5명이잖아. 안에서 술에 약 타고 영상 찍는 애들이 창민이랑 휘겸이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시우였고 밖에서 헌팅하는 애들이 윤재랑 서원이고.'
[그렇죠.]
'근데 오늘 작업할 애들이 모두 2명이라면서. 그러니 당장 나를 부를 필요가 없었던 거지. 어차피 지금 있는 인원으로 소화가 가능하니까.'
[그렇군요. 그럼 주인님 계획은 무엇입니까?]
'만약 여기서 작업조가 몇 명 더 빠지면 어떻게 되겠어?'
[시우까지 합쳐 결원이 두 명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주인님이 투입될 확률이 올라가겠군요.]
'그렇지. 태오 새끼가 아무리 날 안 미더워해도 결국엔 날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지. 어차피 태오는 나를 시우의 후임으로 생각하고 첫날부터 범죄 행위를 싹 다 알려줬었잖아.'
[그렇죠. 그럼 누굴 노리실 계획입니까?]
'창민이랑 휘겸이는 딱 보니까, 이 가게 간판이라 함부로 건드리면 괜히 의심 받을 가능성이 있어.'
[그럼 밖에 있는 작업조를 노리는 게 낫겠죠.]
'임자 있는 사람에게 모르고 들이대다가 면상 죽사발 나는 것도 그럴싸한 시나리오 같지 않아?'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한결에게 고급 정보를 얻어낸 도훈이 계속 물었다.
"휘겸이 형도 어제 만났어요."
"어? 휘겸이도?"
"네. 근데 윤재랑 서원이라는 분은 아직 못 본 것 같아요. 원래 가게에 자주 출근을 안 하는 분들인가요?"
"최근 들어선 일주일에 한 두 번 겨우 얼굴 내밀더라? 밖에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근퇴가 아주 불량해."
"그럼 혹시 오늘도 안 나오시려나요?"
"오늘은 나올걸? 서원이가 나랑 주급 받는 날이 같거든. 너도 어제 일했으니 일주일 뒤에 받을 거야 참고로."
"아, 그래요?"
'서원이가 당첨이군.'
[누군지 몰라도 주인님께 호되게 참교육을 당하겠군요.]
저녁 식사를 마친 둘은 다시 호스트 바로 되돌아갔다. 그 사이 하나 둘 출근했는지 대기실에 3명 정도의 선수들이 보였다. 일찍부터 출근한 선수들은 저마다 머리를 다듬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
한결이 선수들에게 도훈을 소개했다.
"이쪽은 시우 소개로 들어온 서준이라고 해. 우리 박스에서 가장 막내니까 잘 부탁해."
"안녕하십니까, 하서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