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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67화 (1,547/2,000)

1567. 정체불명의 그녀-53-

도훈의 제안에 미호의 몸 안에서 영혼들이 격론을 벌였다.

-두나. 네가 심했어. 굳이 싸울 필요까지 있었을까?

-무슨 소리야? 두나는 경고를 해주러 온 것 뿐이잖아. 조직을 배신하고 와준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하여간 배은 망덕해.

-암튼, 도훈이라는 플레이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야. 그가 정기를 보충해 준 덕에, 밤마다 남자를 찾아서 떠돌지 않게 된 것도 생각해야지.

-맞아. 언제까지 남자들을 꼬셔서 대주고 다녀야 하냐고.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너무 거지 같았어. 우리가 무슨 창녀도 아니고.

-너희들은 의리도 없니? 지금 동료들은 정처없이 떠돌던 미호를 받아 준 가족같은 존재야. 도훈을 돕는 건 그들을 배신하는 거라고.

-가, 족같은 소리하고 있네? 엄밀히 말하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니까 맺어진 관계지. 그들은 미호를 용병으로 부려먹고, 미호는 플레이어의 정기를 흡수할 기회를 얻으니까. 하지만 도훈이 있으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정기를 정기적으로 공급받기만 한다면 노화에 대해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암튼 난 저 새끼 마음에 안들어. 좆하나 달린 게 무슨 자랑이라고 저렇게 설쳐대는지.

-그건 네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래. 나도 수백년 동안 별의별 사내를 다 받아 봤지만, 저런 사내는 처음이었어.

-뭐야? 정 한번 통했다고 그새 편드는 거야? 하여간 몸파는 계집 출신이라 지조라곤 찾아볼 수 없다니까?

-너 지금 말 다했어?

-둘 다 그만해. 지금이 싸울때야? 냉정하게 판단해. 우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해. 미호가 놈의 손에서 영원히 벗어나느냐, 아니면 계속 같이 함께 하느냐를 정해야 한다고.

-음, 어떻게 정할 건데?

-놈 말대로 투표로 해. 우린 모두 9명이니까, 다수결로 정해지면 군소리 없이 따르는 걸로.

-정작 당사자는 미혼데, 미호만 빼고 하자고? 미호 넌 어떤데?

-난···.

-놈이 그랬잖아. 군령자들끼리 결정하라고. 그러니 우리가 판단해야지. 아니면 군령자답게 군소리 없이 주인에 맞추든지.

-그렇게 해 그럼.

도훈은 한참을 기다렸다.

두나의 눈빛은 혼이 빠진 것처럼 흐리멍텅해진 상태였다.

격렬한 저항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육신의 통제력을 완전히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회의 중 인건가?'

[아마도요.]

'속마음을 한 번 읽어볼까?'

[마음의 소리가 동시에 쏟아질텐데 감당할 자신은 있으시고요?]

'하긴 그것도 머리아프겠네. 여자 셋만 모여도 접시가 깨진다는데 아홉명이 동시에 떠들면.'

[차분히 기다려 보십시오. 주인님께도 중요한 결정이니까요.]

잠시 후 흐리멍텅하던 두나의 눈빛이 생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이번엔 노란빛의 색을 가진 게, 전혀 다른 영혼 같았다.

"···누구냐 넌."

"하나."

"하나? 두나랑은 그럼 무슨 관계지?"

"자매 중 맏이다."

도훈이 기억을 떠올려보니, 영혼 중 세자매가 있다고 했다.

각기 이름이 하나, 두나, 세나였는데 아마도 순서대로 이름을 붙인것 같았다.

"흠흠, 그렇군."

"대표로 의사를 전달하러 왔다."

"아니 근데 말투가 원래 그렇게 딱딱해?"

"신경쓰지 마라. 난 원래 이러니까."

하나가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세자매 중에서도 유독 말수가 적은 편이었으며, 평소에도 워낙에 행동이 진중한 편이라 거의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없었다.

"투표 결과를 알려주겠다."

"그래."

"다수결로 정한결과 우리 군령은 4:5로 네 놈과 함께하기로 했다."

"넷이나 반대했다고? 그게 누군데?"

"내가 전할 말은 그것 뿐이다. 그럼 이만."

"잠깐만."

"왜? 더 할말있나?"

"아니, 너랑은 처음 얘기하는 것 같은데 통성명이라도 해야지."

"이름은 이미 말했다."

"아니, 말투가 왜 그렇게 딱딱해? 난 어색한 건 별론데."

"내 말투보다는 네 아랫도리가 딱딱한 것 같은데?"

"아, 아니 이건."

도훈의 발기된 물건을 비꼰 하나는 금세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잠시후 또다른 인격이 튀어나왔다.

"도훈 오라버니!"

"누구야 넌?"

"아잉, 벌써 목소리를 까먹으면 어떻게 해요. 미향이예요."

기생 미향으로 바뀐 미호는 목소리부터 표정까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같은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변화가, 마치 순식간에 얼굴이 바뀌는 변검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넌 또 왜 나왔어?"

"아잉, 섭섭하게. 오빠가 땡기는 것 같아서 나왔지용."

"뭘? 설마 여기서?"

두 사람은 마당 앞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아무리 도훈이라도 야외에서 거사를 치르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뭐, 어때요? 결계도 쳐놨겠다 밖에선 아무도 못볼 텐데요."

미향이 갑자기 다리를 꼬더니 도훈의 허리를 휘감았다. 도훈은 미향이 너무 적극적으로 달려들자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아씨, 두나나 하나 같은 애들 따먹으려고 했는데, 왜 하필 또 기생년이야.'

[아니, 몸은 똑같은데 뭘 그러십니까?]

'영혼이 다르잖아.'

"다리 부터 풀어."

"왜용."

"잠깐 얘기 좀 해.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

도훈이 강제로 다리를 풀더니 몸을 일으켰다.

미향이 섭섭한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이러시기 있기예요? 저는 오라버니한테 투표했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잖아. 특임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줘."

"특임대요?"

"그래. 지금은 정보가 너무 부족해. 몇 놈이나 왔는지, 얼마나 머물다 갈 건지를 알아야 나도 대처를 하지."

"너무 걱정 안하셔도 돼요. 두나가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두나 말대로 집에만 틀어 박혀 계시면 절대 못 찾을 테니까요."

"확실해?"

"당연하죠. 플레이어가 어디 숨어있는지 바로 아는 방법이 있었으면 저희가 고생하면서 찾아다녔겠어요? 발견되는 족족 잡아서 죽여버리지. 아차, 방금 말은 실수."

"흐음. 그렇다고 집에만 계속 틀어박혀 있기는 곤란해. 어찌됐건 난 학교를 다녀야 하니까."

"플레이어씩이나 되어가지고 굳이 학교를 다니시는 이유가?"

"뭐?"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으신데, 굳이 대학 졸업장이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에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암튼, 놈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계속 학교도 못 다니고 폐인처럼 집에 숨어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건 내가 못 견딜것 같거든. 출결 망치면 학점도 엉망이 될 테고."

"흐음. 그러면 어떻게 하죠? 특임대는 이미 저희 지구에 도착했고, 내일부터 당장 수색에 들어갈 거예요."

"놈들이 그렇게 강해?"

미향이 기억을 떠올리는지 볼을 긁적거렸다.

"네. PK단 내에선 흔히 일당백의 용사라고들 하죠."

"일당백이라···."

"플레이어 쪽에 랭커가 있다면, PK단에는 특임대가 있어요.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단원을 선발해서 만든 일종의 특수부대예요.

5년마다 한번씩 기수교체를 하는데, 지금 기수는 역대급으로 꼽히는 멤버들이라고 하더군요."

"특임대 인원들에 대해서 아는대로 설명해줘."

"알려드릴 순 있는데, 맨입으로요?"

미향이 곧바로 수작을 걸었다.

순수하게 돕는다는 마음은 애초에 없어 보였다.

도훈은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그나마 미향은 거래가 통하는 인물이었다.

"알았어. 소원대로 해줄테니까 정보부터 줘."

"잘 됐네요. 안으로 들어갈까요?"

두 사람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종이나 펜 같은 거 있으면 가져다 줘요. 적으면서 설명해 드릴 게요."

"그래."

도훈이 연습장과 볼 펜을 건네자 미향이 한 명씩 이름을 적으며 설명했다.

"현 특임대 기수의 리더는 김태홍이라는 마도사예요."

"김태홍?"

"네. PK단 본부내에서도 상당한 권력을 가진 인물로, 아직 나이는 어려요. 20대 후반이나 됐으려나?"

"호오. 능력이 뭔데?"

"말 그대로 온갖 도술과 요술에 능하죠."

"미호랑 비슷한 계열인건가?"

"음, 냉정하게 말하면 미호보다 훨씬 뛰어나죠."

미향의 설명에 따르면 김태홍이란 마도사는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라고 했다. 보통 쌓은 도력이나 내력으로 평가받는 마도사 계열은 이제껏 환갑이 넘어서야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는 것에 비해, 태홍은 20대 중반부터 말도 안되는 도술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저도 그게 의문이에요. 상식을 뛰어넘는 내력을 가지고 있는 데, 전생자라는 소문도 있고요."

"전생자가 뭐야?"

"말 그대로 전생의 기억을 이어오는 특수 능력자를 뜻해요."

[주인님과 비슷한 것 아닙니까?]

'뭐가?'

[주인님도 40년 인생을 고스란히 갖고, 젊은 이도훈의 몸속에 빙의하셨잖습니까?]

'그럼 김태홍에게도 다른 영혼이 빙의했다는 거야?'

[아뇨. 빙의가 아니라 전생자요.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 다시 태어났다는 거죠.]

'그게 가능하다고?'

[전생자라면요.]

"아니 잠깐 그럼 실제 나이가 20대 중반이 아니라···."

"맞아요. 어쩌면 수백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온 능력자일수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빠르게 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거 죠,"

"기가 막히는 군. 지가 무슨 달라이 라마도 아니고."

"비슷해요. 전생자가 아주 드문 건 아니니까."

"그래?"

"김태홍은 도력이 뛰어난 마도사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하셔야 해요."

"또 누가 있는데?"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임시연도 특임대에 뽑혔을 거에요. 몇해 전."

"임시연? 그건 또 누군데?"

"몇 해 전 PK단 제주 지부 전체가 몰살 당한 적 얘기한 적 있죠?"

"저번에 들었던 것 같아. 그게 임시연이랑 무슨 상관인데?"

"임시연은 당시 제주지부 전체를 관할하던 지역장이었어요."

"지역장?"

"쉽게 말하면 지부장 위에 지역장이 있어요. 여러 지부를 총괄하는 지역 책임자죠."

"이해했어."

"임시연은 당시 간부 총소집으로 서울로 상경한 상태였어요.

그 사이에 일이 터졌고, 불과 3일 만에 제주 지부 전체가 쓸려나가 버렸죠."

"그 플레이어는 잡았어?"

"아뇨. 임시연이 급히 특임대를 대동하고 내려갔을 땐 자취를 감춘 직후였어요."

"흐음."

"그 뒤로 복수심에 불탄 임시연은 지역장을 그만두고 특임대에 합류했죠."

"아무튼 그 임시연이란 사람의 능력은 뭔데?"

"빨라요."

"빠르다니?"

"말 그대로예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요. 순간 가속 능력이 대단해서 총알도 피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말만 들으면 완전 괴물인데?"

"물론 체력이 금방 방전되니까 오랫동안 유지할 순 없어요. 하지만 한 번 잡히면 절대 벗어날 수 없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라니까."

"또 누가 있지?"

"나머지 인원들에 대해선 저도 정확히 몰라요. 특임대는 기수별로 계속 바뀌고, 실제로 모여서 출동하는 경우도 드물거든요."

"모두 몇명이라고 했지?"

"보통 기수당 5명요."

"그럼 3명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다는 거네?"

"아, 한 명은 알 것 같아요,"

"누군데?"

"전임 기수를 하다가 그대로 넘어온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요."

"한 번 더?"

"네. 전임 기수의 능력을 뛰어넘지 못하면, 후임기수가 억지로 밀어낼 순 없어요."

"2기에 걸쳐서 계속 남아있다면 대단한 능력자겠군. 누군데?"

"MR. X"

"응? 그게 이름이야?"

"이름은 몰라요. 그냥 X라고 불려요."

"어째서지?"

"안 보이니까요."

"안 보여? 그게 뭔 소리야? 유령이란 뜻인가?"

"아뇨. 진짜로 안 보여요. 투명화 능력자거든요."

"투명인간이라고?"

실제로 투명인간으로 한 번 변한 적이 있던 도훈은 살짝 놀랐다.

"네. 그래서 평소엔 여름에도 긴 코트에 마스크, 선글라스와 중 절모를 쓰고 다녀요."

"모습을 드러내려고?"

"네. 옷을 벗으면 누구에게도 안 보이니까요. 그래서 단원 중에서도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대요."

"근데 단순한 투명인간이라면 별로 위협적일건 없을 것 같은데?"

"당연히 아니죠. MR.X가 손에 쥐는 건 모두 투명화가 이루어 지거든요."

"뭐라고?"

"가령 총을 쥔다면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총알이 날아온 다는 거예요. 칼도 마찬가지고요."

"생각보다 위험한 인물인데?"

"더구나 보이지도 않으니, 바로 옆에 있어도 알 수가 없죠."

"하나같이 괴물들이네."

"나머지 두명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특임대는 말그대로 PK단 내에서도 정예중에 정예예요. 플레이어로 치면 랭커들만 모아놓은 집단이니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도훈은 골치가 아파왔다.

하필 그런 능력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심장이 조여지는 기분이었다.

'큰일 났는데. 로시, 지금 능력으로 내가 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림 없을 겁니다. 하나하나가 랭커급 능력자라지 않습니까?

주인님은 아직 고수도 못되는 실력이고요.]

'망했네 이거.'

[방법이 딱히 없습니다. 미호의 조언대로 당분간 두문불출하시는 게 살 길입니다.]

'아니면 동료를 구해보는 건?'

[누굴 말입니까?]

'제주도에 나타났다는 랭커 플레이어 말이야. 같은 플레이언데 도와주지 않을까?'

[누군지 어떻게 알고요?]

'그게 문제네. 아니면 송이가 알려준 경찰대녀는 어때? 얼굴도 아는데.'

[얼굴만 안다고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생사는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네? 미호에게 경찰대녀를 보여주시려고요?]

'아까까진 위험했는데, 이제는 아니지. 미호와 군령자들이 모두 내편이 되기로 약속했으니.'

도훈이 사진을 찍은 폰을 꺼내들었다.

"혹시 이 사람 누군지 알아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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