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 제주도 푸른 밤-38-
[강직한 타입인 줄 알았는데, 필두군도 사내는 사내군요.]
'좆끝이 제법 강직하긴 하지.'
[그 말이 아니라 훨씬 점잖게 봤다는 소립니다. 포섬 제안에 이렇게 쉽게 응할 줄은 몰랐는데요.]
'알아. 무슨 말인지. 근데 원래 사내의 아랫도리 밑은 인격과는 아무 상관 없거든. 게다가 필두도 귤희랑 이미 한 번 뒹 군 몸이잖아. 간만에 기름칠 좀 했으니, 좆끝이 바짝바짝 할테지.'
[근데 필두 군에게 왜 일부러 들키신 겁니까? 게하 주인이 오는 소리도 다 듣고 계셨잖습니까?]
도훈의 뛰어난 청력이 두 사람의 발걸음을 놓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게하 주인의 의심을 살 때까지 고의로 문 여는 시간을 지연시켰다.
'처음엔 혹시라도 미션이 엎어질까 봐 여자애들을 달래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두 사람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러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어. 기왕 하는 거 몰카범까지 동시에 잡아야겠다고.'
[게하 주인의 몰카 행위를 현장 적발키 위해 일부러 함정에 걸리신 거라고요?]
'응. 나를 몰래 훔쳐봤다는 것도 짜증나고, 앞으로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한 번쯤 손을 봐줘야 하니까. 만에 하나 오늘 대실 손님이 없으면 현장 적발이 불가능하잖아. 그럴바에는 내가 미끼가 되는 게 확실하지.'
[역시 주인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필두 한테 조금 미안하기도 했고.'
[필두군요? 필두군은 오히려 주인님께 고마워해야 하는 처지 아닌가요? 주인님이 귤희양에 이어 리나양까지 떠다 먹이는 입장인데요.]
'그래도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거든. 보통 사람이면 자기 떡이 알고보니 남이 먹다 남긴 것이라고 하면 화가 나는 정상이야. 실은 필두가 아까 문 앞에서 지랄발광했으면 포섬 제안도 안 했을 거야.'
[근데요?]
'근데 게하 주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커버를 치더라고. 자기가 곤란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말이지.'
[필두 군이 제대로 은혜를 갚았군요.]
'은혜 갚은 필두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거지. 은근히 괜찮은 녀석이야. 좆도 튼실하고 말이지. 그나저나 대물이 의외로 흔하단 말이지? 저번에 범석이도 그렇더니.'
[비율상 아주 없진 않죠. 상위 5%라면 스물에 한 명 정도는 특대 사이즈라는 소리니까.]
"그, 근데 여자애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싫어하다니?"
필두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도훈이 넌 잘생겼잖아. 여자 둘이서 서로 차지하려고 달려들 만큼. 난 절대 그 정돈 아니니까."
"필두야. 여자는 얼굴로 꼬시는 게 아니야."
"그럼 뭘로 꼬셔?"
"좆으로 꼬시는 거지."
"아…. 그, 그것도 예선을 통과한 사람에게나 기회가 있는 거야."
"어쨌든 넌 통과했잖아."
"내가?"
"내가 부전승으로 올려줬거든."
"아…."
필두가 감동한 듯 도훈에게 말했다.
"근데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야? 나는, 너한테 해줄 것도 없는데."
"의리."
"의리라고?"
"아까 안에서 다 들었어. 네가 필사적으로 시간을 끌어준 덕에 허겁지겁 옷을 껴입고 주인 아저씨한테 안 들킬 수 있었거든. 역시 넌 의리가 있어."
"아, 아니 그거야 뭐…."
필두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뭘 그 정도 가지고.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하필 이번엔 그게 너였네. 어쨌든 난 보답을 하고 싶어."
"고마워 도훈아. 아니 도훈이형."
"고맙긴. 우리 방 애들하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 오늘 내가 치킨 쏠게."
"도훈이? 네가 왜?"
"오전에 니가 많이 샀잖아. 이번엔 내 차롄 것 같아서."
"아, 아니야. 도훈아.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해서…."
"괜찮아. 나 사실 돈 많아."
"아…."
필두는 도훈이 돈도 많다는 소리에 더욱 기가 죽었다.
잘생긴데다, 몸도 좋고, 심지어 돈도 많았다.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는 사내였다.
'역시 도훈이는 최고야. 아깐 괜히 도훈이한테 화냈던 것 같아.
따지고 보면 도훈이는 나에게 잘해준 것 밖에 없는데.'
필두는 도훈을 더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도훈의 큰 그림 중 하나였다.
'몰카범을 잡으려면 현장을 적발하는 게 최고지. 하지만 내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떡도 치고 현장도 잡을 순 없잖아?'
[설마 필두군이 미끼였습니까?]
'아니 뭐. 나도 하긴 하겠지만 촬영하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선 나를 대신할 대역이 필요한 법이니까.'
[필두군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군요.]
* * *
"이야, 도훈아 진짜 잘 먹었다. 제주도 와서 1인1닭을 할 줄이야."
"도훈이가 뭐냐 도훈이가? 도훈이 형이지."
"맞다. 형. 고마워요."
"별말씀을. 근데 너희들 오늘도 맥주파티 갈 거야?"
"당연하지."
준성이 억울한 듯 말했다.
"낮에 헌팅 시도 해봤는데 대차게 까이기만 했거든. 역시 맨정신으로 꼬시기는 무리더라고."
찬우도 되받았다.
"너희들은 오늘 어땠어? 더블 데이트는 잘 됐고?"
"망했어."
"어?"
도훈은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여자들끼리 뭐가 골이 났는지 중간에 대판 싸워서는 중간에 돌아왔잖아. 우도 가려고 했는데 가지도 못하고."
"아, 아까 2층 숙소에서 싸움 났다던데 설마 거기?"
"아마 그럴걸."
"저런. 아쉽게 됐네."
"필두 엄청 기대하고 갔다가 헛물만 켜고 왔구나? 크크크."
준성과 찬우는 더블 데이트가 망했다는 소리에 낄낄대고 웃었으나, 필두는 조용히 속으로 승자의 여유를 보일 뿐이었다.
'멍청이들. 도훈이가 지들 생각해서 일부러 나가리 됐다고 배려 하는 것도 모르고.'
준성이 캔맥주를 쭉 들이키더니 말했다.
"잘 됐다. 어차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거랬어. 여자들도 물갈이 됐으니까, 다같이 맥주파티 가서 꼬셔보자."
"어? 여자들 새로 들어왔어?"
"게하의 장점이지. 어젯밤 멤버들 절반은 교체 됐을 걸? 아까 체크인 할 때 보니까 여자애들 무리지어서 입실하더라고. 오늘 밤도 볼만 할 거야."
"오오! 갑자기 피가 끓는데? 우리도 그럼 뜨거운 밤 보낼 수 있는 거야?"
"도훈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에이스님이 다 해주실 거야.
그쵸 도훈이형?"
"뭐, 나야…."
도훈도 맥주를 홀짝이면서 씩 웃었다.
"자, 꽃단장하고 다시 출격해보자. 오늘 밤 파티 땐, 무조건 꼬시고 만다."
남자애들이 파티 준비를 하는 사이 도훈은 필두와 함께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근데 맥주 파티 나가게? 여자애들 보기로 한 거 아니었어?"
"보긴 볼 거야. 근데 너무 이른 시간은 곤란하니까. 적당히 술에 취하고 시끌벅쩍 할 때쯤 보는 거지."
"아…."
도훈은 몰카범을 현장 적발하기 위해 시간을 조절하는 중이었다. 너무 이르게 움직이는 것보다 적당히 늦은 시간이 가장 유력했다.
"그냥 술이나 먹고 기다리지 뭐. 여자애들한테는 나중에 늦게 보자고 말해 놓을게."
"으, 응. 도훈아 너만 믿을 게."
다시 게스트하우스의 파티가 열렸다. 오로지 이것 하나만 보고 오는 손님이 대다수일 정도로 맥주 파티는 인기가 좋았다.
제주도 가을 밤의 풍광과,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야외무대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청춘 남녀를 매료시켰다. 춤과 노래, 그리고 술이 들어가면서 게스트 하우스 앞마당은 금세 달아올랐다.
4인 테이블에 자릴 잡은 도훈은 부킹을 하러 가자는 친구들의 제안을 매너있게 거절하고 조용히 앉아 술만 마셨다. 그는 분위기가 무르익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도훈 : 나중에 필두도 같이 낄 건데 괜찮지?
리나와 귤희가 들어있는 단톡방에서 도훈이 필두의 참전을 알렸다.
-리나 : 피, 필두 오빠가 왜요?
-귤희 : 저희 셋이 보는 거 아니었어요?
-이도훈 : 아무리 대실이라도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을 들여보내 주진 않지. 혼숙이 가능한 곳도 아니고.
-귤희 : 나중에 몰래 따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이도훈 : 그러다 들키면? 이 밤에 쫓겨나게? 차라리 필두를 껴서 방을 두 개 잡는 게 가장 안전하지.
-리나 : 흐음. 그럼 누가 필두 오빠랑 들어가요?
-이도훈 : 리나 니가 필두랑 방 잡아. 내가 귤희랑 잡을 테니까.
-리나 : 제가요? 왜요? 저는 필두 오빠한테 1도 관심 없는데요?
-이도훈 : 그냥 같이 입장만 하란 소리야. 나중에 따로 뭉치면 되니까.
-귤희 : 필두 오빠까지 낄줄은 몰랐는데….
-이도훈 : 이제 알았으니 됐지?
도훈은 단톡방에서도 갑질을 계속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여자들이 절대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이었다.
'흐흐, 지들이 어쩔 건데. 필두 없이 내가 안 한다고 하면, 아쉬운 건 그쪽이지.'
[근데 리나양과 귤희양은 여전히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닙니까?]
'맞아.'
[채팅 대화로만 봐서는 전혀 그런 티가 안 나는데요?]
'같은 방에서 서로 폰으로 채팅 치고 있어도 서로 말도 안 하고 있을 걸? 어차피 쟤들은 서로 좋아서 엮여 있는 게 아니야. 나를 양보하기 싫으니까 2:1이나 2:2 플레이도 감수하고 있는 거지.'
[역시 주인님의 마성의 매력을 가지셨습니다.]
'당연한 말을.'
다른 친구들이 춤을 추러 나가고, 필두가 화장실을 가는 바람에 테이블에는 도훈 혼자 앉아 있었다.
"여어, 아까는 오해해서 미안했네 학생."
불쑥 다가온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도훈에게 말을 걸었다.
서빙을 하던 중 우연히 도훈을 발견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처음부터 도훈이 혼자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근한 것이었다.
"네?"
"아니, 아까 2층 여자방 숙소에서 말이야. 예전에 한 번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가지고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것 같아."
"괜찮습니다. 오해하실 수도 있죠."
"역시 말이 통하는 학생이었구만. 잠깐 앉아도 될까?"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었는지 게하 주인은 곧바로 도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맥주 두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건 서비스."
"뭘 이런 걸 다."
도훈은 순진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주인님 뭔가 꿍꿍이가 있어 접근했음을 간파했다.
"다름이 아니고 혹시 오늘도 대실 할 건가?"
"네? 저요?"
"어. 새벽에 늦게 대실한 학생 맞지? 얼굴 보니까 겨우 기억이 나서 말이야."
"근데 그건 왜요?"
"내가 게하만 10년째 운영하잖아. 오늘처럼 게스트가 물갈이 되는 날은 특히 대실이 금방 차버리거든. 그러니까 혹시 생각 있으면 미리 말을 해주면 방을 하나 빼놓을까 하고."
"아…."
[주인님 함정입니다.]
'그런 것 같아 보이네. 아주 작정하고 나를 카메라에 담을 생각인가 보구나. 저 개새끼.'
[주인님을 챙겨주는 척 하지만, 실상은 속이 시커먼 사람이군요.]
"생각 있으면 미리 말해도 돼. 아까 일도 있고 하니, 내가 제일 좋은 방으로 하나 미리 빼 놓을게."
도훈은 속이 훤히 보이는 수작에 곱게 넘어가 줄 생각은 없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게 제 의지대로 되나요? 괜히 미리 대실 예약했다가 나중에 불발되면…. 아시잖아요. 여자들 변덕스러운거."
게하 주인 장덕수의 표정이 실망감에 일그러졌다.
"아…."
"아직은 모르겠어요. 대답도 시큰둥하고."
"그, 그래? 그래도 어떻게 잘 꼬셔보면…."
"흠, 솔직히 돈도 얼마 없구요."
"돈이 모자라?"
"네. 보시다시피 배낭여행 중이라…."
도훈이 계속 앓는 소리를 하자 덕수는 애가 탔다. 어차피 그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학생 때 여행이 다 그렇지 뭐. 나도 여행 엄청 좋아해서 배낭여행 자주 다녔거든. 끼니도 굶을 때가 많았어. 그러다 게스트하우스까지 차리게 된 거고."
"그러시구나."
덕수는 쓸데없이 자기 얘기를 꺼내더니 갑자기 선심쓰듯 말했다.
"좋아. 그럼 내가 인심 써서 공짜로 빌려줌세."
"네? 대실을요?"
"쉿-. 이건 어디가서 말하지 말고. 나도 입장이 곤란해지니까.
아까 학생을 오해한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훗-. 오늘 도촬 못 할까 봐 아예 똥줄이 타는 구먼?'
[그런 것 같습니다. 저 돈 밝히는 수전노가 공짜로 방을 내준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자기도 이득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지. 그나저나 사정이 급한건 저쪽인 것 같은데 한 번 더 튕겨볼까?'
"음, 말씀은 정말 고마운데…."
"왜? 공짜로 싫어?"
"아뇨. 실은 그게 아니라 상황이 좀 복잡하거든요."
"뭐가 복잡한데?"
"아까 그 방에 여자애들 두명이 있었잖아요."
"어어."
덕수는 가슴이 유난히 컸던 귤희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여자애들 성격 아시잖아요. 친구끼리 발목 잡고 질척대는 거."
"엉?"
"어제 저랑 따로 대실 나간 걸 안 다른 친구가 엄청 삐졌나 보더라고요. 자기만 따돌린 줄 알고."
"아…."
"그래서 할 거면 둘 다 꼬시든지, 아니면 둘 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저런…. 전혀 설득이 안 돼?"
"네. 말이 안 통해요. 다른 친구랑 맺어주면 될 것 같긴 한데….
그러면 방이 두 개가 필요할 거고…. 제가 또 염치없게 그런 부탁을 드리기도…."
덕수가 빠르게 머릿속으로 주판을 굴렸다.
'가만. 그럼 그 가슴 큰 여자애랑 같이 있던 예쁜이도 오늘 대실을 한다는 거잖아? 몰카만 찍을 수 있다면 딱히 손해는 아닌데 말이야.'
탁-!
덕수가 갑자기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더니 말했다.
"좋아. 까짓거 뭐 그런 소원 하나 못 들어주겠는가? 방 두 개 내어 줌세."
"저, 정말요? 저희 진짜 돈이…."
"상관없어. 나도 솔직히 돈 없이 여행도 다녀보고, 쫄쫄 굶어봐서 그게 어떤 건지 잘 아네. 아무리 돈이 없어서 사랑을 못해서 쓰겠어? 내가 방 두 개 빼놓을 테니 꼭 성사 시키라고. 알았지?"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