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2. 제주도 푸른 밤-82-
도훈은 알몸으로 욕실로 난입하려는 보미를 상상하고는 급히 샤워기 물을 잠갔다.
“아, 아니야! 방금 막 끝냈어!”
“그래? 식사 다됐어. 준비되면 나와. 반바지는 밖에 걸어 놓고 갈게.”
“어, 고마워.”
도훈이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매 순간이 위기구나.’
[어차피 해결책도 확보했으니 편히 즐기시죠. 이제 겁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그런데···. 쟤 좀 심한 거 아니냐? 방금도 나 씻고 있는데 들어오려고 했잖아. 도대체 만족이란 걸 모르네.’
[반대로 주인님이 보미양 입장이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내가 뭘?’
[28년간 섹스의 즐거움을 전혀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자취방에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성이 알몸으로 돌아다니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건 못 참지.’
[보미 양이 지금 딱 그 상태가 아닐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샤워를 마친 도훈이 문고리에 걸린 반바지를 입고 주방으로향했다. 요리를 마친 보미는 식탁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들어.”
보미가 식탁 위에 턱을 받치더니 도훈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도훈은 시선을 쳐다보기 부담스러워 보미가 차린 저녁상으로 눈길을 돌렸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는 보미가 직접 한 음식 같았고 밑반찬의 경우엔 마트에서 소분해 파는 것을 사 온 느낌이었다. 밥은 햇반이었는데, 집에 따로 전기밥솥이 없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린 걸 그대로 꺼내 놓았다.
겨우 구색만 맞춘 상차림이었지만, 그나마도 이게 보미로선 최선을 다한 결과일 것이다.
“배달시켜 먹어도 되는데 뭘 이렇게까지···.”
도훈은 보미의 성의에 감사를 표하며 숟가락으로 찌개 국물을 한 입 떠먹어 보았다.
‘윽!’
[왜 그러십니까?]
‘날 독살하려는 수작인가!’
[네?]
‘존나 맛없어! 제길, 독극물인 줄.’
[······.]
겉보기는 그럴싸했으나, 소금국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매우 짰다. 하지만 도훈은 내색을 못 한 채 마음에 없는 말을 꺼냈다.
“이야, 괜찮은데?”
“정말? 레시피보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 다행이다!”
‘레시피에 소금을 통째로 넣으라고 쓰여있을 리가 없잖아!’
[고정하십시오. 태어나서 요리를 한 번도 안 해본 것 같은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하겠습니까?]
‘그래도 인간적으로 남을 대접할 땐 간은 보고 먹이는 게 예의 아니냐?’
[그, 그렇긴 하죠.]
소금 찌개를 겨우 넘어선 도훈은 이번엔 계란말이로 젓가락을 옮겼다.
‘설마 이것도 소금 덩어리는 아니겠지?’
다행히 냄새에선 별다른 징후가 느껴지지 않았다. 입에 넣고 먹어보니 의외로 맛은 괜찮았다. 그러나 그때.
와그작-.
도훈의 입안에서 뭔가 이물질이 씹히는 느낌이 들었다.
‘으윽!’
[왜 또 그러십니까?]
‘계란을 껍질째 넣은 거야 뭐야?’
[아아···. 실수로 흘렸나 보네요.]
‘와,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자신이 먹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보미를 실망하게 할 순 없었다. 바른말을 했다간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훈은 껍질이 들어간 계란말이를 억지로 삼켰다.
“맛은 어때? 괜찮아?”
연예인처럼 예쁜 얼굴.
모델 뺨치는 몸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강력한 마법사인 보미에게도 단점이 있었다.
‘비싼 재료 사 와서 요리가 아닌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어놨어!’
[주, 주인님 고정을···.]
도훈이 아무거나 잘 먹는 막 입이긴 했어도, 그렇다고 사람이 못 먹을 음식마저 다 먹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생각하며 힘들게 요리를 했을 보미를 생각하자 차마 맛없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도훈이 비굴하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굿!”
“와아! 다행이다. 앞으로 끼니마다 직접 요리해줄게”
‘진정 날 죽일 셈인가?’
“아, 아니야. 요리는 나도 잘하거든 다음에 내가 할게.”
“응? 도훈이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도훈은 교묘하게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피하며 다른 반찬으로 밥을 열심히 떠먹으며 말했다.
“그럼, 자취가 몇 년 찬데.”
“정말? 지금 서울에서 혼자 사는 거야?”
“그런 셈이지.”
그 말을 듣던 보미가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 살면···. 막 집에 친구들도 놀러 오고 그러겠네?”
“친구들?”
“여사친들 불러서 같이 술도 마시고.”
도훈은 보미의 우려를 깨닫고는 급히 말을 돌렸다.
“아, 아니야. 나 친구 없어. 왕따야.”
“거짓말이잖아.”
“진짜로. 너도 알잖아. 우리 같은 선수들은 일반인들하고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는 거.”
“정말이야?”
“내가 왜 혼자 살겠어? 다른 사람들이랑 안 마주치려고 그런 거지. 그래서 친구도 거의 없어.”
“···그래?”
“응.”
“그럼 다행이고.”
도훈이 속으로 겨우 한숨 돌렸다. 보미는 더는 추궁하진 않았다.
“보미 넌 근데 식사 안 해?”
“오늘 저녁은 그냥 샐러드 먹으려고. 밀키트로 팔길래 사서 냉장고에 넣어놨어.”
“저녁으로 샐러드만?”
“일종의 식단관리랄까?”
보미는 도훈을 만나고부터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제껏 남에게 알몸을 보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별도로 관리를 하지 않았지만, 막상 자신의 몸을 보니 경찰대 다니던 시절보다 살이 붙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본인의 착각이었고, 보미는 여전히 흠잡을 데 없는 몸매였다.
‘와, 나한텐 이딴걸 식사라고 차려주고 자긴 마트에서 파는 샐러드를 먹겠다니···.’
[모르는 척 넘어가 주시죠. 보미 양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하아-. 역시 세상에 완벽한 여자는 없는 거구나. 다른 건 다 특급인데 요리는 낙제점이야.’
도훈이 계속 사 온 반찬만 골라 먹자 보미가 유심히 지켜보다 물었다.
“도훈이 넌 김치찌개는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아, 아니. 좋아해.”
도훈은 다시 눈 딱 감고 찌개를 먹었다. 어찌나 짠지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입이 얼얼할 정도였다.
‘도저히 안 되겠는데. 계속 먹을 자신이 없어.’
[이럴 때 쓸 아이템이 있잖습니까?]
‘아이템이라니?’
[역시나 까먹으셨군요. 디스플레이에 띄워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도훈의 스마트 워치로 아이템 정보가 전송되었다.
-식탐의 젓가락(아이템), 해당 젓가락으로 먹는 어떤 음식도 미슐랭 쓰리 스타급 음식으로 만들어 줍니다. 젓가락을 잡는 순간, 그곳은 이미 저세상 맛집입니다.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도훈은 언젠가 미션을 해결하고 받았던 아이템을 떠올렸다.
‘맞다! 이게 있었지?’
[모처럼 써먹을 기횝니다. 이걸 활용하시면 누구보다 맛있게 보미양의 음식물 쓰···, 아니 요리를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이걸 어떻게 꺼내? 보미가 바보도 아니고 젓가락 바꾸면 바로 달라진 걸 눈치챌 거 아니야?’
[당연하지만 외형은 얼마든지 변경 가능합니다. 지금 있는 젓가락과 똑같은 형태로 바꾼 다음 인벤토리를 통해 몰래 바꿔치기하시면 되죠.]
‘로시 너 오늘따라 왜 이리 똑똑하냐?’
[제가 괜히 상위버전 인공지능이겠습니까? 엣헴.]
도훈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우연히 젓가락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척했다.
“아이고, 젓가락이 떨어졌네.”
허리를 숙여 테이블 밑으로 내려간 도훈은 바닥에 떨어진 젓가락과 아이템용 젓가락을 인벤토리를 통해 바꿔치기했다. 교묘한 솜씨였기 때문에 보미가 절대 눈치 못 챌 것을 확신했다.
그때,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보미가 갑자기 가랑이를 좌우로 확 벌리는 게 아닌가?
식탁 밑에 있던 도훈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다리를 벌린 보미가 치마를 위로 뒤집고 있었다. 보미는 노팬티였다.
‘미친 보지!’
“허, 헉!”
놀란 도훈이 고개를 쳐들다 식탁에 머리를 박았다.
쿵-
“어머, 도훈아 괜찮아?”
보미가 놀라 소리쳤다.
‘밥 먹다 말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보미양이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주인님을 유혹하는군요.]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왜 노팬티로···.’
[주인님도 지금 노팬티입니다만?]
다시 식탁 위로 올라온 도훈이 보미를 향해 말했다.
“깜짝 놀랐네.”
“미안. 난 그냥 장난치려고 한 건데.”
“근데 속옷은 왜···.”
“나중에 후식 필요할까 봐.”
“후식이라니?”
보미가 야한 표정으로 윗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나야. 오늘 후식.”
“······.”
‘와, 이쯤 되면 진짜 막 가자는 거 아니냐?’
[아무래도 발정이 제대로 난 것 같은데요.]
‘어제 새벽에 두 번, 오늘 아침에 모닝섹 한 번 했으면 됐지. 저녁 해 먹이고 또···. 진짜 온종일 할 생각인가?’
[차라리 주인님께는 잘된 일 아닙니까? 이 기회에 얼른 호감도 100 찍어 버리시죠?]
도훈도 로시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어. 아주 그냥 질릴 때까지 따먹어 버려야지. 다신 요망한 행동 못 하게.’
도훈이 겨우 꺼낸 젓가락 아이템을 식탁 위에 내려놓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미가 영문을 몰라 쳐다보자 도훈이 말했다.
“후식부터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돼?”
* * *
도훈은 주말 내내 보미를 따먹었다.
다음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부담도 없었다.
두 사람이 주말 동안 한 일을 요약한다면, 밥 먹다 말고 섹스하고, 화장실 갔다 와서 섹스하고, 거실에서 TV보다 섹스하고, 세탁기에 빨래 돌리다 섹스하고 그런 식으로 물이 마를 때까지 짐승처럼 짝짓기를 반복하는 일이었다.
일요일 저녁쯤 되자 어마어마한 정력을 자랑하던 도훈조차도 좆 끝이 찌릿찌릿 아파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대인 보미도 상태는 마찬가지였는데, 봊두덩이 부근이 퉁퉁 부어올랐고 나중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 포경수술을 한 소년처럼 어기적거리며 다녀야 했다.
한마디로 뿌리가 뽑힐 만큼 박아댄 것이다.
보미의 입장에선 거기가 닳을 정도로 박혔고.
“하아···.”
또 한 번 샤워하다 말고 섹스를 끝마친 두 사람은, 몸에 물기만 대충 닦고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3일 내내 섹스에 미친 사람처럼 달린 보미는 도훈에게 꼭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하아, 섹스가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어.”
“이제라도 알았으면 된 거지.”
“도훈이 넌 정말 최고야.”
보미가 도훈에게 안겨 휴식을 취하는데 도훈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반복되는 섹스로 인해 호감도는 마침 100을 찍은 상태. 지금이 바로 말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저기···. 보미야.”
“응?”
“어쩌면 다음 주중에는 서울에 다시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아.”
“벌써?”
보미가 놀라서 되물었다.
“실은 나에게 경고를 해준 상대가 일주일 정도만 대피해 있으면 될 거라고 했거든. 다음 주가 딱 일주일째고.”
“그걸 어떻게 믿어? 함정이면? 상대도 PK 단이랑 연관이 되어 있다면서?”
도훈은 이미 미호에 대해 각색한 내용을 보미에게 알려준 상태였다. 물론 상대가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라는 사실은 굳이 밝히지 않았지만.
“함정이었으면 진즉 이쪽으로 나를 찾으러 왔겠지. 그리고 나 랑은 특별한 계약관계로 묶여서 절대로 배신 못 해.”
“흐음···. 그럼 진짜로 돌아가야 해?”
“응. 학교를 일주일 넘게 빠질 순 없잖아. 네가 경찰이 된 것처럼 나는 교사가 꼭 되어야 하거든. 일종의 숙명이랄까?”
“아···.”
보미는 본인이 경찰 플레이어였기 때문에 도훈도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도훈은 주말 동안 자신이 섹서 클래스임을 밝힐지 말지 무수한 고민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진실을 밝히는 쪽이 보미가 더 충격이 클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역시 말하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속은 것에 화내지 않을까요?]
‘들킬 때 들키더라도 굳이 먼저 꺼낼 필욘 없을 것 같아. 보미가 차라리 처녀가 아니고, 원나잇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부류면 모르지만 지금 하는 거 봐서는 절대 내 행동을 이해 못 할 테니까.’
[주인님도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플레이어로서 ···.]
‘아니야.’
[아닙니까?]
‘응. 아니야.’
[역시 변태력이···.]
‘암튼, 괜히 내가 여러 명이랑 떡 치는 걸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마지못해 이해해준다고 해도 상처가 더 크게 남을 테니까.’
[크흠, 주인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셔야죠. 어쨌든 주인님 말마따나 들키지만 않으면 벌어지지 않은 것과 똑같으니까요.]
“섭섭하다···. 난 좀 더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미안. 대신 겨울 방학 때 다시 올게.”
“겨울 방학이 언젠데?”
“대학생들은 기말고사 끝나면 바로 방학이잖아. 늦어도 12월초? 아니 11월 말이면 대충 끝날 거야. 리포트로 대체하는 과목도 있으니.”
“11월 말이면 한 달 좀 넘게 남았구나.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