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6. 정체불명의 그녀-51-
* * *
도훈과 미호가 마당 잔디밭을 구르며 육탄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미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잠깐. 나 전화."
두 사람은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한치의 양보없는 접전이 진행중이었다. 암바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던 도훈은 어림없다는 듯 소리쳤다.
"암바 잡히려니까 핑계는! 어림없지!"
"받아야 한다니까? 나한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PK단원 밖에 없다고!"
PK단이란 소리에 도훈이 주춤했다.
"좋아. 그럼 졌다고 인정하는 거지?"
"무슨 소리야? 전화 받는 거라고!"
"계속 인정 못하시겠다? 그럼 그냥 꺾는다?"
"아씨, 진짜. 이딴식으로 유치하게 나올거야?"
미호가 눈을 흘기자 도훈도 쓸데없는 승부욕에 너무 몰입했다 싶었는지 겨우 잡았던 암바자세를 풀었다. 풀려난 미호는 신호음이 끊어질까봐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대장? 나, 오늘 일 있어서 못 간다고 했잖아."
-알지. 벌써 왔다 갔어.
"본부 요원을 만났다고?"
미호의 말에 도훈이 귀를 쫑긋 기울이며 휴대폰 옆으로 다가갔다. 미호는 고개를 반대로 훽 돌리며 전화소리가 안들리게 했다.
-어, 오늘은 한 명만 왔더라고. 미호도 이름은 들어봤을걸? 김태홍이라고 알지?
"알아."
-그 친구가 미호를 보고 싶어 하던데.
"날 왜?"
-같은 마도사 계열로 수백년을 활동했으니, 뭔가 조언을 듣고 싶은 게 아닐까?
"별 소릴 다 듣겠네. 조언은 무슨."
-암튼, 내일은 우리 지부 전체랑 특임대 전체랑 만나기로 했어.
내일은 올 수 있지?
"봐서."
-꼭 와줘.
"상황보고 연락줄게."
-알았어.
미호가 통화를 끊는데, 바로 뒤에서 도훈이 고개를 쭉 내밀고 엿듣고 있었다.
"뭐야? 왜 남의 통화를 엿들어?"
"특임댄가 뭔가가 도착했다는 거지 지금?"
"알거 없어."
"그것 때문에 나한테 경고해주려고 온 거 아니었어?"
"다른 생각 말고 그냥 집에만 처박혀 있으라고. 걔네들이라고 집구석에 처박힌 사람을 찾아낼 방법은 없으니까."
"근데 왜 날 그렇게 생각해주는 거야? 미호라면 몰라도, 두나 너는 내가 PK단에 잡혀 가게 두는 게 더 낫지 않아?"
도훈의 질문에 두나가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
"잡혀가게 두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당장 잡아서 끌고가고 싶지."
"호오."
"하여간 넌 운 좋은 줄 알아. 미호의 마음을 어떻게 뺏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였으면 넌 처음 만난 날 바로 죽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나 너한테 질 자신이 없는데?"
"뭐라고?"
"방금도 암바 끝까지 들어갔으면 내가 이겼지. 전화 때문에 봐준 줄 알아."
"이게 진짜! 입 털지 못하게 확 주둥이를 그냥!"
"어허.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당연히 우습게 보지. 니 까짓게 뭐라고?"
도훈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더라고. 대물에 박히기 전까진."
두나가 혐오스럽다는 듯 치를 떨었다.
"미친놈. 세상 모든 여자들이 한줌도 안되는 살덩이에 현혹될 거라는 착각을 버려."
"한줌이라기엔 지나치게 크지 않아?"
도훈이 가운데가 뻥뚫린 바지를 내밀었다.
정신없이 투닥거리느라 몰랐는데, 그의 바지 가운데 지퍼 부푼이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 두툼한 대물이 팬티 위로 적나라한 윤곽을 드러냈다.
"꺄악! 완전 미친놈 아니야? 그걸 왜 열어두는데? 당장 지퍼 안올려?"
"보시다시피 지퍼가 고장나서 도려냈어."
"완전 또라이 아니야 이거!"
"그러지 말고 정보 좀 달라고. 기왕 도와주러 온 거 화끈하게 도와주면 덧나나?"
"웃기지마. 특임대 소식을 전해준 것만으로도 미호는 조직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힐 위험을 감수하는 거니까. 도와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순 도둑놈 심보네."
"그럼 나랑 내기해."
"무슨 내기?"
"내가 너랑 겨뤄서 이기면 물어보는 거 대답해 주는 걸로."
"내가 왜 너랑 그딴짓을 해야 하는데?"
"아직 승부가 안 끝났으니까?"
"까불지마. 내가 진심이면 넌 이미 죽었어."
"쫄았구나?"
"뭐?"
"아까 전화만 아니었으면 암바로 끝날 뻔 했잖아. 다시 붙어도이길 자신 없으니 쫄았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이게 진짜!"
두나는 예상대로 다혈질에 단순무식한 성격이었다.
가벼운 도발에도 금방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 씩씩거렸다.
"진짜 죽기 직전까지 패줘?"
"해보던가?"
"너 딱 기다려. 아주 내 앞에서 눈도 못 마주치게 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뭘 기다려?"
두나가 갑자기 누군가와 얘기를 하더니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뭐라고 주문을 중얼거리더니 두 팔을 팔벌려 뛰기 자세로 펼쳤다.
"응?"
순간 그녀의 몸안에서 기운이 폭발하며 도훈의 주택 전체에 불투명한 막이 씌워졌다. 마치 반구 형태의 결계가 쳐진 모습이었다.
"이게 뭐야?"
"밖으로 소리가 못 나가게 하는 결계."
"이렇게 대놓고 스킬을 써도 돼?"
"어차피 밖에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거야."
"이제야 좀 진심이구나."
"넌 뒤질 준비나 하고 있어."
미호가 허공에서 주먹을 불끈 쥐자, 그녀의 손에 파이크가 달린 반장갑이 씌워졌다. 허공에서 갑자기 장갑이 착용되는 모습은 컴퓨터 그래픽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뭐야 저건? 아이템인가?'
[주인님과 비슷한 인벤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수백년 먹은 구미호라 없는 게 없고만.'
딱 봐도 흉흉하게 보이는 물건을 착용한 두나가 도훈을 향해 경고했다.
"처맞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싹싹 빌어. 한 번쯤은 내가 봐줄수도 있으니까."
"웃기고 있네. 너야 말로 예쁜 얼굴 망가뜨리고 질질 짜지나 말라고."
"닥쳐!"
잔뜩 약이 오른 두나가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아까 잔디밭에서 투닥거리던 것은 장난이었다는듯 신체의 반응속도가 배는 빨라져 있었다.
'휘유, 진짜로 진심인가 보네. 어디 나도 한 번.'
도훈 역시 기운을 폭발시켰다. 내공이 소용돌이치며 몸 전체에 푸른 기운이 감싸올랐다. 마치 초사이언으로 변신한 것처럼 몸 전체에서 푸르스름한 오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두나가 당황했다.
'뭐, 뭐야? 저 녀석? 언제 저렇게!'
두나는 갑자기 달라진 도훈의 모습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대학 축제기간에 조우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했기 때문이었다.
도훈은 두나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더니 내공을 실은 주먹으로 단숨에 복부를 올려쳤다. 무인인 두나로서도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퍼억!
'배빵!'
[아니, 여자한테 너무 하신거 아닙니까?]
어퍼컷 자세로 배를 올려치자 충격을 받은 두나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우욱-!"
도훈은 연이어 타격을 날리려다 공격이 더해질수록 파워가 배가되는 칠성권의 위력을 떠올리곤 공격을 멈췄다. 여기서 한 번 더 주먹질을 했다간 미호의 몸이 상할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배빵 한 방에 두나가 무릎을 꿇고 쓰러지자 도훈이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까불지 말라니까."
"너, 너, 이 새끼, 너 대체···."
두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아 도훈은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내공도 갑절로 늘었고, 특히 무공을 쓰는 솜씨도 비교도 안되게 성장해 있었다.
두나는 그것이 미호의 내공을 흡수해낸 도훈이, 가상 현실에서 한달 넘게 토할 정도로 수련한 결과라는 걸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왜 마법사가 몸 싸움을 걸어서는. 일어나."
도훈이 무릎꿇은 두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자존심이 강한 두나는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좆까!"
내민 도훈의 손목을 낚아 챈 두나가 무릎 꿇은 상태에서 옷깃을 붙잡으며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무게중심이 낮은 상태에서 거는 기습적인 업어치기였기 때문에 도훈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기술에 걸려들었다.
"우읏!"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가 싶더니 두 사람의 자세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쿵-
두나가 쓰러진 도훈의 배위로 올라타며 곧바로 파운딩을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어버렷 변태새끼!"
손에는 징박힌 장갑을 끼고 무자비하게 내리치는 주먹질에 도훈은 얼굴만 겨우 방어하며 가드로 버텨냈다.
퍼억-퍼억-!
보통 사람 같으면 막는 팔목뼈가 이미 으스러질 정도로 강력한 타격이었으나, 도훈에게는 살짝 따끔한 정도였다. 겉에서 보면 도훈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모습으로 보였으나, 실제로 도훈은 거의 모든 공격을 가드하는 상황이었다.
'살살 하려고 했더니 말로 해선 안되겠는데?'
[어쩌시려고요?]
'자꾸 까부는 게 한 번 눌러줘야 정신을 차리겠어.'
두나의 살벌한 파운딩을 가드하던 도훈이 어느 순간 그녀의 목덜미를 끌어 안더니 꼭 껴안았다. 주먹질 할 공간을 없애는 그의 반격에 두나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 놔? 이거 안 놔?"
"가슴 빠방해서 좋네."
"뭐, 뭐라고?"
두나를 꼭 껴안은 도훈은 푹신한 쿠션감에 만족한듯 독이 바짝 오른 두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혹시 올라타는 쪽을 좋아하는 거야?"
"이 미친놈이!"
성희롱을 해대는 도훈을 향해 두나가 도훈의 귀를 깨물었다.
"악!"
귀가 물어 뜯기자 도훈도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온힘을 다해 끌어 안았다. 마치 곰이 사냥감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동작이었다.
"흐윽!"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두나는 허리가 반대로 접힐것 같은 충격에 깨물기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만!"
"못된 망아지 같은 년!"
도훈도 피를 보자 흥분했는지 이번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허리를 껴안은 그대로 옆구르기를 통해 상하를 반전시킨 도훈이 두나의 양 손목을 꽉 잡고 지면으로 내리 눌렀다. 동시에 배를 완전히 깔아 뭉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아, 하아-."
도훈에게 완전히 결박당한 두나는 그 와중에도 쌍심지를 켜며 도훈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이 변태 같은 새끼. 그때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끝까지 개겨보겠다 이거지?"
도훈은 일부러 하체를 바짝 밀착시키며 튀어나온 대물로 두나의 가랑이 사이에 갖다댔다. 뭉클한 촉감과 함께 소중한 곳에 대물이 접촉되자 두나가 바락바락 소릴 질렀다.
"그거 안 치워 이 변태 새끼야?"
"졌다고 하면 치워줄게."
"너 진짜 내가 죽여버릴거야."
[두나양은 완전 독종 이네요. 전혀 설득이 안될 것 같은데요?]
'앙칼진 맛이 있어서 좋네.'
[주인님도 적당히 하시죠. 힘으로 제압한다고 고분고분해질 타입이 아닙니다.]
'어설프면 그렇지. 이런 애들은 상대가 자기보다 강하다고 인정하기 전까진 끊임없이 들이받을 테니까.'
[어쩌시려고요?]
'아무리 까불어 봐야 잦이 박히면 꼼짝 못 해.'
도훈은 일부러 잦이를 더욱 세게 문지르며 두나를 자극했다. 하필 가운데가 뚫린 바지라 팬티를 뚫고 솟아오른 대물은, 직접 두나의 그곳과 맞닿았다.
"이, 이 개새끼! 안 치워?"
"항복하라고."
"싫어!"
"참나, 진짜 끝까지 해보겠다 이거지?"
도훈도 두나의 두 팔을 잡고 있는 상태라 달리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도훈은 박치기를 하듯 두나의 가슴을 얼굴로 눌렀다.
"하읏!"
"항복할 때까지 괴롭힐 거야."
"이 변태새끼, 이거 성추행이야!"
"성추행이라니? 엄연한 그라운드 기술이라고."
도훈은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계속 밑에 깔린 두나를 자극했다. 처음엔 완강히 저항하던 두나도, 계속 아랫도리에 발기된 대물이 부딪히고, 도훈이 얼굴로 가슴을 비벼대자 자극이 오는지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하, 하읏, 하지 말라고."
"못 이기겠지? 얼른 항복해."
"안 해!"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 거야? 내가 미호한테 피해준 것도 딱히 없잖아? 너도 알겠지만, 날 먼저 죽이려고 했던 건 미호였어.
하지만 난 다 이해하고 서로 득이 되는 방향으로 동맹을 맺기로 했고."
"동맹같은 소리하네! 미호가 너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 했는데!"
"좋아. 그렇다면 너랑 같이 있는 영혼들에게 물어봐. 다들 반대하면 나도 그냥 미호랑 관계를 끊을 테니."
"뭐라고?"
"물어보라고. 너 군령자라며. 영혼들한테 투표를 시키면 되겠네. 나도 나 싫어하는 사람이랑 계속 같이 할 순 없으니까."
"참나. 너 딱 기다려."
두나가 몸속의 영혼들이랑 의견을 나누려는지 갑자기 말 수가 없어지며 저항도 잦아들었다. 도훈도 나란히 힘을 뺀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투표라니요? 왜 위험을 감수하시나요?]
'동물친화 능력으론 본체인 미호밖에 통제할 수 없어. 미호의 몸 안에 있는 다른 영혼들이 나를 계속 반대하면, 결국 이 것 때문에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거야.'
[그렇다고 투표에 붙였다가 주인님을 거부하면 앞으로 어쩌시려고요?]
'나도 다 계산했지. 미호의 몸속에 갇힌 영혼들이 모두 9명이었지?'
[네.]
'그중에 이미 나랑 정을 통한 영혼들이 있잖아. 기생 미향이나 양반집 규수도 있었고.'
[그들이 무조건 주인님 편을 든다는 보장도 없잖습니까?]
'어차피 한번은 겪었어야 할 일이야. 두나처럼 나를 싫어하는 영혼들을 설득하지 않고선 어차피 계속 같이 못 간다고. 이쯤에서 관계를 확실히 정리해 두는 편이 나아.'
[하지만 너무 도박이 아닐지.]
'걱정마. 나와 미호의 관계는 단순히 동물친화로 묶인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야. 나로 인해 미호도 정기를 흡수할 수 있으니, 분명히 서로에게 득이 되는 관계라고. 문제는 PK단에서 같이 활동했던 멤버들에 대한 의리 정도인데, 그건 영혼들이 판단할 문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