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6. 제주도 푸른 밤-76-
도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대답했다.
“말을 안 꺼낸다고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치만···.”
“너무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마. 그냥 서로 좋아서 한 거야. 거 창한 의미부여도 필요 없고, 그 일 때문에 어색해질 필요도 없다고 봐, 난.”
“······.”
“일단 밥부터 먹자. 해장국 어때?”
“···콩나물 해장국으로.”
“그래.”
도훈과 보미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콩나물 해장국 가게로 향했다.
“나도 같은 거 시켜줘.”
“왜?”
“밖에서 담배 한 대만 피우다 들어갈게. 급하게 짐 싸느라 아침에 못 피웠거든.”
“알았어.”
도훈이 굳이 혼자 남아 담배를 피우기로 한 것은 아까 로시와 정리하기로 했던 업적 때문이었다.
‘로시, 업적 창 띄워 줘.’
[네.]
로시가 디스플레이에 업적을 띄웠다. 이제껏 완료한 업적과, 미완료 된 업적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어? 뭐야? 이것 밖에 안 된다고?’
도훈이 업적 창 상단에 표기된 요약 수치를 보고 놀라 물었다.
[32/108] 총 108개의 업적 중 32개가 완료되었다는 의미였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여름 방학 시작할 시점에 이미 25개 완료였잖아.’
[그런데요?]
‘근데 10월 넘어간 지금 겨우 32개라고? 3달간 고작 7개 더 완료했단 소리야?’ 업적 달성 속도가 초반에 비해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전역 이후 1학기 동안 달성했던 숫자에 비해, 이후 3개월간 달성 속도가 너무나 아쉬웠다.
‘분명 여름 방학 때 죽어라 업적만 했던 것 같은데?’
[시도야 많이 하셨죠. 마무리가 안 됐을 뿐.]
‘그게 무슨 소리야?’
[기억 안 나십니까? 주인님이 달성 직전에 날려버린 업적들 말입니다.]
‘그랬나? 그럼 최근 3달간 달성한 업적이 뭐였는데?’
[디스플레이에 정리해 띄워 드리겠습니다.]
*특수직종이 더 맛있어
*남친 잘 때 뽕도 따고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전망 좋은 집
*에브리바디 구멍동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플레이어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도훈은 업적이 달성된 날짜를 일일이 체크했다.
‘그래 맞아. 저건 다 성공했던 거잖아? 그럼 실패한 건 뭔데?’
[정확히 말씀드리면 실패한 건 아니고 아직 미해결된 업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백마 흑마···.]
‘맞다, 흑마!’
[까먹으셨죠?]
‘그때 제니퍼랑 다시 보기로 했는데!’
[축제 때 갑자기 미호양이 접근하는 바람에 스케줄이 꼬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여지는 남아있으니 일단 보류 중으로 해놓죠. 또 인종의 도가니탕 업적의 경우엔 ‘라틴계’여성이 여전히 미완료 상태고요. 위 두 개는 시도는 하셨지만 마무리가 안 된 업적들입니다.]
‘그럼 포기한 업적은 뭐야?’
[싸이판 여행 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업적을 포기하셨죠. 탁란은 양심에 찔린다면서.]
‘아···. 그랬지. 그래도 남의 마누라 임신 시키는 건 좀 그렇잖아. 아직 내 애도 못 가졌는데.’
[그대 이름 바람바람바람 역시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는데, 다 그만두셨고요. 유부녀 호감도 100 만들기 싫다고요.]
‘흐음···. 그건 좀.’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기회가 있었지만, 주인님이 주저하시거나, 중간에 멈춰 버린 업적들이죠. 만약 모든 업적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하셨다면 달성업적의 숫자가 12개는 족히 넘었을 겁니다. 그럼 전반기와 비슷한 페이스였을 테고요.]
도훈이 반성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네. 내가 너무 안일했다.’
[그렇다고 자책은 마십시오. 지금도 충분히 빠르니까요. 주인님은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30개 넘는 업적을 달성하신 쾌속의 플레이어십니다. 성장이 제법 빠른 편이라는 보미 양이 랭커 직전까지 10년이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가? 뭐 졸업할 때까진 가능하겠지. 이제 겨우 2학년이니까.’
[충분하죠. 그리고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뭔데?’
[새벽에 윤보미양 공략에 성공하시면서 마침내 중수 2단계를 돌파하셨습니다.]
‘오, 정말?’
[일전에 한번 설명드렸지만, 중수 등급에선 8개 단위로 중간 승급이 됩니다. 현재 2단계이니, 앞으로 8개 업적만 더 달성하시면 중수 3단계, 이후 고수 등급에서 또 3단계를 넘어서면 마침내 고대하시던 랭커의 반열에 오르시는 거죠.]
‘랭커가 72개 업적 달성 이후지?’
[맞습니다. 중수 1단계부터 3단계, 고수 1단계부터 3단계를 거치고 난 후 랭커 초입에 들어섭니다.]
‘그럼 보미는 랭커를 목전에 뒀다고 했으니 고수 3단계에 근접해 있다는 소릴까?’
[아마도 그럴 것으로 추정됩니다.]
‘업적 70개 정도 완성했다고 보면 대충 내 2배네.’
[네. 보미양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10년간 달성한 업적 수가 70여개라고 본다면 주인님이 1년도 안 되는 사이 32개를 달성한 건 솔직히 경이적인 속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기에 충분합니다.]
로시의 위로를 듣고 나자 도훈도 조금은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여타 사정으로 불발된 업적을 참작하면 결코 느려졌다곤 볼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충분히 빠른 편이었다.
‘그나저나 플레이어 공략 보상은 뭐였지?’
[윤보미양 공략 보상 말씀이시죠? 디스플레이에 띄워드리겠습니다.]
78. 플레이어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이성의 플레이어를 공략시 달성)
-당신은 이제 동종업계까지 탐하시는군요.
-업적보상 : 플레이어 탐지(패시브 스킬)-또 다른 플레이어와 조우 시 상대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마 정보창이 열린다는 소리야?’
[그렇습니다.]
‘근데 공략 다 끝난 마당에 이게 무슨 소용인데? 공략 때는 막상 써먹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플레이어끼리는 서로 정보창을 막아놓은 이유가 꼭 공략 때문만은 아니니까요. 솔직히 공략은 주인님한테나 의미 있는 거고요.]
‘그럼?’
[상대의 능력을 훔쳐본다는 것은 어떤 플레이어를 만나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해당 스킬은 지금보다는 차후 다른 랭커들을 만났을 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땐 플레이어끼리도 자연스럽게 교류가 가능해지니까요. 어쩌면 주인님은 다른 플레이어의 능력을 훔쳐볼 수 있는 유일한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겠죠.]
‘오, 그런 의미가?’
[그리고 중수 2단계 달성 특전으로 랜덤 아이템이 하나 주어집니다.]
‘랜덤 아이템?’
[네. 각 승급 단계 달성마다 스킬이나 아이템 특전이 나오는데, 이번 경우엔 아이템입니다.]
‘설마 아무거나 나오는 건가? 랜덤 보상이면.’
[완전 랜덤까진 아닙니다. 달성된 티어에 맞추어 아이템 등급이 결정되니까요. 중수 단계보다는 고수 단계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무조건 좋다는 뜻이죠. 지금 뽑으시겠습니까?]
‘간만에 가챠 한 번 해보지 뭐.’
디스플레이 화면이 바뀌면서 아이템 상자가 떠올랐다. 3개 중에 하나의 상자를 고르게 되어 있는데, 상자의 색깔이 예전과는 살짝 달라져 있었다.
‘그땐 황금색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좀 다르네?’
[네. 골드 위의 플래티넘 등급 아이템이거든요. 아이템의 평균등급이 더 높다는 뜻입니다.]
‘그럼 기대해도 된다는 뜻인가?’
도훈이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아이템 상자를 골랐다. 잠시 후 상자가 열리는 조잡한 도트 그래픽이 연출되더니 아이템 설명이 디스플레이에 나타났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위치추적기 (스마트 워치 내장)
지정한 대상을 다시 한번 더 만날 때까지 스마트 워치 상으로 정밀한 위치추적 가능.
-최대 5명 동시 관리.
-추적 대상과 재회 시 ‘극적 상봉’ 패시브로 호감도 +10 상승.
위치추적 기능 자동 해제.
도훈은 아이템 설명을 보고 살짝 실망했다. 위치추적 기능은 어장관리 어플에서도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이미 있는 기능 아니야?’
[꼭 그렇진 않습니다. 어장관리는 위치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사실상 서로 충돌하는 파트너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활용되는 기능이니까요.]
‘그럼 이건?’
[어장에 포함되지 않는 대상도 추적이 가능합니다.]
‘그렇구나.’
[둘째, 정확도가 미터 단위입니다. 상대가 어디에 있건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코 걸릴 일도 없고요.]
‘이해했어. 암튼 대상을 지정만 하면 된다는 거지?’
[네.]
도훈은 PK단 중 한 명에게 추적기를 붙이는 경우를 가정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잘만 쓰면 활용도가 충분하겠어.’
[근데 이제 그만 들어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보미양이 혼자 너무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요.]
‘아차. 그렇지.’
도훈이 가게에 들어가자 보미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마침 통화가 끝나자 도훈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통화야? 말투 보니까 직장?”
“응, 사건 관련해서 연락이 와서.”
“오늘 토요일인데?”
“주말에는 뭐 사건 사고 안 나나?”
“하긴 경찰이란 직업이 좀···.”
“근데 무슨 담배를 그렇게 오래 피우니? 통화 꽤 오래한 것 같은데.”
“한 대론 부족해서 연타로 폈지.”
“왜?”
“피곤해서. 새벽에 좀 무리했나 봐.”
“···뭐?”
보미의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도 새벽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낯이 뜨거워졌다.
“농담이야. 무슨 그 정도 가지고. 끄떡없어.”
“······.”
“넌 혹시 힘들었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
“정말?”
“···근데 좋았어.”
보미가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밤새 격렬하게 몸을 섞었는데도시선을 못 마주치는 모습에서 숫처녀 특유의 풋풋한 감정이 느껴졌다.
‘아직도 엄청 어색해하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주인님에게야 수백 명의 여자 중 한 명이겠지만, 보미 양에게는 처음으로 몸을 허락한 남자니까요.]
‘그런가? 그나저나 호감도가 어떻게 되려나? 정보창 한 번 열어볼까?’
[이제 플레이어의 정보창도 열람할 수 있으니 가능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응. 열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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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윤보미(비처녀, 28년 3개월)
나이 : 28 #플레이어#경찰 간부#제주도 학살자
호감도 : 85/100
개방성 : D
성감대 : 입술, 유두, 클리토리스
*애무 포인트 : 질 주변 직접 자극
성욕지수 : 높음.
[플레이어 레벨] : 고수 3단계 (현재까지 70가지 업적 달성)
[주요 스킬] : 스킬 상세 설명을 원하시면 클릭하세요.
공략팁
*위 대상을 공략하여 ‘플레이어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녀는 당신과 같은 플레이어입니다.
-빼어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훌륭한 재원이며, 경찰대 졸업후 제주도에서 경찰 간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투철한 정의감을 바탕으로 오로지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어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플레이어 활동에 전념하느라, 정상적인 연애를 하지 못해 사춘기 소녀 감성이 남아있습니다.
-성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며, 호기심도 왕성하고 도전정신이 투철합니다.
-한 번 마음을 준 남자를 지아비처럼 모시는 일부종사의 기질이 있습니다.
-추천행동 : 그녀는 표현은 서툴지만, 마음을 준 남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여성입니다. 조금만 잘해주어도, 그 이상의 헌신을 당신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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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미의 정보창을 확인한 도훈은 의외로 높은 호감도에 무척 놀랐다.
‘85라고? 고작 하룻밤 같이 잤는데?’
[아마도 같은 플레이어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주인님이 패시브로 보유한 호감도 버프를 대부분 받았을 테니까요.]
‘그래도 이건 너무 높은 거 아니냐?’
[보미 양의 성향에 기인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성향이라니?’
[위의 설명대로라면 일부종사 타입 같거든요. 한번 마음을 준 상대에게 최선을 다한달까요?]
‘헐,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암튼 예상대로 고수 3단계까지 달성한 상태군요. 스킬을 확인하시려면 디스플레이의 화면을 터치하시면 됩니다.]
‘스킬은 나중에 보는 걸로 하지. 조금 혼란스러워서.’
[왜 그러십니까?]
‘동료가 돼라를 시전했는데 예상치 못한 마누라가 생겨버린 느낌이랄까?’
[동료보다 더 믿음직한 지원자가 생긴 것 아닙니까? 주인님을 위해선 이제 뭐든 할 것 같은데요.]
‘그게 아니라, 바람 피웠다가 진짜로 죽일 것 같아서 그래. 내가 왜 여자를 안 사귀고 있는지 잘 알잖아.’
[그 부분은 앞으로 주인님께서 해결하실 문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