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19화 (1,474/2,000)

1502. 대학 축제-127-

눈치 없는 총학생회 부회장 덕에 쓸데없는 영상이나 보고 있던 도훈이 성수에게 물었다.

"근데 걔네들은 언제 온대요?"

"이제 공연 시각 30분 남았으니까 지금쯤 슬슬 도착하지 않았을까?"

"와서 몇 곡이나 부르고 가는데요?"

"글쎄? 두 곡?"

"엥? 두 곡이면 10분도 안 걸리잖아요?"

"운 좋으면 앵콜로 3곡까지 부를 수도 있고."

"와, 고작 10분 남짓 노래하러 여기까지 오는 거라고요?"

성수가 웃으며 말했다.

"인마. 그래도 받는 돈이 꽤 쏠쏠할 걸? 시간당으로 치면 엄청 남는 장사라고."

"얼마나 받는데요?"

"나도 우연히 들었는데 총학생회에서 가수 초청에 5000만원이상 뿌렸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이 새끼들 학생회비 걷어서 가수들한테 퍼준다니까?"

"오천씩이나요? 신인 가수 한팀 부르는데?"

"물론 한 팀한테 다 주는 게 아니라 3일간 부른 모든 초청가수에게 들어가는 예산이겠지. 신인들은 사이즈가 작다고 들었어. 어제 왔던 메인 혼자서 거진 절반 이상 가져간다고 봐야지."

"그래도 대단하네요. 가수도 꽤 할 만한 직업이구나. 몇 곡 부르고 수천을 땡겨가다니. 완전 남는 장사네."

"그럼 너도 가수나 하지 그랬냐?"

성수가 놀리듯이 말하다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진지하게 다시 말했다.

"맞다. 너 노래 잘 부르잖아."

"제가요?"

"왜, 저번에 노래방가서 부를 때 보니까 완전 잘 하던데?"

"에이, 그냥 비슷하게 흉내만 낸 거죠. 저 별로 노래 못해요."

"아니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네가 제일 잘 부르더라."

낯뜨거운 성수의 칭찬에 도훈이 겸연쩍게 웃었다. 실은 본인의 실력이 아니라 '오늘은 내가 가수다 목캔디'의 효과를 톡톡히 본 까닭이었다. 전생에서도 노래는 그닥 잘 부르는 편도 아니었지만, 새롭게 빙의한 도훈도 노래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때였다.

쓸데없는 영상으로 비난을 받던 부회장 김선재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준비한 영상은 여기까지 입니다. 저희 21대 총학생회에서는 젊고 열정 있는 신입 회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을···."

"우우! 물러가라!"

"얼른 가수나 나오라고 해!"

"너보러 여기까지 온 거 아니라고. 당장 미소 불러!"

"링링 보고 싶다고!"

관중들의 계속되는 야유에도 부회장은 전혀 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뻔뻔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무디다고 해야 할지 좀 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예, 저 그럼 초청가수를 부르기 앞서, 잠시 시간이 남았는데 혹시 무대 위로 올라와서 노래 부르실 분 계실까요?"

"뭐라고?"

"아니, 뭐야. 아직도 준비 안 된 거야?"

"꼬박 2시간을 기다렸다고!"

"죄송합니다만 도로 사정으로 가수분들 도착이 지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면 홍보 영상 한 번만 더 틀어드릴까요?"

"치워라!"

"불질러 버린다 총학!"

"너네 일 이따위로 할 거냐? 학생회비 걷어서 술 처마셨어?"

뻔뻔한 부회장의 태도와 기다림에 지친 성난 관중들이 합쳐지자 금방이라도 소요가 일어날 것처럼 객석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일찍 도착해 비교적 앞자리에 앉아있던 성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도훈은 갑자기 성수가 왜 그러나 싶었다.

"네, 그 쪽 덩치 크신 분. 혹시 나와서 노래 하시겠습니까?"

"아뇨! 제 후배가 할 겁니다."

"예? 갑자기 저요?"

그러면서 불쑥 도훈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데 무방비로 앉아 있던 도훈은 졸지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말았다. 사회를 맡은 부회장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급히 도훈을 무대 위로 호출했다.

"오, 거기 키 크신 남자분.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아니 형, 갑자기 저를?"

"인마. 좋은 기회다. 가서 우리 과의 명예를 높이고 와."

"얼른 나오세요."

사회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훈을 끈질기게 불렀다. 금방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관중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던 것이었다. 도훈이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고는 어차피 논외였다.

잘 불러주면 땡큐고, 설사 못 부른다고 해도 사람들의 비아냥을 받으며 시간을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라오시라니까요. 얼른."

도훈은 성수의 돌발행동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자 무척 당혹스러웠다. 안 그래도 큰 키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서자 확 눈에 띄었던 것.

"도훈아. 너만 믿는다."

"아니 형 진짜···."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벤트에 신이 난듯 갑자기 주먹을 쥐면서 도훈이 무대로 오르기를 종용했다.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처음엔 한 두명이 시작하던 구호가, 갑자기 물결처럼 퍼지더니 상당수의 관중들이 도훈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빼도 박도 못한 상황에 사회자가 자꾸 자신을 부르자 도훈이 하는 수없이 무대 쪽으로 걸어 나갔다.

도훈의 뒷 모습만 보고 있던 관중들은, 무대위로 오른 도훈에게 조명이 비추자 감탄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아, 엄청 잘생겼는데?"

"뭐야 저 비율은? 모델인 줄."

"신인 가수인가? 설마 깜짝 이벤트 같은 건가?"

다들 도훈의 정체를 궁금해하는데 사회자가 갑자기 도훈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자, 막간을 이용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시겠다고 나오셨는데, 간단히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 저 그게···."

"꺄아아악! 잘 생겼다!"

"오빠 멋있어요!"

도훈의 얼굴에 뿅 간 여학생들이 대뜸 소리를 지르자 관중석이 술렁였다. 처음엔 단순히 무료한 시간이나 때우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도훈의 범상치 않은 외모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뭐야? 오늘 초청 가수 바뀐거야?"

"사회자가 노래부를 사람 뽑았는데 자진해서 나온 것 같은데?"

"근데 누구야? 되게 잘생겼는데?"

뒤늦게 온 학생들은 무대에 오른 도훈이 자신이 모르는 남자 신인 가수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기대감이 커지자 도훈은 점점 난처해졌다.

'와씨, 성수 이 새끼 두고보자."

[주인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몰라. 엉겹결에 무대까지 올라올 줄이야. 사람들 너무 많아서 쪽팔리는데.'

축제 마지막날, 야외무대 객석은 꽉 차 있었다. 분명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괜스레 도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소개 좀 부탁합니다."

여기서 빼면 모양이 빠진다고 생각한 도훈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땀방울로 하나되는 체육교육과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체육교육과요? 어쩐지 몸이 범상치가 않으시더니!"

사회자는 별 생각없이 부른 도훈이 의외로 관중들의 주목을 받자 일부러 그를 띄워주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도훈의 등장은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엄청 미남이시네요. 그죠 여러분?"

"꺄악, 너무 멋있어요!"

"아아, 그 사람이구나! 어디서 봤다고 했더니!"

"누구?"

"어제 피지크 대회 우승자 말이야. 맞지?"

"엇, 나도 아까 기사에서 본 것 같아."

일부 관중들은 도훈이 피지크 대회 우승자 출신이란 걸 알아보고는 금세 주변으로 소문을 퍼뜨렸다.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훈의 이름을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회자가 계속 진행을 이어갔다.

"외모는 이미 합격이신데 과연 노래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혹시 준비하신 노래가 있으신가요?"

"그게 갑자기 올라와서 딱히 생각해 둔 게···."

"괜찮습니다! 여기 음원 다 준비 되어 있죠?"

사회자가 스테프에게 묻자 스테프들이 Ok 사인을 보냈다.

"어떤 노래든 괜찮습니다. 신청만 해주시면 바로 반주 틀어 드리겠습니다."

사회자의 막무가내식 진행에 도훈은 도저히 물러설 길이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관중들은 뜻밖에 벌어진 이벤트가 재밌는지 신이 난 표정으로 구경했다.

[주인님, 이거 너무 사람들 눈에 띄는 거 아닙니까?]

'아씨, 성수 자식 때문에 내가 이게 무슨 꼴이람?'

[지금이라도 그냥 내려가시죠. 얼굴 팔려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은데요.]

도훈이 적극적으로 얼굴을 알리지 않은 건 어딘가에 숨어 있을 PK단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긴 한데 이제와서 어떻게 도로 내려가겠어. 쪽팔리는 게 더 싫은데.'

[흐음,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미호 말로는 다른 단원들은 나를 모른다고 했으니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설마 노래 한곡 불렀다고 의심이야 하겠어?'

"노래해! 노래해!"

"오빠, 그냥 아무곡이나 불러주세요!"

"꺄아! 기대된다!"

도훈의 외모에 반한 여자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종용했다. 빼도박도 못한 상황이 된 도훈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난처해 졌다.

'그나저나 뭘 부르지. 아는 노래도 별로 없는데.'

[일전에 연습했던 곡이라도 하시죠.]

'너무 오래된 노랜데 괜찮으려나?'

[지금 그걸 따질 땝니까?]

도훈은 사회자에게 선곡을 알렸다.

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테프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천년의 사랑 MR 넣어주세요."

"오오, 시작한다."

"천년의 사랑? 그거 엄청 부르기 어려운 노래 아니야?"

"미쳤다! 완전 90년대 감성!"

"화이팅!"

곧 반주가 깔리자 사회자가 센스 있게 무대 옆으로 퇴장했다.

중앙 조명이 도훈의 정면을 비추자 눈이 부셔 관중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성수의 어이없는 돌발행동으로 벌어진 참사에 도훈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젠장, 이렇게 된 거 그냥 한 곡만 딱 뽑고 후딱 내려가야겠다.'

[아이템 준비해 드릴까요?]

'오케이.'

도훈은 바닥에 놓인 생수를 마시는 척 등을 돌리더니 '오늘은 내가 가수다 목캔디'와 함께 마셨다.

꿀꺽-

앞으로 약 3분, 원곡 가수 뺨치는 실력을 선보이게 할 비장의 아이템이었다.

긴 전주가 끝나고 도훈이 본격적으로 마이크를 잡자 객석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꺄아아아아아! 목소리 쩔어!"

"제법 느낌 있는데?"

"완전 박완규 목소리잖아?"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첫 소절만 불러도 가늠이 된다고 했던가? 도훈의 범상치 않은 실력을 예감한 이들은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히든싱어에서 기대도 않던 참가자가 의외로 실력을 뽐내는 것 같은 비슷한 반응이었다.

노래가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달으며 올라가자 객석 전체가 웅성거렸다.

"나를 위해서~ 눈물도 참아야 했던~! 그 동안에 넌 얼마나 힘이 들었니!"

"미쳤다, 음색!"

"고음 뭔데? 엄청 잘하는데?"

"진짜로 가수 아니야?"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

"우아아아아아!"

그야말로 폭발적인 가창력.

여자 아이돌만 기다리던 삼촌팬들마저 자리를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놀라운 노래 실력에 야외 무대는 완전히 난리가 났다.

도훈은 문자 그대로 무대를 찢어버렸다.

* * *

"우아아아아아아!"

도로 사정 때문에 10분 늦게 장소에 도착한 걸그룹 멤버들은 생각보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당황했다.

"뭔데? 우리 말고 다른 가수도 있었어?"

"아닐 텐데?"

"뭔데 저건?"

급히 승합차에서 내리던 미소와 링링은 뜨거운 열기에 휩싸인 무대 쪽을 쳐다보았다. 유명 팝가수가 내한 공연이라도 온 것같은 열광적인 함성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노래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대신?"

"서둘러. 이미 10분 지각이야."

"아니 매니저님이 늦으시구선 왜 우리한테 그러세요?"

"길이 막히는 걸 난들 어떻게 해? 중간에 사고가 날 줄 내가 알았나, 뭐."

걸그룹 멤버들이 서둘러 무대 뒤로 돌아가는데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정말 대단한 무대였습니다. 혹시 진짜로 가수는 아니시죠?"

"아닙니다."

"와, 노래할 때 목소리가 완전 가수 뺨치는데요? 여러분 어떠셨습니까?"

"최고다!"

"체육교육과 이도훈, 기억할게!"

"오빠, 날 가져요!"

도훈의 열창에 대한 흥분이 남은 야외무대는 공기부터 뜨거웠다. 도훈을 억지로 들이밀었던 성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짜식. 내 덕에 인기 좀 얻겠구나. 형이 다 너 여친 생기라고 밀어준 거야 인마.'

"이상으로 체육교육과 이도훈 학생이었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아아!"

"한곡 더! 한곡 더!"

"앵콜 해주세요, 오빠!"

관중들은 이제 오늘의 초청가수였던 걸그룹을 까맣게 잊고 도훈의 이름을 연호했다. 사회자는 이미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객석의 요구를 무시하며 진행을 이어갔다.

"자자, 드디어 도착했다고 합니다. 소개합니다. 걸그룹계의 떠오르는 신성!···."

그 사이 도훈은 재빨리 무대를 내려왔다.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는 바람에 도저히 야외무대 앞에 앉아있을 수 없던 도훈은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 주점쪽으로 사라졌다.

'아오, 성수가 형만 아니었어도 진짜!'

[어쨌든 잘하셨습니다. 당황하셨을텐데 끝까지 침착하게 잘 부르시더군요.]

'기왕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지. 근데 얼굴 많이 팔렸겠지?'

[학교가 떠들썩하겠던데요?]

'나중에 미호한테 한 번 연락해 봐야겠다. 내가 이럴까봐 피트니스 대회까지 포기했는데.'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노래 잘부르는 일반인이야 널리고 널렸는데요 뭘. 노래 좀 잘한다고 주인님을 플레이어로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긴 한데···. 괜히 찝찝하네. 암튼 아이돌이고 뭐고 나는 일단 주점에 짱박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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