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46화 (1,501/2,000)

1529. 정체불명의 그녀-14-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한송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단 말이야?"

합방을 마친 한송이에게 PD가 극찬을 쏟아냈다.

하꼬 BJ를 데려온다고 했을때만해도 우려를 하던 PD였지만, 생각보다 컨텐츠도 알차고, 두 사람의 케미가 너무 잘 맞아 라이 브 방송 내내 시청자들의 호응이 좋았던 것이다. 특히 별풍이라 불리는 후원금도 역대급으로 쏟아졌다.

"편집본은 오늘 저녁 작업해서 내일 너튜브로도 올릴 거야. 조회수 짭짤하겠는데?"

"감사합니다."

"좀 있다 스텝들이랑 다 같이 회식이라도 할까?"

"말씀 고마워요 피디님. 근데, 오늘은 송은이랑 단 둘이서 마실 까해요."

"아, 그래? 뭐 그럼 다음 기회에. 백송은씨도 오늘 고생했어요."

선약을 잡은 송이는 피디의 제안은 매너있게 거절했다.

합방 촬영을 끝마친 두 사람은 둘이서 동네 술집으로 이동했다.

"고마워, 송이야. 덕분에 내 구독자도 많이 늘것같아."

"고맙긴, 네가 열심히 하니까 시청자들이 알아봐 준 거지."

술집에 이동한 두 사람은 한동안 오늘 합방을 주제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정도 술이 됐을 때 쯤, 송은이 친구에게 넌지시 물었다.

"맞다. 아까 얘기하다 만거 마저 해줄 래?"

"으, 응?"

"아니, 고등학교 때 만났다는 과외 선생님 말이야. 네 인생을 완전히 바꿔줬다는."

"아, 그거?"

송이가 못 마시는 술을 한 번에 털어내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송이가 만난 과외 선생님은, 인터넷으로 떠도는 루머와 달리 여자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여자 선생님?"

"응. 나보다 7살 많았던 언니였어."

"그럼 그때 당시 대학생이었겠네?"

"응."

자살을 하려던 송이를 구해준 것을 인연으로 나중에 개인 과외까지 이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그 언니는 좀 특별했어."

"특별해? 어떤 점이?"

"우선 굉장히 예뻤어. 그냥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어딘가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거든."

"호오, 너보다?"

"난 그때 되게 못난이였다니까."

"신기해, 어떻게 근데 이렇게 사람이 바뀔 수가 있지?"

"음, 이건 비밀인데 그 언니가 자기가 쓰는 화장품을 나에게 몇 개 줬거든."

"화장품? 어디건데?"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브랜드도 없어?"

"어릴때야 당연히 아는 게 없었고, 나중에 대학생 되서 찾아 보려고 했는데도, 여전히 모르겠더라고. 아무튼 언니가 준 화장품을 쓰다보니 얼굴이 조금씩 바뀌더라고."

"와,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혹시 아직도 있어?"

"아니. 그거야 고등학교 1학년 때 다 썼지."

신기하게도 송이는 그 화장품을 쓰면서부터 얼굴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통통하던 얼굴에 젖살이 빠지면서 V라인이 턱선으로 변했고, 이목구비도 훨씬 뚜렷해졌다고.

"신기하네. 그런 화장품이 있다니."

"그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단 말이야?"

"난 너 처음 봤을 때 성형한 줄 알았잖아."

"에이, 무슨 성형이야."

"아니야. 정말로 너무 예뻐서, 속으론 당연히 얼굴에 칼 좀 많이 댔구나 하고 생각했지."

"아니라니까."

송이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술이 약한 그녀는 맥주 한잔에 벌써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확인해봐. 정 못 믿겠음."

"진짜?"

송은도 약간 취기가 올랐기 때문에 옆자리에 앉은 송이의 코를 살짝 만졌다. 오똑하게 솟은 콧대는 아무리봐도 한국인같지가 않아보였다.

"으으!"

송은이 코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심지어 돼지코처럼 위로 납작하게 누르기까지 했으나 전혀 수술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와, 진짜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얼굴에 손 하나도 안 댔다고."

"그럼 속쌍꺼풀도 원래부터 있던 거야?"

"아니."

"아니라고?"

"난 원래 무쌍이었어."

"헐, 말도 안 돼. 무쌍이 어떻게 이렇게 진한 쌍커풀이 됐지?

그것도 화장품을 바르고 나서 생긴 거야?"

"응. 어느날 보니까 눈이 커져 있더라고."

"대박."

송은은 송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나 신기했다.

"얼굴이 달라지고 나니까 없던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물론 시기하는 친구들도 많이 생겼어."

"시기?"

"응. 내가 방학 때 얼굴을 뜯어 고쳤네하면서 엄청 말이 많았거든. 심지어는 내가 성형수술비를 벌기 위해 원조교제를 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었어. 스폰 같은 거 받고 있다고."

"헐. 나쁘다."

"당연히 억울했지. 나중에 아파서 휴학하고 돌아와보니까, 과외 선생님 애를 뱄다는 소문까지 돌더라고. 말도 안 되잖아. 언니는 여자였는데 무슨 임신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그 소문 인터넷으로 얼핏 본 것 같아.

억울했겠다."

"억울하지. 난 아직 남자친구 한 번 안 사겨 봤는데 느닷없이 임신이니 뭐니 하니까."

송은이 화들짝 놀랐다.

"송이 너 남자친구 안 사겨 봤어?"

"어."

"말도 안돼. 네 얼굴에?"

"고등학교는 여고 나왔으니까 딱히 만날 사람도 없었어. 수업끝나면 과외받는다고 야자도 안 했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났던 거 같아."

변녀인 송은은 송이가 아직 남자를 안 사겨봤다는 말에 엄청 충격을 먹었다. 인기 여자 BJ들이 방송에서만 솔로인척 할 뿐 실제론 몰래 남자친구를 만난다는 사실은 이쪽 업계에선 당연한 것이었다.

"세상에. 난 당연히 너 연애경험 많은 줄 알았는데."

"내가? 에이, 아니야."

"고등학교 땐 그렇다쳐도 대학교 가서는 엄청 대시 많이 받았을 거 아니야? 안 그래?"

대학은 혈기넘치는 젊은 남녀가 처음으로 성인이 되어 만나는 장소다. 당연히 연애에 관심이 많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때 처음 아다를 때게 된다.

"음, 악기 배우고 운동하느라 바빠서. 나중에는 방송일까지 하다보니 솔직히 여유도 없었고."

"혹시 네 오빠 때문 아니야?"

송은은 매니저랍시고 송이를 따라다니는 그녀의 오빠를 지적했다. 친오빠가 계속 붙어다니다보니 당연히 남자들의 접근을 막았을 거란 예상이었다.

"뭐, 그것도 없진 않겠지?"

"하-. 나 너한테 열등감 엄청 심했는데, 그래도 한가지는 내가 이겼네?"

"으, 응? 무슨 열등감까지."

"히히. 아니야."

얼굴 예쁘고 몸매도 좋은 송이가 한번도 남자친구를 안 사겨봤다는 얘기를 듣자 송은도 부쩍 자심감이 올랐다.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딱 드러 맞는 경우였다.

술이 된 송은은 점점 몸이 달았다.

원래 그녀는 술에 취하면 성욕이 오르는 타입이었는데, 최근 섹스를 성에 차게 못하는 바람에 약간 욕구불만 상태였다.

'하, 그때 남산에서 만난 오빠랑 한 판 했어야 하는데.'

남산 등반은 남자를 꼬시기 위해 작정하고 나간 것이었다.

심지어 팬티도 안 입고 바로 레깅스를 입고 나갔는데, 봊이의 둔덕을 적나라하게 비치기 위한 수작이었다.

'외모는 딱 내 스타일이었는데, 하필 고자라니. 무슨 산에서 고라니를 만난것도 아니고 고자를 만날 걸 뭐람?'

송은은 변녀인 만큼 보통 사람들보다 성욕이 훨씬 강한 편이었고, 이따금 맨헌팅을 하러 다닐 정도로 적극적인 타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인 취향도 뚜렷했는데, 차라리 외모가 좀 부족하더라도 섹스를 잘하는 남자를 훨씬 선호했다.

성욕이 차오른 송은은 점점 대화의 수위를 높여갔다.

"음, 송이 너 그럼 혹시 지금까지 처녀야?"

"처, 처녀라니? 당연히 결혼 안하면 처녀 아니야?"

"아니, 그런 의미 말고. 남자랑 한 번도 안 자봤냐고."

"뭐, 그, 그런걸 물어봐."

"계집애. 네 몸매를 봐. 누가봐도 당연히 남자 많이 만나봤다고 오해할 몸인데."

"그런게 어딨어? 그냥 열심히 운동한 것 뿐인데."

"혹시 그럼 운동도 그 과외선생님이 알려준 거야?'

"응."

"오잉? 공부과외가 아니라 설마 운동과외였던 거야?"

"아니, 그말이 아니고."

당시 얼굴이 예뻐진 송이에겐 여전히 걱정이 많았다.

정체모를 화장품을 바른 뒤 피부나 이목구비는 장족의 개선을 이루었으나, 여전히 몸매가 볼품 없었던 것.

고민하던 송이에게 과외선생님은 아령을 하나 선물했다고 한다.

"아령?"

"응. 덤벨있지? 그거 한 세트."

"잠깐. 그럼 고등학교 때부터 헬스를 한 거야?"

"응. 무작정 굶는 것보다 운동을 해서 빼는게 좋다더라고. 그래서 집에서 선생님이 주신 덤벨 가지고 운동을 시작했지."

"지금도 그거 있어?"

"응. 나 원래 홈트레이닝만 하잖아."

"아아! 그랬구나!"

선생님이 준 덤벨은 화장품만큼 빠른 변화는 아니었지만, 장기간 사용한 결과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몸매가 확실히 좋아지더라고."

"덤벨만하는데도?"

"으음. 뭐 다른 기구도 나중에 사긴 했는데, 일단 덤벨로 할 수 있는 운동은 거의 다 하는 편이야."

"신기하네. 나중에 너네 집 가면 한번 알려줄 수 있어? 어떻게 운동하면 그렇게 완벽한 몸매를 갖출 수 있는지 궁금해서 그래."

"완벽한 몸매라니. 과찬이야. 송은이 너도 몸매 좋잖아."

송은도 당연히 한 몸매했다.

레깅스를 입고 밖으로 운동은 나가면 자신을 안 쳐다보는 남자가 없을 정도였다.

송이가 약간 슬랜더 타입이라면 송은은 하체가 돋보이는 타입이었다. 물론 타고난 흉곽이 큰편이라 가슴도 제법 나오긴 했지만, 그녀의 장점은 터질것 같은 엉덩이에 있었다.

"하긴 근데 몸매가 예쁘면 뭐하니 봐줄 남자도 없는데?"

"뭐, 뭐야. 남자를 꼭 사귀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송이가 발끈하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21살인데 여전히 모쏠이라는 사실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자꾸 송은이 건드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취기가 적당히 오른 송은은 넘치는 성욕으로 주체를 할 수 없었다.

"우리 송이 얼굴만 예뻤지 애기네 애기. 히히. 너 남자 왜 만나는지 몰라서 물어?"

"왜 만나야 하는데?"

"섹스!"

"하, 하핫! 왜 그래 송은아 너 많이 취한 것 같아."

"농담아니고 정말로. 아직 안해봐서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섹스를 한 번도 안한 년은 있어도, 한번만 한 년은 없다는 말도 있잖아."

"무,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어?"

생각외로 순진한 송이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특히 송은이 '섹스'라는 단어를 너무나 찰지게 발음하는 바람에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섹스라는 말이 멤도는 것 같았다.

"못 믿겠으면 오늘 나랑 같이 아다한번 떼볼래?"

"무, 무슨 소리야."

송은이 부끄러워하는 송이를 보고 이죽거렸다.

자신에게 강한 열등감을 안겨주던 송이가 알고보면 경험도 없는 쑥맥이었다는 사실이 굉장한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았다.

"여자는 남자랑 달라. 원하면 얼마든지 섹스를 할 수 있거든."

"뭐라고?"

"막말로 남자는 여자 한번 자빠뜨리려면 엄청 노력해야 하잖아. 매너 있는 척, 돈 많은 척 아무튼 온갖 허세를 다 부려도 넘어 올까 말깐데, 여자는 딱 한 마디면 지금도 당장 가능하거든."

"그, 그게 뭔데?"

"나랑 한번 할래?"

"무, 무슨 소리야 그게. 송은이 너 많이 취한 것 같아."

"계집애. 순진해 빠져서는. 농담하는 거 아니야. 지금 나랑 같이 클럽가면 30분 뒤에 모텔에 도착해 있을 걸?"

"난 그런거 별로 안 좋아해."

송이가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물론 그녀라고 성욕이 없거나 혼전 순결 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원나잇 같은 감정없는 섹스는 당연히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즉, 문란한 송은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부류였다.

"당연히 안 좋아 할 수 밖에. 아직 남자 맛도 모르니까."

"어휴, 취했네 취해. 우리 그만 마시자. 괜히 이상한 소리만 하는 거 같아."

민망한 대화를 얼른 끝내고 싶었던 송이가 먼저 일어났다. 송은 이 그녀를 말렸다.

"뭐야? 벌써 가게?"

"너 취했어 백송은. 적당히 마시자."

"아직 멀었다고. 뭐 이 정도 가지고."

취기가 더 해질수록 송은은 점점 몸이 뜨거워졌다.

조금만 더 마시면, 길가는 남자 아무라도 붙잡고 박아달라고 사정할 판이었다.

"그만해. 암튼 내가 계산하고 올게."

송이는 송은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꼈는지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마쳤다. 가게 밖으로 나온 송은이 투덜거렸다.

"아이, 한참 기분 좋았는데 흐름이 끊겨 버렸네."

"오늘 방송도 하고 고생했으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 내가 택시잡아줄게."

"기왕이면 잘생긴 기사님으로 부탁해. 클럽 안 들르고 모텔로 바로 꽂아버리게."

"야! 송은이 너 진짜!"

"히히. 농담이야 농담."

"무슨 그런 장난을 해?"

"미안. 근데 나 좀 주사가 있어서 그래."

"주사라니?"

"막 취하면 남자한테 앵기는 버릇 있거든."

"하아-. 진짜 안 되겠네."

송이는 갑자기 송은을 택시에 태워 혼자 보내기가 두려워졌다.

취객으로 여자 승객이 타면 어떻게 해보려는 심보 못된 기사를 만나면 큰일을 치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의 송은은 그것을 은근히 바라고 있겠지만.

"안되겠다. 너 우리집 와서 술 깨고 가."

"응? 송이 너네 집?"

"여기서 별로 안 멀어. 그러니까 집에 가서 술 좀 깨고 가."

송은은 갑자기 집으로 부르는 송이의 제안을 듣고 생각했다.

'송이가 오빠랑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했던가? 고향이 지방이라 둘이서만 산다고.'

갑자기 다른 마음이 든 송은이 송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너네 집에서 라면이라도 먹고 가야겠다. 그럼 술 좀 깰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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