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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687화 (1,667/2,000)

1687. 빌드 업-22-

로시의 일침에 도훈이 반발했다.

'왜? 나는 섹서라서 이런 일에 끼어들 자격도 없나?'

[아니 제 말뜻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좆같은 범죄자 새끼들이 순진한 여대생들 마약 먹여서 창녀로 팔아먹는데 그걸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주인님. 세상의 모든 범죄를 주인님이 직접 단죄하실 순 없는 겁니다. 정의감, 당연히 좋은 말이죠. 그러나 현실도 생각하셔야지 않겠습니까?]

'그래. 말 잘했다. 내가 모든 범죄를 단죄할 능력도, 그럴 필요도 없지. 근데 하필 내가 알아 버렸잖아? 그걸 모르는 척 눈감고 넘어 가라고? 경찰에 제보만 하고? 그게 정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다 PK단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에는 주인님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다 주인님을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씨팔! 맨날 뭐만 하면 PK단, PK단! 다 나오라고 해! 확 다 죽여버릴 테니까!'

[주, 주인님···.]

'구더기 무서워서 장도 못 담 가? 나만 살자고 그럼 저 개새끼들을 내버려 두라고? 그렇게는 못 해.'

[주인님! 제발 간청드립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일을 키웠다간 분명 PK단의 감시망에 걸리고 말 겁니다. 안 그래도 주인님을 찾기 위해 놈들이 혈안인데···.]

로시의 조언을 받던 도훈은 갑자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가만. 그럼 조용히만 처리하면 놈들에게 걸릴 위험도 없다는 소리야?'

[네?]

'일을 안 키우고 조용히 처리하면 말이야. 지금 그렇게 하라는 거지?'

도훈의 물음에 로시가 할 말을 잃었다.

[또 무슨 꿍꿍이십니까?]

'로시 네가 그랬잖아. 당장 구씨파든 오성파든 쳐들어가서 걸리는 족족 줘 패버리고 조직을 와해시키면 분명 소문이 퍼질 거라는 거잖아.'

[당연하죠. 보는 눈과 귀가 얼마나 많은데요? 세상에 어떤 민간인이 단신으로 쳐들어가 조직을 날려버립니까? 분명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질 겁니다. 그러면 사방에 프락치를 심어 둔 PK단에게도 소문이 흘러들어 갈 것이고요.]

'그건 달리 말하면, 조용히 놈들 내부에 잠입해 몸통만 날려버리면 별문제 없을 거란 뜻이네?'

[대체 어쩌시려고요?]

도훈은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있는 시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도훈에게 심하게 뺨을 맞는 바람에 팅팅 붓긴 했지만, 손찌검을 당하지 않은 반대쪽 얼굴을 보니 그런대로 봐줄 만한 페이스였다.

하지만 저 정도 얼굴이 에이스라면 도훈의 본래 얼굴로도 충분히 먹힐 것 같았다.

"너, 살고 싶냐?"

"네, 넵!"

놈이 의자에서 벌떡 내려오더니 도훈 앞에 무릎 꿇었다. 간절한 놈의 눈빛에 도훈은 헛웃음이 났다. 저런 하잘것없는 목숨도 소중히 여기면서, 꽃다운 여대생을 무참히 짓밟을 땐 아무 동정심도 느끼지 못했겠지.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마, 말씀하십시오."

"지금 당장 너네 패거리에 연락해서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했다고 해. 그래서 하루 동안 연락이 안 됐다고. 지금 막 병원에서 깨어나서 연락한다고."

"하, 할 수 있습니다. 당장 하겠습니다."

"끝이 아니야. 이틀간 펑크내서 미안하니까 아는 후배 한 명을 선수로 추천하겠다고 해. 지방 호빠에서 뛰던 동생인데, 너 없는 동안 대타로 추천한다면서."

"후, 후배요? 누구를···."

"니가 알아 뭐하게? 시키는 대로 말만 전하라고."

"아, 알겠습니다."

시우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도훈이 시키는 대로 내용을 전달했다. 워낙 거짓말이 능수능란한 편이라 옆에서 지켜보던 도훈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여간 양아치 호빠 새끼들. 입만 열면 거짓말이구나.'

[주인님보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저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맨날 구라만 치고 살았으니, 구라가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거겠지.'

"부, 분부하신 대로 다 했습니다."

"그래?"

"저, 저는 그럼 이제 어떻게···."

"뭘 어떻게 해? 방금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면서?"

"예?"

"지금 몰골이 교통사고 난 걸로 보여? 내가 볼 땐 건달한테 붙잡혀 흠씬 두들겨 맞은 모습인데?"

"그, 그거야···."

자기가 패놓고 유체이탈 화법을 시전하는 도훈을, 시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감히 따질 수가 없었다. 그에게 맞으면 정말로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트럭에 한 번만 치이고 끝내자. 혹시 아냐? 운 좋으면 반신 불수로 끝날지. 야, 번개야! 들어와라."

"아, 아니 이건 약속이랑 다르잖습···."

도훈이 갑자기 살기를 강하게 내뿜었다. 담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오줌을 지릴 정도로 맹렬한 살기였다.

"야이 좆만한 새끼야. 내가 살려주겠다잖아? 트럭에 치여도 살놈은 살아. 근데 나한테 맞으면 100프로 죽어. 둘 중 뭘 원해?"

그때 번개가 커다란 마대자루와 함께 커다란 수화물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사람도 접어서 넣을 수 있는 거대한 크기였다.

"분부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마장동에서 발골하던 동생 하나가 있는데, 토막 잘 친 다음 가방에 넣고 묻어 버리면 뒤탈은 없을 겁니다. 어, 근데 아직 그놈 살아 있었습니까?"

번개가 워낙에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기 때문에 시우는 더욱 더 겁을 집어먹었다. 만약 방금 전 도훈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결국 사무실을 다시 나갈 때 저 수화물 가방에 담겨 나간다는 뜻이었다.

"봤지? 네 놈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

"트, 트럭에···. 트럭에 치이겠습니다!"

시우가 울면서 소리쳤다.

도훈이 무심한 표정으로 턱짓하자 번개를 따라 들어온 부하들이 시우의 양팔을 붙잡고선 다시 사무실 안쪽으로 데려갔다. 놈은 죽기가 무서웠는지 질질 끌려가는 내내 울부짖었다.

"트럭에 치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8톤 트럭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제발!"

사무실 안으로 끌려간 시우가 잠시 후 잠잠해졌다.

다시 입을 봉인 당한 모양이었다.

도훈이 한 손에 캐리어를 든 번개에게 물었다.

"뭐냐 그건? 너 진짜로 토막 치려고 했어?"

"아, 아닙니다, 행님. 워낙에 독한 놈이라 이걸로 협박해 보려고 한 겁니다. 그리고 저희 애들은 심약해서 그런 짓 못 합니다. 마장동에 아는 발골사는 무슨요. 가끔 소고기 사러 가는 곳인데."

"새끼, 순발력 좋네. 그런 연기력이 있는 줄은 몰랐다."

"감사합니다 행님. 근데 방금은 저 놈이 뭐라고 한 겁니까? 트럭에 치이게 해 달라니요?"

도훈이 대강의 내용을 설명했다.

"한동안 병원에 눕혀놔야 할 것 같으니 교통사고로 위장하려는 거야."

"아하, 그런 거라면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감방 동기 중에 자해공갈 보험사기로 유명한 놈이 있는데, 적당히 작업해 줄 겁니다. 전치는 몇 주 정도 나오게 할까요?"

"3달이면 넉넉할 것 같아. 암튼, 저놈 함부로 입 못 열게 감시 잘해. 핸드폰도 못 쓰게 하고. 하긴 뭐 어차피 쫄아서 불지도 못하겠지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역시 행님은 대단하십니다. 저 독한 놈을 술술 불게 만드시고."

"뭘 그 정도 가지고. 암튼, 난 이제 움직여 볼 테니 뒷마무리 잘부탁한다."

"네, 행님. 제가 더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그래."

도훈은 최번개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흥신소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최번개는 이제 주인님 심복이 되었군요.]

'그러게. 아까 연기 하는 거 봤냐? 마장동 어쩌고 할 때 존나 웃참하느라 힘들었잖아. 어떻게 표정 하나 안 변하고 그런 살벌한 대사를.'

[눈치가 빠른 타입 같습니다. 돈에 너무 집착한다는 것이 단점이지만요.]

'아니야. 차라리 저런 친구들이 상대하기 편해. 돈다발만 입에 꽂아주면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올 놈들이니까.'

[주인님이 갑부인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군요.]

'돈 몇억만 손에 쥐여주면 사람도 죽여준다는 놈들이 천지인 세상이야. 이번 일도 결국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도훈은 구씨파 일당의 범죄 행위가 결국 돈과 연관된 범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용서가 안 됐다.

아무리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게 돈이라지만, 순진한 여대 생들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어 사창가에 팔아먹는 행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다시 호빠 선수로 변신하시는 겁니까?]

'응. 범죄자를 잡으려면 범죄자 소굴로 쳐들어가야겠지. 일단 놈들의 범죄 행위를 싹 다 증거로 남겨놓을 생각이야.'

[일종의 잠입 취재랑 비슷하군요.]

'그렇지. 그리고 경찰에 직접 증거품을 넘겨주는 것보다 제보고 발 프로그램을 이용해 봐야겠어. 일종의 우회 전략이랄까?'

[제보고발 프로그램요?]

'아까도 말했지만, 놈들이 이 정도로 설쳐댈 수 있는 건 법조계나 경찰 쪽 고위 인사에 미리 줄을 댔기 때문이야. 아무리 증거를 확보해 신고해봐야, 어차피 윗선에서 적당히 마사지 해준다는 걸 아는 거야. 결국 법정 다툼이네 뭐네 하다가 꼬리 자르기 선에서 끝난다고. 하지만 매스컴을 통해 이 사건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면, 설사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커버 못 쳐.'

[오호, 그런 방법이.]

'생각해봐. 호빠 선수들이 순진한 여대생들 꼬드겨서 마약을 먹인 다음 몰카로 협박, 최종적으론 창녀촌에 팔아먹은 사건이야. 그것도 계획적, 조직적으로. 이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 거라고.'

[그럼 주인님은 놈들의 범죄현장에 침투, 모든 것을 증거로 남기는 게 목적인 겁니까?]

'그렇지. 익명 제보하면 어차피 내 신분은 감춰질 테니까, 내가 누군지는 절대 못 알아낼 거야. 그다음엔 경찰에서 알아서 정리해줄 거고.'

[역시 주인님은 생각이 깊으십니다. 그러면 PK단에 꼬리를 밟힐일도 없고, 정의구현도 가능하겠군요.]

'물론, 구씨라는 놈은 꼭 내 손으로 잡아야지. 그 새끼를 잡고 부산까지 내려갈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알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도훈은 역용 마스크가 다시 풀리길 기다리며 외출할 채비를 시작했다. 시우의 대타를 뛰기 위한 면접 때문이었다.

최대한 외모에 신경 쓰며 단장하자, 스스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잘생긴 미남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일전에 호빠를 뛸 때는 빻은 얼굴로 도전했다면, 이번엔 처음으로 본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적당히 신분을 속이고, 아는 얼굴만 피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도훈이 준비를 모두 마쳤을 때, 구씨가 관리하는 호빠의 새끼 마담이라는 놈에게서 마침내 연락이 왔다. 자정쯤, 가게에서 면접을 보자는 내용이었다.

최대한 트렌디한 복장으로 차려입은 도훈이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임에도 번쩍이는 네온 사인을 향해 술 취한 남녀가 불나방처럼 북적거리는 번화가 한복판이었다.

'진짜 낮 밤이 뒤바뀐 곳이구나.'

[주인님이 좋아할만한 곳은 아니군요.]

'전생의 나였음 얼씬도 안 했을 만한 곳이야. 회사에서 회식해도 고깃집에 호프 정도였지, 여긴 무슨 유흥의 메카네 아주.'

가게를 찾아 들어가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던 삐끼 한 명이 도훈의 앞을 막아섰다.

"손님. 여긴 일반 단란주점이 아니고, 여성 전용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기서 면접 보라고 해서 왔는데요."

"아, 선수시구나, 어쩐지···. 잠시만요. 제가 금방 매니저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삐끼는 도훈을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보더니 감탄한 표정으로 가게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나온 삐끼가 친철하게 도훈을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오시랍니다. 복도 끝 맨 안쪽 방입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신입은 아니시죠?"

"저요?"

"네. 포스가 무슨···.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너무 칭찬이 후하시네요."

"아닙니다. 빈말은 아니고, 진짜 여기 출근하는 에이스보다 훨씬 더 잘생기셨어요. 아, 저는 웨이터 박찬홉니다. 나중에 형님 홍보많이 해드릴 테니, 뽀찌만 좀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박찬호라는 가명을 쓰는 삐끼는 도훈의 외모에 매료된 표정이었다.

호객이 성사될 때 일정 부분 인센티브를 챙기는 그들로서는, 메이드가 잘되는 인기 많은 선수와 친분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따라서 처음 보는 도훈에게도 최대한 깍듯한 태도로 예우한 것이었다.

또 가게에서 잘나가는 소위 에이스급 선수들은 이런 권력 관계를 악용, 웨이터들에게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기 일쑤였으므로 먼저 머리를 숙인 것도 있었다.

도훈 정도면, 가게 간판으로 내세워도 될만한 특급 외모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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