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5. 제주도 푸른 밤-15-
어차피 필두를 파트너로 정한 이상 도훈은 더 이상 본색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은 아까 자판기 쪽에 내려왔던 애 있었잖아. 귤희라고 하는애."
"규리?"
"아니 제주도 귤 할 때 귤, 희."
"아하. 난 또 박규리라는 줄."
"박규리는 또 누구야?"
"몰라? 박규리, 빠구리. 이름부터 존나 꼴리지 않냐? 크하하."
실없는 농담에 도훈의 입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야."
도훈이 진지하게 얘기하자 필두가 각잡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알았어. 귤희가 왜?"
"귤희가 밖에 서 있는 니들 얼굴 보면서 나한테 묻더라고."
"뭐라고?"
"저 중에서 제일 떡감 좋은 애가 누구냐고."
"헉! 니들 벌써 그런 얘기까지 해? 오늘 비행기에서 첨 봤다지 않았어?"
필두가 문화 충격을 받았는지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맞아."
"근데 정말 그렇게 물었다고?"
"어."
"도훈이 너 혹시 벌써 걔랑···."
"잤냐고? 아니. 근데 몇 번 말 섞어 보니까, 사이즈 나오더라고. 존나 밝히는 애야. 제주도 놀러 온 것도 남자 구하러 온 거고."
"와, 씹. 대박 전혀 그렇게 안생겼는데."
"그럼 어떻게 생겼는데?"
"아니, 그렇게 예쁜 여자애가 그랬다고 하니까 믿기지가 않아서."
"그럼 못 생긴 애가 그랬으면 믿겠어?"
"그, 그건 아니지만."
"필두야 잘 들어."
"으, 응."
"여자는 예쁜 애들이 더 야해."
"헐!"
"암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내가 뭐라고 대답했게?"
"설마 나는 아니지?"
"아니, 맞아 너. 니가 제일 잘할 것 같다고 살짝 귀뜸해 줬어."
"헐, 대박! 도훈아. 삼국 동맹은 역시 영원한 거구나!"
"너무 들뜨지는 말고. 아직 답장이 온 건 아니니까. 근데 아마 널 고를 것 같아."
"자, 잠깐만 내가 약간 지금 머리가 띵해지는데, 그럼 걔들 남자 구하는 목적이···."
"맞아. 원나잇하려고 온 거야."
"미쳤네. 제주도까지?"
"뭐, 겸사겸사겠지. 맛있는 것도 먹고, 신기한 것 구경도 하고.
근데 걔들 100퍼 같이 잘 남자 구하고 있어."
"와···. 도훈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왜? 존나 쓰레기같아?"
"아니, 존나 멋있다고. 이게 포식자라는 거구나. 찬우가 괜히한 말이 아니네."
"흐흐. 어쨌든 그쪽도 둘이니까 나도 한명이 더 필요하거든. 혼자서 둘을 감당하긴 좀 벅차니까."
"너 혹시 그럼 스리섬도 해봤어? 해봤겠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둘이 절친이라 어차피 찢어야 해."
"하긴. 모르는 사이면 몰라도 아는 친구끼리 남자 한명이랑 ···. 어우야, 나 상상만 해도 꼴린다."
"암튼 주면 먹는 다는 거지?"
"그거야 당연하지! 근데 걔들이 준대?"
"이제까지 뭐 들었어?"
도훈이 답답한 듯 되묻자 필두가 소심하게 대답했다.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걔들이 너한테 주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내가 뭐라고 주겠어? 솔직히 내가 너랑 비교나 되냐? 키부터 얼굴까지 뭐 하나 잘난 것도 없는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내가 말만 하면 둘 중 누구든 니가 따먹을 수 있다는 거지."
"헐! 그, 그게 가능하다고?"
"어. 내가 그렇게 만들테니까."
도훈의 당당한 모습에 필두는 섹스의 신이라도 영접한 듯한 모습이었다. 잘생겼다고 생각은 했지만, 쾌도난마처럼 거침없이 지르는 모습에서 약간의 카리스마까지 느끼고 있었다.
'대박, 도훈이는 찐이야. 진짜 포식자였어.'
"원하면 말 해."
"도훈아. 지금 내가 손 발이 막 떨리려고 하는데···."
"왜? 긴장했어?"
"아, 아니 감격해서. 내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챙겨주는지···.
나 돈 같은 것도 없어. 이것도 배낭 여행 온 거거든. 그러니까 ···."
"됐어. 너한테 뭘 바라는 거 없어."
"그럼 왜 나를···. 찬우도 준성이도 있는데···."
"누구보다 절실해 보여서."
"어?"
"아까 좆대봐라 할 때."
"아···."
"바지 내리는 건 그럴 수 있다 쳐. 목욕탕만 같이 가도 어차피 서로 까고 보는 거니까. 근데 거기서 세울 줄은···. 그때 생각했어. 필두는 진심이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도 스스로 세우는 사람을 돕는 거지."
"도훈이 너 말도 엄청 잘하는 구나. 아까는 너무 말수가 없어서 되게 조용한 성격인 줄 알았어."
"그땐 별로 말할 필요가 없었거든. 오디오가 비지도 않고."
"아···."
"암튼 받아들이는 걸로 알고 있을 게. 내일 기대해도 좋아."
"도훈아, 나 진짜 너한테 너무 고마워서···. 내가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지."
도훈이 피식 웃었다.
"보답같은거 바라고 하는 게 아니야. 대신, 할 땐 제대로 해. 걔들 딱 보니까 걸레같은 애들이라 어설프면 엄청 실망할 거야."
도훈의 말에 이제껏 쩔쩔매던 필두가 처음으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도훈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자신있어."
"너 여자 셋 밖에 안 만나 봤다며."
"맞아. 그렇다고 경험이 적다고 한 건 아니니까."
"호오."
"내가 또 사귀면 한 명이랑 주구장창하는 스타일이라서."
"멋지네. 기대해도 되지?"
"응."
몰래 밀약을 마친 그들은 편의점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남아있던 찬우와 준성은 그때까지도 싸우고 있었다.
"너 노가다는 뛰어 봤냐? 벽돌 이빠이 지고 날라봤어?"
"노가다 가지고 지랄. 너 혹시 장례식장 일은 해봤냐? 시체 염하는 거 도와준 적 있어?"
"와씨, 너 그럼 특수청소라고 혹시 아냐? 사람 죽은 집에서 무슨 냄새 나는지 말해줘?"
"야 개새끼들아. 아직까지 싸우냐? 그만 좀 해라."
"이 새끼 입만 열면 구라라니까?"
"너는 어떻고?"
"그러지 말고 술이나 먹고 짠 하자. 우리끼리 싸워서 뭐해. 싸울 거면 다른 방 남자들이랑 싸워야지."
"하긴. 다들 경쟁자니까. 그래도 우린 한 팀이다?"
"당연하지! 우린 그래도 에이스 도훈이도 있잖아!"
"도훈이 최고!"
편의점에서 막 사들고 온 캔맥주를 깐 네 사람이 힘차게 캔을 부딪혔다. 모두 한팀이라고 하면서도 필두는 도훈과 눈을 마주치며 게슴츠레 웃고 있었다.
'흐흐, 애들아 미안하다. 내일 더블 데이트는 이미 내가 낙점 된 것 같아. 아니지, 더블 데이트가 아니라 떼씹이려나?'
* * *
'하, 저년은 왜 아직 안 자는 거야?'
피곤에 지친 귤희는 계속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리나의 눈치를 살폈다. 비행기 타고 저녁에 도착한 일정이라 많이 피곤할 텐데, 두 사람은 새벽이 다 되도록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얼른 잠이 들어야 도훈 오빠랑 몰래 만나러 갈텐데···.'
귤희는 도훈과 새벽에 따로 만나기로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리나가 잠들면 밖으로 몰래 빠져나갈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한 년 보소. 꼬박 날 샐 작정인가? 귤희 저년 잠들면 도훈 오빠한테 톡해서 따로 만나려고 했는데 왜 안자는 거야?'
이상동몽(異床同夢).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침대에 있으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참다 못한 귤희가 먼저 움직였다.
"안 자? 불 끌까?"
"어. 그래. 자자."
귤희가 조명을 끄자 방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잠시 후 각자가 누운 침대 위에서 핸드폰 불빛이 다시 반짝였다.
"폰 보다 자려고?"
"어. 너튜브 보고 있어."
사실 리나는 무선 이어폰을 끼우고 있지만 아무것도 켜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가 폰을 계속 쥐고 있는 이유는, 도훈에게서 답장을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장리나 : 아, 잠 안 온다.
-장리나 : 오빠 자요?
-장리나 : 오빠 안 자면 잠깐 바람이나 쐴까요?
-장리나 : 오빠?
리나는 답신 없는 대화창을 쳐다보다가 그대로 폰을 덮고 누워버렸다.
'에이씨, 룸메이트들하고 술 먹는 다더니만 깨톡은 읽지도 않네.'
리나가 포기하고 눈을 감자 귤희 역시 함께 자는 척하며 계속 그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라, 얼른 자 이년아. 제발.'
하지만 한참을 눈을 감고 자는 척 누워있어도, 리나는 잠든 것 같지 않았다.
'아, 안되는데. 이러다 내가 먼저 쓰러지는 거 아니야?'
친구를 먼저 재우려 눈을 감고 있으니 오히려 피곤이 더 몰려오는 귤희였다. 그녀는 스스로 팔목을 꼬집으며 잠을 몰아냈다.
'안 돼. 정신 차리자. 이대로 잠들면 도훈 오빠를 만나러 갈 수가 없다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던 귤희는 신박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 차라리 자위를 해버리면···.'
남자들은 자위를 통해 물을 빼면 순식간에 피로감이 몰려오지만, 여자는 오히려 각성된다는 점에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어차피 불도 껐겠다 이불 속에서 몰래 하면 안 들킬거라고 생각한 귤희가 자연스럽게 팬티 밑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헐, 아직도 젖어있네?'
아까 도훈의 잦이를 빨아서 그런지 여전히 팬티는 축축한 상태였다.
'하긴 안 젖은 날이 더 드물긴 하지.'
귤희가 남자를 밝히는 건 타고난 기질도 한몫했다. 섹스에 일찍 눈을 뜨기도 했지만, 그녀는 원래부터 음탕함이 몸에 녹아 있었다. 특히 남자랑 같이 있을 때면 손만 잡고 있어도 애액이 흐를만큼, 음기가 강한 편이었다.
'아···. 아까 도훈 오빠꺼 빨았더니 상상이 잘 되네.'
도훈의 물건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물론 키를 봐선 작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물은 그녀의상상을 뛰어 넘었다. 그녀가 남자를 볼 때 키를 보는 이유는, 적어도 키가 큰 사람이 소추인 경우는 확률적으로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존나 컸어. 턱이 얼얼할 만큼···.'
도훈의 잦이를 떠올린 귤희가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클리토리 스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미 물기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윤활제도 없이 예민한 공알이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졌다.
"흐응···."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한 귤희가 황급히 입을 틀어 막았다.
'못 들었겠지?'
어찌나 놀랐는지 심장 박동 소리가 자기 귀로 들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맞은편에서 자고 있는 리나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휴우-. 깜짝이야. 불 꺼놓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귤희가 다시 자위에 집중했다. 하지만 자는 척 눈을 감고있던 리나는 팔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와, 미친년. 설마 지금 내 옆에서 혼자···.'
아무리 봐도 자면서 끙끙대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신음이었다.
뒤척이는 척 귤희 쪽 방향으로 돌아누운 리나는 어둠 속에서 귤희의 이불 밑이 들썩이는 걸 확인했다.
'헐, 진짜로 하고 있잖아? 어떻게 내가 옆에 있는데 저럴 수 있지?'
귤희가 본래 음탕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자기랑 단둘이 여행와서 저럴 줄은 상상도 못했던 리나였다.
'돌았네 진짜. 하여간 걸레같은 년, 하루라도 물을 안 빼면 잠을 못자나 보네.'
리나는 귤희가 30분 넘게 사라졌을 때 분명 남자를 만났다고 확신했다.
'맞아. 그때 남자를 만났는데 제대로 못 한 거야. 솔직히 사람들다 있는 데서 어디 가서 하겠어? 적당히 몸만 달아놓으니까 저렇게 혼자 하는 거겠지.'
리나는 친구의 자위를 훔쳐보는게 민망하고 역겨워 반대로 돌아누워 버렸다.
'진짜 볼꼴 못 볼 꼴 다 보여주는 구나 귤희 넌. 바닥까지 드러낼 셈인가 봐.'
리나는 이불 속에서 조용히 음악을 켰다. 이어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마음이 조금 진정될 수 있었다.
'그래, 넌 혼자서 실컷 쑤셔라. 난 내일 오빠랑 둘이서 할 테니까.'
이미 도훈을 마음에 점 찍어 두고 있던 리나는 도훈과 만날 생각에 기대감에 부풀어 잠을 청했다.
* * *
"이제 슬슬 잘까? 내일도 일정이 있으니까."
"그래. 혹시라도 도훈이랑 같이 여자 만나러 갈수도 있으니까 난 자야겠다."
"준성아, 너는 아닐 듯."
"좆까. 찬우 너도 기대 접는 게 좋을 거다."
"또 싸우네. 그냥 자자."
"잘 자라."
자연스럽게 파장 분위기가 되자 하나 둘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필두와 도훈은 펼쳐둔 캔맥주와 과자 봉지를 정리했다.
"도훈아. 먼저 자. 이건 내가 치울테니까."
"왜? 같이 해야지."
"아니야. 내가 너한테 고마운게 많아서 그래."
"풉-. 그래라 그럼. 난 막 담배 피우고 올게."
"담배 끊는다지 않았어?"
"개가 똥을 끊지. 그냥 포기했어."
"역시!"
필두를 뒤로하고 방에서 나온 도훈은 슬슬 귤희를 불러낼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연락처도 모르는데 어떻게 부른담?'
[이런. 리나양 연락처밖에 모르는데 큰일이군요.]
'혹시 자고 있으려나?'
[잠들었을지도 모르죠. 새벽 2시가 다되어가니까요.]
'음. 그래도 일단 방을 아니까 가봐야지.'
도훈은 2층으로 내려가 리나와 귤희가 묵고 있는 방 앞에 섰다.
특별히 여자 남자 구분이 없이 2인실과 4인실로만 구분 되어 있었기에 그가 2층에 서 있는건 딱히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노크를 했는데 귤희가 아닌 리나가 나오면 어떡한다?'
[근데 상관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순서의 차이지 둘 다 공략 대상이니까요.]
'그것도 그렇네. 둘 다 깨어있지만 않으면 되는구나.'
결심을 한 도훈이 방문을 조용히 노크했다.
똑똑똑-.
미약한 소리였지만, 고요한 새벽시간이라 잠이 들지 않았다면 충분히 들릴만한 소리였다. 하지만 노크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도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이런. 큰일이네. 다시 두드려봐?'
도훈이 다시 노크를 하려고 문을 두드리려 하는데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방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