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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65화 (1,520/2,000)

1565. 정체불명의 그녀-50-

* * *

PC방 사장 조대근은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을 빗질을 통해 정수리 쪽으로 돌리는 중이었다. 창범은 대근이 그럴때마다 차라리 율브린너처럼 민대머리로 밀어버리라고 소리쳤지만, 두상이 별로 예쁘지 않은 대근에게 삭발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너저나, 별 일이네. 특임대 파견이라니."

거울을 보며 열심히 머리를 다듬는 대근을 보며 창범이 여느때처럼 빈정거렸다.

"거기 가려서 뭐해요? 그런다고 티 안 나나? 확 그냥 밀어버리라니까."

"짜샤. 니가 천만 탈모인들의 애환을 알아? 이렇게라도 가려지는 걸 언젠간 감사할때가 올 거라고.."

"내가 탈모충 마음 따위 알게 뭐람?"

창범이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빈정대자, 대근이 도끼빗을 들고 창범을 겨눴다.

"너, 머리빗에 대가리 찍혀서 죽은 사람 얘기 못 들어봤지? 내가 한 번 보여줘?"

"지금 살해 협박하는 겁니까?"

"깝죽대다 뒤지는 수가 있다는 거 군대 가서 못 배웠냐?"

"저 산업기능요원 출신인데요?"

"엉? 왜? 사지도 멀쩡한 놈이 왜?"

"그냥 심심해서 인터넷으로 신청했는데 받아 주더라고요? 독립해서 돈도 벌어야겠다 싶어서 그냥 자원했죠."

"그럼 그때부터 공돌이 생활을 시작한 거야?"

"맞아요. 거기 일하시는 분이 겸사겸사 지금 공장도 소개 시켜줬어요."

"하여간 군대 안 다녀온 것들은 꼭 저렇게 티가 난다니까?"

"하-. 지금 굉장히 꼰대 같은 발언인 거 알죠? 그리고 저도 엄연히 4주 기초훈련은 받았걸랑요?"

"4주? 하- 병영 캠프 아니고?"

"그러는 대장은 현역병 징집된 스트레스로 탈모 온 거 아닙니까?"

"니가 진짜 오늘 도끼빗으로 머리에 구멍 한 번 나고 싶은가 보구나?"

대근이 계속 씩씩대자 창범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근데 특임대 파견 얘기는 대체 뭔데요?"

"불리하면 말 돌리지 말고."

"그것 때문에 채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본부 사람 곧 도착할 시간 된 것 같은데?"

"아, 맞다. 이 새끼 때문에 괜히 시간 낭비했네."

대근이 다시 거울을 향해 급히 머리를 정돈하며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너도 인마. 간부 만날 때는 그 작업복이라도 좀 갈아입어. 꼴이 그게 뭐냐? 기름밥 먹는 거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잘 됐죠."

"뭐가 잘돼?"

"말단 지부원이 이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본부 그 새끼들도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거 아니에요? 지원금도 쥐꼬리만큼줘서 생계유지도 못하는 마당에."

"그러는 새끼가 꼭 소연이 알바하고 있을 때는 옷 갈아입고 오더라?"

"제가 언제요?"

창범이 펄쩍 뛰었다.

"티 다 나거든?"

"아니 그거야, 옷에 뭐가 묻어 가지고 그랬겠죠."

"염병하고 있네."

"암튼 특임대 파견이면 제법 큰 일 아니에요? 우리 지구에 그런 능력자가 숨어 있었다니. 진짜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야. 지난 번 인천 파견 갔을 때도 특임대의 특자도안 나왔는데, 대체 얼마나 거물이길래 특임대가 움직인담?"

대근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PK단에서 가장 최근 특임대를 파견한 일은, 제주지부 학살 사건일 정도로 특임대가 지부로 내려오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그런 괴물같은 플레이어가 우리 근처에 있는데 몰랐다는 게 말이 돼요?"

"어쩌면 우리가 놓쳤을지도 모르지. 무슨 야동이나 찍는 플레이어 쫓느라고 괜히 시간만 허비했으니까."

창범이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이마를 탁치며 말했다.

"혹시 그놈 아닐까요?"

"무슨?"

"아니 그 야동 플레이어요. 우리가 못 찾은 플레이어가 그 놈 말고 더 있어요?"

"장난하냐?"

대근이 창범을 꾸짖었다.

"인마. 얼마나 찌질한 능력이면 플레이어가 성방이나 출현하고 일본 가서 야동 찍겠어? 그리고 무슨 그딴 놈 하나 잡으려고 특임대가 출동해? 우리 선에서 처리하면 끝이지."

창범은 제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했는지 곧바로 의견을 철회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그나저나 미호는안 와요? 본부 요원이 친히 여기까지 온다는데? 연락 안 했어요?"

"당연히 본부 호출받자마자 연락했지. 근데 자기 스케줄 있다고 쌩까더라고. 미호가 신출귀몰한 게 하루 이틀이야? 그냥 내버려 둬. 저번에 탈퇴한다는 거 사정사정해서 겨우 붙잡았는데, 자꾸 귀찮게 굴면 진짜로 엇나가버릴지도 모르니까."

두 사람이 PC방에서 시시덕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근과 창범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동자를 크게 떴다. 난데없이 솜털이 쭈뼛 설 만큼 엄청난 존재감에 완전히 압도 당한 것이었다.

'뭐, 뭐지 이 기운은?'

'저 사람이 특임대?'

들어온 사람은 일견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였다.

정말 회사에 출근했다가 막 퇴근한 사무직원처럼 검푸른 정장에 검은색 서류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다. 특히 목줄에 맨 사원증은 영락없는 샐러리맨의 행색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정도로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대근과 창범은 그의 등장만으로 사지가 짓눌리는 기운을 받았다.

회사원 사내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와 물었다.

"혹시, 조대근님?"

"아, 네. 네. 제가 조대근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가맹점 본사에서 나왔습니다."

정장을 입은 청년이 PK단만의 암구어를 쓰며 대근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간부급인 그가 일개 지부장인 대근을 향해 허리를 숙이자, 대근도 황망해하며 맞절을 했다. 그 모습을 창범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얼씨구. 아주 그냥 PK단이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지 그래?

저게 뭐 하는 짓이람?'

대근에게 정중히 인사한 정장 사내가 이번엔 창범을 향해 말했다.

"그럼 이쪽이 창범씨겠군요."

"절 어떻게 아시죠?"

"지부 인원에 대해 짧게 리포트 받았습니다."

"저, 근데 나머지 인원은 갑작스러운 일정 때문에···."

대근이 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정장 사내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일단 저만 먼저 도착했으니까요.

아, 그러고보니 아직 정식으로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김태홍이라고 합니다."

"존함 많이 들었습니다."

김태홍.

PK단 최고의 마도사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어찌나 능력이 출중한지 고작 25살의 나이에 본부 간부직을 맡을 만큼 빠르게 진급했고, 이후로 각종 헌팅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저자가 그 유명한 태홍이구나.'

창범 역시 이름만 듣던 태홍을 처음 보는 터라,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나이에 높은 직급에 올라, 건방지고 오만한 성격이라고 오해했는데, 생각보다는 예의도 바르고 젠틀한 청년이었다. 오히려 그 부분 때문에, 껄렁한 자신과 비교되어 스스로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번 임무를 위해선 지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혹시 가볍게 브리핑을 할 공간이 있을까요?"

태홍의 말에 대근이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애써 빗어 놓은 머리가 그 순간 흐트러졌다. 창범은 저럴거면 왜 공들여 머리를 다듬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 저 그게 보시다시피 지부 사무실을 생업과 병행하고 있어서 마땅히 남은 공간이 없는 터라."

"흡연실에서 하죠 그럼."

"흡연실이요?"

태홍은 창범이 권한 흡연실을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곳은 너무 공개된 장소 같습니다만. 민간인이 봐선 안 되는 자료거든요."

"괜찮아요. 지금은 손님도 얼마 없고, 담배 피는 손님은 더더욱 없으니까요. 다 단골들이에요."

"흠."

태홍은 흡연실에서 이번 작전 브리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썩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죄송합니다. 여건이 워낙 열악해서."

대근의 사과에 태홍이 오히려 미안함을 드러냈다.

"별말씀을요. 본부 지원이 부실한 탓입니다. 본부에서도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창범은 너무 매너가 좋은 척 하는 태홍의 속내를 읽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PK단 최고의 마도사를 잘못 건드렸다가 괜한 봉변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 실력자라면 마인드 리딩 스킬을 쓰는 순간 알아채겠지?'

그리고 태홍이 쓰는 유명한 술법 중 하나는, 족자 그림 속에 사람을 가둬버리는 것으로, 10년 전 그림에 갇혀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림 속에 들어가 갇힌 스스로를 상상하며, 창범이 으스스한 기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PC방 흡연실에 자리를 잡은 세 사람은 태홍이 가져온 태블릿화면을 함께 보며 개략적인 작전 개요를 들었다.

"사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성녀님께서 대적자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신탁을 받으셨습니다."

"정말요? 근데 저희 관할에는 그럴 인물이 거의 없을텐데요?"

창범이 습관처럼 딴지를 걸자 태홍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탁은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너무나 칼 같은 반박에 창범은 그답지 않게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릴 뿐이었다. 태홍이 살짝 감정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전신이 압도당하는 기운에 짓눌린 탓이었다. 그야말로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어마무시한 기운이었다.

'와씨, 무슨 말실수 한 번 했다간 그대로 묻어버릴 기세네.'

창범을 입 다물게 한 태홍이 설명을 이어갔다.

"대적자는 다들 아시는 대로 PK단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를 뜻합니다. 앞으로 더 강해지기 전에 미리 싹을 자르지 않으면 장차 저희 조직에 크나큰 장애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군요. 저희 지부에서 협조해드릴 사항은 뭔가요?"

"최근 5개년간 처리하신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 그리고 최근에 활동을 시작한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 일체를 넘겨주시면 됩니다.

그 외에 다른 임무는 일시 중단하시고 특임대에 대한 지원을 부탁합니다. 물론 이 사항은 상부의 지시입니다."

"알겠습니다. 묵을 숙소는 구하셨습니까?"

"네. 시내에 호텔을 잡았습니다. 아직 저만 도착했지만, 내일까지 다른 특임대 인원들이 모이기로 했습니다."

"전부 다요?"

"외국에 나가 있는 두 명을 제외, 모두 3명입니다."

특임대 셋의 전력이라면 랭커급 플레이어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대근은 본부에서 이번 특임대 파견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이길래 저런 괴물같은 단원을 셋이나 보냈담?'

"아참, 이쪽 지부에 그 유명하신 미호님께서 객원으로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아, 미호요? 네."

"같은 마도 계열의 술법사로 한 번쯤 뵙고 싶었는데, 오늘은 안오시나 보군요."

"미호가 워낙 바빠서요, 하하."

"그렇군요."

"다음에라도 얼굴 비추라고 하겠습니다."

"네."

"아, 그리고 조금 이따가 건이도 오기로 했는데 보고 가시겠습니까?"

"염동술사라는 분 말이죠?"

"네. 신입인데 상당히 빠릿빠릿합니다."

"경력은 대충 훑었는데 이번 작전에서는 제외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건을 빼려고 하자 창범이 따졌다.

"건이는 경험은 없지만 교육기관에서도 우수자로 뽑혔을 만큼 쓸만한 녀석인데요?"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경험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저희가 이곳에 온 이상 어떤 단원의 희생도 없어야 하니까요."

"아."

"그리고 미리 당부드리는데, 사냥은 저희끼리만 하겠습니다.

조대근 지부장님께서는 후방 지원에만 신경쓰시면 됩니다."

대근이 그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발산기개세, 역전의 용사로 이름난 대근 조차 플레이어 사냥에서 열외시키는 오만함에 복잡한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내일 전체가 모이면 연락드리죠."

"그러시죠."

태홍은 처음처럼 다시 깍듯하게 인사를 하더니 물러났다.

태홍이 가게를 나가자마자 창범이 숨을 몰아쉬었다.

"푸-하. 미친. 숨도 못 쉴뻔 했네."

"그러게."

"기가 장난이 아니네요. 완전히 짓눌렸어요."

"그러게."

"왜 자꾸 단답으로만 말하세요?"

"그러게."

"대장. 뭐 기분 나쁜 일 있어요?"

대근은 창범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뭉친 근육을 푸는 동작이었으나, 살짝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나보고 빠지라네. 뒤에서 행정지원이나 하라고."

"아, 뭐야. 설마 그것 때문에 열받으신 거에요? 에이, 뭘 또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이세요. 잘 됐죠 뭐, 지들끼리 죽든 말든 알아서 헌팅 하라고. 우리야 그냥 구경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창범의 말에 대근이 흡연실에 높인 유리 재떨이를 움켜쥐었다.

"여긴 내 구역이야. 우리 지부 관할이고."

청소를 하고 놔둔 유리 재떨이는 무척 깨끗했다.

대근은 유리 재떨이를 크나큰 손으로 감싸 쥐더니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며 뭉게버렸다.

돌처럼 단단한 유리 재떨이를 상처하나 없이 박살내는 대근의 괴력에 창범이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어우씨, 우리 대장 많이 화나셨나 보네."

"어린 놈의 새끼가 직급 높다고 말하는 싸가지가 없어."

"그죠? 저도 너무 젠틀해서 오히려 거부감 들더라고요. 일부러 존중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존나 무시하는 느낌이랄까?"

"에이 됐다. 미호한테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내일 전부 모일 때는 꼭 와야 할 것 같아. 태홍이 미호를 보고 싶어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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