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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623화 (1,603/2,000)

1623. 제주도 푸른 밤-53-

순찰차를 얻어탄 김형사가 총기를 꺼내 탄창을 확인했다.

규정상 첫 약실은 비워두고 두번째 약실에는 공포탄을 넣는지라 실탄은 꼴랑 3발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김형사는 한숨을 푹쉬더니 운전자의 눈치를 살피며 탄환을 꺼내 위치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실탄 세발을 고대로 첫번째 약실부터 다시 채워넣는 것이었다.

'총성이 들렸다고 했으니 자칫하면 총기사고가 난 건질도 몰라.

경고사격이고 뭐고 일단 급해지면 그대로 갈겨 버려야 겠어.'

평소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던 김형사였지만, 윤 경위가 사건 현장에 투입되었다는 소리에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재장전을 마친 그는 순찰차를 몰고 있는 후배에게 소리쳤다.

"너 뭐하고 있냐. 출동하는데 이딴식으로 미적미적 거릴래? 사이렌 켜고 밟으라고 새끼야! 내가 운전할까?"

"아, 아닙니다. 밟겠습니다!"

순찰차가 도로위에서 모든 불법을 자행하며 빠르게 달려나갔다.

* * *

'미치겠네 진짜.'

한편 PK단으로 오해를 받은 도훈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온힘을 끌어낸 윤보미가 갑자기 손끝에 푸른 기운을 맺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오해하는 상황이라 문답이 무용이었다.

도훈이 바짝 긴장하며 맞서 내공을 끌어 올렸다.

'아까 매직미사일은 너무 빨랐어. 심지어 발동하는 액션조차 없으니 어느 순간 튀어 나올지 예상도 안 돼.'

도훈은 총알의 궤적도 읽어낼 만큼 뛰어난 동체시력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날아오는 총알을 직접 눈으로 보고 피한다는 소리는 아니고, 총이 격발될 때 나타나는 반동을 보고 발사 타이 밍을 잡아 궤적을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매직미사일은 이와 전혀 달랐다. 발사 타이밍을 잡을 수 없으니 예측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미리 피하면 어차피 조준을 바꿔버리기 때문에 역시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아까와 다르게 양손을 내뻗은 보미가 손가락을 부채살처럼 펼쳤다.

'···저건 뭐지? 또 다른 기술인가?'

보미가 손가락을 활짝 펼칠 채로 도훈을 향해 쏘아냈다. 그러자 이번엔 각각의 손가락 끝에서 구슬 크기의 푸른 구체가 형성되더니 서로 회오리처럼 엉키며 도훈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다.

'5발!?'

5번발의 구슬 탄환이 단숨에 도훈을 향해 쇄도했다.

심지어 각각의 구슬이 불규칙적으로 공전하는 바람에 궤적을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씨팔!"

도훈이 발끝에 힘을 주더니 그대로 공중으로 솟아 올랐다. 제대로 힘을 응축하지 못했음에도 거의 5M 이상 빠르게 뛰어 올랐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구슬 탄환은 마치 유도기능을 갖춘 것처럼 도훈의 움직임을 따라 뒤쫓아 왔던 것이다.

'아오, 대체 뭐냐고!'

공중으로 솟구치는 바람에 오히려 회피가 더더욱 어려웠다. 도훈은 공중에서 몸을 억지로 비틀며 가까스로 탄환을 피했다. 구슬 4개는 서로 충돌하며 폭발했으나 나마지 한 발이 도훈의 등판에 적중하며 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크헉!"

호신강기를 최대치까지 끌어 올렸음에도 충격량은 매직 미사일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지상으로 착지한 도훈의 입가에 핏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 설마 내상을!]

'혀 깨물었어.'

[네?]

'추락하다가 실수로 혀 깨물었다고.'

[······.]

'그나저나 사람 존나 열받게 하네? 왜 내 말은 들을 생각조차 안하는 거야?'

"잔재주를 부리는 군. 하지만 네놈은 절대 살려보내지 않는다."

"에잇, 싯팔 진짜!"

연거푸 이어진 공격에, 제대로 반격도 못하는 스스로에 빡친 도훈이 갑자기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윤보미가 살짝 당황하며 주춤했다.

"뭐, 뭐라고?"

"아니라고! 나는 범인도 아니고 PK단도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 왜 사람 말을 못 알아처먹는데!"

"닥쳐! 누가봐도 네 놈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세상에 PK단만 능력을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도훈이 갑자기 본인의 능력을 증명하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공이 몰리자 주먹 전체가 화르륵 타오르며 불꽃이 맺히기 시작했다. 평소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손끝에 일으키던 불꽃을 수백배 확대 시킨 모습이었다.

윤보미가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부, 불타오르네?"

'아오, 답답해!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 듣냐? 쟤 완전 빠가 아니야? 어떻게 랭커가 된 거지?'

[어쩌면 랭커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뭐라고? 일전에 랭커급 플레이어라고 하지 않았어?'

[그렇다고 보기엔 이상합니다. 랭커급 플레이어 였다면, 주인님이 플레이어라는 걸 보자마자 알았을 겁니다.]

'자, 잠깐만 그게 뭔 소리야?'

[플레이어도 무조건 의사소통의 제한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랭커에 도달하면 특정 채널을 통해 플레이어 들끼리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니까요. 즉, 다른 플레이어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하지만 윤보미양은 주인님이 플레이어일 수 있다는 걸 전혀 예측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잠깐 그러면 정말로 랭커가 아니라는 소리야?'

[랭커급 플레이어라고 추정한 것은 PK단의 보고서 때문이었습니다. 제주지부 20여명을 몰살한 실력자였기에 랭커가 아닐까 추정한 것이죠. 하지만 보여지는 능력과 등급 사이엔 다소 격차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님이 비록 중수에 불과하지만 고수에 근접한 포퍼먼스를 보이는 것처럼요.]

'그럼 윤보미는 대체···.'

[아마도 랭커에 근접한 전투마법사 계열의 플레이어 일것 입니다. 전투에 특화된 능력이다 보니, 랭커로 오인될만한 전투력을 보인것이고요.]

'아! 그렇구나!'

도훈은 그제야 사이코메트리로 봤던 영상을 이해했다.

마지막 도주 장면에서 윤보미는 거의 죽을 뻔 했다. 20여명을 몰살시켰다고 알려진 플레이어의 모습치고는 생각보다 위급한 장 면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그녀를 포위한 PK단원의 숫자는 고작 셋.

20명 역시 소규모 단위로 각개 격파를 했을 뿐, 동시에 그들을 상대할 만큼 강력한 능력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맞네! 랭커가 아니라 고수급이었던 거야. 그러니 다른 플레이 어와 소통해본 적이 한 번도 없고, 내가 플레이어라는 걸 추정하지도 못한 거고.'

"두 눈 뜨고 똑바로 보라고! 내가 어딜 봐서. PK단이냐고!"

다시 한번 윤보미에게 힌트를 줬다.

그러자 보미도 뭔가를 예감한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서, 설마!"

그때 순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보미의 지원 요청을 받고 사건 현장으로 경찰들이 몰려오는 소리였다. 한두대가 아닌듯 생각보다 요란스런 소리에 도훈과 보미는 둘 다 당황했다.

범인을 직접 잡긴 했지만, 항거 불능 상태의 범인에게 부상을 입힌 만큼 경찰서에 같이 가는 건 도훈에게 불리했다.

"나는 이쯤에서 빠질 게. 차지희는 무사해. 저체온증 쇼크가 오긴 했는데, 큰 위기는 넘겼으니 얼른 데려가."

"너, 너는 대체···."

"그리고 저 새낀 꼭 잡아서 콩밥 먹이라고. 총포법까지 위반한 것 같으니까."

두 사람이 정신없이 다투는 사이 성우는 어느새 말 목장 근처까지 도망친 상태였다. 하지만 기어서 가느라 여전히 시야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다.

보미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어느새 순찰차가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도훈이 보미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자, 잠깐만! 너 뭐야? 대체 뭐냐고!"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아, 그리고 너 마스크라도 써. 얼굴 다 풀렸어."

"?!"

말을 마친 도훈이 뒤로 돌아 빠르게 달려나갔다. 보미는 그를 멈춰 세우려다가도 하나둘 도착한 순찰차에서 경찰과 형사들이 우르르 내리자 그를 붙잡지 못했다.

"윤 경위님 괜찮으십니까!"

"대체 무슨 일이죠?"

겨우 냉정을 되찾은 보미는 동료 경찰들이 뛰어오는 소리에 얼른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만약을 대비해 늘 인벤토리 창고에 보관하던 커다란 마스크였다.

"저기 달아나는 저 사람 체포하세요. 말 목장 주인이 차지희 납치사건의 범인입니다!"

"네? 납치요? 실종이 아니고요?"

"마구간 창고에 감금되어 있던 차지양을 찾았습니다."

"아니, 세상에!"

경찰들은 윤 경위의 지시를 받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총기 사건인 줄 알고 만사를 재치고 달려온 김형사는 허탈해 하며 총기를 도로 넣었다. 그는 갑자기 마스크를 쓰고 있는 윤 경위가 의아하긴 했으나, 지금은 그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아니, 범행 현장에 겁도 없이 혼자 뛰어드시면 어떻게 합니까?

모조건 파트너랑 이인일조 몰라요? 범인이 총기까지 소지하고 있었다면서요!"

하급자가 상급자를 나무라는 모습이었지만, 걱정을 담아 보내는 질책이었기에 보미도 크게 괘념치 않았다. 지금은 갑작스럽게 정체를 드러내는 도훈 때문에 몹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죄송해요 김형사님. 제가 범인을 제압하느라 살짝 어지러운데 ···, 형사님이 대신 사건 현장 수습 좀 부탁드려요."

"네? 혹시 어디 다치신 건!"

"아, 아니에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김형사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찰차로 향하는 윤 경위의 얼굴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윤 경위님이 마기꾼이었나? 눈 위로는 완전 미인인데?'

"찾았습니다! 차지희 양이 살아있습니다!"

창고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김형사가 잡생각을 떨치고 급하게 뛰쳐나갔다. 일단은 사건 수습이 먼저였다.

* * *

멀리까지 달아난 도훈은 인적이 드믄 한적한 해변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아오, 씨 등짝,"

윤보미가 날린 마법 탄환에 맞은 상처가 생각외로 컸다. 마치 등짝을 해머로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이냐? 아까 가슴팍에 맞은 매직 미사일이 장도리면 이건 오함마에 두들겨 맞은 느낌이라고.' 도훈은 그나마 5발의 유도탄 중 네 발을 피한 것을 다행으로 여길 정도였다. 단 한발이 격중되었음에도 생각외로 피해가 컷던 것이었다.

'말이 통할 줄 알았는데, 완전 또라이잖아? 다짜고짜 살수를 펼치다니. 하마터면 PK단으로 오해받고 꼼짝없이 잡힐 뻔 했네.'

[주인님이 이해하십시오. 윤보미양은 PK단이면 치를 떨 정도로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니까요. 특히 일전에 제주도에서 여러차례 전투를 펼쳤으니만큼, 주인님을 PK단으로 오해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해하니까 참았지! 안 그럼 나라도 맞고만 있었을까?'

모래사장 한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은 도훈이 내공을 끌어 올려 천천히 회복을 시작했다. 마법 공격에 당한 부상이었으니 만큼 내상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속으로 골병이 들 가능성이 컸다.

[너무 노출된 장소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방법이 없잖아. 해변에서 일광욕하는 줄 알겠지.'

[호법을 서드리겠습니다.]

내공을 운기할 때는 일시적으로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로시가 주위를 경계했다. 다행이 도훈의 말처럼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은 모래장에 앉아있는 도훈을 딱히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으으, 방금 그 공격은 대체 뭐였지? 매직 미사일보단 느린데 위력은 훨씬 강력했던 것 같은데.'

[저도 스킬명은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일종의 에너지탄으로 보이던데···. 그나저나 윤보미의 공격 스킬이 예상외로 빼어나 보이더군요.]

'그래서 오해했던 것 같아.'

[네?]

'PK단이 윤보미를 랭커급 플레이어로 착각했던 이유 말이야.

윤보미의 모든 능력은 공격마법에 특화되어 있어. 공격력 만큼은 랭커 수준을 상회하는 능력자라고.'

[아···. 일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능력은 생각외로 형편 없을지도 몰라. 일종의 유리 대포같은.'

유리 대포는 마법사들에 대한 흔한 멸칭이었다. 빼어난 공격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내구력으로 쉽게 깨지고 마는. 도훈은 그녀와 실제 맞상대를 했더라도 일방적으로 밀릴 것 같진 않았다.

'정식으로 싸웠으면 내가 이겼을까?'

[그건 모르죠. 윤보미양도 필살기를 쓴 것은 아니니까요.]

'필살기라면 윈드커터 마법인가?'

도훈은 PK단 셋을 단숨에 도륙내던 마법의 칼날을 떠올렸다.

확실히 윤보미는 자신을 상대로 치명적인 마법을 쓰진 않았다.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설사 윤보미양이 고수급 플레이어라고 해도, 주인님 이상으로 스킬 구성이 다양할 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나저나 내 말귀를 알아 먹었으려나?'

[마지막엔 조금 눈치를 챈 것 같아 보였습니다.]

'답답해 죽겠어. 플레이어 규칙은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일정레벨 이하 플레이어들은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한 것도 그렇고.'

[모든게 신의 뜻입니다.]

'젠장할.' 해변에 앉은 도훈은 한참을 운기조식을 한 뒤에야 겨우 내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여전히 등짝이 뻐근하긴 했지만, 남은 근육통정도는 하루면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도훈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경찰서로 향했다.

[윤보미양을 다시 만나시려고요?]

'그래. 설마 경찰서 안에서 마법을 쓰진 않겠지.'

[조심하십시오. 윤보미양이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주인님을 신뢰하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신뢰를 보여주는 수밖에.'

[어떻게 말입니까?]

'내가 가진 플레이어의 능력으로 말이야.'

[주인님의 능력이면···.]

'잊었어? 윤보미가 전투 마법사라면, 나는 섹서라는 사실을. 섹서는 어떤 여자도 제압할 수 있다고.'

[그 제압이 그 제압은 아닐텐데요.]

'일단 다시 만나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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