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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68화 (1,548/2,000)

1568. 정체불명의 그녀-54-

* * *

"혹시 이 사람 누군지 알아보겠어?"

사실 미향에게 사진을 보여줄 때 만해도 별다른 기대감은 없었다. 경찰대녀가 만에 하나 PK단에 이미 당했다고 해도, 전국적으로 흩어진 PK지부들끼리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한 누군지도 모를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실낱같은 기대감으로 물어본 것일 뿐.

"누군데요? 여자친구? 예쁜 것 같은데?"

미향은 처음엔 사진 속 인물이 여자라는 것에만 흥미를 보였다.

"몰라?"

"제가 어떻게 알아요. 다짜고짜 사진만 보여주면···. 응? 뭐라고? 잠시만요."

미향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갑자기 혼자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정말? 아닐텐데? 이 얼굴이 맞다고? 말도 안 돼. ···어떻게 이 사람을 도훈씨가 알고 있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미친년이라고 했을 것이다.

영혼들끼리 대화가 끝났는지 미향이 눈을 번뜩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을 어떻게 알고 있죠?"

"아니, 그건 내가 물었는데?"

미향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계속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귀신들린 사람처럼 소름돋았기 때문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확실해. 맞아. 약간 어린 느낌이 나긴 하지만···. 그래, 언니 가 나서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이런 큰일은 내가 감당하기 벅차니까."

미친 듯이 방언을 중얼거리던 미향이 접신을 한 것처럼 부르르몸을 떨었다. 실제로 지리산에 가서 귀신까지 만나본 나였지만, 미호의 영혼이 바뀌는 모습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기괴했다.

부들부들.

팔다리가 축 늘어진 채 시체처럼 움찔거리던 미호의 눈빛이 갑자기 노란색으로 변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바뀐 사람은 아까 등장했던 '하나'다. 천방지축 날뛰던 두나의 언니.

"이 여자와 대체 무슨 사이지?"

"아니, 묻기는 내가 물었다니··· 큭!"

그때였다. 하나로 변한 미호가 갑자기 손아귀로 내 목젖을 강하게 밀치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기습에 나도 모르게 기도가 막힌 것처럼 호흡이 턱 막혔다.

"크헉!"

목젖 치기에 눈앞이 번쩍하는데, 그 순간 연타로 하나의 엘보어택이 관자놀이를 향해 쇄도했다.

'이런 미친 년이! 동생보다 더 하네!'

한 번은 당했지만, 두 번은 당할 수 없었다.

특히 하나가 선보이는 기술은 죄다 급소를 노리는 일격 필살기에 가까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첫 번째 기습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이타로 날아온 팔꿈치 공격에 머리가 깨졌을 것이다.

나는 급히 호신강기를 일으킴과 동시에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여 팔꿈치를 막아냈다.

쿵-!

하지만 작은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가공할 파워에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였다.

[조심하십시오 주인님!]

'아니, 왜 다짜고짜 사람을 패는 건데! 내가 반격 못할 줄 아나!'

막무가내로 싸우는 두나에 비해 하나의 공격은 일류 파이터처럼 절도있고 깔끔했다. 특히 급소를 망설임없이 노리는 솜씨가, 일격필살의 근접격투술을 익힌 듯 했다.

팔꿈치 공격이 막힌 하나는 기다렸다는 듯 무릎을 걷어 올려 낭심을 노리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지. 누굴 고자로 만들려고!'

화가 난 나는 그대로 몸을 틀어 어깨로 들이받았다. 몸 전체에 강한 기운을 응축해 터트리는 기술로 달려오는 황소도 튕겨 나갈만큼 강력한 숄더차징이었다.

콰광-!

서로의 기운이 충돌하며 하나가 멀리 튕겨 나갔다.

제자리에서 몸통만 회전해 어깨로 밀었음에도, 8톤 트럭에 치인 것마냥 날아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담벼락까지 밀려난 하나는, 담장의 콘크리트가 패일 정도로 세게 부딪혔다. 입가에서 살짝 핏물이 흐르는 걸 보니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크흑."

"뭔데 다짜고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진짜 여자고 뭐고 안 봐준다."

하나가 손등으로 핏물을 쓱 훔치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네놈이 어떻게 제주지부를 학살한 플레이어를 알고 있는 것이냐!"

"뭐, 뭐라고? 무슨 소리야?"

"네놈이 보여준 그 사진 속의 여자가, 몇해 전 제주지부 단원들을 몰살시키고 간 플레이어란 말이다! 말해. 처음부터 그년과 한 패였지?"

아니 씨발, 이게 무슨 개똥같은 소리야?

머릿속이 혼돈에 빠지고 말았다.

'잠깐만, 그러니까 경찰대녀가 제주지부를 쓸어버렸던 랭커 플레이어였단 말이야?'

[반응을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잠깐. 진정하고 내 말 들어봐. 난 이 여자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어떻게 사진을 가지고 있지?"

"너야말로 제대로 설명해봐. 잡지도 못하고 도망갔다는 여자 얼굴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영상이 남았다. 요샌 CCTV가 지천에 깔려있으니까."

"뭐라고?"

"그년이 확실해. PK단에서도 근래 들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니까. 전국에 수배 전단이 뿌려졌고, 오랫동안 추적이 이어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미호를 끌어들인 것도 그년과 작당한 거지? 그 악마같은 학살자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것이냐?"

'어떻게 이럴 수가.'

[주인님, 일단 하나부터 진정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결계 때문에 외부에 소리가 새어 나가진 않았지만, 이성을 잃은 모습입니다.]

'아씨, 왜 하필 쟤가 대표인격으로 나온 거야?'

하나는 딱 봐도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외골수 스타일이었다. 분명 나를 적으로 확신하고 처음부터 급소를 노린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은 오해부터 풀어야 했다.

"잠깐만. 내 말부터 들어."

"닥쳐라. 악마 같은 플레이어 놈들!"

"아씨, 쫌 진정 하라고!"

말로는 안될 것 같아서 살기를 잔뜩 끌어냈다.

몸안의 내공을 있는 그대로 밖으로 표출하자 하나도 놀랐는지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 네놈이 언제 그렇게···."

"아니, 생각해 보라고. 내가 정말로 이 여자랑 한 패였으면 대놓고 사진을 보여줬겠냐고. 나도 누군지 모르니까 물어본 거잖아."

"그럼 어떤 경유로 그 사진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나는 거두절미하고 대강의 사정을 요약해 설명했다.

하나는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으나, 사실 벽창호같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라기보단 미호의 몸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으음, 거짓일 수도 있어. 아니야, 확실해. 플레이어들끼린 서로 힘을 합치기도 하니까. 내가 볼 땐···."

혼자서 한참 중얼거리던 하나가 갑자기 나를 향해 말했다.

"흐음. 듣고 보니 내가 조금 성급했던 것 같군. 기습 공격에 대해선 사과하겠다."

"참나, 갑자기 선빵 날리고 미안하다면 다야?"

[주인님 고정하십시오.]

'고정하게 생겼냐? 아직도 목이 얼얼한데.'

누구한테 제대로 가격당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간만에 고통스러운 감각이 밀려왔다. 마법사에 가까운 미호였지만, 근접 격투 능력 또한 발군이었다.

[계속 말다툼해봐야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지 않습니까? 어찌 됐건 경찰대녀의 신상을 파악했으니, 어느정도 성과도 얻었고요.]

'흠, 그런가.'

"다시 한번 사과한다. 나 역시 부상을 입었으니, 이것으로 화해 하기로 하지."

"부상이라고?"

담벼락에 몸이 박혀있던 하나가 몸을 일으키자, 벽에서 콘크리 트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기 했겠지만, 트럭에 치인 충격이었을테니 어느정도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흠, 나도 미안.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로 하지 그랬어?"

괜히 민망해서 투덜거리는데, 어느새 인격이 바뀌었는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와는 오래간만에 보는 구나."

"아니, 이 옛스런 말투 뭐지?"

"효옥이니라."

"아, 효옥씨."

"다소간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나쁜 감정은 훌훌 털도록 하라."

"네, 마님.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일부러 효옥을 놀리려고 빈정거리는데, 앞으로 걸어오던 효옥이 털썩하고 마당에서 쓰러지는 것이었다.

"으잉? 왜 그래 아줌마?"

"흐, 흐윽. 내상을···."

효옥이 이번엔 울컥 피를 토했다. 아까 하나가 흘렸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몸통 박치기로 날아간 충격이 예상보다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뭐하십니까 주인님? 얼른 부축을!]

'그, 그렇지.'

"얼른 업혀."

나는 효옥에게 잽싸게 달려가 등을 내밀었다.

주저앉아있던 효옥이 가까스로 등에 매달리자 나는 훌쩍 그녀를 들어 안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효옥을 눕히는데, 안색이 순식간에 파리해져 있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로, 로시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얼굴빛이 사색으로 변하는데?'

[주인님의 공격에 내상을 심하게 입은 것 같습니다.]

'뭐라고? 그렇게까지 심하게 안 밀친 것 같았는데?'

[그거야 주인님 생각이고요. 미호는 어쨌든 마도사이지 전사가 아닙니다. 공격을 직격 당했으니 충격이 컸을 겁니다. 아마도 급하게 호신강기를 일으키느라 제대로 발현이 안됐고, 충격을 상당부분 몸으로 흡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젠장. 그럼 어떻게 해야해?]

'내상을 입은 상대에게는 내공으로 치료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내공으로 치료한다고? 어떻게?]

'효옥을 가부좌를 틀어 앉히고 등 뒤에서 내공을 밀어 넣어 주십시오. 일전에 절에서 스님들이 했던 것처럼요.'

[아아, 기억난다!]

나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효옥을 억지로 일으켰다.

"자, 잠시만 내가 도와줄게."

시체처럼 흐느적거리는 효옥의 등 뒤에 앉은 나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그녀의 등에 손바닥을 붙였다.

[주인님! 맨살이 닿아야 내공이 전달됩니다. 매개물이 방해를 하게 되면 손실이 커집니다.]

'젠장!'

나는 그말을 듣자마자 효옥의 상의를 좌우로 찢어 버렸다. 부욱하고 옷이 찢겨지는데도 여전히 효옥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브래지어까지 모두 제거한 나는 다시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받치며 내공을 밀어 넣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지?'

[네. 몸속의 내공을 천천히 손바닥으로 발출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기운이 제법 빠져나가겠지만, 그녀가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겁니다.]

'아이고, 병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니 전력으로 누군가를 공격하긴, 천상 크래프트에서 말고는 처음인 것 같았다. 그 상대가 그나마 구미호인 미호였기에 망정이지, 일반인이었다면 담벼락에 처박혀 즉사했을 것이다.

'아아, 미쳤지 내가. 여자를 그렇게 세게 밀치다니.'

[주인님이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하나가 급소를 노리긴 했지만, 살수처럼은 안보였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다.

몸속의 기운을 점점 등뒤로 밀어넣자 핏기를 잃은 채 기절해있던 효옥이 천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흐, 흐읏.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냐?"

"내공을 보내고 있으니 조금만 참아. 나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으으. 혹여 엉큼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네 경을 칠 것이야!"

효옥은 상의가 발가벗겨진 게 부끄러운지 유난히 오버했다. 그녀의 카랑카랑한 호통을 듣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근데 웃기네 저 여자도. 그때도 저렇게 자신만만 큰소리 치다가, 나중엔 좋다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효옥은 자존심이 강해보이니 너무 놀리지 마십시오. 지금 상황이 몹시 부끄러울테니까요.]

'나도 다친 사람한테 욕정을 품을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라고.'

효옥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자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다쳤으면 첨부터 말하지."

"하나는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니라. 네놈 앞에선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고 누님에게 바통터치를 한다고?"

"너무 나무라지 말거라. 오해로 빚어진 일이니."

"아니 나무라는 게 아니고, 다쳤으면 다쳤다고 얘기를 했어야지. 갑자기 기절해서 얼마나 놀랬다고."

"···놀랬느냐."

"당연하지. 이제 나랑 같은 배를 탄 몸인데. 우린 같은 팀이잖아."

내 말에 효옥이 잠시 어깨를 들썩였다.

감동으로 우는 것인지, 아니면 웃음을 참고 있는지 헛갈리는 동작이었다.

"응? 왜 그래?"

"···아니다. 네 진심을 알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그만하거라."

"이제 괜찮아 진거야?"

"뒤는 괜찮아 졌다."

"뒤는?"

효옥이 갑자기 가부좌를 튼 자세로 몸을 앞으로 돌렸다.

"뭐, 뭔데."

"앞으로도 기운을 보내거라. 그것이 더 효과가 좋으니."

은근히 뻔뻔한 효옥의 태도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이번엔 효옥의 커다란 젖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아···. 양강의 기운이 밀려 들어오는 구나."

"원래 앞으로도 하는 거야? 사실 난 처음이라."

"앞이든 뒤든 상관없느니라. 살이 맞닿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호오."

효옥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니 아까처럼 핏기가 빠진 얼굴이 아니라, 생기가 돌고 있었다. 특히 입술에 빨갛게 혈색이 돌아온 것이 이미 어느정도는 회복된 상태 같았다.

'가만.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건가?'

효옥이 장난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나도 일부러 그녀의 젖가슴을 두손으로 주물렀다.

"흐, 흐응."

"이러면 더 기운이 빨리 전달되나?"

"그, 그런것도 같구나."

"그럼 계속 주물러야겠군."

나는 효옥의 젖가슴을 꽉꽉 주무르면서 물었다.

"근데, 그 제주지부 학살자라는 플레이어에 대해서 좀 더 알려 줄 수 있어?"

"무, 무엇을 더 말이냐."

효옥이 호흡이 흐트러진 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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