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 제주도 푸른 밤-37-
갑자기 방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앙!"
"흐읏-"
필두는 그것이 여자의 신음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파서 내는 고통의 소리가 아니라, 쾌락에 젖은 야릇한 교성이라는 것도.
'어엇, 뭐, 뭐야? 분명 안에 셋이 같이 들어간 것 아니었나?'
필두가 혼란에 빠졌다.
차라리 남녀가 단둘이 방 안에 있는데, 그런 소리를 났다면 헛기침을 하며 물러났을 것이다. 그는 신사였으니까.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이 안 되었다.
'귤희랑 리나랑 도훈이가 한 방에 같이 있는데 저런 소리가 난다고?'
필두의 머릿속으로 살색의 스케치가 그려졌다. 발가벗은 세 남녀가 물고 빨고 뒹구는 모습이었다.
"허윽!"
필두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불쑥 귤희가 자신과 하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까 여자 둘이 싸울 때 들었던 이야기도 그의 의심에 확신을 더했다.
'도훈이가···. 나보다 먼저 귤희를 따먹었던 거구나!'
그게 아니라며 지금의 스리섬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귤희를 자신에게 넘겨준다던 도훈은, 사실 이미 귤희랑 어젯밤 붙어 먹은 것이었다.
'말도 안 돼. 그럼 도훈이는 어제 귤희랑 하고, 오늘은 리나랑하고, 그것 때문에 둘이 싸움이 나니까 이젠 셋이 같이 하고 있다는 거잖아?'
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은 필두는 허탈감과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이 먹다 버린 뼈다귀를 좋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쫓아다닌 셈이다.
'씨발, 내가 무슨 잔반처리반도 아니고···.'
자존심이 상한 필두가 이성을 잃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근데 대체 문 열고 뭐라고 할 건데? 귤희 씨발년이 이리주고 저리주고 다니는 걸레라고 욕이라도 할 건가?'
필두는 명분이 없었다.
귤희랑 자신은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고, 아까는 일방적으로 귤희가 자신을 유혹해 섹스를 한 것뿐. 그런 귤희가 이번엔 도훈과 붙어 먹고 있다고 한들 문제 될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에 화가 날 뿐이었다.
'씨발···. 도훈이 개새끼, 존나 부럽다.'
결국엔 분노의 원인은 열등감이었다.
자신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도훈에 대한 열등감. 머슴처럼 여자를 받들여 모시고, 쉴새 없이 빨아줘야 겨우 한 번 먹을까 말까한 자신에 비해 주머니속에 간식을 꺼내먹듯 너무나 쉽게 여자를 자빠뜨리는 도훈의 능력에 대한 시기심.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도훈을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에 필두가 진한 패배감을 맛보았다. 갑자기 머리끝까지 솟구치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졌다.
'그래. 이건 도훈이 잘못도 귤희 잘못도 아니야. 그냥 지들끼리 즐기려는데 도훈이가 불쌍한 나를 한 번 껴준 거지.'
따지고 보면 필두는 손해 본 것이 없었다. 함께 방을 쓰던 다른 친구들은 호기좋게 나갔다가 오늘도 허탕을 치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결국 도훈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그는 여전히 남자들끼리 땀내나는 여행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잘난 놈 옆에 붙어 있다가, 간만에 기름칠 좀 해본 걸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저들 사이에 내가 뛰어드는 건 좀 아닌 것 같기도.'
생각을 정리한 필두는 훼방을 놓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물러났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명분도 없고 승산도 없는 꼬장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도훈이 개새끼, 혼자 배터지게 잘 먹어라.'
필두가 방에서 물러나는데 갑자기 복도에서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나타났다.
'어엇!'
손에 든 걸레와 복장으로 봐선 객실을 청소하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새로운 손님을 받기 위해 빈 객실을 새단장하는 것이다.
'좆됐다!'
이성간 혼숙은 당연히 퇴실 조치. 지금처럼 이렇게 소리가 새어 나갔다간 게스트 하우스 주인의 귀에 들어갈 건 불보듯 뻔했다.
"여어, 안녕하세요."
게하 주인이 복도를 서성이는 필두를 향해 인사했다. 필두가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아, 안녕하세요."
"거기서 뭐하세요?"
게하 주인이 복도 끝에서 걸어오며 물었다. 하필 청소하기로 한방이, 리나와 귤희가 묵은 숙소의 반대편 방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
필두의 마음이 급해졌다.
'씨, 씨발. 이러면 빼도 박도 못하고 나가린데?'
긴박한 순간 필두가 갈등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 있는 도훈에게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하나 하는 마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자신을 배신한 귤희가 된통 당하면 좋겠다는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응? 거기 무슨 일 있어요? 그러고 보니 학생 그 방 아니지 않나?"
게하 주인은 안절부절못하는 필두의 표정에 뭔가 수상한 낌새를 챈 것 같았다. 더욱이 필두는 3층에 있는 4인실에 속해 있었는 데, 2층의 여자방 앞에 서 있는 것도 이상했다.
"아 그게···."
필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지금도 계속 야릇한 신음 소리가 밖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갈등하던 그는 결국 끝내 도훈을 지키는 결정을 내렸다.
쾅쾅쾅!
"도, 도훈아. 얼른 나가자! 늦겠다!"
방문을 두드리며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안에서 나오던 소리가 뚝 끊겼다. 그때 게하 주인이 필두에게 다가가 다시 물었다.
"여자 방에는 무슨 일로?"
필두는 마치 안에 소리를 전달하려는 것처럼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 저, 저희끼리 저녁 먹으러 나가기로 했거든요! 도훈아, 얼른 나오라니까? 아직 준비 덜 됐어?"
쾅쾅쾅!
"···아, 그래요?"
게하 주인은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필두의 표정에서 뭔가 수상 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남학생이 혹시 안에 들어갔어요? 제가 입실할 때 분명 숙소에 이성을 들이면 안된다고 했을 텐데?"
"어, 저 그게 잠깐 짐 좀 날라주느라고요···."
"짐이요?"
"네네, 짐이 무거워서 제 친구가 대신 날라줬거든요. 도훈아!
나오라니까?"
쾅쾅쾅!
필두가 다시 문을 쾅쾅 두드리자 게하 주인은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유난스럽게 소리를 지르는 필두의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이었다.
"어디 한 번 확인해 봅시다."
"네? 그게 무슨···."
"아니. 말했지만 여긴 혼숙 금집니다. 남학생이 여자방에 들어갔으니 일단 확인은 해봐야죠."
게하 주인이 갑자기 문을 열려고 하자 필두가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 금방 나올 거에요."
"비켜요, 학생."
쾅쾅!
"도훈아!"
"얼른 비켜요. 경찰 부르기 전에."
"네? 겨, 경찰이요?"
"아니, 지금 여학생 방에 남자가 들어갔는데, 그게 범죄인지 뭔지 알게 뭡니까? 한 명은 밖에 떡하니 망보고 있고."
"마, 망을 보다뇨!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러니까, 학생 말이 맞는지 확인은 해봐야지 않겠어? 지금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게하 주인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이젠 손님이 아니라 잠정적 범죄자로 보는 눈길이었다. 난데없이 공범으로 휘말린 필두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씨, 씨발 그냥 모르는 체 할 걸 괜히 껴들어 가지고 나까지 엮여버렸잖아?'
경찰을 부른다는 소리에 놀란 필두가 주춤주춤 물러서는 사이 게하 주인이 문고리를 돌렸다. 당연히 문은 잠겨있었다.
"어쭈, 이것 봐라?"
게하 주인은 곧바로 뒷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더니 방문에 맞는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필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색이 된 얼굴로 눈알만 요리조리 굴렸다.
'어, 어떡하지? 혼숙을 들키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혹시나 여자애들이 갑자기 말을 바꿔서 성폭행 당했다고 우겨버리면···.
아, 나는 귤희한테 질싸까지 했는데 내 정액 검출되는 거 아닌가?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덜컥!
겁을 잔뜩 집어먹은 필두가 쓰러지기 직전, 갑작 안에서 문이 열리며 도훈이 나왔다.
"아, 새끼 금방 나간다니까. ···어? 누구세요?"
문을 열고 나온 도훈은 의외로 말끔한 차림이었다. 게하 주인은 그런 도훈을 밀치더니 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뭐하시는 거예요?"
"아니, 여기 지금···."
게하 주인이 급하게 눈알을 굴렸으나 이미 여자들은 다들 옷을 입고 펼쳐진 캐리어를 정리하고 있었다.
"학생은 왜 여자 숙소에서 나와?"
"네? 차에서 짐 좀 들어달라고 해서 옮겨줬는데요?"
도훈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마침 캐리어에 옷을 접어 넣고 있던 여자들이 도훈을 거들었다.
"저희가 2층까지 짐 올리기 힘들어서 오빠한테 부탁 좀 한 거예요."
게하 주인은 정황이 의심스럽긴 했지만, 더 따질 수 없어서 한 마디 하고 물러났다.
"다음에 힘쓸 일 있으면 저한테 부탁하세요. 괜히 여자 숙소에 남자들 들락거리면 오해받을 수 있으니."
"알았어요. 이제 그만 문 좀 닫아주실래요?"
"오빠, 고마웠어요. 나중에 저녁 먹을 때 봐."
"응."
게하 주인을 쫓아낸 도훈은 문 밖에서 덜덜 떨고 있던 필두를 향해 말했다.
"미안, 좀 늦었지? 가자 담배나 피우러."
"어, 어."
도훈과 필두가 물러나는 사이 건넛방에 청소를 하러 들어간 주인은 귤희의 얼굴을 보더니 뭔가를 떠올렸다.
'아 맞다! 언제 봤나 했더니 어제 걔였구나. 가슴 큰 여자애!'
게하 주인은 귤희가 어젯밤 몰카 촬영했던 여학생임을 깨달고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흐흐, 고년 참 몸매 볼만했는데···.'
갑자기 발기가 된 게하 주인은 청소하러 들어온 방문을 걸어 잠그더니 혼자서 딸을 치기 시작했다.
'씨발년, 오늘도 한 번 찍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 깜빡하고 녹화를 못 해서 오늘은 제대로 각잡고 녹화를 떠놨으면 좋겠는데 ···.'
* * *
"어, 어떻게 된거야?"
"뭐가?"
"아니 안에서···. 다 들었어."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온 필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도훈에게 물었다. 도훈은 뻔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 들었으면 대충 알겠네. 두 사람 화해시키는 중이었지."
"아니 그게 어떻게···."
"뭐 중간에 네가 훼방을 놓는 바람에 하다가 말았지만."
훼방이라는 표현에 필두가 억울한지 발끈하며 말했다.
"난 알려주려고 그런 거야. 갑자기 주인 아저씨가 올라와서 ···."
"알아. 덕분에 빨리 수습할 수 있었어. 어쨌든 도와줘서 고마워."
도훈이 피식 웃으며 필두의 어깨를 토닥였다. 필두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자신의 코를 풀어준 도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자신을 가지고 논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에게 화를 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저 도훈아··· 귤희랑은···."
"왜?"
"너 걔랑 했냐?"
"무슨 소리야?"
"그냥··· 오늘 여자애들 싸웠던 이유가 너 때문인 것 같아서."
"아, 그거?"
도훈이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필두에게 변명했다.
"맞어. 어젯밤에 귤희랑 했어. 그래서 너도 한 번 먹어보라고 준 거야."
"뭐, 뭐라고?"
"귤희 걔 완전 걸레잖아. 단 둘이 있으면 아무나 주는 애거든.
너도 먹었지?"
필두는 난잡한 성생활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예전에 사귀었던 전 여친이 섹파 제안을 했을 때도 단호하게 거절했을 정도로 그부분에 관해선 엄격했다. 그런 그에게 도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 그게···."
"안 했어? 일부러 둘이 하라고 짝 맺어 줬잖아."
"···해, 했어."
"짜식. 역시 주면 잘 먹네."
"······."
하지만 이미 귤희랑 해버렸기 때문에 필두도 더 할 말이 없었다. 도훈이 계속 말했다.
"아, 근데 아쉽네. 주인 아저씨가 방해만 안 했어도 둘다 동시에 따먹는 거였는데. 필두 너 혹시 스리썸 해봤냐?"
"···아, 아니."
"아무래도 숙소방은 위험할 것 같아. 방음이 안되서 밖으로 다 들리잖아."
"그, 그렇겠지?"
"그래서 저녁에 1층 방 대실해서 하려고. 혹시 너도 낄래?"
"나, 나도?"
이제껏 그를 원망하던 필두는 도훈의 솔깃한 제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룹 섹스는 상상만 해보았지, 실제로 가능하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한 것이었다.
"어. 생각해보니까 아무리 나라도 혼자 둘을 상대하긴 무리인 것 같아서. 너도 귤희랑 했으니 알 거 아니야. 완전히 남자 잡아먹는 애라니까?"
"그, 그렇지."
"거기에 리나까지 덤벼드니까 좆이 하나로는 부족하겠더라고.
어때? 니가 괜찮으면 여자애들한테 말해보고."
"나, 나도 껴준다고? 정말?"
"뭐 어때? 귤희랑은 이미 자봤고, 리나만 동의하면 되는 거잖아. 리나도 아까 보니까 관심이 있는 것 같더라고."
도훈의 감언이설에 필두가 꼼짝없이 넘어갔다.
'그, 그래. 나한테 한 짓이 괘씸하긴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잖아. 그리고 막말로 귤희랑 누구랑 자던 그건 자기 맘이고. 살면서 이런 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 거야.'
필두는 두 여자랑 같이 뒹군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좆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도훈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싫음 말고."
"아, 아니야. 나도 껴줘."
"진짜?"
"으, 응. 재밌을 것 같아."
"알았어. 내가 톡으로 미리 말해 놓을 게. 대신 우리방 애들한테는 절대로 알리지 마. 걔들도 얼마나 하고 싶겠어?"
"다, 당연하지."
"그리고 혼숙은 안 해줄 것 같으니 일단 방 두 개를 따로 잡을 거야. 그리고 몰래 한 방에서 만나자고."
"그럼 난 누구랑 들어가? 귤희?"
"귤희는 이미 먹어봤잖아. 리나는 어때?"
"도, 돌려 먹으라고?"
"왜? 리나는 별로 안 땡겨?"
필두는 이미 상상만으로 잦이 끝이 묵직해진 상태였다.
그는 발정난 개처럼 헐떡이며 대답했다.
"아, 아니 나야 땡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