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 제주도 푸른 밤-49-
-윤보미요? 윤보미라면 그때 부탁하셨던 경찰대 졸업생 아닙니까? 그 사람을 찾으셨습니까?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나도 영문을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이번엔 내가 직접 찾았으니까 일 처리 똑바로 하라고."
-네, 넵. 행님. 면목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경찰쪽 라인에 줄 댄 곳이 있으니 금방 확인될 겁니다.
"그래. 돈 더 필요하면 말하고."
-아닙니다. 지난번에 주신 돈에서 차감하겠습니다. 아직 충분합니다.
통화를 끊은 도훈은 잠시 후 최번개와 연결되는 텔레그램 메신 저를 통해 파일을 수신 받았다. 일반 메일은 혹시나 추적이될 수 있으니, 보안이 다소 까다로운 텔레그램으로 주고받는 것이었다.
파일은 모두 두 개 였는데, 하나는 실종된 여성에 대한 사건보고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윤보미 경위의 인적 사항이 담긴 내부 문건이었다.
특히 윤 경위의 인적 사항은 공무원 인사파일을 통째로 뽑아낸 것이었는데, 내부 유출자가 경찰 내 인사기록 시스템에 접근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 이 새낀 정말 재주도 좋단 말이지? 어떻게 이런 정보를 바로바로 물어다 주는 거지?'
[경찰 쪽에 줄을 댔다는 걸 보면 내부망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정보를 바로 빼준 것 같습니다. 최번개의 인맥이 예상외로 훌륭하군요.]
'인맥이라기 보단 돈맥이겠지. 하여간 민중의 곰팡이 새끼들.
공무원이 개인 정보를 이렇게 멋대로 빼돌려도 되는 건가?'
[그걸 돈 주고 이용하시는 주인님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엣헴. 일단 실종자부터 보자고.'
도훈은 불리해지자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최초 신고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는 실종 여성의 이름과 주소 및 증명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나이 스물 여섯. 주소는 경기도 오산이고, 직장은 서울이군.'
[콜 센터에 근무하는 여성이군요.]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지. 사건 개요를 보면 간만에 휴가를 내고 혼자 제주도에 왔던 모양인데.'
[어째서 혼자서 제주도를 왔을까요?]
'모르지 그거야.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냥 머리 식히러 왔을지도. 제주도 올레길 걸으면서 힐링하는 게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니까.'
도훈은 첨부된 사진을 꼼꼼히 살폈다. 증면 사진임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외모였다.
'이름은 차지희. 예쁜 편이네. 유괴범이 노리기엔 딱 좋은 먹잇감이었겠어.'
[안타깝군요. 휴가차 놀러 온 제주도에서 이런 범죄에 휘말리다니요.]
'일단 신원을 파악했으니까 차차 추적해 보면 될 일이야.'
차지희의 신상을 확인한 도훈은 뒤이어 두 번째 첨부파일을 열람했다. 윤보미의 인사 기록 카드였다. 내용을 훑던 도훈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개명을 했다고?'
[네?]
'어쩐지. 이래서 최번개가 찾을 수가 없었구나. 경찰대 다닐 때 다른 이름을 쓰고 살았어. 얼굴도 변장한 채.'
[그렇군요.]
'내가 볼 땐 필요에 따라 이름과 얼굴을 수시로 바꿔가며 주변 사람들을 계속 속였던 것 같아.'
[그렇다면 어째서 한송이를 과외할 땐 본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그거야 모르지. 학교에 있을 때만 위장을 한 건지, 한송이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여자를 마음에 들어한다고요? 설마 성적 취향이 그쪽인 건 ···.]
'꼭 그런 쪽으로 연결 시킬 필욘 없을 것 같아. 어쨌든 고등학교 재학 당시 한송이는 지금보다 훨씬 못난 아이였어. 그대로 내버려 뒀으면 자존감 하락으로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윤보미는 아마 그런 한송이를 가엽게 여겨 애틋하게 보살펴 준 느낌이야.'
[흐음. 그러니까 주인님 말은 윤보미양이 상황에 따라서 얼굴과 이름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계속 위장을 해왔다는 소리죠?]
'맞아. 주로 쓰는 이름은 윤보미, 혹은 윤소미. 또는 경찰대 다닐 때처럼 윤가람이란 이름을 쓰기도 했던 것 같아.'
[적어도 윤씨 성이라는 건 확실하군요.]
'그리고 경찰대를 졸업하고 제주도에 임관하면서 평소 즐겨 쓰던 이름 중 하나로 아예 개명을 해버린 거지.'
[왜 이름을 바꿨을까요?]
'어쩌면 그 전의 신분이 PK단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던 것 같아.'
[3년 전 제주지부 학살 사건 말이군요.]
'맞아. 아마도 PK단은 공항출입기록을 확인해 당시 윤보미의 이름과 얼굴을 파악했을 거야. 궁지에 몰린 윤보미는 그 뒤로 얼굴을 변장하고 놈들에게 노출되지 않았던 이름으로 숨어 지낸 거고.'
[그리고 제주도에 있으면서 외국에 유학중이라고 한송이양에게 둘러댄 거군요.]
'그렇지. 근데 난 좀 이상하긴 해.'
[네? 뭐가 말입니까?]
'윤보미가 경찰대를 나올 정도로 뛰어난 인재긴 한데, 랭커급에 다다른 플레이어가 왜 굳이 계속 정체를 숨겨가며 경찰 일을 하는 걸까? 나처럼 교사가 꼭 되어야 한다는 유지를 받드는 상황도 아닐 텐데 말이야. 설마 나처럼 빙의자일까?'
[그것보다는 아마도 윤보미양의 클래스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클래스라고?'
[주인님이 섹서로서 다양한 업적과 미션을 수행하듯, 윤보미양은 경찰 일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업적과 미션을 받는다는 소립니다. 그러니 그만둘 수 없을 테고요.]
'그렇겠구나!'
[최초 부여받은 클래스는 이후 부여되는 모든 미션과 업적에 영향을 줍니다. 주인님의 미션이나 업적이 대부분 성적인 까닭은, 주인님이 플레이어로 환생할 때 세상 모든 여자를 따먹겠다는 소망을 품었기 때문이지요.]
'그럼 윤소미는 처음부터 경찰이 되겠다는 결심을 품었다는 뜻인가?'
[아마도 그럴 겁니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만, 경찰이 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플레이어가 되었으니 관련 직업을 그만둘 수 없었을 겁니다.]
'젠장, 아깝다. 이럴줄 알았으면 소망을 지구정복으로 하는 건데.'
[그게 지금 할 소립니까?]
'당연히 농담이지. 암튼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어. 그러니까 윤보미가 정체를 숨기고 경찰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아마도 플레이어의 사명 때문일 것이다라는 거지?'
[그렇죠.]
'그럼 이번 실종, 아니 납치 사건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도 다른 사연이 있을 가능성이 크구나.'
[아마도 그럴 겁니다. 확실히 윤보미 경위의 행동은 조금 수상쩍은 구석이 있거든요.]
도훈은 얼굴을 변장한 윤보미의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어떻게 보면 박색이라고 할 만큼 못난 얼굴이었으나, 찬찬히 살펴보자 기존의 얼굴이 살짝 남아있었다.
'나처럼 역용마스크를 쓰는 건가?'
[맞습니다. 해당 아이템은 천상계 마켓으로 구할 수 있는 공용 아이템이니까요.]
'근데 축골공은 못 쓰니까 몸매는 그대로겠구나.'
[윤보미 양은 몸매도 상당했던 것 같은데 얼굴을 못나게 바꿔도 티가 나지 않았을까요?]
'늘씬한 여자가 몸매를 숨기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야. 뚱뚱한 여자가 늘씬하게 보이는 게 훨씬 어렵지. 아마도 감추고 살았을 거야. 티 안나게.'
[하-. 거참. 일부러 못나게 변장하는 것도 무척 곤욕스러웠을 것 같은데···.]
'그만큼 위험하다고 느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PK단에 노출되지 않은 걸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사건이 벌어진 제주도에 숨어버리는 선택 말이군요.]
'보통 등잔 밑은 정말로 어두운 법이니까. 잠깐···.'
로시와 대화를 나누던 도훈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이번 사건의 범인도 어쩌면 등잔 밑에 숨어 있을수도 있겠는데?'
[네?]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어쩌면 근방에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래서 8코스 전체를 수색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야. 뭔가 다르게 접근해야 해. 윤보미가 왜 지금까지 실종사건으로 두고 몰래 수색을 하는 것 같아?'
[인질이 생존해 있을지도 몰라서요?]
'그렇지. 그렇다면 인질이 어딘가에 붙잡혀 있다는 뜻이고, 다른 말로 하면 인질을 숨겨둘 장소가 있는 범인이라는 거야.' 도훈은 황급히 스마트 폰을 켜더니 주변의 지도를 살폈다.
[뭘 찾으십니까?]
'창고, 혹은 축사가 있는 근방의 농가.'
[아!]
'일반 가정집이라면 다 큰 성인 여성을 납치해 숨기기 쉽지 않아.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농가라면 얼마든지 감금이 가능하지.'
도훈은 올레 8코스 주변에 있는 농가들을 체크했다.
좌우 반경으로 대략 4~5개의 축사가 보였다.
'범위를 최대한 좁혀야해. 일단 여기서부터 수색해야 겠어.'
[한데 주인님도 얼굴이 이미 노출되어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아까 잠복 형사가 윤보미에게 들켰다간 어쩌시려고요?]
'나도 위장을 해야지. 난 윤보미랑은 다르게 몸도 줄였다 늘였다 가능하거든.'
도훈은 역용마스크와 축골공을 통해 전혀 다름 사람으로 위장했다. 나이도 40대에 가깝게 만들고, 키는 185에서 15센티나 줄인 170까지 뼈마디를 다시 맞췄다.
[조심하십시오. 축골공으로 근골이 비틀어져 평소의 절반 밖에 힘을 못 쓰니까요.]
'알았어 참고할게.' 중년으로 변장한 도훈은 내침김에 자전거도 한 대 구매했다. 차를 타고 농가에 진입했다간 괜한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즐기는 관광객으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라이더 복장에 산악용 자전거를 타자 도훈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지금부터 수색을 시작해 볼까?"
* * *
"사, 살려주세요. 제발···."
"가만있어. 확 갈아서 사료로 줘버리기 전에."
어두운 창고 안.
젊은 여성이 발가벗겨진 채 개목걸이에 묶여 있었다. 한때 마굿간으로 쓰였던 창고는 바닥에 지푸라기가 깔려있고, 사방에서 똥냄새가 진동했다. 그곳에서 개처럼 묶인 여성을 향해 사내가 급하게 바지 지퍼를 내렸다.
"얼른 빨어. 뒤지기 싶지 않으면."
사내가 여성의 입에 양물을 들이밀었다. 여성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다시 애원했다.
"저, 절대 신고 안 할게요. 정말 쥐죽은 듯이 숨어 살게요."
"썅, 그러니까 일단 빨라고. 시간 없으니까."
화가 난 사내가 개목줄이 연결된 쇠사슬을 잡아 당겼다. 여자는 사내의 힘이 이끌려 철푸덕 바닥에 쓰러졌다.
"흐윽!"
"좆같은 년 진짜. 더럽게 온 몸에 오물이나 묻히고."
여자의 몸이 더러워지자 사내가 갑자기 어디선가 고무호스를 가지고 왔다.
"니 몸에서 썩은내 나서 안되겠다. 일단 좀 씻자."
사내가 고무호스 끝을 손으로 꾹 눌러 수압을 올렸다. 그리고는 발가벗을 여자를 향해 힘껏 뿌렸다.
쏴아아아-!
갑자기 찬물이 세게 쏟아지자 여자가 기겁하며 몸을 수그렸다.
"하, 하악! 사, 살려주세요!"
"누가 죽인데? 더러워서 씻겨주고 있잖아!"
쏴아아아-!
발가벗을 몸으로 찬물을 뒤집어 쓴 여성은 오한이 걸린 것처럼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 사내는 여자를 개돼지 취급하는 지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보지 대 씨발년아. 가랑이에서 오징어 냄새 나니까."
"하, 하악! 제, 제발!"
"얼마든지 소리 질러봐. 여기서 네 비명 들어줄 상대는 밖에 있는 말 밖에 없거든? 크크."
사내는 가학적으로 여성을 괴롭혔다. 그 와중에 밖으로 튀어나온 그의 양물이 묵직해지고 있었다.
"씻기니까 좀 반반하네. 얼른 대 시발년아. 확 죽여버리기 전에."
"흐, 흐흑!"
결국 사내의 위협에 못 이긴 여성이 입을 벌리자 사내의 양물이 우악스럽게 입 속으로 들어갔다.
푸욱-!
"웁, 웁!"
"잘 빨아라. 수틀리면 그냥 바로 믹서기에 갈아 버리면 그만이야."
"웁웁웁!"
여자는 두려움에 눈물 콧물 모두 쏟으면서도 오랄을 계속했다.
사내가 정말로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납치된 그녀가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상대의 정액받이기 때문이었다. 그 역할마저 수행하지 못한다면, 사내의 말처럼 당장 죽일지도 몰랐다.
"씨벌년. 좆나 잘빠네. 너 솔직히 말해봐. 서울에서 온갖 남자 들한테 다 대주고 다녔지?"
"웁웁-!"
"대답 못 해?"
사내가 그녀의 입에서 잦이를 뽑아내더니 머리채를 잡아 목을 확 뒤로 꺾었다.
"대답하라고 썅년아!"
"아, 아니에요."
"아니냐? 똑바로 대답 못하면 어떻게 되는 지 알려줘?"
사내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경기도 오산시 운천로 16-21, 차지희. 내가 직접 부모님 안부 물으러 가줄까?"
"사, 살려주세요! 저, 저희 부모님은 아무 잘못 없으세요!"
"그러니까. 대답하라고. 너 존나 걸레년이잖아. 제주도 혼자 놀러 온것도 사내새끼 하나 잡아서 박히러 온 거고. 아니야?"
"마, 맞아요! 저는 걸레에요!"
"씨팔년. 걸레 같은 년은 걸레 취급을 해줘야지."
사내가 갑자기 머리채를 잡고 지희를 맨바닥에 쳐박았다.
"하윽."
그러더니 장화신을 발로 그녀의 배를 짓밟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개 썅년. 니가 감히 나를 무시해? 넌 이제부터 뒤질때까지 나한테 가축 취급 당하는 거야. 알아들어?"
"흐, 흐흑! 사, 살려주세요!"
"좆까고 있네 시팔년. 내가 지금 말 밥주러 가야하니까 나중에 보자."
잔뜩 지희를 걷어찬 사내는 씩씩거리다가 창고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밖에서 체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헛간 바닥에 쓰러진 지희가 고통 속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딱 하나였다.
말똥 냄새를 풍기며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사내를 피해 고개를 돌렸다는 것. 그 뒤로 그녀는 의식을 잃었고, 깨어보니 발가벗겨진 상태로 개 목걸이가 매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