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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42화 (1,497/2,000)

1525. 정체불명의 그녀-10-

* * *

물론 드가는 건 산적 떼들 뿐이다.

나는 일전과 같이 옆으로 빠져서 지하층으로 바로 침투를 준비했다. 이번엔 위치를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객잔에 불길이 일자 그대로 지하층으로 들어갔다.

"웬 놈… 컥!"

대사가 끝나기도 전에 엽전을 튕겼다. 조선 시대 상평통보를 연상시키는 동그란 엽전은 산채에서 발견한 것으로, 모양과 사이즈가 딱 암기로 적당해 몇 개 챙겨왔다.

이마에 엽전이 반쯤 박힌 놈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털썩-.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너무나 잔인한 것 같아 나는 잠시 놈의 주검 앞에서 묵념했다. 다짜고짜 암습해 놓고선 죽음을 애도하는 게 조금은 기만적으로 느껴진다.

"주인님. 이번에도 그 문지기와 일 합을 겨루실 생각인가요?

마령이라는?"

"아니. 그 방법은 틀린 것 같아."

"틀리다뇨?"

나는 요정으로 변한 로시에게 대답했다.

"지난번에도 놈과 싸우다가 뒤늦게 등장한 자하에게 꼼짝없이 당했잖아. 그땐 이미 중독된 상태라 그랬지만, 만약 내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자하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겠지."

자하는 마교 소교주라는 직책에 어울리는 굉장한 고수다. 중독 때문에 몸을 못 가눈 것도 있지만, 마지막에 내 목을 조를 때 보랏빛으로 빛나던 손은 멀쩡한 상태에서도 막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애를 해치우기 위해선 기습을 해야 하고, 그걸 위해선 마령을 단숨에 제압해야 한다.

'문제는 마령이 상당한 고수라는 건데….'

말이 문지기지 호위무사나 마찬가지였다. 칠성검법으로도 사검에 이르러서야 죽일 수 있었던만큼, 정면 대결은 필시 자하가 알게 될 가능성이 컸다.

"방금 전처럼 암습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엽전?"

"네. 위력이 굉장하던데요."

"마령은 고수잖아. 근거리가 아니면 분명 반응을 해버릴 거야."

"암기의 속도에 말입니까?"

"가능해. 나라도 가까운 거리만 아니면 칼로 두동강 낼 수 있을 걸?"

"호오. 엄청나군요 무림 고수들이란."

암습은 무리다.

지하 2층 입구에서 마령까지의 거리는 대략 20여 미터.

놈이 반응하지 못하게 근접하려면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그때 죽어있던 졸개의 시체가 떠올랐다.

'가만? 잘하면?'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나는 놈의 얼굴을 복제할 수 있었다.

"로시. 인피면구 사용 가능하지?"

"네? 인피면구요?"

"아니 역용술 말이야."

"네. 현실에서 쓰던 스킬은 모두 사용가능합니다."

"오호, 그렇다면."

나는 역용마스크를 꺼내 놈의 얼굴을 복사했다.

문제는 놈의 덩치가 나에 비해서 작다는 것인데, 그 또한 축골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잠시후 나는 죽어있던 마교 졸개놈으로 완벽히 위장할 수 있었다.

"어때? 똑같아?"

"훌륭한 아이디어입니다."

"좋아."

준비를 마친 나는 지하 2층의 석실로 내려갔다. 나선형의 돌계 단을 내려가자 일전에 보았던 1자형 통로가 나왔다. 그리고 통로의 끝에는 복면을 쓴 마령이 미동도 않고 석문을 지키고 있었다.

"소교주님께 보고 드릴게 있사옵니다."

목소리까지 변조한 나는 잰걸음으로 놈에게 다가갔다. 외형까지 완벽히 똑같았기 때문에 놈은 의심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소교주님은 지금 바쁘시다. 나에게 하라."

"다름이 아니라 객잔에 현재 불이 나서…."

"그게 무어라고 직접 보고까지 올리느냐?"

마령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정 거리까지는 근접했으나, 검격이 닿는 거리까지 다가가자 경계를 바짝 끌어올렸다.

"불이 상당히 크게 났습니다. 혹시 모르니 대피를."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소교주님이 그깟 불에…."

그때였다.

나는 팔을 들어 소매가 숨기고 있던 단검을 빠른 속도로 쏘아냈다. 거리는 고작 2미터. 제아무리 고수라도 반응하긴 어려운 거리였다.

"윽!"

마령은 복부에 단검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나는 빠르게 접근해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쉿-. 조용히."

입을 막은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놈이 소리를 질러 자하에게 알리는 것을 막고, 동시에 죽고 나서 독혈을 뿌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놈이 저항하려 했지만, 단전에 칼이 박힌 상태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나는 놈이 쓰러질 때까지 자세를 유지했다. 놈은 나의 배신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에 가득찬 눈빛으로 끝내 절명했다.

"후-. 끝났나."

"고생하셨습니다."

"자하가 못 들었겠지?"

"제가 확인하고 올까요?"

"그래. 안에 무슨 상황인지 좀 봐줘."

로시가 유체화 스킬을 쓰더니 두꺼운 석문을 유령처럼 통과했다. 잠시 후 로시가 다시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왔다.

"주인님. 큰일입니다!"

"왜?"

"옥봉사선자가 모두 침대로 끌려와 있습니다. 발가 벗겨진채로요."

"침대로? 왜 상황이 바뀐 거지? 일전에는 옥봉사선자가 없었잖아. 나중에 금소소만 따로 데려왔고."

"타이밍이 달라져서가 아닐까요?"

"아, 그렇겠네."

저번에 침투할 땐 마령과 일전을 벌였다.

아마도 그 소리를 자하가 듣고 반응했을 것이고, 이번엔 암습이 성공했기 때문에 밖의 사정을 신경 안 쓰고 옥봉사선자의 공략에 바로 들어간 것이리라.

"노애는?"

"노애는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시중이라고? 설마 또…."

"아뇨. 직접 뭘 하지는 않습니다. 끈적한 액체를 옥봉사선자의 몸에 뿌리고 있는데 주인님이 예전에 사용했던 오일과 비슷한 종류로 보였습니다."

"미녀 4명과 오일 마사지라니. 크흑. 역시 변태구나."

"…주인님?"

"아니야. 일단 여길 들어가야 하는데 문을 어떻게 연다?"

문제는 거대한 석문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밀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는데, 아마도 별도의 동력장치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안에 레버같은 게 있습니다."

"레버?"

"네. 레버를 당겨 여는 방식입니다."

"흠, 문을 생각 못했네."

물론 문을 부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두꺼운 석문이라도 칠성검법으로 두동강 낼 수 있다는 건, 산채에서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마령을 암습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죽은 마령을 쳐다보았다.

'맞다. 아까 마령이 그랬지? 보고는 자기를 직접 거쳐야 한다고.'

"네 맞습니다."

'그럼 마령 목소리를 흉내내면 되지 않을까?'

문을 밖에서 조용히 열 방법이 없다면 내부에서 열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마령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음성 변조를 했다.

"소교주님. 마령입니다."

문틈 사이로 목소리를 전달하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무슨 일이지? 내가 분명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암살자가 있습니다. 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씨, 막 재미보려던 참인데…. 노애. 나가봐."

"우우?"

"문 열라고."

나는 석문 뒤에서 묵향을 몰래 빼 들었다.

잠시 후 기관 장치가 작동했는지 육중한 문이 좌우로 서서히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노애의 목을 향해 일검을 휘둘렀다.

슈숙-!

벌거벗고 있던 노애가 영문도 모른 채 목이 잘렸다.

거의 동시에 무언가 내 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암기?'

묵향을 재차 휘둘러 암기를 쳐내자, 바닥으로 머리핀 같은 것이 박혔다. 자하가 머리에 꽂고 있던 핀을 급하게 날린 모양이었다.

"이노오오옴!"

살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가운 하나만 걸치고 있던 자하가 자색의 기운을 온몸에 두른 채 나에게 날아왔다.

날아왔다고 표현한 건 과장이 아니었다.

침대에서 입구까지 거의 한달음에 도약한 자하가 머리가 잘려 나가 노애의 시체를 부등켜 안고 울부짖었다.

"네놈이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감히 노애를!"

악귀의 형상이었다. 몸 전체가 자색의 기운으로 둘러싸인 것도기괴했는데, 표정을 딱딱히 굳힌 자하의 기세는 그야말로 흉흉했다.

나는 묵향을 들고 내부를 살폈다. 약에 취해 헤롱거리는 옥봉사선자가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온 몸에 오일을 발라 번들거리는 모습이, 그룹 섹스를 준비중인 야동배우같았다. 자하까지 반라인걸 봐선, 아마도 여자들끼리 밴대질을 하려던 타이밍에 기습한 모양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나 보다.

"감히 정파의 후지기수를 농락하려한 죄, 달게 받으라!"

나는 정파의 옥봉사선자를 구출하려는 것처럼 위장했다.

어차피 마교내에서 암투라고 해봐야, 자하가 믿지 않을 것은 알고 있다. 자하가 차갑게 웃었다.

"흥, 주제도 모르는 놈이 까불고 있구나."

자하의 온몸에서 자색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초사이언인으로 변신한 것 같은 자체 발광이었다. 그 기운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내공이 늘었는데도 이정도라고?

'와씨, 생각보다 훨씬 고수같은데? 이러면 계획이 틀어지는데?'

"이제 어쩌실 겁니까 주인님?"

'왠지 좆된 느낌을 지울 수 없군.'

자하가 손을 내뻗자 자색의 기운이 폭포수처럼 들이닥쳤다. 나는 묵향을 휘둘러 쳐내고는 빠르게 자하에게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했다.

그러나 밑에서 뿜어져 나온 자색의 기운이 나의 발목을 휘감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마치 마법처럼 두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이건 예상도 못했던 수법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습을 하려다, 역으로 당하고 말았다.

그녀의 무위가 나를 월등히 뛰어 넘는걸 간과한게 패착이었다.

"뭐, 뭐야?"

"감히 나의 노애를!"

"자, 잠깐!"

이대로는 즉사할 위기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자하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다.

"네놈을 열 토막을 쳐주마. 죽여달라고 울부짖을 때까지 고통을 안겨줄 것이야!"

"소교주. 지금 나를 죽이면 후회하게 될걸?"

"뭐라?"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하긴 죽기 직전의 멘트치고는 조금 황당했을 것이다.

보통은 살려달라고 빌거나, 차라리 죽이라고 악을 쓸 테니.

"무엇을 후회한다는 말이냐?"

"내가 당신을 조금 조사했지. 자하."

"호오. 나를 뒷조사?"

"그래. 보다시피 여색도 밝히고 남색도 밝히거군. 방금 내가 죽인 놈도 그런 목적으로 곁에 두고 있던 거고."

노애를 언급하자 자하의 눈빛에서 보랏빛 안광이 쏟아져나오왔다.

"죽일 테다!"

"잠깐. 노애도 죽고 나까지 죽이면 어디서 대물을 또 구할 건데?"

"뭐?"

"나도 노애 못지않거든."

나는 서슴없이 바지를 내렸다. 동시에 모든 스킬을 총동원해 대물을 꼿꼿이 세웠다. 목 없는 시체가 나뒹구는 앞에서 발기를 하는 건 정신적으로 쉽지 않았지만, 스킬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발기된 대물을 본 자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무슨 짓이냐?"

"살기 위해서지."

"네놈 물건을 보고 내가 살려둘 것 같으냐?"

말도 안되는 도박이었지만, 의외로 자하는 대물에서 눈빛을 못떼고 있었다.

죽은 노애의 잦이는 이미 석이 죽어 축 늘어졌다.

반면 나의 대물은 팔팔하게 우뚝 서 있었다.

자하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참으로 미친 자로구나. 나를 암습하려고 왔다가, 느닷없이 양물을 꺼내놓고 살려달라니."

"소교주의 실력을 못 알아본 게 내 불찰이었소. 그 죄를 몸으로 갚으리다."

"몸으로?"

"저 멍청한 바보보다는 말 귀 알아듣는 내가 훨씬 쓸만하지 않겠소?"

갑자기 자하 미친 듯이 웃었다.

귀기가 서린 웃음에 고막에서 피가 날것 같았다.

"오호호호호! 재밌는 놈이구나. 한데 뒷조사를 조금 부실하게 한 것 같구나."

"뭐라고?"

"노애가 처음부터 저랬는 줄 아느냐? 노애 역시 촉망받던 무당파의 후지기수였다."

"그, 그러면…."

"당연히 내가 바보로 만들었지. 그래야 아무생각도 못하고 본능에 매몰될 수 있거든."

"아니 잠깐,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자하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래. 네 제안도 나쁘진 않겠구나. 생각해보니, 노애처럼 천치로 만들면 되는 것이니."

"아니야, 내 말뜻은."

"가만히 있거라. 노애를 죽인 네놈을 찢어 죽여 마땅하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몸종으로 부리겠다."

'아씨, 이건 또 무슨 전개야?'

"주인님. 진짜로 큰일 난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지? 노애처럼 백치로 변하면 나 게임에서 탈출도 못하는 거 아니냐?' 정말로 좃된 상황이다.

이건 차라리 페널티를 각오하고 죽는 것만 못했다. 포인트가 다 떨어질 때까지 백치가 되어 성노예로 부려지다가 결국엔 게임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아니 잠깐, 그냥 죽여다오!"

"후후-. 갈대같은 사내구나.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지만 이제부터 네놈의 몸은 네놈의 것이 아니다."

자하가 갑자기 내 머리에 양손을 대더니 보랏빛 기운을 뿜어댔다. 그 순간 사지가 마비된 것처럼 옴짝달짝할 수 없었다.

"아, 안돼!"

"후후-. 재밌겠구나. 스스로 제물을 자처하는 암살자라니."

두뇌가 뭉게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바뀌었다.

"주인님! 어서 게임 접속을 끊으셔야 합니다!"

"어, 어떻게!"

"그냥 강제 종료를 누르십시오!"

머릿속이 더 뭉게지기 전에 겨우 메뉴를 찾아 강제 종료를 선택했다. 게임을 포기하면 라이프가 날아간다는 경고가 떴지만, 어차피 이대론 서서히 말라죽는 결론이었다.

"으아아아아!"

* * *

"으아아아아!"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체련단련실에서 깨어났다.

새까맣던 밖은 어느새 어슴프레 동이 터오고 있었다.

"로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강제 종료의 후유증으로 잠깐 기절하셨습니다. 정신적 연결이 끊기느라 데미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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