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3. 제주도 푸른 밤-83-
보미는 몹시 아쉬웠지만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이라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인내심이 부족한 편이었다면 반평생을 다른 얼굴로 변장하고 사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알겠어. 솔직히 붙잡는 건 내 욕심같으니까. 대신 주말에 시간 나면 내가 서울로 최대한 올라가도록 해볼게.”
[주말마다 보러 온다는데요?]
‘그건 절대로 막아야지.’
“음, 그건 좀 신중해야 할 문제 같아.”
“왜?”
“말했지만 PK단 놈들이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내 주변에서 감시를 강화하는 추세야. 나야 경보기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놈들을 피할 수 있겠지만 혹시나 보미 네가 찾아왔다가 발각이라도 되면 둘 다 위험해질 수도 있어.”
“아···. 내가 랭커만 빨리 됐어도···.”
“그래. 차라리 그게 좋겠다.”
“응?”
“보미 넌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잖아. 겨울 방학 전까지 얼른 랭커되면 되지. 그럼 훨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테니까.”
보미가 풀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리야. 당장 올 겨울까진.”
“왜?”
“업적 하나가 장기 프로젝트거든.”
“뭔데? 말해줄 수 있어?”
“절도범 10명 체포하기. 3년 내도록 겨우 7명 채웠는데, 남은 기간동안 3명은 불가능해.”
“아···.”
도훈은 그제야 보미가 받는 미션이나 업적의 성격을 깨달았다.
확실히 경찰이 아니고선 이루지 못하는 업적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을 알고 나자 도훈은 오히려 더 안심이 되었다.
‘보미가 경찰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상 제주도에 발이 묶일 테니 그 부분은 안심이군.’
[예상대로 주인님 졸업 시점까지는 마주치기 힘들지도 모르겠는데요?]
‘대신 방학 때는 가끔 얼굴 비춰야지. 아무리 호감도가 100이라도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 놔야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아쉬운 사람은 내 쪽이니까.’
도훈이 보미의 손을 꼭 잡고 물었다.
“그건 어쩔 수 없겠구나. 근데 떨어져 있어도 괜찮겠어?”
“응?”
“아니, 내가 괜히 맛을 들였나 싶어서. 몰랐으면 참을만 할텐데 앞으론 쉽지 않을 테니까.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중이 고기맛을 보면 절간에 빈대새끼 하나 남아나지 않는다고.”
“조금 걱정스럽긴 한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 만나거나 그러진 않을 거야. 물론 도훈이 너도 그럴거지?”
도훈이 속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서로 아직 말은 안 했지만 보미는 이미 도훈을 남자친구, 아니 그보다 훨씬 깊은 사이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남편을 극진히 모시는 새색시처럼 굴었으니까. 도훈이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당연하지. 나 왕따라니까?”
“흠···.”
보미가 도훈을 쳐다보며 말했다.
“실은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뭔데?”
섹스가 끝나고 나서인지 보미도 허심탄회하게 속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처음 잔 날 네가 그랬잖아. 넌 여자랑 섹스를 통해 내공이란 걸 쌓는다고. 그땐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생각해 보니까···.”
“······.”
“뭐, 이제까지 다른 여자 만난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
나를 알지도 못했고, 너에겐 일종의 수련 과정이었을 테니.”
“응.”
“근데, 서울 올라가서 또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보미는 상상하는 것도 싫은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도훈이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보미가 울먹이며 말했다.
“흑흑, 미안해.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 멀리 떨어져 있다 그대로 잊혀져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나보다 어리고 예쁜 여자 만나서 날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고.”
“걱정 마. 그럴 일 없어.”
“정말이야?”
“당연하지. 내가 널 왜 버리겠어? 내가 너한테 접근한 이유에 대해선 처음부터 사실대로 밝혔잖아. PK단의 위협에서 힘을 뭉쳐 이겨내자고.”
“응. 도훈이 넌 내가 지켜줄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도 그렇게 약하진 않아. 나도 널 지켜줄게.”
“고마워.”
“그리고 내공 관련된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
“색공으로 내공을 끌어 올리는 방법엔 한계가 있어. 그래서 요새 천상크래프트 커스텀 게임 모드를 통해 무공심법을 구하는 중이야.”
“무공심법이라고?”
도훈은 짤막하게 자신의 게임을 설명했다.
“아···. 그런 것도 있었구나. 난 예전에 판타지 배경의 게임만 접속해 봐서 잘 몰랐어.”
“판타지?”
“응. 난 마법사라서 마법을 활용할 수 있는 모드가 필요했거든.”
“암튼, 그걸 게임 클리어해서 구음진경이라는 무공심법만 얻어내면 색공은 더 이상 안 써도 돼. 그럼 다른 여자를 굳이 만날 필요도 없지.”
“알았어. 도훈이 너만 믿을게.”
호감도 100을 달성한 보미는 오빠 믿지 립밤이 없어도 도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한 치의 의심도 찾아볼 수 없는 종교적 맹신에 가까운 신뢰였다. 도훈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결과적으로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보미가 도훈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대신 누가 널 먼저 유혹하려 들면 나한테 꼭 알려줘.”
“?”
“···내 남자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
서로 껴안고 있어 감정을 들키지 않았지만, 도훈의 예상대로 올것이 왔다는 듯 기가 질린 표정이었다.
[역시나 주인님의 예상대로 보미양은 소유욕이 강하군요,]
‘보미가 특이한 게 아니라 원래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나도 그래서 어지간하면 양다리인 거 오픈 안 하잖아.’
[양다리가 아니라 문어다리 아닙니까?]
‘문어다리건 오징어 다리건 어쨌든 말이야. 그나마 오픈했던 여자애들도 애초부터 쿨한 성격이거나 정신조작으로 살짝 세뇌를 시켜놓은 경우 뿐이고.’
[보미양이 세뇌가 되면 참 좋겠지만···]
‘근데 플레이어 사이에 어떤 스킬은 통하고 어떤 스킬은 안통하는데 그건 무슨 기준이야?’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클래스 차이도 있고, 같은 클래스라도 플레이어 등급별로 상이해서 정확히 뭐가 된다 안된다 정의내리기 어렵거든요. 확실한 것은 별도의 방법 없이는 상대의 정보창을 읽을 수 없다는 것과, 상당수의 정신 조작계 마법들이 차단된다는 정도죠.]
‘흐음. 혹시 재능 약탈자도 그래서 안 먹히는 건가?’
[재능 약탈자는 왜요?]
‘아니, 난 가능하면 보미의 스킬 하나를 배우고 싶었거든. 그 질럿처럼 변하는 손칼이라든지.’
[주인님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재능약탈자는 상대의 스킬을 빼앗는 패시브가 아닙니다.]
‘그럼?’
[정확히 말씀드리면 상대가 가진 재능 중 특별히 운동에 관련된 재능만 훔쳐오는 것이죠. 보미 양은 마법사이기 때문에 훔쳐 올운동 재능이 없으니 스틸이 안 된 거고요.]
‘아하, 그렇구나. 근데 난 그럼 마법을 배울 방법이 전혀 없는 건가?’
[마법사가 차크라를 다루는 방식은 주인님과는 전혀 다릅니다.
물론 1회용 스크롤로 임시로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클래스 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마법은 무리라고 봐야죠.]
‘그렇구나. 괜히 기대했네.’
“알았어. 일단 자자. 보미 너 내일도 출근해야 하잖아.”
“자고 싶지가 않아.”
“왜?”
“네가 곧 떠난다고 하니까 기분이 우울해.”
“걱정마. 내일 당장 가는 것도 아니야. 내가 심어놓은 스파이 쪽에서 연락이 와야 움직일 수 있거든.”
“그래도 출근하면 8시간, 아니 거의 10시간은 못 보는 거잖아.”
“내가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응.”
“그럼 일은 어떻게 하고?”
“같이 순찰차 타고 다니면 되지.”
“네 파트너 있지 않아? 원래 경찰들은 밖에 나갈 때 2인 1조로 움직인다던데?”
보미는 도훈과 함께 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흥분하면서 말했다.
“곽순경은 내근으로 돌리고 잠깐 혼자 나갔다 오면 돼.”
“그래도 돼?”
“필요시엔 혼자 수사를 다닐 수도 있으니까. 내가 출근하자마자 핑계대고 외출한다고 해볼게.”
“흐음···. 나 때문에 무리하는 거 아니야?”
“무리하는 거 맞아.”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며칠 무리해도 상관없어. 그간 성실히 살아왔으니까 며칠 농땡이 피운다고 나한테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거든.”
보미는 진심인 것 같았다.
플레이어의 사명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그녀가, 이제는 도훈과 1분1초라도 떨어지기 싫어서, 경찰일 마저 뒷전으로 미루는 것이었다.
[휴, 호감도가 100이란 정말 엄청나군요. 플레이어의 사명까지 뒤흔들 정도라니. 보미양이 주인님에게 완전히 빠진 것 같네요.]
‘내가 봐도 그렇네. 괜히 이러면 더 미안해지는데.’
[나약한 소리 마십시오. 주인님의 근본은 기둥서방입니다. 능력 있는 다른 여자에게 빌붙어 쪽쪽 뽑아 먹는 플레이어란 뜻이 죠.]
‘내가 기생충이란 소리처럼 들린다?’
[저는 그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 소리잖아!’
“같이 갈 거지?”
“···응. 그래.”
“다음주에 떠나더라도, 떠날 때까진 나랑 꼭 붙어 있어 줘야 해?”
“알았어. 걱정마.”
도훈은 자신에게 푹 빠진 보미를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한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맞다. 근데 같이 다니다가 혹시 김형사님하고 마주치면 어떻게 하지?”
“김형사님?”
“어. 내 얼굴 알아볼지도 모르는데? 푸드 트럭에서도 한 번 붙고, 기자로 접근한 적도 있어서.”
“그럼 너도 나처럼 변장하고 다닐래?”
“상관은 없지. 근데 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응, 얼마든지.”
“보미 너 김형사님한테 정말 관심 없었어? 남자로서.”
보미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친하게 지내던 분이었어. 다른 경찰들보다는 좀 더.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 나한테는 도훈이 네가 있으니까.”
“정말?”
“내 마음을 꺼내서 보여줘야 믿을 거야?”
“아니야. 믿어.”
“응. 나한테는 이제 도훈이 너뿐이야.”
보미가 다시 도훈을 껴안으며 키스했다. 허벅지가 위로 올라오며 도훈의 잦이를 쓰다듬었다. 처음엔 우연히 닿은 것이었지만, 다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일부러 도훈의 잦이를 자극해 왔다. 그 새 성욕이 솟구친 것이었다.
‘어휴, 얘는 정말 지칠 줄 모르는 활화산같구나.’
[설마하니 주인님이 버거워할 여자가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강하네요, 보미양은]
‘성욕이 강한 편도 맞는데, 아마 내가 곧 떠난다니까 더 무리하는 것 같기도 해.’
[무리라뇨?]
‘못 보는 기간을 몰아쳐서 미리 채우겠다는 심산이랄까.’
[헐.]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눌러주는 수밖에.’
도훈은 보미를 똑바로 눕히더니 위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듯 팔을 쭉 뻗은 자세에서 고정시키며 물었다.
“보미야.”
“응?”
“나랑 또 하고 싶어?”
“응.”
“나랑 하는 게 그렇게 좋아?”
“좋아. 너무 좋아서 평생 이렇게 붙어 있으면 좋겠어.”
“큰일이네. 나한테 중독된 것 같아서.”
“왜? 내가 너무 집착하는 거 같아?”
“모든 중독엔 금단 증세가 따르거든, 난 네가 나 없이 잘 지낼 수 있을지 그게 걱정돼.”
“······.”
“많이 힘들까?”
“내가 여자를 많이 만난 건 아니지만, 너보단 많잖아.”
“응.”
“섹스를 싫어하는 여자는 아직 한 번도 못 봤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고. 강도의 차이랄까?”
“난 어떤데?”
“넌 앞으로 남자 없이 자기 힘들거야.”
“아···.”
“잦이 맛을 봐버렸잖아. 이거 없이 허전해서 힘들 걸?”
도훈이 잦이를 바짝 세우더니 보미의 배 위에다 문질렀다. 두껍고 단단한 잦이가 배꼽 부근에서 비벼지자, 이에 자극받은 보미의 봊이가 금세 촉촉해졌다.
“아···. 어떡하지 그럼? 나 그냥 경찰 그만두고 너 따라갈까?”
“그건 안되지. 랭커가 코 앞인데.”
“힝, 나 그럼 너무 힘들면 어떻게 해?”
“그래서 내가 한 번 생각해 봤어.”
“뭘?”
“혹시 자위할 때 기구 써본 적 있어?”
“기, 기구?”
보미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무리 그와 3일 밤낮을 물고 빨았다고 해도, 치부에 가까운 얘기를 솔직하게 꺼내기엔 쑥스러웠다.
“음, 그냥···.”
“아니 뭐 전문적인 도구가 아니더라도.”
“립 글로즈?”
“립 스틱 같은거?”
“응···. 끝이 뭉툭하고 부담없는 크기라.”
[그건 너무 작은 거 아닙니까?]
‘처녀라 그랬겠지. 실제로 경험 없는 애들은 칫솔이나 볼펜을 넣기도 하거든.’
[그게 느낌이 온다고요? 젓가락이랑 차이도 없겠는데요.]
‘그냥 거기에 뭔갈 넣는 다는데서 자극을 느끼는 거지. 그에 비하면 립글로즈는 여자들 손가락 보단 두꺼우니까.’
“잘 됐네. 실은 내가 선물 하나 주고 가려고.”
“선물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