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30화 (1,485/2,000)

1513. 대학 축제-138-

너무 치욕스러운 순간이다.

이건 마치 군시절 몰래 화장실에서 딸딸이 치고 있는데, 옆 칸에서 변기를 밟고 올라선 고참이 몰래 훔쳐보면서 실실 쪼개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이다.

"아, 이도훈 진짜 실망이네."

사정 이후 완전히 흥이 식어 버린 링링이 나를 나무랐다. 그녀의 비난에 한마디 대꾸도 못 한 채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

'최악이군.'

[기운 내십시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잖습니까?]

'차라리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가 되는 편이 낫겠어. 세상에 천하의 이도훈이 무발기 사정이라니. 그것도 링링 앞에서.'

[하아, 충격이 크시겠지만, 이 또한 지나면 잊혀질 일입니다.]

'잊혀지진 않고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은데.' 링링은 실망한 표정으로 일어서더니 갑티슈에서 휴지를 풀어 밑을 닦아냈다. 남친이 허락 없이 질싸한 것에 짜증내는 여친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아씨, 이게 뭐야. 잔뜩 기대했는데."

"미안해."

"됐어. 30분은 무슨? 10분도 못 버틸 거면서."

투덜거리는 링링을 보자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대물 플레이어가 된 이후로 이런 모욕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링링에게 나는 특별한 의미로 평생 기억될 것이다.

'무발기 사정남이라고 말이지.'

[주, 주인님.]

참담했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치욕이었다.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로시가 말했다.

[주인님.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방법?'

[주인님의 치욕을 씻을 방법 말입니다.]

'그게 뭔데? 설마 신벌을 무효로 돌릴 수도 있는 거야? 그런거면 왜 진작 말 안했어?'

[아닙니다. 신께서 결정한 일에 어찌 제가 참견할 수 있겠습니까? 제 말은 주인님이 치욕을 겪지 않게 만들어 드린다는 의미였습니다.]

'어떻게?'

[링링양의 기억을 소거하십시오.]

'기억을 소거한다고?'

[망각의 라이터가 있지 않습니까?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면 링링양은 오늘 일은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솔깃한 제안이다.

직전 10분간의 기억을 몽땅 날려버리는 망각의 라이터를 이용 한다면 방금 전 있었던 일은 모두 무효화가 될 것이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돌려 몰래 라이터를 꺼낼 준비를 했다.

담배를 피운다는 핑계로 라이터를 꺼내 링링의 눈앞에 켜기만 하면 된다. 불꽃을 바라보는 순간 링링의 기억에서 10분이 삭제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나는 망설였다.

'로시, 이게 정말 최선일까?'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벌어진 일을 없앤다고, 상처받은 내 자존심이 다시 회복되겠냐고 묻는 거야.'

[그것은···. 그래도 최소한 링링양이 지금처럼 주인님을 한심하게 보진 않겠죠. 방금 전 일은 세상에 없던 일이 되는 거니까요.]

로시의 말대로 망각의 라이터를 사용하면 무발기 사정남 도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나는 자존심에 큰 생채기가 났다. 내 기억까지 함께 날려버리지 않는 이상, 이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이다. 어릴적 불에 덴 흉터처럼.

이는 결국 미봉책일 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나는 라이터를 꺼내려는 시도를 중단했다. 이렇게 얼렁뚱땅 넘기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직면이 아닌 회피이며, 용기가 아닌 비겁을 선택하는 길이다.

링링이 실망한 채 방을 나서려는 것을 보고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왜? 아직 더 할 말 있어?"

링링은 나를 완전히 깔보는 눈빛이었다.

그런 대접을 받아도 당장은 할 말이 없었다.

"잠시만 내 말 좀 듣고가."

"뭐? 밖에 다른 애들한테 방금 전 일 일러바칠까봐서? 걱정마.

어디가서 소문내진 않을테니까. 쪽팔린 줄은 아나보지?"

"그게 아니라니까. 얘기 좀 하자고."

나는 링링을 침대로 다시 불러들였다.

링링은 마지못한 척 침대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방금 전 일은 미안. 진심으로 사과할게."

"됐어. 사과하고 말고 할게 있는 일인가? 능력도 안 되면서 허세를 부린 것에 대해서라면 굳이 사과할 필요도 없어. 남자들 허풍 떠는 거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여전히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마지막까지 기다린 그녀의 입장에선 이보다 실망스러운 결과가 없을 것이다.

새벽 2시간을 잠도 못자고 목욕재계까지 하고 기다린 결과가 무발기 노콘 질싸라니.

그야말로 책임없는 쾌락. 나만 즐긴 섹스였다.

아니 나조차도 못 즐긴, 모두의 패배였다.

"만회할 기회를 줘."

"만회라고?"

"아까도 말했듯이 오늘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완전히 체력이 방전된 것 뿐이야. 원래 이렇지 않다는 건, 링링 네가 제일 잘 알잖아."

"흠."

링링이 팔짱을 끼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 전 일로 나에게 무척 실망하긴 했지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손절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계륵같은?

나는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사정했다.

"스케줄 바쁘다면 내가 어떻게든 시간 맞출게. 서울이 아니라, 지방 어디에 있어도 내가 갈 테니까. 한 번만 다시 만회할 기회를줘."

"······."

링링이 고민하는 게 보였다.

지금이 바로 그녀를 설득할 기회였다.

"다음 번엔 다른 애들 방해없이 순수하게 너만 보러 갈 거야.

오직 너하고만."

"지방 어디라도 오겠다고?"

"어. 말 만해. 내가 어디든 달려갈 테니까."

"그리고 다음엔 나랑만 보고?"

"응."

자꾸 되묻는 모습이 분명 기회를 줄 것처럼 보였다.

링링이 고심하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앞으로 보름 동안은 대학 축제 시즌이라 혼자 몸을 빼기가 힘들 거야. 따로 만날 거면 그 이후에나 가능해."

보름이면 2주다.

신벌이 풀리고도 훨씬 남는다.

제대로 된 몸상태라면, 링링이 아니라 링링 할머니라도 상대할 수 있다.

"알았어. 그럼 보름 뒤에 내가 찾아갈게."

"흥. 만약 그때도 오늘과 똑같으면 어쩔 건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테지만, 만약 그러면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게."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였어. 넌 그걸 실패했고."

"그만큼 내가 절박하다는 뜻이야. 지금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가 없어."

"음."

링링이 마지못해 승낙했다.

"알았어. 오늘은 진짜 실망했지만, 다음번엔 다를 거라고 믿을게."

"고마워."

"그리고 지금 새벽 3시야. 괜히 무리하고 말고 여기서 한숨 자고 가. 다른 애들은 내가 못 들어오게 할 테니까 걱정말고."

링링의 권유에도 나는 도저히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발기부전이라는 제약이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여자와는 단 1초도 더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오늘 오전에 일정이 있어서 가봐야 해. 혼자 조용히 떠날테니까 다른 애들한테는 잘 전해줘."

"뭐, 네 뜻이 그렇다면야."

링링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고 방을 떠났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뒤 홀로 남은 방에서 담배를 폈다.

[잘 마무리 하셨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다음번 기회를 노리면 되죠.]

'자존심 졸라 상하네. 내가 고개 숙인 남자가 될 줄이야.'

[불운이 겹쳤을 뿐입니다. 하필 신벌이 내려온 타이밍에 끝판 왕 링링을 만나시는 바람에.]

조용히 담배를 피운 뒤 방을 나섰다.

어느새 다들 잠든 모양으로 거실의 불은 꺼져있고,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하긴 오늘 스케줄을 생각하면 지금 자도 늦은 시간이다.

"···가요?"

그때였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불꺼진 거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린다?"

"네."

어둠 속 소파에 파묻혀 있던 사람은 린다였다.

오늘 나에게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당했던.

그녀를 다시 보자 갑자기 미안해졌다.

어쩌면 그녀를 필요 이상으로 너무 괴롭히는 바람에 신께서 나에게 벌을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별개의 문제였지만, 내 처지가 이렇게 되고 나니 죄책감이든 것이었다.

"안자고 뭐해? 내일 일찍 나가야 한다며?"

"기다렸어요."

"나를? 왜?"

"아까 제대로 사과를 못 한 것 같아서."

린다가 몸을 일으키더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한참 울었는지 눈 주위가 팅팅 부어 있었다.

"미안해요. 제가 이제까지 한 나쁜 짓 모두 사과하고 싶어요."

"······."

린다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이었다.

"제가 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래. 알았어. 사과는 충분히 받았으니, 나도 지난 과거는 잊을 게."

"고마워요."

"엉덩이는 괜찮아?"

아까 제희를 페니반으로 따먹으면서 홧김에 린다의 엉덩이를 후들겨 팬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괜히 심하게 군 것 같다.

"···아팠지만 괜찮아요. 그냥 벌 받는다고 생각하고 맞았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화가 풀릴 수 있다면요."

벌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신벌이 떠올랐다.

아까는 린다에게 복수할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내가 벌 받는 처지가 되자 너무 혹독하게 군 것이 미안했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같은 처지가 되어봐야 역지사지를 할 수 있는가 보다.

"다음번에 만나면 다른 애들하고 똑같이 대할게. 아이돌 데뷔한 거 축하하고, 앞으로도 더 잘 되길 바래."

"고마워요."

린다가 울먹이더니 나에게 폭 안겼다.

나는 린다의 등을 한참동안 토닥여 주었다.

* * *

도훈이 집에 돌아왔을 땐 새벽 4시간 넘은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총알처럼 달려왔지만,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신벌로 인해 앞으로 일정이 모두 꼬여버린 탓이었다. 한숨을 푹내쉬던 도훈은 일단 잠을 자고 계획을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날 정오쯤 눈을 뜬 도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불을 들추고 바지 밑을 살폈다. 건강의 표식과도 같았던 모닝 발기 전혀 없었다. 신벌이 강력함은 놀라울 정도였다.

'젠장. 진짜 좆도 미동도 없네.'

[일주일만 버티시면 됩니다.]

'일주일이면 대체 미션 몇 개가 날아가는 거야? 완전 개점 휴업이란 소리잖아.'

[다행이 미션의 시한이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지금 해결해야 할 미션이 뭐뭐였지?'

로시가 일목요연하게 미션을 정리했다.

[백마흑마 미션과 지난 번 여성부 피트니스 대회 우승자를 공략하는 미션이 남아있습니다.]

'대회 우승자? 아, 그 인터넷 BJ도 한다던?'

[네. 둘 다 일주일 안에 해결해야 하는 미션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신벌로 인해 타격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보다는?'

[주말에 정음양하고 만나기로 했는데, 그것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차!' 도훈은 그제야 정음과의 주말 데이트가 떠올랐다.

축제 기간 방치한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내일 단풍 구경을 가기로 했던 것이다.

'젠장, 하필 정음이 만나는 날에 이 꼴이라니.'

[데이트의 끝이 꼭 섹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젊은 남녀가 단 둘이 만났는데, 섹스를 제외하는 게 말이 돼? 잔뜩 기대하고 있을텐데.'

[그래도 정음양이면 주인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해주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내가 지금 좆도 안 선다고 밝힐 순 없잖아. 무슨 여자들처럼 한달에 한 번씩 마법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흐음.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데이트를 미룰까?'

[그건 더 실망할 것 같은데요.]

'딱 일주일만 미루면 되니까.'

도훈은 정음에게 연락하기 위해 폰을 집어 들었다.

정음에게 깨톡이 와 있었다.

-정음 : 오빠, 저희 내일 만나는 거 맞죠? 어디서 봐요? 너무 기대돼요!

정음의 문자를 보자 도훈은 차마 데이트를 미루자는 말을 꺼내 기가 힘들었다. 문자만 봐도 엄청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 씨, 좆됐네. 저렇게 기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약속을 미뤄."

차라리 정음이 아니라 다른 8선녀였다면 도훈은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축제 기간 내내 방치했던 정음을 한 번 더 기다리게 하자니 그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냥 약속을 지키시지요. 정음양이면 주인님의 사정을 충분히 헤아려 줄 겁니다.]

'미치겠다. 무슨 금욕생활하는 신부도 아니고.'

[실제로 사제로 변신하신 적도 있었죠.]

'그때도 섹스는 다 했다고. 지금은 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고.' 도훈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 축 처진 대물을 내려다 보았다. 분신처럼 여길 만큼 늠름하고 자랑스러운 녀석이었는데, 신벌이후로는 맥없이 처진 모습이 너무나 처량했다.

"왜 서질 못하니. 널린 게 여잔데도 왜 서질 못 해."

도훈이 슬프게 중얼거렸다.

* * *

도훈은 여느때처럼 멋있게 단장하고 정음을 데리러 갔다.

축제와 함께 이어진 주말이었기 때문에 긴 휴식의 방점을 찍는 마지막 연휴이기도 했다.

"오빠!"

아파트 정문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정음이 도훈을 반겼다.

정음은 오늘따라 과감하게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다소 노출이 있는 의상에 도훈은 바짝 긴장했다.

'아, 씨 이거 느낌이 영 안좋은데.'

[정음양이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평소엔 저렇게 안 입는데.'

여자가 데이트할 때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왔다면 의도는 뻔했다.

도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겉으로는 티나지 않게 정음을 반겼다.

"왔어? 예쁘게 하고 나왔네?"

"고마워요."

"근데 단풍 구경하려면 하이킹 좀 해야 하는데 신발 괜찮겠어?"

정음이 보조석에 앉아 다리를 들었다.

"스니커즈라서 괜찮아요."

짧은 치마가 살짝 들리며 허벅지 안쪽 속살이 보였다.

도훈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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