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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674화 (1,654/2,000)

1674. 빌드 업-9-

샤워를 마친 도훈은 간만에 대학생다운 복장으로 깔끔하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평소처럼 구보로 뛰어갈까 하다가, 간만이라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자동차를 오랫동안 방치해 둔 상태라 방전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동은 별 탈 없이 걸렸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시간표를 확인하니 아침부터 전공 수업이었다.

도훈은 곧바로 교직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사범대 2호관으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복귀한 캠퍼스는 어느덧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복장도 많이 달라져 있었는데, 2학기 초에 자주 보이던 반팔과 반바지는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노출의 계절이 막을 내린 것은 아쉬웠지만, 가을 패션도 나름의 멋이 있었다. 여학생들의 화장도 계절에 맞게 색조가 달라졌고, 특히 머리를 길게 기른 스타일이 많이 보였다.

사범대 2호관으로 걷던 중 도훈은 유독 여대생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뭐지? 왜 자꾸 날 쳐다보는 거 같지?'

[주인님을요?]

'지나가는 여자애마다 자꾸 힐끔거리는데?'

도훈이 딱히 눈에 띄는 복장은 아니었다. 하얀 옥스퍼드 셔츠에, 진갈색의 면바지, 그리고 로퍼 스타일의 편한 단화가 전부. 물론 옷걸이가 워낙에 훌륭했기 때문에 평범하게 차려입어도 모델 포스가 물씬 풍겼지만, 이목을 끌만한 화려한 복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지나가는 경로에 서 있던 여학생들은 모두가 홀린 것처럼 시선을 주었다. 청력을 살짝 예민하게 만들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 사람 좀 봐. 엄청 잘 생겼어.

-어디 어디? 우아, 진짜잖아?

-우리 학교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완전 내 스타일이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도훈은 평소와 달라진 점을 알 수 없었다.

[그렇군요. 저는 알 것도 같습니다.]

'뭔데? 왜 저렇게 여자들이 나를 쳐다보는 거야?'

[주인님의 매력 발산 정도가 훨씬 강해졌습니다. 이정도면 움직이는 페로몬 폭탄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잉? 갑자기?'

[갑자기가 아닙니다. 원래 주인님은 다양한 버프로 인해 처음 보는 이성에게도 호감도가 무척 높은 편이니까요.]

'그건 알고 있어. 운동 선수나 직장을 다니는 여성처럼 특정 조건에 따른 호감도 버프 말하는 거잖아.'

[네, 거기다 지금은 내공이 더 강해지면서 주인님께 걸린 여러 버프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매력도가 훨씬 증가한 상태입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네. 당연한 소리지만, 같은 스킬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위력에 차이가 납니다. 내공이 늘면서 지금의 주인님에게서 나오는 패시브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죠. 최근 중수 2단계에 오른 것도 있고요.]

'호오, 등급 업에 이런 부가효과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살짝 과장해서 말하면 주인님은 지금 눈빛만으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가만, 그럼 고수까지 오르면···.'

[거의 톱급 아이돌 수준까지 매력도가 증가하지 않겠습니까? 라운딩을 뛰는 골프 선수처럼 갤러리를 우르르 몰고 다닐걸요?]

'혹시라도 랭커에 오르면 모세가 된 기분이겠군.'

[모세요?]

'벌려라. 하면 여자들이 가랑이를 홍해처럼···.'

[쯧쯧, 주인님은 '적당히'를 모르는군요.]

물론 이성의 관심을 독차지한다는 것은 결코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특히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들은 늘 부족하기 때문에 도훈은 항상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곤 했다.

교직원 주차장에서 사범대 2호관까지의 도보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 그 와중에 도훈은 처음 보는 여성에게 2번이나 대시를 받았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연락처 좀···.

-안녕하세요. 너무 잘생겨서 제가 첫눈에···.

물론 도훈은 두 번 다 깔끔하게 거절했다.

딱히 여자가 궁하지도 않았고, 제주도에서 만난 보미나 어젯밤상대한 미호에 비해 대시한 여성들의 외모가 후달렸던 탓이다. 상위 1% 안에 드는 여자와 만나다 보니 평범한 여자들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젠장. 이것도 별로 좋은 건 아니네. 하꼬들만 귀찮게 꼬이잖아?'

[하꼬가 뭡니까? 더구나 주인님의 매력에 이끌려서 다가온 분들에게요.]

'오케이. 하꼬는 취소. 근데 이거 너무 귀찮아. 내가 진짜 연예인도 아닌데, 밖을 돌아다닐 때마다 이런 식이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

[어쩌면 미호양의 영향도 있을 겁니다.]

'그게 왜?'

[아시겠지만, 미호양은 주인님의 정기를 흡수합니다. 하지만 그 정기라는 것은 주인님의 내공으로 갈무리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탁한 기운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미호양과의 관계로 인해 한결 정순해진 내공이 평소보다 훨씬 고강한 버프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죠.]

'미호에게 뜯기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장점이 있었군. 근데 앞으로 미호에게 정기를 줄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소리잖아? 미호는 주기적으로 내 정기를 받아 가야 할테니.'

[정 그러시면 당분간이라도 매혹 패시브를 비활성화 해두십시오. 매력이 함부로 발산되지 않도록요.]

'그래야겠다. 난 조용히 살고 싶다고.'

도훈은 이성에게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일부러 매력 버프들을 비활성화했다. 미션이나 업적과 관련 없는 여성들과는 엮이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더구나 PK단의 감시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목을 끄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괜히 눈에 띄게 되면 놈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매력 버프를 모두 꺼놨음에도 기본적인 도훈의 외모가 너무 훤칠했기 때문에 이성의 시선은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 아까처럼 적극적으로 여자들이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는 정도가 차이점이 랄까?

'여전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낫네. 근데 여자들이 원래 저렇게 적극적이었던가?'

[무슨 말씀이신지?]

'보통 헌팅이나 대시 같은건 남자들의 전유물이잖아. 여자들이 먼저 달려드는 것은 거의 못 봤거든.'

[일상적인 상황에선 드문 일이긴 하죠. 하지만 남자 아이돌을 추앙하는 팬덤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이성을 좋아하고 표현하는 마음은 여성들이라고 딱히 부족하진 않습니다. 그 대상이 드물 뿐.]

'와, 그럼 나를 그 정도 급으로 생각했다는 거야?'

[그래서 말했잖습니까? 버프를 모두 활성화한 주인님은 움직이는 페로몬 폭탄이라고요. 심지어 성욕이 올라온 여성들의 경우엔 주인님만 보고도 신체가 반응을 보일 겁니다.]

'신체 반응? 거기가 젖어버린다는 건가?'

[충분히 가능하죠.]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보고 꼴리는 것과 비슷하네?'

[그렇다고 봐야죠.]

'이거, 참 큰일이군. 보기만 해도 젖어버리면···.'

로시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사범대 2호관에 도착한 도훈이 전공 수업을 위해 강의실에 입장했다. 간만에 수업에 들어가니 2학년 학생들이 그를 반겼다.

"어, 도훈이 형!"

"회장님! 돌아오셨군요."

"조교 선생님에게 소식 들었어요! 아버님 건강은 어떠세요?"

도훈은 미국에 계신 아버지 병환을 핑계 댔기 때문에, 동기들이 그렇게 알고 안부를 물어왔다. 도훈은 적당한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다행히 큰 병은 아니라서 지금은 병원에서 회복중이셔."

"정말 다행이네요!"

"형, 보고 싶었어요."

곧 수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도훈은 자리에 앉아 교재를 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체육교육과 2학년 구성이 대부분 남학생이기 때문에 수업 중에는 아까처럼 귀찮은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게 또 남자한테는 안 먹히나 보구나.'

[당연하죠. 호감도 버프는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능력이니까요. 물론 동성애자의 경우에는 또 다를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 게이 말이야?'

[네. 동성애자가 보기에도 주인님은 매력이 철철 넘칠 겁니다.]

'오우 쉣. 게이는 절대 안 돼.'

[네?]

'다가오면 확 죽여버릴 거라고.'

[아니 주인님.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게이는 아니지.'

1교시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도훈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먹으려는데 동기 남학생 한 명이 갑자기 동전을 대신 넣었다.

"어? 영환아, 네가 왜 돈을···."

"형. 제가 사드릴게요. 저 동전 많거든요."

영환이라는 동기는 학과 행사에도 자주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2학년임에도 딱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쭈뼛거리며 도훈을 보고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도훈은 갑자기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어, 어 그래. 고맙다."

'이거 느낌 좀 쎄한데?'

[저도 그렇습니다.]

'설마 이 새끼···.' 도훈이 게이더를 발동시켰다.

'게이더'는 게이를 찾는 레이더라는 말도 일종의 촉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어떤 남성이 게이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스킬이었다.

물론 별도로 존재하는 스킬이라기 보다는, 도훈의 동물적 직감으로 판별해내는 것이었다.

"커피는 뭘로 뽑아 드릴까요? 블랙? 아님 밀크?"

영환이 자판기 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을 뻗는데, 손가락이 남자 치곤 무척 가늘고 예뻤다. 특히 버튼을 누르는 동작이 너무나 섬세해 약간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이 새끼 그러고 보니 화장도 한 것 같은데?'

[화장요?]

'얼굴을 보라고. 비비크림 바른 거 같지 않아? 얼굴 피부색이랑 목이랑 색이 완전 다르잖아. 얼레? 눈썹까지 다듬었네?'

"어, 어. 나는 그냥 블랙."

"네, 블랙."

영환이 커피를 내리던 중 갑자기 도훈의 팔뚝을 만졌다.

"와, 근데 형 요새도 운동 열심히 하시나 봐요. 엄청 두꺼워요."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면상에 주먹을 갈길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감정대로 주먹을 날렸다간 동기를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도훈의 힘이면 한방에 초살이 가능했다.

도훈이 팔을 뒤로 빼며 말했다.

"그냥 살찐 거야."

"살이 아닌데요? 실은 저도 요새 헬스하거든요. 형이랑 같이 운동하고 싶네요."

"···그래?"

하지만 도훈이 보기엔 영환은 전혀 운동하는 몸이 아니었다. 아니 했다고 해도 지나치게 말랐다. 군살은 없긴 한데, 일부러 근매스를 올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씨발, 이거 느낌 세게 오는데? 영환이가 설마 게이인가?'

[왜 그렇게 단정하십니까?]

'봐. 옷 입은 거.'

[나름 맵시 있게 잘 입은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더 이상하잖아. 상의는 쫙 달라붙은 쫄티에 바지는 약간 나팔바지 스타일.'

[요새 유행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사내새끼가 왜 유행에 민감하게 옷을 입냐고! 거기다 얼굴은 왜 화장을 떡칠하고.'

[그래도 헬스를 한다는 걸 봐선···.]

'아니야. 내가 알기론 게이들이 훨씬 운동에 집착해. 나름의 몸매관리랄까? 하나만 맞으면 우연인데, 여러 증거가 겹치니까 이거 촉이 오는데?'

[허어.]

'젠장. 하다 못해 게이 새끼한테까지 호감도를 발산하게 될 줄이야. 진짜 좆같구먼.'

"형, 여기 커피요."

영환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더니 일부러 도훈과 손을 부딪치며 커피를 건넸다. 다분히 의도적인 접촉에 도훈의 인내심이 뚝-끊어져 버렸다.

'이 게이새끼가!'

도훈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는데 갑자기 다른 후배들이 몰려왔다.

"형, 담배 피우러 가실래요?"

이성을 잃을뻔했던 도훈이 그말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 그러자. 영환아 커피 잘 마실게."

도훈은 가까스로 주먹을 풀고는 영환을 피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동생들의 권유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영환을 때릴 뻔 했다.

'어우, 저 게이새끼. 죽여버리려다 말았네.'

[너무 매몰차시군요. 그러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업적이나 한 번 ···.]

'닥쳐! 랭커가 못 되는 한이 있어도 게이 업적은 쳐다도 안 본다.'

[주인님은 가끔 너무 완고하신 것 같습니다. 어제도 미호양이랑하셔놓고요.]

'미호가 뭘?'

[솔직히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수간 업적도 덕분에 달성하셨고요.]

'적어도 암컷이긴 하지. 그리고 사람에 가깝잖아. 꼬리랑 귀만 특이할 뿐 몸은 완전히 사람이니까.'

[흐음. 저는 주인님이 빨리 업적을 달성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래야겠어. 게이 업적 하라는 말이 안나오게 다른 걸로 빨리.'

담배를 피우러 나온 동생들은 도훈을 잘 따르는 후배들이었다.

학교 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여하고, 도훈이 시키는 일이면 앞장서서 나섰다. 그를 추종하는 1학년 후배들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충성심이 있었다.

"형, 혹시 그 소식 들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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