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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603화 (1,583/2,000)

1603. 제주도 푸른 밤-33-

도훈의 입수는 너무나 급작스러웠기 때문에 누군가 그 장면을 봤다면 투신을 의심할 정도였다. 해당 포인트는 파도가 심하고, 수심이 깊은 곳이라 맨몸으로 뛰어들기엔 너무나 위험한 곳이었다.

첨벙-

일부 관광객들은 갑작스러운 물소리에 놀라 절벽 아래를 힐끔거렸으나, 한참 동안 위로 떠오르는 것이 없자 낙석이 떨어졌다고 착각하고 발길을 돌렸다.

바닷속으로 뛰어든 도훈은 잠수 헤엄을 통해 해안 절벽 쪽으로 나아갔다. 가을 바다의 수온은 피부의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차가웠지만, 도훈의 표정은 몹시 편안해 보였다. 거센 파도에도 그의 몸은 잔잔한 호수를 유영하는 것처럼 물속에서 부드럽게 나아갔다.

'확실히 달라졌어. 호흡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아.'

무공을 익히기 전에도 수영 캠프 강사를 자처할 정도로 수영에는 자신이 있던 도훈이었다. 거기에 일취월장한 내공이 더해지자 잠수가 너무나 수월했다. 스킨스쿠버 장비를 차고도 힘든 곳을, 맨몸으로 유영하는 모습은 경악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나저나 너무 오래 잠수하시는 거 아닙니까? 벌써 5분이 넘은 것 같은데요?]

도훈이 좀처럼 물 밖으로 나갈 기미를 안 보이자 로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5분? 아직도 절반 이상 여유가 있는 것 같은데?'

심폐 지구력과 폐활량 또한 최상급 해녀 수준까지 올라간 도훈은 단숨에 해저 동굴에 근접할 수 있었다. 동굴은 보트로 진입하기엔 천장이 너무 낮아 불가능했지만, 물밑으로 잠수해서 들어가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해저 동굴 안으로 들어온 도훈이 그제야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푸하-."

'로시, 내가 얼마동안 잠수해 있었지?'

[11분 23초입니다. 이 정도면 기네스북 기록 아닌가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딱히 힘들진 않았어.'

[정말 초인적인 능력이군요. 가끔 주인님의 신체 능력이 경이 로울 때가 있습니다.]

'나름 플레이언데 뭘. 그나저나 내가 할 수 있다는 건, 그 경찰대녀도 가능하다는 뜻이겠지?' 동굴의 입구는 좁았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특히 안 쪽으로 들어가자 바닷물이 얕아지면서 발을 딛고 올라설 수 있는 지면이 나왔다.

"동굴이 생각보다 깊구나."

광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에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도훈은 미약한 한 줄기 빛으로도 안력을 돋아 어둠 속을 볼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아예 자기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사방이 깜깜해졌다.

[이런, 손전등을 챙겨 왔어야 했나 봅니다.]

'라이터 켜면 되지.'

도훈은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찾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입수로 부싯돌이 젖은 라이터는 끝내 켜지지 않았다. 결국 도훈은 손끝에 힘을 주어 열기를 끌어냈다. 담뱃불을 붙일 때 쓰던 수법이었다.

화르륵-.

그의 손끝에서 불꽃이 생성되더니 촛불처럼 피어올랐다. 도훈은 그 정도 불빛만으로도 동굴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흐음, 용암동굴이군.'

제주도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해안가 곳곳에 이러한 용암동굴이 생성되어 있었다. 일부는 사람의 접근이 가능한 곳도 있었지만, 지금 도훈이 들어온 동굴은 조류가 험하고 입구가 좁아 사람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작정하고 준비를 마친 전문스킨스쿠버팀이나 시도해 볼 법한 곳이었다.

불꽃을 피운 도훈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만있자. 혹시 내공으로 옷도 말릴 수 있나?'

[네?]

'아니 옷이 다 젖어서 찝찝한데 내공으로 건조가 가능한가 해서.'

내공으로 손에 불도 피우는 마당에 옷을 말리지 못할 게 없었다. 도훈이 살짝 내공을 끌어 올리자 그의 몸이 뜨거워지며 몸에서 수증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이게 되네?'

[주인님 몸이 타들어 가는 거 아닙니까?]

'수증기야 이거. 옷이 타지 않을 정도로 적절히 조절하고 있어.'

젖은 옷이 마르면서 사방으로 수증기가 피어오르더니, 잠시 후 도훈의 옷이 바짝 말린 것처럼 바삭바삭해졌다.

'오, 다시 뽀송뽀송해졌군. 인간 건조기가 따로 없네.'

[임무에 집중하시죠.]

'맞다. 플레이어의 흔적을 찾으러 왔었지?'

도훈은 손끝에 피운 불꽃을 좀 더 키웠다. 불덩이가 커지자 주변이 훤히 밝혀지며 내부가 좀 더 자세히 보였다. 도훈은 동굴 바닥을 유심히 살피며 조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어째서 바닥을 살피시는 겁니까?]

'발자국 같은 걸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설사 플레이어가 이곳에 방문했다고 한들, 몇 년 전 발자국이 지금까지 남아있겠습니까?]

'여기가 관광지라면 모를까 사람이 접근하기도 힘든 곳이라, 만약 누군가 왔다면 아직 흔적이 남아있지 않겠어? 누군가 훼손하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흐음,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풍화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 뒤져보자고.' 로시의 비아냥에도 도훈은 꼼꼼히 동굴 내부를 살폈다.

'어쨌든 마지막 목격 장소가 이곳 해안 절벽이란 말이지.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리 없으니 분명 바다로 뛰어들었을 가능성이 커. 분명 여기로 들어왔을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플레이어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깊이 들어갈수록 동굴이 계속 좁아지면서 키가 큰 도훈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여서 가야 했다.

'음…. 내가 잘못 짚었을까?'

[무턱대고 바다에 뛰어들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이제 그만 나가시죠.]

'여기까지 온 게 아깝잖아. 조금만 더 들어가 보고.'

나중에는 도저히 걸어서 없을 지경까지 동굴의 폭이 좁아졌다.

도훈은 아예 엎드려 엉금엉금 기어가야 했다. 용암으로 생성된 바닥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살갗이 까지고 무릎이 깨질 만도 한데, 육체적 강도가 초인의 수준에 다다른 도훈에게는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다만 한참을 기어들어 간 곳이 막다른 길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도훈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오, 개삽질했네. 여기가 아닌 가벼."

[아니, 주인님···.]

'분명히 도주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다른 길에 선 도훈이 몸을 돌리기 위해 어깨에 힘을 주고 돌아설 때였다. 갑자기 천장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응? 뭐지?'

도훈이 아무리 힘이 좋다고 해도 천장을 들어 올릴 순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여기 뭔가 이상한데?' 도훈은 다시 어깨를 들썩였고, 그 결과 천장이 원래 막힌 것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가 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여긴 원래 위가 뚫려 있었구나!'

[네?]

'바위가 입구를 막아 버린 거라고. 동굴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원래는 위로 뚫린 구멍이 있었어.'

[주인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바위를 치워내다 자칫 균형이 무너지면 땅 밑에 파묻힐 수도 있습니다.]

로시의 경고는 명확했다. 도훈이 아무리 초인이라도 동굴 깊숙한 곳에 깔리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소리였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운데.'

도훈은 계속 생각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막았든, 자연적으로 막힌 것이든 반대편에 분명 뚫린 길이 있었다. 도훈이 귀를 기울여 청각을 끌어 올리자, 바위틈 사이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확실해. 반대쪽에 공기가 통할만큼 공간이 있어. 바위를 한 번 치워 봐야겠어.'

[조심하십시오. 주인님은 분명 초인이지만 결국 인간이란 육체적 한계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땅속에 파묻히면 죽는다는 소립니다.]

'알았어. 조심할게.'

도훈은 문득 과거에 봤던 6피트 언더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땅속에 묻힌 관에 주인공이 갇힌 채 시작하는 영화는 질식에 대한 공포를 완벽하게 대리 체험시켜주었다.

'이걸 들어 올려 볼까?'

바위가 막 엄청 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반인 기준에선 감당 못 할 사이즈긴 했지만, 수백킬로가 나가는 바벨도 거뜬하게 들어내는 도훈에게는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었다.

도훈은 지구를 받친 채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두 팔에 힘을 주어 바위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오랜 세월 다른 암석에 동화된 것처럼 바위는 계속 흔들리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간힘을 썼는데도 뭔가 막힌 것처럼 미동만 할 뿐이었다.

'흐음, 뭐지? 힘이 부족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반대편에 여유 공간이 아예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들어 빼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참 용을 쓰던 도훈이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라리 부셔버릴까?'

[네? 바위를요?]

'어. 쪼개면 알아서 빠지지 않겠어?'

[그게 가능할까요?]

'천상 크래프트 속에서 칼로 바위를 두부처럼 썰었잖아.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건 게임 속이니까 가능했죠. 더구나 지금은 칼도 없고요.]

'맨손으로 어떻게 안 되려나?'

도훈은 계속 주먹을 말았다 쥐었다.

근거는 없지만, 자신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바위를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피와 살로 이루어진 주먹의 내구성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일단 한 대 때려볼까?'

[자중하시죠. 괜히 다치면 곤란하니까요.]

'장갑 같은 것만 하나 있으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장갑이요?]

'맞네. 아이템으로 사면 되잖아.'

[주먹으로 바위를 부수기 위해서 아이템을 구매하신다고요?]

'지금 목적은 그렇다는 거고, 다음에 맨손으로 겨룰 때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 한 번 알아봐 줘. 비싼 건 아니어도 되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로시가 마켓에서 아이템 하나를 추천했다.

[하급 가죽 장갑입니다. 파워업 기능은 없지만, 신체적 내구성을 탁월하게 끌어 올립니다.]

'파워업이라니?'

[기능성 장갑의 경우엔 신체 능력 자체를 끌어 올리는 종류도 있거든요. 다만 매직 아이템으로 분류되어 가격이 무척 비싼편입니다.]

'이건 얼만데 그럼?'

[5000포인트입니다.]

'헐. 아무 기능도 없는 장갑이 5000포인트나 한다고?'

[아무 기능도 없는게 아니라 파워업 기능이 없다는 뜻입니다.

내구성은 높여주니 뼈와 살이 다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흐음, 귤희 따먹고 만포인트 넘게 받은 게 있으니 조금은 사치해도 되겠지. 구입해줘.'

[넵.]

잠시 후 인벤토리로 도착한 하급 가죽 장갑을 착용한 도훈은 주먹을 세게 말아쥐어보았다.

'오호. 손에 착 달라붙는데?'

[사용자의 손 크기에 맞게 자동으로 조절되는 형태입니다. 가죽처럼 보이는 질감이지만 사실 최첨단 나노입자로 이루어진 직물이죠.]

'역시 믿고 쓰는 천상계 아이템.'

도훈은 개구리 어퍼컷 자세로 주먹을 굳게 쥐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쪼그려 앉은 채 주먹질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방에는 절대 안 깨질거야. 칠성권을 이용해야 겠어.'

도훈의 칠성권은 7번의 주먹질 동안 두배씩 강해지는 위력이 있었다. 처음의 타격에 비해 마지막 주먹질은 이론상 64배로 강해졌다.

'일 점을 정밀 타격한다.'

한 점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단단한 바위도 구멍을 낼 수 있다. 도훈은 완벽한 신체 컨트롤로 정확하게 바위의 균열부를 찾아올려쳤다.

퍽-!

한 번의 주먹질로는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죽 장갑 덕인지 주먹이 크게 아프지도 않았다.

퍼억-!

도훈이 똑같은 타격 지점에 정확하게 한 번 더 올려쳤다.

두배로 강해진 주먹에 바위가 움찔 흔들렸다.

'좋아. 계속 간다.'

삼타, 사타, 오타!

거듭된 올려치기에 바위가 점점 패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올려치기.

쩌억-!

마침내 바위에 균열이 났다. 선명하게 금이 간 바위가 위태롭게 머리 위에서 흔들렸다.

"으라차!"

최후의 한방.

칠성권의 마지막 주먹은 처음 위력에 비해 무려 64배가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파괴력이 마침내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며 쪼개졌다.

쿠구궁-!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지만, 도훈은 특유의 민첩성으로 커다란 조각들을 피해냈다.

"뚫렸다!"

위로 구멍이 뚫리자 도훈이 잽싸게 올라갔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주먹으로 바위를 쪼개버리다니.]

'뭐, 이 정도쯤이야.' 도훈이 장갑에 묻은 돌조각을 털어내는데, 새롭게 등장한 공간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빛? 잠깐. 저게 뭐야?"

도훈이 빛줄기가 들어오는 곳을 향해 걸어나갔다. 흙더미를 치우자 빛이 더욱 강해졌다. 도훈이 토사로 막힌 구멍을 뚫고 나왔을 땐 거대한 나무뿌리 밑이었다.

"헐? 이게 뭐야? 다시 섬 안으로 연결되어 있잖아?"

해안 동굴의 끝이 지상까지 연결되어 있던 것이다.

도훈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확신하듯 말했다.

"…알았다. 경찰대녀가 어떻게 추적을 따돌렸는지."

[네?]

'자취를 감춘 게 아니야.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다시 여기로 나온 거지. 그러니까 추적하던 PK단원들은 그녀가 증발해버렸다고 착각한 거야.'

[하지만 아무 근거도 없지 않습니까? 주인님의 상상일 뿐인데요.]

도훈이 씩 웃더니 출구 쪽에 떨어진 물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오래된 LED 플레쉬였는데, 비바람을 맞아 녹슬고 고장나 있었다.

'이게 하필 여기 왜 떨어져 있을까? 이 물건의 주인이 누굴 거 같아?'

[서, 설마.]

'백프로 플레이어야. 동굴을 나온 뒤 쓸모없어진 물건을 버리고 간 거지. 그리고 난 물건만 있으면 주인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능력자기도 하고.'

[사이코메트리!]

'찾았다,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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