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 제주도 푸른 밤-31-
의외긴 했지만 리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귤희도 가끔 보면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지? 저번에도 술 엄청 먹더니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랑 모텔 가더니만.'
잘생긴 남자가 아니면 만나지도 않는 자신에 비해, 귤희는 상대적으로 허용 범위가 넓은 편이었다.
본인 말로는 얼굴을 가장 많이 따진다고 하는데, 막상 이제껏 만나온 남자들의 면면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남자들도 많았다. 취했을 땐 잘생긴 줄 알았다던가? 그러나 100명을 넘게 만난 귤희의 입장에서 당연히 미남만 만날 수도 없긴 했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귤희한테 필두 오빠가 붙었으니 이제 더 이상 도훈 오빠한테 지분거리진 않겠네. 안 그래도 신경 쓰였는데.'
"거 참, 필두랑 구멍동서 될 생각은 없었는데···."
갑자기 도훈이 내뱉는 말에 리나는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고 놀라서 되물었다.
"어? 구멍···, 뭐?"
"아니, 나도 어제 귤희랑 잤거든. 근데 필두까지 자버리면 족보가 꼬인다는 소리야. 이게 무슨 개족보도 아니고."
퍽퍽퍽-.
충격적인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며 도훈이 계속 박음질을 이어갔다. 리나는 온 몸이 흔들리는 상황에 머리가 불에 댄 것처럼 뜨거워졌다.
"노, 농담하는 거지?"
"응?"
"오, 오빠가 귤희랑 잤다고? 어제? 그럴 틈이 없었잖아."
리나가 강하게 현실을 부정했다.
"너 잠든 사이에 따로 불러냈지. 새벽에."
"아, 아니 잠깐. 진짜로 귤희랑 잤다는 거야 지금?"
"그렇다니까? 대체 같은 질문을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그, 그럼 나랑 지금 뭐하는 건데?"
"뭐하긴, 니가 대주니까 따먹고 있지."
리나는 정신이 나갈것 같았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이건 뭐 배우자 앞에서 불륜을 고백하는 정도의 충격이었다.
"오, 오빠···. 그럼 지금 귤희랑도 자고 나랑도···."
"왜? 억울해? 너도 그럼 필두랑 잘래? 그것도 재밌겠네."
퍽퍽-!
둘 다 따먹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도훈의 표정은 너무나 뻔뻔스러울 정도였다. 심지어 그렇게 고백하는 와중에도 허리를 흔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주인님. 왜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사실을···.]
'어차피 알게 될 거라면 지금이 나아.'
[네?]
'나중에 둘이 서로 얘기하다 알게 되면 그땐 제대로 뒤통수 맞는 기분일 거란 말이지. 서로 질투심에 싸우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적개심에 의기투합 할 수도 있는 거고. 그건 미션 실패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리나양이랑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와중에 실시간으로 배신을 알리게 되는 건 타이밍이 좀···.]
'리나가 나에게 그런 배려를 받을 정도로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아니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요.]
'더구나 정확히 말하면 배신은 리나도 마찬가지지. 나랑 먼저 잔 건 귤흰데, 자기가 뒤늦게 덤벼들었으니까.'
[음, 너무 주인님 위주의 해석 같습니다만.]
'어쨌든 나는 이미 따먹고 있으니 상관없다는 거야. 그리고 이걸 지금 알려야 리나가 귤희를 더 미워할 테니까. 미션의 완성은 두 사람이 철천지원수가 되는 거니까.'
"아흑, 미, 미친! 그, 그만해."
"뭔 소리야? 갑자기 왜?"
"오빠 같으면 친구랑 잔 남자랑 하고 싶겠어?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리나가 발버둥 쳤으나, 뒤를 딱 잡힌 입장에선 도훈이 물러서지 않으면 빠져나올 방도가 없었다. 도훈이 잠시 박음질을 멈추고 리나에게 말했다.
"잠깐만. 내가 먼저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니가 먼저 날 유혹해놓고 왜 갑자기 내 탓을 하는 거야?"
"그, 그건···. 그땐 몰랐으니까! 귤희랑 붙어먹은 줄 알았으면 내가 왜 오빠랑···."
"귤희랑 잔 것도 귤희가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준 거야. 내가 먼저 꼬신 것도 아니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도훈이 한숨을 푹 쉬더니 리나에게 말했다.
"잘 들어. 어제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도훈이 진실을 각색해 어제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둘이 담배 피우러 갔을 때, 귤희가 그러더라고. 자기 어떠냐고. 난 솔직히 예쁘다고 했지. 가슴이 커서 내 취향이라고. 그러니까 또 그러는 거야. 자기랑 자고 싶냐고."
"그래서···. 둘이 잤다고?"
"아니 난 어제 분명히 내 입장을 말했어. 귤희 너도 좋지만 솔직히 리나 네가 더 마음에 든다고."
"근데?"
"자긴 아무래도 상관없대. 내가 리나 널 마음에 들어하건 말건, 자긴 나랑 하면 된다더라고."
"규, 귤희가 진짜로 그렇게 말했다고? 오빠는 그걸 또 받아줬고?"
리나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려나왔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기둥을 붙잡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난 거절했어. 친구끼린데 서로 면목이 없지 않겠냐면서. 경우가 아니라고."
"뭐?'
"거절했다고. 그 얘기는 못들은 걸로 하겠다고 다시 돌아왔지.
귤희 입장도 생각해서 리나 너한테도 얘기 안 했던거고. 괜히 의상하면 복잡해지니까."
"근데?"
"두번째는 더 적극적이었어. 네가 어제 귤희 밤에 잠깐 나갔다가 왔다고 했잖아."
"설마···. 그때 만난 남자가 오빠였어?"
"맞아. 귤희가 직접 찾아왔더라고. 우리 방으로."
"방으로? 오빠 그때 나랑 깨톡하고 있었잖아? 룸메이트랑 술먹고 있다고 했고."
"그건 사실이야. 근데 그 사이에 귤희가 찾아온 것도 사실이지.
할말 있다고 잠깐만 밖에서 얘기 좀 하재. 담배나 같이 피우자고."
"그래서?"
"아까 일도 있고 미안해서 따라나갔지. 다음날 같이 다니기로 했는데, 괜히 어색해지면 안 되니까. 건물 뒤편에 흡연구역에 갔는데, 늦은 시간이라 하필 아무도 없더라고."
"······."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귤희가 다짜고짜 내 바지를 내리더니 입으로 내 거길 빨아주는 거야."
"헉!"
믿기 어려운 전개였지만, 리나는 귤희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는 클럽 화장실에 들어가 처음 보는 남자랑 떡친 적도 있었다.
"처음엔 말렸어. 이성을 찾으라고. 그러니까 하는 대답이 가관이던데."
"뭐라고 말했는데?"
"자기가 지금 취해서 그런 것 같냐던데? 자긴 충분히 이성적이라고."
"개, 개소리를!"
"그래서 내가 이상해서 다시 물었지. 충분히 이성적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무슨 뜻이래?"
"이렇게 하면 내가 너보다 자길 좋아해줄 줄 알고 하는 거래."
"하!"
"리나 너한테 지기 싫다고. 날 빼앗고 싶다고."
"규, 귤희가 진짜로 오빠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이제 와서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있지도 않는 이야기를 잘도 지어내시는 군요.]
'어쩔 수 없어. 이간질을 위해선 이게 최선이야.'
"암튼 다짜고짜 잦이부터 빠는데 어떤 남자가 마다하겠냐고.
게다가 빨기도 잘 빨더라고. 그래서 새벽에 따로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거야."
"아···. 진짜 이건···."
리나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맥주 파티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을 때부터 귤희의 표정과 말투가 냉랭해진 것과, 속옷도 안 입고 파자마 차림으로 밖에 나가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던 것.
그리고 돌아와서 뭐가 아쉬운지 혼자서 침대에 누워 자위를 했던것도 도훈이 말한 이야기와 맞춰보니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새벽에 다시 만나서 해버렸지 뭐야? 오늘 아침 귤희 잘못 일어났지? 사실 나한테 어제 새벽 내내 당했거든."
"아, 아아···."
도훈의 거짓말은 팩트와 픽션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훨씬 더 설득력을 갖추었고, 리나는 속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설명 끝났으니 해도 되지?"
도훈이 다시 허리를 잡고 흔들려고 하는데 리나가 빼액 소리쳤다.
"귤희랑 해놓고 나랑 또 하고 싶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가 싫어!"
"아니, 시작을 했으면 끝은 봐야지. 중간에 이러는 건 매너가 아니야."
"매너? 친구 둘 사이에 끼어들어 놓고 오빠 입에서 매너라는 말이 나와 지금? 내 기분이 어떻겠냐고 지금!"
"기분 나쁘지. 근데 리나야, 하던건 마저 끝내고 생각하자. 이러면 곤란해."
"아흑, 진짜!"
도훈이 다시 대물을 세워 허리를 흔들자, 리나는 뒤로 박히는 와중에도 억울함과 분노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귤희 이 미친년. 기어코 네가 나랑 척을 지는 구나!'
리나는 도훈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도훈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 역시 귤희에게 농락당한 셈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주는 여자를 마다할 남자는 세상에 없으니까.
'이건 나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야. 귤희는 도훈 오빠가 좋아서 라기보다, 내가 도훈 오빠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까 뺏으려고 먼저 자빠진 거라고. 나 엿먹이려고.'
퍼억퍼억-!
리나가 분노로 치를 떠는 상황에도 도훈은 묵묵히 박음질을 이 어갔다.
'시발년, 어쩐지 아침부터 부아를 돋구더니 속으론 얼마나 나를 비웃고 있었을까? 자긴 새벽에 이미 도훈 오빠랑 붙어 먹었으니 ···. 진짜 친구도 아니야.'
"흐, 흐읏. 쌀것 같아."
"아니 잠깐, 오빠, 안에는 안 돼!"
"으으, 못 참겠다."
"오, 오빠!"
도훈은 겨우 사정을 참은 것처럼 마지막 순간 뒤로 물건을 뽑아냈다. 진한 정액이 똥구멍과 봊이 입구를 두들기며 휘갈겨 졌다.
"아오, 진짜!"
질 안 깊숙이 사정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임신의 위험은 없었지만, 사방에 튄 정액을 닦느라 리나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섹스를 마쳤는데도 리나는 분을 풀지 못했다.
오히려 귤희에게 당했다는 생각에 계속 씩씩거렸다.
"당장 귤희한테 전화해 봐야 겠어."
"하지마."
"왜? 날 속였잖아!"
"속인건 속인건데, 지금 필두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잖아. 방해 받기 싫겠지."
"지금 그걸 따질테야?"
"차라리 이게 낫지 않아? 어쨌든 귤희는 다른 파트너가 생겼으니 이젠 너랑 내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
리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얼굴이 빨개진 채 소리쳤다.
"귤희 이 년이 나를 엿먹이려고 일부러 오빠한테 작업한 거라고! 단지 날 엿먹이려고! 내가 화가 나겠어 안나겠어?"
"뭐야? 그럼 내가 중간에 이용당한 거야?"
도훈이 천연덕스럽게 되묻자 리나가 빼액 소리쳤다.
"오빠도 똑같아! 어떻게 친구 사이에 껴들어서!"
"친구? 근데 니들 진짜 친구는 맞냐?"
"뭐?"
"내가 볼땐 남보다 못한 사이 같은데. 그리고 난 엄밀히 말하면 두 사람 싸움에 이용당한 꼴이잖아. 화가 나도 내가 나야 되는 거 아니야?"
도훈의 말은 논리적으로 그럴 듯 했기 때문에 리나도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더욱이 도훈에게 화를 낸다고 귤희에 대한 분노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걸레 같은 년 내가 언젠간 이럴 줄 알았어."
"말이 좀 심하다."
"뭐가 심해? 오빤 그럼 귤희가 정상으로 보여? 오빠랑 어제 새벽에 붙어먹고, 오늘은 또 필두 오빠랑 붙어 먹는게 정상이야?"
"기분이 좋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귤희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냥 원나잇 한 번 한 건데."
"참나. 오빤 자존심도 없어? 필두 오빠한테 밀린 거잖아."
"그거야 뭐···."
"오빠. 나 진짜 걔 짜증나서 같이 못 놀겠어. 여행이고 뭐고 그냥 때려칠거야."
"무슨 소리야? 같이 우도가기로 했잖아?"
"됐어. 그럴 기분도 아니고 그냥 다 그만둘 거야. 그냥 숙소로 돌아가자. 짐 싸서 서울 올라갈래."
이간질을 시킨 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뭐, 너희 둘이 싸운 거야 어쩔 수 없는데, 괜히 나까진 끌어들이지 말라고. 난 혼자서라도 갈테니까."
"난 어떻게 돌아가라고!"
"그거야 내가 알바 아니지."
"오빠!"
"알았어. 멀리 안나왔으니까 택시 잡을 수 있는데까지 태워줄게. 그럼 됐지?"
"오빤 지금 나보다 귤희 편을 들겠다는 거야?"
도훈의 말에 상심한 리나가 서운한 듯 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난 누구의 편도 아니야. 어제까지는 리나 네가 마음에 들었는데, 네 말대로 나도 귤희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솔직히 이젠 누굴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그냥 나도 이젠 상관 안할래."
"아니···. 그런 무책임한 말이···."
"그리고 너희 둘 문제는 둘이서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 괜히 남의 싸움에 껴들어서 골치아프기 싫으니까."
미션을 완수한 도훈의 냉정한 말에 리나도 그에게 정이 뚝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섹스를 나눈 사이라기엔 믿기 힘들 정도로 칼같은 거절이었다.
"암튼 집에 가고 싶다면 택시 타는데까지 태워줄게. 가자."
결국 두 사람은 시내로 나와 헤어졌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리나를 돌려보낸 도훈은 본격적인 제주도 탐방을 시작했다.
[결국 주인님의 계획대로 됐군요.]
'아직 마무리는 안 됐지. 두 사람이 서로 만나서 원수처럼 갈라 지는 것까지 마무리니까.'
[그럼 또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보셔야 하는 건가요?]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숙소는 가봐야지. 몰카범 잡으러.'
[아아, 그렇군요.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응징해야 하니까요.]
'그건 그거고 여기서 리나랑 갈라지길 다행이야.'
사실 도훈은 우도에 다른 볼일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움직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거추장스러운 짐을 덜어낸 도훈은 오토바이를 최고 가속까지 올리며 제주도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