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 제주도 푸른 밤-40-
도훈의 입성을 기다리는 것은 모텔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판은 다 깔아놨는데 대체 언제 오는 거지? 슬슬 시작할 때가 됐는데···.'
기다림에 지친 장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두 커플이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대실 룸 있을까요? 방이 두 개 필요한데."
말을 건 사람은 도훈이었다.
덕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준비된 멘트를 날렸다.
"학생 운도 좋네! 마침 방 두개가 딱 남아 있는데."
"얼마에요?"
"가격? 10만원이긴 한데···."
공짜로 내준다고 했던 방의 가격을 물어보자 덕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마도 도훈이 뒤에서 멀뚱히 서 있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계산하는 척 시늉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0만원, 여기요."
그러나 도훈은 정말로 현금 10만원을 내미는 것이었다. 덕수는 돈을 받으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도훈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아까 돈 안 받는다고 했잖아? ···학생 돈 없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공짜는 아닌것 같아서요. 마음만 받을게요.
같은 방 친구들이 빌려줬어요."
"그랬구먼. 그럼 내가 서비스라도 줄게. 원래는 2시간인데 원할 때 퇴실해도 되니까 느긋하게 즐기라고."
덕수가 의도를 가지고 말했다. 도훈은 그의 뻔한 수작에 실소했지만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째서 불필요한 지출을 하시는 겁니까? 저런 범죄자한테 굳이 돈을 보태줄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카메라가 있어.'
[네?]
'카운터 쪽에 cctv가 달려있다고. 저기 위에 보이지?'
[아, 그렇군요.]
'나중에 경찰이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게 되면 내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대실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거야. 푼돈 10만원아끼려다 공연히 의심을 살 필욘 없으니까.'
[자칫하면 공범으로 휘말릴수도 있었군요. 잘 하셨습니다.]
"도훈아 그걸 왜 너 혼자 계산해?"
뒤늦게 지갑을 꺼내고 있던 필두가 당황하며 도훈에게 물었다.
그는 도훈이 혼자 전부를 계산할 줄 몰랐기 때문에 무척이나 난감한 입장이었다. 그렇잖아도 도훈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꽁씹도 모자라 대실비까지 대주다니···. 정말이지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 정도가지고 뭘? 아무나 내면 되지."
"그래도···."
"필두야. 아까 말했잖아. 나 돈 많다니까?"
"아···."
필두는 이쯤에서 도훈이 자신과 같은 평범한 대학생이 아니라 유명 재벌가의 외동아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최고급 호텔에 머물러도 아무렇지 않을 부잣집 자식이, 오로지 쾌락을 위해 부킹 가능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온 거라고. 일종의 일탈같은?
키를 받아든 도훈은 필두에게 하나를 넘기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흩어지자고. 즐거운 시간 보내라."
도훈이 먼저 귤희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하자 둘 만 남게 된 필두가 똥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리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 우리도 갈까?"
"흥!"
마음에도 없는 필두와 함께 입실해야 한다는 사실에 부쩍 짜증을 내는 리나였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필두를 따라 다른 방으로 향했다.
두 방은 복도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는데, 들어가는 출입구 위치로 보아 본래 하나의 방을 가벽을 세워 쪼개 놓은 모양새였다.
먼저 쌩하고 방에 들어가버린 도훈과 귤희를 보며 뻘쭘해하는 필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방문을 열었다. 그 순간 리나가 그를 밀치더니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비켜. 입구에서 걸리적 대지 말고."
"어, 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리나의 태도에 필두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리나는 이번 모의가 있기 전에도 그에게 쌀쌀 맞게 굴었는데, 강제로 커플로 맺어지면서 더욱 까칠해졌다.
방으로 들어온 뒤에도 리나는 침대에 걸터 앉아 팔짱만 낀 채 필두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필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우, 분위기 한 번 살벌하네. 내가 무슨 억지로 끌고 온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까지···.'
평소 같으면 말 걸 엄두도 못 낼 필두였지만, 도훈에게 특별히 부탁받은게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쥐어짜냈다.
"여. 옆에 앉아도 될까?"
대실룸은 원래 하나의 방을 반으로 쪼갠 형태였기 때문에 내부가 좁은 편이었다. 침대와 이불장을 제외하면 사람이 앉을만한 소파나 의자가 없었다.
방 구석에 뻘쭘하게 서 있는 필두의 물음에도 리나는 혼자 폰만 만지작 거릴 뿐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것 같았다. 필두가 다시 물었다.
"저기, 앉을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그럼 바닥에 앉든가? 어딜 옆에 앉으려고? 짜증나게 진짜."
계속된 필두의 물음에 리나가 폭발했는지 툭 쏘아붙였다.
리나도 리나 나름대로 화가 잔뜩 난 상태. 무엇보다 귤희가 도훈과 함께 맺어진 것에 대해서 몹시 실망하고 있었다. 함께 맥주파티에 나와 술을 마실 때 귤희가 그녀를 놀리듯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차피 방 따로 잡은 김에 도훈 오빠랑 먼저 실컷 해버려야지.
물 다 빼버려서 나중엔 세우지도 못하게.
-그런 법이 어딨어? 입실만 나눠서 하고 나중에 같이 모이기로 했잖아?
-그거야 나중 일이고. 나 먼저 즐기겠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꼬우면 너도 필두 오빠랑 따로 한 판 하든가?
-내, 내가 왜 그 새끼랑 자는데!
-도훈 오빠가 훨씬 잘생기긴 했지만, 필두 오빠도 섹스는 제법하는 편이야. 기대 이상일걸?
-미친년! 다 너같은 걸레인 줄 알아?
또 다시 싸움이 벌어질 까봐 그쯤에서 멈췄지만, 잔뜩 약을 올린 귤희 때문에 안 그래도 기분이 상한 리나였다. 그런 와중에 필두마저 눈치 없게 계속 말을 걸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내 몸에 털끝만 대봐. 주제도 모르고 누굴 넘봐? 넘보기를."
계속된 리나의 냉대와 으름장에 매너 좋은 필두도 점점 인내심의 한계가 다가왔다.
"뭐? 내가 주제를 모른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지금?"
"도훈 오빠한테 빌붙어서 운좋게 꼽사리 낀 주제에 나한테 껄덕대지 말라고. 네까짓놈 한테 안 대주니까."
"하-. 진짜 말하는 싸가지봐라? 야. 너 몇살이야?"
필두가 소심하긴 했지만 사내는 사내였다. 나이도 어린 리나에게 그런 푸대접을 받고 참아줄 만큼은 아니었다.
"왜? 말트니까 억울해? 꼰대 새끼도 아니고."
"도훈이한테는 꼬박꼬박 오빠라고 하면서 나한테는 왜 반말 찍찍 하냐고!"
"니가 도훈오빠랑 같아?"
"씨발, 내가 다를 건 뭔데?"
리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직으로 그었다. 영문을 모르는 행동에 필두가 주춤하는 데 리나가 말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르지. 너 따위랑 비교도 안되게."
싸가지 없는 말투에 시건방진 제스처까지.
필두의 이성이 거기서 끊어졌다.
"야이 씨발년이 진짜!"
필두가 벼락같이 달려들더니 리나의 뺨을 올려붙였다.
짝-
"악!"
"좆같은 년이 진짜 가만히 있으니까 사람이 가마니로 보이냐?
너 내가 그렇게 우스워?"
뺨을 맞고 침대에 쓰러진 리나의 배위로 필두가 올라탔다. 설마 하니 진짜로 때릴 줄은 몰랐기에 리나는 완전히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성난 사내의 물리력에 겁을 먹은 것이다. 입으로만 까불줄 알았지 남자한테 한번도 맞아 본 적이 없던 그녀였다.
리나의 배 위에 올라탄 필두가 손찌검을 할 것처럼 머리 위로 다시 손을 처들었다. 리나는 두 팔로 얼굴을 가로 막으며 소리쳤다.
"죄,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오빠."
"······."
그 순간 이성이 돌아온 필두는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내, 내가 뭐하는 거지? 그렇다고 연약한 여자애를 때릴 필요까진 없었는데···.'
"정말 죄송해요 오빠. 귤희 그년 때문에 너무 신경질이 나서 ···."
두 팔로 얼굴을 가린 리나는 필두가 당황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사과를 거듭했다. 그 모습을 본 필두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어? 뺨 한 번 맞았다고 이렇게 고분고분해 진다고? 잘못은 내가 먼저 했는데···.'
이제껏 여자는 절대 때리면 안된다고 배웠던 필두는 갑작스럽게 무너진 힘의 균형에 몹시 놀라고 말았다.
본인의 상식보다 주먹은 법보다 가까웠고, 상대를 겁박하는 것도 일종의 전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필두는 여전히 리나의 배를 깔고 앉은 채 감정을 숨기며 물었다.
"귤희가 뭘 어쨌는데?"
"흑흑, 자꾸 도훈 오빠랑 둘이서만 하겠다느니, 계속 놀리잖아요. 저는 솔직히 도훈 오빠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할 생각도 없었는데···."
"······."
결국엔 또 도훈이다.
필두는 진한 패배감과 허무함을 느꼈다. 남이 먹다 버린 찌꺼기나 주워먹는 하이에나의 심정이 이럴까? 자존심이 잔뜩 상한 필두가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리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너는 도훈이가 시켜서 여기 왔다는 거지? 하기도 싫었는데."
"···네?"
"나랑 엮이기도 싫은데 도훈이가 원하니까, 도훈이가 시키니까 넷이서 같이 하려고 했던 거냐고."
"···아, 아니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됐다. 솔직히 말 해 그냥. 때린 건 미안해. 나도 모르게 욱해서."
리나의 배 위에 올라타 있던 필두가 슬픈 표정으로 다시 내려왔다. 섹스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그는, 상처받은 자존심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 오빠?"
"미안하다 진짜. 내가 너무 미안. 흐, 흑."
필두는 아예 침대 위에서 무릎까지 꿇었다. 리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기 위함이었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필두를 보고 리나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우, 울어? 지가 때려놓고?'
무슨 조울증 환자도 아니고 느닷없이 꺽꺽 거리는 필두의 모습에 리나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왠지 병신같은 모습이긴 한데,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에 약간의 인간미도 느껴졌다. 그것은 도훈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으며, 때문에 색다르게 다가왔다.
"아니 왜 갑자기 울고 그래요? 나도 미안해요. 괜히 엄한 오빠한테 화풀이해서. 계속 반말한 것도 미안하고."
"아니야. 난 진짜 쓰레기야. 내가 잘못했어. 널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흑흑."
필두가 계속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하자 리나의 마음이 갑자기 시큰해졌다.
'아씨, 진짜 왜 우는 거야 사내새끼가. 마음 불편하게.'
리나는 자기도 모르게 필두를 꼭 껴안았다.
"진짜 나 괜찮다니까요. 맞은 건 난데 왜 오빠가 우는데?"
"흑흑, 리나야."
욕하고 뺨 때리고 싸우다 느닷없이 울고불고 얼싸안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장덕수는 얼 빠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 시트콤 찍냐? 아주 지랄 옆차기를 하고 있네 병신들이."
19금 노모 야동을 기대했는데, 한편의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를 진지하게 관람한 기분이었다. 꺼내놓았던 양물은 기운이 쭉 빠진 듯 고개를 숙였다.
"하- 씨발, 이쪽은 완전 텄네. 역시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지."
뉴 페이스의 참신한 섹스를 기대했던 덕수는 감시 카메라의 채널을 돌려 도훈의 방을 비추었다. 예상대로 이쪽은 이미 옷을 벗고 서로 69 자세로 물고 빠는 중이었다.
"이거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먼."
덕수가 다시 잦이를 붙잡았다.
늘 하던 것처럼 영상을 보며 딸을 치고 있었지만, 오늘은 특별하게 영상을 녹화까지 하는 중이었다.
'흐흐, 좋아. 계속 그렇게만 하라고. 신나게 따먹고 나서 나한테 둘 다 넘기는 거야. 나도 영계나 한 번 먹어보자.'
도훈의 현란한 애무에 귤희가 신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얇은 가벽을 넘어 음탕한 소리가 필두와 리나의 방까지 들렸다.
-하아, 하아···. 너무 좋아. 계속 빨아줘 오빠.
침대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던 필두와 리나는 적나라하게 들려오는 신음에 당황했다. 둘은 대실 룸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벽을 뚫고 소리가 넘어오리라곤 예상을 못했던 것이다.
-하아, 하아. 나 미칠것 같아 오빠, 박아줘.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에 필두는 자기도 모르게 발기하고 말았다. 툭 솟아오른 잦이가 바지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리나도 눈치 챌 수 밖에 없었다.
'헐, 여기서 선다고? 미친.'
그녀는 보란듯 귤희와 즐기고 있는 도훈의 모습에 정나미가 뚝떨어졌다. 왠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패배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래. 귤희 말이 맞을지도. 도훈 오빠가 뭐라고 내가 매달려야 해? 자긴 즐길거 다 즐기고 나는 그냥 병신처럼 받들 준비만 하고 있으라고? 웃기고 있네. 세상에 남자가 지 혼자 인 줄 알아?'
리나는 벽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이쪽에서도 반대편으로 소리를 전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그녀는 도훈에게 보란듯 복수하고 싶었다.
'좋아. 내가 하라면 못할 줄 알고? 나도 도훈 오빠 없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
결심을 마친 리나가 바지위로 툭 튀어나온 필두의 똘똘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갑자기 왜 그래요?"
"아, 아니 이건···. 미안 나도 모르게."
"도훈 오빠랑 귤희랑 옆 방에서 하니까 오빠도 하고 싶어요?"
필두는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한 마당에 또 본능적으로 발기해 버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알죠. 남자들 자극 받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꼴려버리는 거."
리나가 눈빛이 갑자기 돌변하더니 필두의 바지 지퍼를 쓰윽 내리기 시작했다. 필두가 당황하며 쩔쩔매는데 리나가 물었다.
"···오빠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