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21화 (1,476/2,000)

1504. 대학 축제-129-

서빙을 하고 있던 효민도 해당 영상을 받았다.

그녀와 함께 국성대에 진학한 고교 동창생 한 명이 효민에게 단톡방에 올라온 영상을 공유한 것이었다.

-아라 : 이분 혹시 너네과 사람임?

잠시 일을 쉬고 있던 효민은 무심결에 영상을 클릭했다. 조잡한 폰카메라로 찍힌 영상 속에서, 한 남자가 야외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뭐지 이게?"

노래는 실제 가수가 부른 것처럼 깔끔했다.

특히 후반부에 엄청난 고음역대가 포인트인 <천년의 사랑>을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소화해 내는게 인상적이었다. 너튜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수 뺨치는 일반인 실력자'에 나오는 사람 같았다.

"우아, 노래 좀 하는데?"

잠시 짬이 난 효민은 친구에게 곧바로 답했다.

-효민 : 누군데? 얼굴이 잘 안 찍여서 봐도 모르겠는데?

-아라 : 오늘 초청가수 공연 전에 올라온 방청객인데, 너네 과라고 하던데? 이름은 까먹었는데 소개할 때 들었어. 분명 체육교 육과라더라고. 효민이 너 체교과 맞지?

"응? 체육교육과라고?"

효민이 영상을 다시 켜 얼굴을 확인했다. 하지만 조그만 핸드폰 화면에서 사람이 새끼손가락보다 작게잡힌 영상이다 보니 얼굴을 직접 확인하는 건 몹시 힘들었다. 전체적인 실루엣으로 봐선 키가 크고 탄탄한 체격을 가진 남자였다.

"흐음, 설마···."

효민은 혼자 판단하기 어려워 옆에 있던 희주에게 물었다.

"희주야 이 사람 누군지 알아보겠어? 친구가 우리과 사람이라 는데 얼굴이 전혀 안 보여서."

"뭔데?"

희주도 효민과 나란히 영상을 감상했다.

너무 멀리서 찍다 보니 얼굴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지만, 대형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만큼은 제대로 녹음되어 있었다.

"오, 노래 잘하는데? 근데 좀 선곡이 에러네. 요즘 누가 이런 노래를 부른담? 학교 10년 꿇은 00학번 시조새도 아니고."

"그래도 제법 잘 부르지 않아?"

"잘 부르는 것 같긴 해. 이 사람이 우리과라고?"

"어. 친구가 방금 보내줬는데 오늘 야외 무대에 올라서 노래 했다고 하더라고. 근데 봐도 누군지 모르겠어."

"키가 꽤 큰데? 키를 봐선 2학년 이지환 선배인가? 아, 아니다, 잠깐만."

희주가 뭔가를 눈치 챘는지 갑자기 영상을 정지시켜놓고 화면에 집중했다.

"어, 이거 아까 도훈 오빠가 입고 있던 옷 같은데?"

"응? 도훈 오빠?"

효민 역시 상대를 도훈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정말로 도훈 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오빠 노래 짱 잘하잖아. 1학기 때 같이 노래방가서 들었는데, 완전 가수 뺨치는 실력이었거든."

"헐, 대박. 오빠는 또 언제 노래까지 부르고 오신 거람?"

효민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친구에게 답장을 보냈다.

-효민 : 우리과 선배님 맞는거 같아. 근데 이거 어디서 났어?

-아라 : 진짜? 대박. 대숲 가봐. 지금 그분 때문에 난리 났어.

효민도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즐기는 타입이다 보니, 국성대 인터넷 신문사의 핫한 게시판인 <대나무숲>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효민은 곧바로 익명게시판에 들어갔다.

"헐, 희주야. 여기 완전 난리 났는데?"

"왜, 왜?"

효민이 호들갑을 떨자 희주도 놀란 표정으로 함께 폰 화면에 집중했다. 친구의 말처럼 익명게시판의 절반 이상의 오늘 깜짝 공연을 한 방청객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늘 노래 부른 훈남, 신상 공개>

효민은 떨리는 마음으로 베스트 게시글을 클릭했다.

-이름 : 이도훈

-학과 : 사범대 체육교육과 2학년

-본인 해당 과랑 아무 상관없는 사범대 타과생임. 눈에 띄어서 교양 시간에 몇 번 마주쳤는데, 실물 개존잘임.

-심지어 어제 피지크 대회 나가서 우승했다고 함.

-여친은 현재 없는 것으로 앎.

(물론 캠퍼스 커플이 아닐수도 있으니 정확하지 않음.)

"헐! 오빠 신상 다 털렸는데?"

"이걸 어째?"

효민과 효주는 서로를 마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번 사건으로 도훈의 인기가 치솟을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야, 이거 관리자한테 내려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왜 동의도 없이 신상을 공개하는데?"

"익명 게시판 관리 안 하는 걸로 유명하잖아. 대놓고 후방주의 사진도 올라오는데 이런걸로 지워 주겠어?"

효민이 초조한지 손톱을 깨물었다.

"이 사실을 오빠가 전혀 모를 것 같은데…."

"음, 큰일이네. 물타기라도 할까?"

"어떻게?"

"어차피 영상까지 나도는 마당에 이름이나 학과 알려지는 건 피할 수 없잖아."

"그럼?"

"아무리 잘생기고 멋있다고 해도 여친 있다고 하면 대부분은 관심 끊잖아. 남의 남자가 잘생기면 어쩔거야."

"아! 좋은 생각이다."

효민과 희주는 각각 대숲에 접속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체교과 훈남 여친 있다던데?

-내가 데이트 하는 거 봤는데 여친 완전 모델 포스임 ㄷㄷㄷ반응은 실시간으로 나왔다.

-하여간 얼굴값 할 줄 알았다.

-그럼 저 몸매에 여친도 없겠냐는.

-김샜네.

-글쓴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여친 없다고 올리면 어캄? 혹시 이도훈 본인임?

-근데 뭐? 골키퍼 있으면 골 안들어가나?

-그거 남자들이 하는 말 아님?

물론 두 사람의 의도와 달리 여친의 여부에 대해선 신경 안쓴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반응은 확실히 반반으로 갈리고 있었다.

"물타기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지?"

"그래도 우리 회장님이 다른 과에 얼굴 팔리는 건 별론데."

"어차피 사범대 내에선 유명했잖아."

도훈이 잘 몰랐을 뿐, 사실 도훈은 사범대 내에선 8선녀 이상으로 유명인이었다. 들어가는 수업마다 눈에 확 띄다 보니,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도훈의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특히 예쁜 여자보다 잘생긴 남자가 귀하다는 걸 생각하면 도훈의 인기는 8선녀 중 최고라는 정음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하긴. 그래도 나는 다른 과 애들이 오빠한테 찝적대면 짜증날것 같아."

"그거야 당연하지. 우리 회장님은 우리가 지켜야지."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일하는 내내 물타기를 주도했다.

한편 설거지를 마친 도훈 역시 담배를 태우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흐음. 학교에 이름이 팔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피트니 스 대회 참가했을 때부터 각오했던 거니까. 근데 너튜브는 절대 안돼.'

[왜 그렇죠?]

'너튜브가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거든. 말 그대로 영상 하나 올리면 전 세계사람이 동시에 볼 수 있으니까. 만에 하나 그걸 PK단원이 봤다고 해봐.'

[지나친 기우로 보이네요. 노래 잘하는 일반인은 주인님 말고도 많습니다. 가수보다 잘 부른다는 사람도 널렸고요.]

'그건 맞는데, 굳이 위험에 노출될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최번개에게 부탁해야 겠다.'

[최번개요? 사람 뒷조사하는 흥신소 직원이 너튜브 같은 인터넷 대형 매체에 상대가 될까요?]

'그게 아니라, 저번에 보니까 해커들 몇 명 알고 있다고 했잖아.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도훈은 곧바로 최번개에 연락했다.

-행님, 무슨 일이십니까요?

현금 1억원을 먹여 놓은 탓에, 최번개는 전화 응대도 빠릿빠릿했다. 도훈은 목소리를 변조해 대뜸 본론부터 말했다.

"번개야. 너 해커들 좀 안다고 했지?"

-네, 행님.

"사이버 장례사 같은 일 하는 사람도 있어?"

-네? 사이버 뭐요?

"아씨, 개인 정보나 유출 영상 같은 거 정리해주는 사람 말이야."

-아아, 행님. 압니다요.

"지금 당장 연락해서 국성대 축제 관련 너튜브에 올라는 영상초상권 침해로 다 신고 넣으라고 해."

-네? 자, 잠시만요. 국성대 축제라고요?

도훈이 곧바로 역정을 냈다.

"이 새끼가 뭘 잘 못 먹었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죄송합니다 행님. 대가리 박겠습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 최번개가 책상에 머리를 강하게 내리찍는 소리였다.

"알았지? 내가 시키는 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명심하겠습니다.

"돈은 신경쓰지마. 부르는대로 준다고 해."

-알겠습니다 행님. 맡겨만 주십시오.

전화를 끊은 도훈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커버가 되겠지?'

[너튜브 약관대로면 영상은 못 올라가거나 인물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할 겁니다. 근데 국성대 축제라고 하면 너무 많은 범위가 아닐까요?]

'어쩔 수 없어. 내가 무대에서 노래 부른 영상이라고 하면 너무 특정이 되잖아.'

[하지만 최번개는 주인님의 실제 얼굴을 모르지 않습니까? 항상 직접 대면할 때면 지금처럼 목소리도 변조하고 얼굴을 성난 도훈으로 바꿨으니까요.]

'최번개가 흥신소 사장이란 걸 간과해선 안 돼. 놈이 아무리 돈에 충성하는 놈이라고 해도, 이도훈이 직접 노출되면 약점을 잡힐수도 있거든.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니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봐.'

[역시 주인님은 꼼꼼하십니다.]

도훈이 담배를 다 태우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효민과 희주가 동시에 그에게 다가왔다.

"오빠 또 담배 피우셨어요?"

"으, 옷에서 냄새나요."

친근한 척 다가온 두 사람은 도훈에게 달라붙더니 물었다.

"오빠 혹시 무대에 올라서 노래 부르셨어요?"

"니들이 어떻게 알았어?"

"친구가 영상 보내줬더고요."

"엄청 잘 부르셨던데요."

"내가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성수형이 떠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어."

"그랬구나."

"암튼 저희가 잘 처리하고 있어요."

"처리? 무슨?"

"히히. 암튼 그렇게만 알고 있으세요."

두 사람은 제 할말만 하더니 다시 일하러 가버렸다.

도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학과 사람들에게도 벌써 소문이 다 났군요.]

'어차피 성수 입을 틀어 막지 않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나저나 슬슬 인천행 준비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요.]

'근데 뒤풀이 해주기로 했는데 무슨 핑계로 빠져나간다?'

축제 마지막 날은 영업을 일찍 접고 고생한 후배들과 뒷풀이를 약속했었다. 다들 힘들고 지친 기색에도 힘을 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는데, 정작 주인공이 도훈이 몰래 빠져나가면 실망할 것이 두려웠다.

'흐음. 어쩔 수 없다.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무슨 방법이요?]

'컨디션 난조.'

[네?]

'몸이 안 좋다고 일찍 집에 들어가겠다고 해야지. 그럼 집에 따라오려는 후배들까지 원천 차단할 수 있으니까.'

설마 하니 아픈 사람을 상대로 덮치진 않겠다는 계산이었다.

'성수가 오늘 일이 책임이 있으니, 성수보고 책임지라고 해야겠다.'

적당한 시간이 되자 도훈이 서현에게 영업 마감을 부탁했다.

"12시부터 바로 뒷풀이 할 수 있도록 더 손님 받지 마. 알겠지?"

"네, 회장님."

서현이 빠르게 마감을 서둘렀다.

소식을 전달받은 다른 학생들도, 스스로 먹고 마실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도훈을 도와 늦게까지 주점에 남아있던 성수도 곧 뒷풀이를 한다는 소식에 신을 냈다.

"오늘 완전 날 잡았네. 아주 고주망태로 마셔버려야지."

"적당히 해요. 내일도 공부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루쯤은 괜찮아. 당장 올해 시험보는 것도 아닌데."

술과 안주를 좋아하는 성수는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도훈이 성수 앞에서 슬슬 연기했다. 갑자기 다리가 풀린 사람처럼 휘청하면서 테이블을 지탱해 버틴 것이었다.

"어? 너 왜 그러냐?"

도훈이 일부러 안색에 핏기를 없앤 뒤 대답했다.

"아, 갑자기 현기증이."

"현기증? 아니 사지 멀쩡한 놈이 왜 갑자기 어지러워? 너 잠깐 앉아봐. 안색도 안좋은데?"

성수가 놀라서 도훈을 의자에 앉혔다.

"실은 어제 피트니스 대회 참가한다고 개체량을 심하게 조절했거든요."

"뭐?"

"아니 살을 좀 빼야 근육이 더 돋보일 것 같아서요. 그 뒤로 영양 보충을 하면서 쉬어줬어야 되는데, 아침부터 계속 돌아다니는 바람에…."

도훈의 힘없는 대답에 성수가 탄식을 터뜨렸다.

"아, 이 자식 무리했네."

성수는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회를 앞두고 개체량 통과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몸무게를 맞추지 못하면 해당 체급 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수증이 오기 직전까지 수분섭취도 제한하고 사우나에서 몇시간씩 앉아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너 괜찮냐? 밥은 제대로 먹었어?"

"감량한다고 며칠동안 바나나랑 고구마만 먹었더니, 막상 밥이 안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굶었어요."

"하-. 이 새끼 진짜 쓰러지려고. 인마. 그러다 골병 드는 거야."

성수가 걱정스럽게 도훈을 향해 말했다.

"안되겠다. 너 얼른 들어가 좀 쉬어라."

"뒤풀이는 어떻게 하고요?"

"내가 알아서 할게. 어차피 너 하나 없어도 학과 돌아가는 건 문제 없어."

"그래도요."

"어허. 이 새끼가 고집 피우네. 너 지금 술까지 마시면 응급실실려가 인마. 위장 버리면 몇 달간 고생하는 거 알지?"

"마지막 날 회장이 없으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도훈이 힘든 내색을 감추지 않으며 연기했다.

성수가 한 숨을 푹 내쉬었다.

"걱정 마. 너만 간부냐. 나도 부회장 출신이야. 오늘은 나한테 맡기고 얼른 집에 들어가 쉬어. 후배들한테는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까."

"그래주실래요?"

"아프다는데 누가 널 탓해? 그런 놈 있으면 확 내가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테니까 걱정 말고 가."

도훈은 성수에게 뒷일을 맡기며 조용히 주점에서 사라졌다.

힘없이 걷던 그는 성수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 듯이 뛰어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남자 탈의실엔 아까 자신이 인천에서 넘어올 때 설치한 포탈이 설정되어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