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9. 정체불명의 그녀-34-
"발기···. 부전이 뭐죠?"
송이는 발기라는 단어는 알았지만, 부전이란 단어가 함께 붙자 순간적으로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다. 심부전같은 질환의 일종으로 막연하게 추측했을 뿐이다.
"흠흠. 하긴 여학생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군. 남성의 성기가 커지는 증상을 발기라고 한다네. '쌕쓰' 할때 말이야."
도훈은 일부러 섹스라는 단어에 찰지게 강세를 주었다. 너무나 노골적인 단어에 송이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지 제 손으로 두볼을 감싸쥐었다.
"아, 앗, 그 발기가 그럼···."
"그렇지. 남자들은 쌕쓰할 때 성기가 팽창하잖는가? 알지?"
"네, 교수님."
"근데 도훈군의 경우엔 평소엔 아무런 증세가 없다가 여자랑 쌕쓰할 때가 되면 발기가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네. 딱 쌕쓰할때만 말이야."
도훈이 자꾸 쌕쓰라는 괴상한 발음으로 성행위를 강조하자 송이는 민망해서 그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교수님은 왜 자꾸 섹스라는 말을 반복하시지···. 난 부끄러워서 입에 담지도 못하겠는데.'
하지만 노교수의 권위가 주는 힘은 막강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섹무새라느니 섹스에 환장했느냐며 쌍욕이 먼저 나올 법한 태도인데도, 뭔가 학술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심리학과 교수님들에겐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단어인가봐.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을까? 촌스럽게 보이겠다.'
뻔뻔한 도훈의 태도에 송이도 생각을 고쳐먹고 도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그, 그렇군요."
"도훈군의 경우는 사실 신체적인 문제가 있었네."
"신체적인 문제라뇨?"
"음, 타고나길 너무 크게 태어난 거지."
"뭐, 뭐가요?"
"자지가."
"아, 앗!"
앞의 쌕쓰도 충격적이었지만, 자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노교수의 태연함에 송이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저, 저것도 정식 용어였구나.'
하지만 송이는 도훈이 설마 상스러운 표현을 일부러 한다고는 의심하지 못했다. 도훈은 순진한 송이의 놀라는 반응을 즐기듯 이번엔 제스쳐까지 섞어가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보통 한국 남자 평균이 이만하단 말이지?"
도훈이 손바닥을 좌우로 벌리며 길이를 묘사했다.
"네."
"근데 도훈군은 이따만 하더라고. 크지?"
이번엔 팔을 넓게 벌리며 과장되게 사이즈를 표현했다.
아무것도 없는 손바닥 사이의 빈공간이, 송이에겐 무척이나 음란하게 느껴졌다.
'세, 세상에. 저렇게나. 송은이가 했던 말이 정말이었구나.'
[주인님, 자괴감 안 느껴지십니까?]
'내가 왜?'
[자기 과시도 정도껏 하시죠.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군요.]
'사실 인 걸 어떡해?'
"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맞다, 송이양은 아직 쌕스 경험이 없다고 했나?"
"···네?"
졸지에 처녀막 존재여부까지 확인하는 도훈의 뻔뻔함에 송이가 귀밑까지 빨개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하긴 어렸을 적 그런 일이 있었으니···.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도훈군의 잦이는 평균을 훌쩍 넘는 단 말이지. 그런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야."
"무, 무슨 문제요?"
송이가 자기도 모르게 도훈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니까 그게 너무 크다보니, 쌕쓰를 할때 다 안 들어갔던 거지.'
"아···."
"보지에."
"······."
송이는 할말을 잊고 입을 다물었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에서, 그것도 지식의 총아라는 교수가 저런 단어를 서슴없이 내뱉는 다는데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으으, 듣기만해도 민망한데 교수님은 어떻게 저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성에 대해 보수적인건가?'
"실은 그것도 굉장히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네."
"우연이라뇨?"
"보통 잦이가 크다고 해도, 아예 안박힐 정도는 아니거든. 여자의 질은 얼마든지 늘어나니까."
"아···."
"근데 하필 파트너가 선천적으로 그곳이 좁았던 게 문제였지."
"그, 그렇군요."
노교수로 분장한 도훈이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송이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었다. 송이는 자신이 뭔가 실수한 줄 알고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교수님?"
"아니. 송이양은 거뜬하겠구만. 걱정 없겠네."
"네?!"
"골반을 보니 딱히 걱정할 만큼 좁은 편은 아니겠다고."
"아···. 네."
'으, 민망해. 나보고 지금 구멍이 크다고 한 건가? 설마 이상한 뜻은 아니겠지?'
"서로 극 상성이 만났으니, 관계가 제대로 됐을리가 있나."
"그, 그렇겠네요."
"마치 엄지 손가락으로 억지로 코를 후비는 꼴인데."
송이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엄지손가락을 자기 콧구멍에 넣는 상상을 하다 흠칫 놀랐다.
"첫 관계 이후 응급실까지 실려간 파트너를 보며 도훈군은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 말았다네."
"세, 세상에."
"그 뒤로 임포텐츠가 발생한 거고. 임포텐츠는 아까 설명했지?
발기부전."
"네."
"그래서 조상들도 남녀간의 속궁합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쯧쯧."
송이는 난데없이 속궁합 얘기를 꺼내는 도훈을 보고 속으로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해. 저렇게 명석한 교수님이 속궁합 같은 미신을 다 믿다니···. 아무튼 도훈 오빠도 안 됐다. 겉으로만 멀쩡하지 나처럼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구나.'
"도훈군은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나에게 들러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네. 이제는 꽤 극복한 듯 싶어."
"그, 그래서 오빠가 저를 교수님께 소개시켜 줬군요."
"그렇지. 아, 다음엔 한 번 같이 와도 좋겠구만."
"네?"
"송이양이 도훈군과 함께 말이야."
"저, 저랑 도훈 오빠랑요?"
"원래 그룹 상담 기법도 자주 쓰이거든. 나와 단둘이만 할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일테니까."
"그, 그건 좀···."
송이에게 있어 윤창흠 교수는 정신과 의사나 마찬가지였다. 환자가 의사에게 거리낌없이 자신의 아픈 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처럼, 송이도 교수를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숨기고 싶었던 비밀을 모두 털어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훈이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 말을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흐음, 사실 도훈군 때문이라기보단, 송이 자네 때문이네."
"저, 저요?"
"자네의 불안 증세를 극복하려면 나같은 늙은이보다는 훨씬 젊은 남자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아···."
"이건 다음에 얘기하세나. 도훈군에게도 의사를 물어봐야 하니."
"네. 교수님."
"나가는 문은 저쪽일 세."
방금 전까지 쌕쓰 잦이 봊이 떠들어 대던 도훈은 배웅도 없이 송이를 내보냈다. 송이는 꾸벅 허릴 숙여 절하고는 교수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바깥으로 향하는 방문을 열자 도훈의 거실이 아니라, 국성대 인문대 2호관으로 연결되었다. 송이는 화장실에 갈까 하다가, 부끄러운 마음에 후다닥 건물을 나가 다른 건물 화장실로 향했다.
* * *
집에 혼자 남은 도훈은 축골공으로 압축해놓은 몸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뼈마디 하나하나 탈골하여 빼고, 몸의 수분기를 바짝 수축시켜 몸집을 줄인 도훈이 허리를 펴고 두 팔을 좌우로 뻗었다.
부욱-부욱- 하고 점점 커지는 몸이 흡사 헐크의 변신 장면을 보는 것처럼 기괴했다.
"으으으! 뼈마디 쑤셔 죽는 줄 알았네."
무리하게 사이즈를 줄인 탓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거울을 보니 여전히 역용마스크의 효과가 남았는지, 윤창흠교수 얼굴과 똑같았다. 젊은 몸뚱이에 늙은 얼굴은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어휴, 허리야. 젠장할. 다음에 또 이런 변신을 반복해야 하다니."
[이제 공략 마감이 6일 남았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오늘 보니까 보기보다 맹한 구석이 있더라고. 말만 잘하면 홀랑 벗겨 먹을 수도 있겠어.'
[노교수로 변신한 상태로요?]
'아니? 그건 기만이지. 어차피 이 심리상담은 다른 사람으로 분장해서 따먹으려는 게 아니야. 트라우마를 극복시킨 상태로 다시 나에게 토스하려는 거지.'
[과연 6일이라는 시간동안 송이양이 마음의 문을 열지 모르겠군요.]
'마음의 문은 몰라도 몸은 열리겠던데?'
[네?]
분장을 위한 양복까지 훌훌 벗어버린 도훈이 대답했다.
'송이 말이야. 방금 상담한 대로면 성욕이 굉장히 강한 타입이야.'
[자위를 좀 자주 하긴 하더군요.]
'거의 중독 수준이라고 봐야지. 나랑 만나는 여자들 중에서 그렇게 자주 자위하는 애도 거의 없을 걸?'
[하지만 남자친구를 못 사겼으니 욕구를 풀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여성들은 주인님이 한번씩 풀어주시니까요.]
'그것까지 고려해도 좀 심해. 어느정도냐면, 송은이랑 비교해도 그렇게 밀리지 않는달까?'
[백송은양이요? 에이, 설마.]
'정말이라니까. 눈에 색기가 가득해. 머릿속이 틈만 나면 야한 생각으로 절어 있을 걸.'
[오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냥 순진한 학생 같던데요.]
'아니라니까 그러네. 진짜, 어렸을 때 그 일만 없었으면, 엄청 굴리고 다녔을 관상···.'
도훈이 옷을 벗은 채 한참 로시와 떠들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귀찮아서 안 받으려던 도훈은 발신번호가 평소와 다르게 긴 것을 보고 즉각 전화를 받았다.
"잘 살고 있지? 소영이 누나?"
바로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외국에서 도훈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현재 자신의 부탁으로 외국에 출장간 안소영 밖에 없었다.
-농담할 때가 아니야.
"뭐야? 무슨 일인데?"
도훈은 소영의 목소리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도훈아. 일단 사과부터 할게. 미안해.
평소 늘 여유 넘치던 소영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도훈은 최대한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답했다.
"괜찮아. 천천히 설명해봐. 무슨 일인데?"
-그게···. 너 혹시 코인 시세 지금 볼 수 있어?
"시세? 잠시만."
도훈은 급히 핸드폰을 스피커로 전환한 뒤 폰으로 코인 시세를 확인했다.
"엉?"
도훈은 하마터면 놀라서 폰을 바닥에 떨어뜨릴뻔 했다. 호가를 나타내는 시세창이 전부 파란색이었다. 그래프는 하나같이 급전직하로 내리 꽂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봤어? 도훈아, 어떡해. 우리 물린 거 같아.
[주, 주인님.]
'잠깐만 이게 지금 몇퍼센트나 빠진거지?' 도훈은 눈을 비비며 시세창을 확인했다. 코인은 흔히 대장주라고 불리는 비트코인 시세가 장전체를 좌우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비트코인이 하루 사이에 -40%를 기록하고 있었다.
'미, 미친. 이게 말이 돼?'
그나마 비트코인은 덜 빠진 편이었다.
나머지 알트코인은 거의 반토막이 나거나, 심한 경우 -80%까지 추락한 코인도 있었다.
-도훈아. 네가 전에 말한대로 5개로 분산 투자해서 넣었는데, 대응을 하기도 전에 한순간에 이렇게 빠져버렸어. 미안해, 자고 일어났는데 이렇게 됐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해외에 나가있는 소영에게는 이제 아침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새벽간 폭락한 코인 시세를 발견하고 급히 도훈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그래프는 실시간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마치 부처빔이라도 맞은 것처럼 끝없이 미끄러지는 그래프를 보고 있자니 도훈이 속이 타들어 가는것 같았다.
'아, 머리가 뜨거워진다.'
[주, 주인님 어서 판단을.]
'잠깐만. 이거 대체 얼마를 손해보고 있는 거지?'
그가 코인에 넣은건 대략 500억.
1프로만 빠져도 5억씩 증발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통화를 하는 와중에 벌써 20억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도훈아 어떻게 해? 지금이라도 손절할까? 시장이 완전히 공포야. 패닉이라고!
'아, 안돼 침착하자.'
늘 우상향만 하던 코인이었다. 약간의 진폭이 있더라도 하루 빠지면 다음날 회복되는 식이었기 때문에 딱히 걱정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대폭락을 맞아 버리니 대응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도훈아!
"잠깐만. 잠깐만 있어봐."
머리가 뜨거울수록 심장을 차갑게.
도훈이 스스로 뺨을 찰싹 때리더니, 로시에게 말했다.
'지금 내 멘탈로는 해결할 수 없어. 현자의 힘이 필요해 로시.'
[현자타임 준비하겠습니다. 부작용은···.]
'부작용 같은 소리하고 있어! 실시간으로 내 돈이 타들어가는데!'
[네, 넵!]
간만에 현자타임을 맞게된 도훈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졌다. 두뇌를 극단적으로 굴리는 중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었다.
"으으!"
머리를 감싸쥐던 도훈이 잠시 후 차분하게 그래프를 살폈다. 그리고는 빠르게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지며, 원인을 분석했다. 손이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핸드폰의 속도가 못 따라갈 정도였다.
도훈이 5분 동안 정보를 뒤지는 사이 핸드폰에선 소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훈아? 도훈아! 대답좀 해봐.
-도훈아 그냥 팔아? 지금이라도 팔면 절반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아.
-도훈아. 말하는 사이 또 빠졌어.
-흑흑, 미치겠네 진짜. 대답좀 해봐!
한참 정보를 수집하던 도훈이 갑자기 수화기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오히려 좋아."
-뭐, 뭐?
"오히려 좋다고. 사실 가장 좋은 건 폭락 조짐이 있을 때 빼고 들어갔어야 하는데, 그건 이미 놓친 것 같고 저점이 곧 다가 올거야."
-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도훈아. 코인 망했어. 완전히 망했다니까?
"아니야. 코인은 절대 죽지 않아. 버텨. 그리고 내가 200억 더 보내줄 테니까 수수료 신경쓰지 말고 최대한 빨리 환전해서 비트코인 지금보다 10% 더 빠지면 그때 한방에 박아."
-뭐, 뭐라고?
"내 말대로 해. 혹시나 중간에 반등와도 흔들리지말고. 찐반등은 지금보다 10% 더 빠져야 오니까. 오늘 손실 본거 한달이면 두배로 튕길 수 있을 거야. 걱정말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