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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91화 (1,571/2,000)

1591. 제주도 푸른 밤-21-

"내가 왜 형이야?"

"원래 자기보다 돈 많으면 형이야."

"내가 돈이 많다고?"

"자기보다 잘 생겨도 형이고. 도훈이 형은 나보다 잘 생겼잖아.

헤헤."

필두가 손을 비비며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여자만 엮어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굴종적인 자세였다.

[저렇게까지 하고 싶을까요? 그래도 동갑내기인데.]

'좀 심하다 싶긴 하지만, 원래 남자들이란 맨날 섹스 생각 뿐이니 이해가 되기도 해.'

[주인님도 저 나이 때 저러셨습니까?]

'나? 난 당연히 저 정돈 아니지.'

[지금 하는 걸 보면 주인님 성욕도 만만치 않던데요? 주인님도 여자만 보면 어떻게 눕힐 수 있을까만 고민하잖습니까?]

'나야 이도훈의 몸에 들어왔으니 놈의 호르몬 영향이 크다고 봐야지. 그리고 원래 사내놈들이란 중학생 때부터 20대 후반, 아니 30대 초반까지는 구멍만 보면 넣고 싶을 정도로 성욕이 강한 시기거든. 20대 초중반인데 섹스 경험이 있다? 그러면 거의 성욕의 화신 급으로 보면 돼. 고기도 먹어본 놈이 밝히니까.'

[그럼 전생의 주인님은….]

'맞아. 그나마 그땐 동정이라 덜했던 거야.'

[아….]

'불쌍하게 보지 말라고. 지금은 누구보다 완벽한 알파메일의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도훈아, 그럼 지금 여자애들 바로 나온다는 거야? 나 아직 씻지도 못했는데."

"아니. 30분 뒤에 볼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준비해."

"30분 뒤? 오케이 콜. 나 먼저 씻을게!"

필두가 후다닥 옷을 벗더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근데 아직 약속을 안 잡지 않으셨나요?]

'어. 지금 잡으려고.'

[갑자기요? 너무 급박해 보이는데 여자들 쪽에서 준비가 될까요?]

'어쩔 건데? 나를 붙잡고 싶으면 이제 지들이 맞춰야지. 상황은 이미 역전됐어.'

도훈은 리나의 깨톡으로 30분 뒤 보자는 메시지를 일방 통보했다. 예상대로 리나가 너무 이르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도훈은 달리 답변도 하지 않았다.

[너무 세게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귤희양은 그렇다 치고, 아직 리나양은 공략도 전인데.]

'이제부터 안달 나는 쪽은 리나가 될 거야.'

[왜 그렇죠?]

'내가 어제 귤희랑 이미 했기 때문에, 오늘 만남에서 상당히 티가 날 거거든. 선택받지 못할 수 있다는 조바심 때문에 나에게 더 매달리게 되겠지.'

[혹시 필두군을 데려가는 이유도….]

'그렇지. 필두는 나에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고를 대타야. 꿩대신 닭이라도 입에 물려주는 거지.'

[정말 주인님은 몇 수 앞을 내다보시는군요.]

그때 화장실에서 머리에 물을 뚝뚝 흘리는 필두가 튀어나왔다.

"도훈아. 나 다 씻었어! 너도 얼른 씻어!"

필두는 도훈에게 샤워실을 양보하기 위해 머리도 못 말리고 빠르게 나온 것이었다. 도훈은 그런 필두의 배려에도 느긋하게 2층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다.

그 사이 필두는 드라이기로 머릴 말리고 캐리어에 챙겨온 옷 중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놓고 얼굴에 컬러 로션을 바르고 머리도 왁스로 어루만지는 등, 30분을 분 단위로 쪼개가며 치장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도훈은 필두와 비교하면 천하태평의 자세였다. 느긋느긋 이빨을 닦은 도훈은 머리는 감지도 않고, 대충 물로 세수만 했다.

또 얼굴엔 별다른 화장품도 없이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로션하나만 대충 바르더니, 속옷만 갈아입고 어젯밤 입은 옷을 그대로 다시 걸쳤다.

하지만 막상 치장이 끝나고 난 뒤 두 사람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세수만 하고 로션만 바른 도훈의 피부가 훨씬 깨끗하고 좋아 보였던 것이다.

심지어 머리는 감지도 않았는데, 떡진 곳 하나 없이 윤기가 흘렀고 대충 걸친 패션도 얼굴 하나로 이미 완성되었다.

"으으, 잘생김은 이길 수 없는 것인가."

필두가 빠르게 패배를 인정하더니 도훈에게 물었다.

"뭐냐 대체. 여자들 만나는데 그렇게 성의없이 나가도 되는 거야?"

"뭘 성의까지. 그까짓 거 대충하는 거지."

"진짜 부럽다. 도훈이 넌 진짜 여자 많이 만났을 거 같아."

"그 정돈 아니야. 근데 그런건 있더라고."

"뭐?"

"진짜로 원하는 걸 가지고 싶을 땐 조급한 모습은 자제하는 게 좋더라고."

"자제… 하라고?"

도훈은 나름 진지하게 필두에게 조언했다.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서 이미 간파되거든. 여자들은 보통 영악해서 상대가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편이야. 그러니 너무 좋아하는 티는 내지 마. 그럼 상대가 널 이용해 먹을 테니까."

"오오, 역시 고수는 다르구나. 난 맨날 여자들한테 매달려서 질린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갑질까지 할 필욘 없지만, 비굴하게 숙이고 들어갈 필요도 없어. 어차피 여자가 걔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알았지? 세상 절반이 여자다."

"응. 명심할게, 도훈아."

필두는 도훈의 말에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거야 도훈이 너니까 가능한 것도 있겠지…. 이미 얼굴로 먹고 들어가는 게 있는데 나로선 따라하기 힘든 전략이라고.'

"가자. 1층에서 보기로 했어."

도훈와 필두가 방을 나서려는데 아침을 먹고 온 다른 친구들과 마주쳤다.

"야. 아침 존나 맛있었는데."

"어? 근데 너네들 쫙 빼입고 어디 가냐?"

"설마 여자들 만나러?"

도훈이 난처한 듯 말했다.

"응. 아침에 여자들한테 연락왔는데, 필두로 결정했데."

"와 씹! 왜 필두지?"

"말도 안 돼! 필두보단 그래도 내가…."

"자식들아. 형이 선택받았으니 너무 아쉬워 마. 여자들의 선택을 존중해야지."

"개새끼 존나 부럽네."

"어쩐지 아침도 거르더라."

"기왕 간 거 잘 놀고 와라."

"그래, 우리도 남아서 여자 꼬실 거야. 오늘 식당에서 본 여자 애들 괜찮더라."

다행히 다른 룸메이트들은 필두가 선택받은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쿨한 친구들이었다.

"그럼 우린 놀다 올게."

"그래, 저녁에 파티 때 보자."

1층으로 내려가 리나와 귤희를 기다리는데, 30분 정각을 지나서도 여자들이 나오질 않았다.

"좀 늦는 거 같은데?"

"기다려주자. 원래 여자들은 준비할 게 많잖아."

도훈은 감히 자신을 기다리게 만드는 두 사람에게 살짝 짜증이 났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시간 개념 하고는."

"뭘 또 그렇게 아침부터 성을 내. 밖에서 담배나 피우고 있자."

필두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끌고 가기 위해 도훈을 진정시키고는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직접 담배를 꺼내 도훈에게 물리고 불까지 붙여주는 모습은 도훈의 비서처럼 보였다.

"여기 불."

"뭘 이렇게까지."

"아니야 도훈아. 그래도 네 덕에 여자들 분 냄새라도 맡아보는데 이 정돈 해야지."

"내 덕이 아니고 여자들이 고른 거라니까."

"그래도 인마. 어쨌든 네 덕에 내가 떡고물이라도 묻은 거지.

흐흐 고맙다. 맞다. 혹시 마음에 드는 여자애는 있어?"

"응?"

"당연한 소리지만 난 둘 중 누구라도 상관없거든. 도훈이 네가 마음에 드는 애 먼저 고르고 나면, 남은 애로 할게."

[여자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주의군요, 필두군은. 저 정도면 약간 안쓰러울 정돈데요.]

'원래 궁하게 되면 나중엔 물불 안가리고 달려드는게 또 남자거든. 필두는 상대가 빅 걸에 얼굴 씹창이었어도 상관없었을 걸?'

[에이, 아무리 궁해도 그 정도는 아니죠.]

'진짜라니까? 왜, 나이트에서도 그렇잖아. 처음에 눈 높을 땐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허송세월하다가 결국 나이트 나갈 때 되면 그냥 닥치는 대로 아무나 손잡고 나가는 거. 남자가 진짜 몰리면 얼굴이고 몸매는 보이지도 않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필두군은 그나마 다행이군요. 귤희양이나 리나양이 평균 이상은 되니까요.]

'음, 냉정이 말해서 상위 15% 전후지. 에이스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예쁘다는 소리는 자주 듣는.'

[아무튼 오늘 리나양을 공략하셔야 미션이 완성되니, 필두군은 귤희양을 커버해줘야 겠군요. 근데 귤희양이 과연 필두군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싫어도 하게 할 거야.'

"굳이 일부러 안 그래도 돼.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정해지겠지."

두 사람이 담배를 다 피울 때쯤 리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나왔어. 오빠 어디야?

"어. 뒷마당에서 담배 피우는 중."

-미안. 오빠가 연락할 때까지 귤희가 못 일어나서…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

귤희는 어제 새벽 도훈과의 관계 이후 뻗어버린 모양이었다. 도훈은 자신의 책임도 조금 있었기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은 더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우리가 앞으로 갈게."

통화를 마친 도훈이 필두에게 말했다.

"가자. 애들 나왔데."

"도, 도훈아 나 괜찮냐? 머리 좀 흐트러진 것 같은데."

필두는 핸드폰 셀카를 켜놓고 사력을 다해 머리를 다듬는 중이었다. 평소와 달리 굳은 표정이 그의 긴장된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필두야. 남자는 자신감이야. 나머진 거들 뿐이고. 자신감만 챙겨."

"그, 그렇긴 한데…."

"가자고."

"어, 어."

두 사람이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으로 나오자 귤희와 리나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스럽게 살랑거리는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리나와, 몸 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청바지에 빅사이즈 라운드 티를 입은 귤희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도훈 오빠!"

귤희가 졸린 표정으로 눈을 비비고 있다가 도훈을 보더니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다. 마치 어젯밤 일에 대해 서로 사인을 주고받는 눈치였지만, 도훈은 딱히 티내지 않았다.

"어, 리나도 안녕."

귤희의 반응에 시큰둥해 있던 리나는, 도훈의 인사에 수줍게 고개만 끄덕였다. 첫 반응만 봐도 활달한 성격의 귤희와 내숭을 떠는 리나의 상반된 성격이 드러났다.

"이쪽은 우리 방 동갑 친구. 오늘 같이 밥 먹기로 한."

"안녕하세요. 도훈이 친구 필두라고 합니다."

필두는 귤희와 리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입이 귓가에 걸릴만큼 좋아했다.

'대박. 존나 예쁘다. 도훈이는 어떻게 이런 애들을 꼬신 거지?'

날씨가 맑은 편이라 햇빛이 자연 조명이 되어 여자애들을 비추고 있었다. 원래도 예쁜 편이긴 했지만, 제주도의 풍광과 어우러진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미쳤다. 남는 여자애 아무나가 아니라 둘 중 누구든 엎드려 절 하면서 받을 듯.'

"네. 안녕하세요."

"저희 말 편하게 해도 되죠?"

두 사람은 도훈에게도 반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필두에게도 똑같이 반말을 쓰려고 했다. 필두는 반말이 아니라 명령을 해도 따를 각오였기 때문에 단박에 수락했다.

"어. 편하게 해. 근데 저희 아점 먹으러 간다고."

"아점이 뭐야? 브런치지. 유명한 브런치 가게 하나 알아놨는데."

"걸어갈만 해?"

"5km정도 떨어져 있던데 괜찮으려나?"

"가다가 지칠 거 같은데. 오빠 차 없어?"

도훈은 당연히 신분증을 늦게 돌려받았기 때문에 렌트를 할 수 없었다. 귤희가 혹시나 싶어 필두에게 물었지만, 필두는 난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 그게 나도 혼자서 여행 온 거라…."

제주도에 혼자 여행온 필두의 입장에선 차를 렌트하는 건 사치였다. 그러다 문득 필두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모두에게 말했다.

"오토바이는 있어."

"오토바이?"

"어."

"근데 우리 다 탈 수 있어?"

"잠깐만."

필두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급히 어디론가 전화했다. 금방 통화를 마친 그가 도훈에게 말했다.

"준성이도 바이크 가져왔거든? 잠깐 빌리기로 했는데 도훈이 너 몰 수 있지?"

"바이크? 뭐, 운전면허는 있으니까."

"잘 됐다. 내가 금방 키 받아서 올게."

필두는 꼬봉처럼 잽싸게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그가 사라진 사이 귤희와 리나가 서로 눈치를 보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오토바이에 각각 두명씩 타면 둘 중 한명만 도훈 오빠랑 탄다는 소린데.'

'당연히 도훈 오빠가 나를 고르겠지? 어제 새벽에 같이 한 일이 있는데.'

서로 누가 도훈의 뒤에 탈 것인가를 얘기하려는데 도훈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근데 그 브런치 가게 위치가 어디라고?"

"제가 알아요."

"그럼 귤희 네가 필두랑 같이 타고 길 안내해줘. 난 리나 태우고 뒤 따를 테니까."

"아니…."

도훈의 일방적인 선언에 귤희가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괜히 도훈의 말에 반발했다간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웠다.

'쳇. 잠깐 같이 타고 가는 거니까 뭐.'

잠시 필두가 돌아와 도훈에게 키를 건넸다.

"여기. 준성이 바이크는 좀 좋은 거야. 내건 렌트지만 준성이는 뭍에서 배에 실어서 왔거든. 배기량 높은 거니까 너무 당기지 말고."

"응. 알았어."

게스트하우스 앞 차고지에 가니 오토바이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는데 필두가 준성의 바이크를 가리켰다.

"저거 같아. 스즈끼."

"오, 비싸보이는데?"

"안 그래도 준성이가 제발 넘어뜨리지만 말라더라고."

"알았어."

[주인님. 근데 바이크 타실 줄은 아시는 거죠?]

'몰라도 돼. 어차피 금방 배울거니까.'

[역시.]

"그럼 어떻게…."

필두는 누굴 태워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으로 귤희와 리나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그의 입장에선 누굴 태우더라도 땡큐였다.

"제가 위치를 아니까 제가 필두 오빠 뒤에 탈게요."

"아, 그래. 근데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귤희요."

"규리?"

"귤. 희."

귤희가 살짝 감정 섞인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안 그래도 리나가 도훈과 같이 나뉘어 짜증나던차에 이름도 제대로 못 알아 듣는 필두가 좋게 보일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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