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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681화 (1,661/2,000)

1681. 빌드 업-16-

"아깐 운동 때문에 일찍 가야 한다면서요?"

"아, 운동? 그냥 여기서 해도 될 것 같은데?"

"누나도 헬스 해요?"

"아니. 난 다른 건데."

"뭔데요?"

"혹시 주짓수라고 알려나?"

"바닥에 누워서 하는 거요?"

"말 똑바로 해. 그래플링이라고."

"그게 그거죠."

"참나. 하긴, 구기 종목만 해본 네가 뭘 알겠니? 너 같은 건 관절기 하나만 들어가도 질질 짤걸?"

도훈이 일부러 주짓수를 무시하며 채이를 도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해로 인한 것이긴 했지만 제 발로 2층 운동 룸까지 올라온 이상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했다.

"에이, 그거 다 뻥 아니에요?"

"뻥 이라니?"

"팔 조금 꺾였다고 막 죽을 것처럼 탭치고 하는 거요. 엄살은 또 왜 그렇게 심한지."

도훈이 계속 주짓수를 폄훼하는 말을 하자 채이도 열이 받았다.

운 좋게 돈 많은 집에 태어나 배구만 해 본 풋내기가 감히 주짓수를 무시하는 것이다.

"너, 까불지 마. 그러다 진짜로 혼난다."

"언제 까불었다고요 제가?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하-. 이게 진짜 귀엽게 봐주니까 기어오르는 거 봐?"

채이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원래도 남자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강한 그녀로서는, 도훈의 시건방진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콧대를 꺾어주고 싶었다.

"누가 누굴 귀엽게 봐줬다는 건지···. 누나가 나보다 더 작거든요?"

"야!"

"왜요?"

"너 진짜 안 되겠다. 좀 맞자."

채이가 기습적으로 도훈의 등 짝을 후려쳤다. 딱히 기술을 발휘했다기보다는, 깐족거리는 도훈의 태도가 너무 얄미워 정신 좀 차리라고 손찌검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훈은 순순히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공중에서 대번에 채이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팔꿈치를 역방향을 꺾어버렸다.

"어, 어?"

팔이 바깥으로 꺾이자 채이가 골절을 피하려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도훈이 등부터 떨어지는 채이를 받치며 안전하게 눕혔다.

쿵-

순식간에 채이의 위를 차지한 도훈이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아, 한 가지 말씀 안 드렸구나. 저 합기도도 배웠어요. 파란띠긴 하지만."

"야이 씨! 너 이거 안 놔?"

도훈이 꺾은 손목을 풀지 않았기 때문에 채이는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놓으면 또 때리려고?"

"안 때린다고. 놓으라고."

"진짜로 안 때릴 거에요?"

"좋은 말로 할 때 놔라. 기술 들어가기 전에."

"기술이요?"

"그래. 네 말대로 바닥에 누우면 주짓수가 제일 무서운 무술인 거 몰라? 나 지금 누웠거든?"

"흐음. 한 번 써보세요, 그럼."

"뭐?"

"한 번 써보시라고요. 그 기술.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게."

도훈이 순순히 손목을 풀어주었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던 채이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랑 주짓수로 한판 붙어 보겠다는 거야?"

"전 주짓수 같은 거 몰라요. 그냥 누나가 하도 대단하다고 하니까 견식이나 해보려는 거지."

"어이가 없네? 야, 나 블루벨트 2그랄이야.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니? 3달이면 따는 합기도 파란띠가 아니라고."

"그게 뭔데요?"

"너 같이 기본도 없는 초보들은, 5초면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이지."

채이가 갑자기 두 발을 도훈의 팔에 끼우더니 기습 암바를 시도 했다.

'초보에게 쓰긴 그렇지만 네가 자초한 거니까.'

완벽하게 들어간 기술에 채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벌어졌다. 도훈이 교묘하게 팔을 비틀더니 순식간에 빠져나온 것이었다.

"어, 어떻게?"

"이게 뭔데요?"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뭘요? 그냥 팔 뺐는데?"

채이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기술이 완벽하게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도훈이 이상하게 팔을 비틀더니 순식간에 풀고 나온 것이다.

'흐흐, 금나수가 이럴 때 쓸모가 있군.'

[무공으로 풀어내실 줄이야.]

'사실 나한테 주짓수 기술이 통하겠냐? 아무리 기술 써봐야 힘으로 들어 버리면 그만인데.'

[그렇긴 하죠.]

도훈이 너무나 쉽게 자신의 기술을 벗겨내자 채이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야. 너! 다시 해."

"뭘요?"

"들어와 봐."

채이가 갑자기 벌러덩 바닥에 누웠다. 무하마드 알리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이노키의 그 자세였다.

"들어오라고요?"

"위에서 덮쳐 보라고."

"진짜로요?"

"내가 너 진짜 1분 안에 제압한다."

채이는 도훈에게 주짓수의 강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방금 전 기술 실패가 도리어 그녀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자신 있어요? 내가 누나보다 훨씬 무거울 텐데? 주짓수에 체급이라는 게 있지 않나?"

"웃기고 있네. 우리 도장에 너만한 체급이 없을 줄 알고? 다 이겨봤어."

"만약 누나가 1분 안에 제압 못 하면요?"

도훈이 계속 입으로 시비를 걸었다.

[너무 도발하시는 거 아닙니까? 화를 돋우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맞는데?'

[네?]

'아까 보니 도발에 엄청 취약한 타입이더라고. 계속 깝죽거리면 제 성질을 못 이기고 흥분하는 타입이랄까? 흥분하면 보통 이성을 잃기 마련이지.'

"뭐라고?"

"저 1분 안에 제압할 수 있다면서요. 못하시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하-. 이 자식 봐라? 내가 실패하면 앞으로 니가 내 오빠다."

"오빠 좋네."

"단."

"단?"

"못 버티면 넌 내가 앞으로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거야. 무슨 소린지 알겠어?"

"뭘 시킬 건데요?"

"뭐든."

바짝 독이 오른 채이의 표정을 보며 도훈이 속으로 씩 웃었다.

"이제 들어와."

"근데 좀···. 여자한테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넌 싸울 때 남녀 구분하니?"

물론 채이도 처음 주짓수를 배울 때는 이성과 서로 바닥을 뒹굴고 뒤엉키는 접촉에 대해 불편해했었다. 하지만 막상 승부에 들어가는 순간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단지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냐의 차이일 뿐.

도훈은 다른 의미로 익숙했지만, 채이가 상관없다고 하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 벌어지는 것은 성추행이 아니라, 이성 간의 겨루기일 뿐이다.

"제가 어떻게 하면 돼요? 올라타요?"

"다리 사이로 들어와."

채이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도훈이 정상위(?)를 하듯 그녀를 위에서 누르자 채이가 도훈의 목을 잡고 바짝 끌어안았다.

"마운트 자세에서 시작할 거야. 오케이?"

"으음, 그러니까 이대로 계속 버티면 된다는 거죠?"

"힘닿는 데까지 해보라고."

자세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말 그대로 도훈이 위에 올라타 채 이를 깔아뭉개는 모양이었다. 정상위 체위와 다른 점은 옷을 걸치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럼 시작한다?"

"맞다. 시간 재야죠."

"시간?"

"1분 버티기라면서요?"

도훈이 스마트워치를 향해 소리쳤다.

"로시, 1분 타이머."

"로시? 그게 뭐야?"

"제 스마트워치예요."

"아니, 왜 명령어가 그러냐고. 보통 시리나, 빅스비 부르지 않나?"

"몰라요. 좆소기업 제품이라 부르는 이름도 제멋대로라서."

[좆소라고요? 주인님도 너무 하시네요.]

'네가 이해해. 암튼 1분 후에 알람 알려줘.'

[넵.]

로시가 눈치 있게 1분 타이머를 화면에 출력했다.

도훈이 스마트워치를 채이에게 보여주었다.

"막 켰어요."

"흥, 후회하게 해줄게. 반드시"

밑에 깔려있던 채이가 시작과 동시에 바짝 힘을 주었다. 육상을 주력으로 배웠던 그녀의 순발력은 보통 여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코어의 힘은 동체급의 남자와 맞먹었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하필 상대가 도훈이라는 사실이었다.

'천근추!'

[오, 그런 무공도 쓸 줄 아십니까?]

'아니. 내 마음대로 붙인 거야. 그냥 내공을 잔뜩 끌어모아서 버텨보는 거지. 그럼 트럭이 달려와 부딪쳐도 버틸만 하거든.' 도훈이 작정하고 버티기를 시전하자, 채이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위에서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80kg도 안 되어 보이는 체중이 150kg 이상처럼 체감되었다.

'뭐, 뭐지 이 압박은?'

"어, 어쭈? 너 좀 한다?"

"말했잖아요. 나 무겁다니까?"

"계속 까불어라?"

하지만 채이는 여전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단순히 도훈이 보기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만 생각했다.

그녀가 브라운 벨트만 되었어도 도훈이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바로 깨달았겠지만, 아직은 경험이 부족했다.

채이가 다른 스킬을 쓰기 위해 팔을 빼려고 하는데, 갑자기 도훈이 채이의 어깨 밑으로 한팔을 밀어 넣더니, 반대 팔로 깍지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들어간 조이기에 채이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건?'

단순히 조이기 기술에 불과했지만, 무려 시전자가 도훈이었다.

단단히 결박된 팔은 쇠사슬보다 더 견고했다. 도훈은 일부러 몸을 꾹 누르며 채이의 커다란 유방을 체크했다.

'사이즈 좋고.'

[집중하시죠. 여유 부리실 때가 아닙니다.]

'뭐래? 설사 상대가 주짓수 블랙밸트였어도 이건 못 풀거든?'

도훈은 근거 있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상위 포지션을 내준 것은 크나큰 패착이었다.

신체 벨런스를 조절하는 능력이 탈 인간급인 도훈으로서는, 한번 위를 점한 이상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제아무리 균형을 무너뜨리려고 안간힘을 써도, 도훈이 귀신같이 대응하며 빈틈을 전혀 내주지 않았다.

채이는 정말로 바위에 눌린 것 같았다. 아니 바위가 아니라 압축프레스 기계였다.

'뭐, 뭐가 이렇게···.'

"야, 너, 가슴에 팔 좀···."

"네?"

"너 일부러 그랬지?"

"아닌데요. 아깐 신경 쓰지 말라면서요? 갑자기 신경 쓰여요?"

"이씨, 진짜!"

그 순간 채이가 몸부림을 치며 하체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도훈이 이번엔 한팔을 밑으로 내려 채이의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내리눌렀다.

"읍!"

"어딜 빠져나가시려고?"

"너, 너···."

왠지 의도한 동작 같았으나, 사실 도훈의 대응은 정공법에 가까웠다. 위아래로 꽉 눌린 채이는 어떻게든 빠져나와 보려고 했으나, 도훈이 전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이!!"

그때 1분이 다 됐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띠리리릿-띠리리릿-

"시간 끝."

"아···."

도훈이 결박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제가 이겼죠? 아니지. 이제 오빠라고 부를 테니 반말해도 되지?"

"야, 너, 너!"

채이가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뭐?"

"너 나 속였지? 솔직히 말해. 너 주짓수 어디서 배웠어?"

"뭐래. 합기도 파란띠라니까. 너도 블루밸트라면서?"

"그게 그거랑 같냐고!"

"근데 왜 약속과 다르지? 분명 지면 오빠라고 부르기로 하지 않았나?"

"뭐, 뭐?"

"아니면 윤채이 양은 원래 약속 같은 건 개나 줘버리는, 신의 없는 사람이었나?"

"아니 그게···."

"오빠 해봐."

"이이!"

굳게 말아쥔 채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한번 약속한 것을 어기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어서 해보라니까?"

"···오."

"그렇지."

"···오빠."

"아이고 갑자기 여동생이 하나 생겼네."

"근데 진짜로 주짓수 안 배웠어?"

"어? 말이 짧네?"

"···요?"

"응."

"어떻게 근데 그렇게 잘해··· 요?"

"이게 잘하는 건가? 원래 위에 있으면 훨씬 유리한 게 아니야? 난 채이 동생이 초보자라고 봐주는 줄 알았는데?"

도훈의 태연한 반응에 채이는 더더욱 놀랐다. 방금 전 보여준 압박 능력을 봐선, 주짓수 블랙 벨트가 몰래카메라로 자신을 속인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말도 안 돼.'

채이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결과에 시험해보고 싶었다.

"잠깐만 그러면···."

"왜 또?"

"이번엔 오빠가 누워볼래?"

"내가?"

"어. 한 번만 더 해보게. 방금 전 그게 우연인지 실력인지."

"또 내기하자는 거야?"

"그, 그건···."

"좋아. 이번엔 뭘 걸 건데? 아니지. 너는 나한테 이미 한번 졌으니까 오빠를 빼는 걸로 하고, 나는···. 그래, 아까 네가 걸었던 걸로 똑같이."

"뭐, 뭘?"

"내가 시키는 건 뭐든 다 들어주기. 콜?"

채이가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이건 말도 안 돼. 난 주짓수를 2년 넘게 배웠다고. 스파링도 매일 빠지지 않고 했고. 근데 내가 초보에게 진다고? 그럴 순 없지.

분명 우연일 거야. 원래 상위 포지션이 버티기가 유리하니까. 게다가 보기보다 무게도 많이 나가는 것 같고. 내가 위로 올라가면 뒤집히지 않을 승산이 있어.'

"좋아···요."

"그래. 이제 내가 누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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