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18화 (1,473/2,000)

1501. 대학 축제-126-

장비처럼 호탕하게 웃어보이던 성수가 갑자기 도훈에게 말했다.

"야 너 잠 깬김에 이거나 좀 봐라."

성수가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뭔데요?"

"인터넷에 네 기사 떳다."

"네? 기사라뇨?"

"국성 타임즈 인터넷 판 말이야. 짜식, 완전 스타 됐던데?"

"기사가 벌써 나왔어요?"

"얼레? 알고 있었나 보네? 한번 읽어봐."

도훈은 성수가 내민 기사를 빠르게 훑었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우승당시 포즈를 취하던 자신의 뒷 모습과 인터뷰 할 때 찍은 어색한 사진이 찍혀 있었다.

"근데 언제 또 인터뷰까지 했냐?"

도훈은 피지크 종목을 우승하고 곧바로 설수지와 인터뷰를 했었다. 물론 그 장소가 모텔인 것은 비밀이지만.

"대회 우승하고 나오는데 기자가 한 명 따라붙더라고요. 본인이 대학 신문 기자라면서."

"설수지였지?"

"어? 형이 어떻게 알아요?"

"내가 왜 몰라 인마. 여친 통해서 소개팅 시켜줬던 애잖아. 이름이 특이해서 기자 이름 보자마자 눈치챘지."

"그렇구나."

"근데 어떻게 소개팅해서 한 번. 만난 애를 인터뷰로 다시 만났냐? 그것도 인연인데 잘해보지 그래?"

도훈이 속으로 웃었다.

'이미 모텔에서 진하게 회포는 풀었거든.'

"암튼 신기하더라고요. 대학 내일 대학상 기자라면서 보니까, 구면이더라고요."

"걔는 언제 또 기자까지 됐대?"

"아직 정식 기자는 아니고 수습이라고 들었어요. 근데 엄청 빠르네요. 어제 인터뷰 한 것 같은데 오늘 신문에 나다니."

"요샌 속도가 생명이잖아. 축제 기간에도 신문사는 안 쉬니까.

근데 설수지랑 분위기 좋았어?"

"네?"

"기사를 보니까 정성이 가득하더라고.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쓴 헌정 기사처럼."

"에엑?"

도훈은 기사 내용을 안 보고 빠르게 사진만 훑었기 때문에 성수에게 내용을 듣고 나서 조금은 머쓱해졌다.

'아놔. 설수지 오버하지 말래니까.'

[기자에게 몸 로비까지 하셨는데, 좋은 기사가 나올 수 밖에요.

]

'그래도 다른 애들이 보면 오해할 거 아니야.'

[성수군은 설수지와 주인님이 소개팅한 사실을 아니까 그렇게 반응한 거겠죠. 다른 사람들은 설수지가 누군지도 모를텐데요. 기자와 인터뷰이가 모텔에서 뒹구는 사이라는 걸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하긴 그런가?'

"그래도 용케 얼굴은 잘 안 나오게 찍었더라?"

"제가 민망하다고 최대한 가려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대회 사진도 일부러 백포징 한 걸로 찍고.

근데 여긴 어디야? 까페라고 보기엔 벽지가 조금 거시기 한데?"

"네?"

도훈은 성수가 가리키는 사진을 보다 움찔 놀랐다.

해당 사진은 모텔에서 질펀하게 섹스를 나누고 난 뒤 담배를 피우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있던 도훈을 찍은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을 들이밀어서 별 생각을 못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기사에 실릴 인터뷰 컷이었다.

'아놔. 하필 찍어도 이런 사진을.'

[배경이 좀 이상하긴 한데 설마 모텔이라곤 생각 못할 겁니다.]

"하하. 까페에서 찍은 거예요.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보니 인테리어가 제법 독특하더라고요."

"그치? 난 또 괜히 이상한 생각했잖아."

"무슨 생각요?"

"벽지가 너무 모텔 같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저번에 여친이랑갔던 모텔이랑 너무 비슷해서."

"에이, 무슨 소리예요. 형도."

"농담이야 짜샤. 암튼 기사도 났으니 이제 알아보는 사람 생기는 거 아니냐?"

"얼굴도 제대로 안 나왔구만요, 뭘.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체육교육과 2학년 재학중이라고 떡하니 적혀있잖아. "

"우리과에 몸 좋은 애들이 한 둘인가 뭘?"

"겸손하긴. 너만한 몸은 몇 없지."

"그리고 대학 신문 같은 걸 누가 본다고 그래요. 그냥 대충 보다 넘기고 말겠지."

도훈은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성수가 계속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너 아직 모르는 구나? 우리 대학 신문 나름 유명해 인마. 거기 대나무 숲이라고 익명 게시판이 엄청 꿀잼이거든. 사실 그거 보러 신문사 홈페이지 들어간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걸?"

"형은 공부 안하고 그런 것만 찾아봤어요?"

"자주는 아니고 머리 식힐 때만 한 번씩 보는 거야. 너도 한 번 봐. 완전 문화 충격 받을 거다."

"익명 게시판이요? 그런건 대학마다 다 있는 거잖아요."

"그런게 아니라니까 그래. 거긴 학생증 인증을 해야지만 가입이 되거든. 아무나 글을 쓸 수 없다는 거지. 근데 진짜 가서 보면 진짜 야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적나라한 내용들이 많더라고."

"헐. 대학 익명 게시판에요?"

"어. 장난 아니야. 무슨과 누가 누구랑 바람 폈더라부터, 가끔씩 섹파 구한다는 글까지 올라오고, 암튼 각종 이상성욕 글까지 온갖 잡탕이랄까?"

"잠깐만, 그걸 그냥 놔둔다고요? 대학 신문사에서 관리 안해요?"

"알면서도 그냥 조회수 장사 하는 거지. 니 말마따나 대학 신문인터넷 판을 누가 들어가서 찾아 보겠냐? 종이로 인쇄해서 뿌려도 라면 받침으로 쓰다 버리면 다행인데."

"흐음."

"아직 공연까지 시간 좀 남았으니까 한 번 구경이나 해보든지.

거기 중독되면 진짜 못 헤어날걸."

성수의 말에 도훈도 점점 호기심이 동했다.

내용을 듣자니, 국성 타임즈의 익명 게시판은 대학내 성적 욕망을 배출하는 창구로 쓰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훈은 혹시나 자신에 대한 소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학 신문 사이트에 가입했다. 성수의 말대로 신분증과 학번을 대조하여 인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대학 재학생이나 현직 교원및 교직원이 아니면 가입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호오. 우리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이지?'

도훈은 '대나무숲'이라 이름 붙은 익명 게시판을 클릭했다.

글쓴이가 누군지는 철저하게 익명에 가려져 있었지만, 몇명이글을 읽었는지 조회수는 노출되어 있었다. 도훈은 1시간 전 올라온 글의 조회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500명? 그것도 한 시간만에?'

도훈은 숫자를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철저한 인증을 거치는 회원제 사이트가 1시간 조회수가 500명이라는 말은 실제로 이용하는 회원들 숫자가 최소 10배 넘는다는 뜻이었다.

국성대 인원 전체가 대학원생을 합쳐도 2만명 남짓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드는 지 알 수 있었다.

'대박이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도훈은 신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천천히 게시판에 올라온 제목을 살폈다. 성수 말대로 쓸데없는 잡설이 반,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야한 썰로 채워져 있었다.

가령 <나의 섹파 변천사, -쓰니 여자> 라는 글의 조회수는 1만 히트를 훌쩍 넘었다. 중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수가 관음하 듯 글을 훔쳐 보고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미쳤네. 아무리 익명이라도 무슨 저런 썰을.'

도훈은 계속 게시글을 살피다 문득 이상한 제목을 확인했다.

<한송이 불륜썰 푼다.>

'한송이?'

[어제 놓친 공략대상 아닙니까? 육정음양을 누르고 피트니스대회 여자부 우승했다는.]

'어, 맞다. 걔가 한송이였지?'

[통기타 동아리 활동에, 인터넷 방송 BJ까지 겸하는 전천후 인플루언서죠.]

'근데 불륜이라니 무슨 소릴까?'

한송이가 유명하긴 했는지 해당 댓글은 조회수가 벌써 2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과장 보태면 국성대 다니는 전원이 한 번씩은 클릭해 봤다는 소리였다.

[조회수가 어마어마한데요?]

'중복 조회가 가능한가 보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전체 회원이 다 가입해야 2만명 겨우 넘을 텐데, 게시글 조회수가 벌써 2만이 넘는 다는게 말이 되겠어? 난 오늘에서야 가입했는데.'

[하긴 그렇군요. 그나저나 한송이양이 제법 인기가 많나 봅니다.]

'일단 봐보자.' 게시글엔 다음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본인 한송이랑 고등학교 동창임.

-졸업장 엘범 표지 사진으로 인증 대신함.

그리고 이어지는 사진엔 <선화여고 53회 졸업앨범>의 사진이 나왔다.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여고 동창이면 글쓴이가 여자라는 뜻이군요.]

'사실이든 아니든 반 쯤 걸러들어야 겠다.'

[왜요? 사실인 걸 증명하기 위해 인증까지 했는데요?]

'그래서 더 못 믿겠다는 거지. 한송이가 잘나가니까 괜히 배알이 꼴려서 일부러 모함하려는 수작일 수도 있으니까.'

[아하.]

'일단 계속 읽어보자.'

-송이랑 같은 반이 된 적은 없는데, 친구 통해서 전해 들은 이야기임. 믿거나 말거나 내가 적는 글은 모두 사실임.

-송이가 고딩 때 과외를 했는데, 과외 선생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있었음. 그 과외 선생이 수업 때마다 송희 따먹었다고.

-문제는 그 과외 선생이 유부남이었다는 것임.

-학교에서 하도 소문이 무성하게 퍼지니까 한번은 담임이 송이 불러서 직접 물어봄.

-근데 송이가 죽어도 과외 선생에 대해 안알려 준 거임.

-그리고는 야자때마다 본인 과외한다고 일주일에 두 번씩 빠짐.

-나중에 이유도 없이 1년 휴학했는데, 그때 임신해서 애 뗐다는 소문이 있었음.

-그래서 졸업 엘범에 보면 송이 1년 꿇어서 우리 후배들하고 졸업함.

다소 충격적인 내용에 도훈이 혀를 내둘렀다.

'악질적이네.'

[네?]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이렇게 익명 게시판에서 저격하는 건 정말 치졸한 짓이라는 거야. 한송이가 실제로 과외 선생이랑 잤던, 그 사람 애를 뱄건 본인이랑 무슨 상관있다고?'

[흐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의도가 뻔히 보이잖아.'

도훈은 게시글 밑으로 달린 수백개의 댓글을 읽었다.

-송이 딱 봐도 존나 까져 보이잖음.

-색기 넘치는 이유가 어려서부터 존나 과외선생한테 따먹혀서였구만!

-역시 얼굴 반반한 것들은 얼굴값 한다니까?

-나도 옆 학교 나왔는데, 그 소문 들었던 것 같음. 누가 임신해서 1년 꿇었다고. 그게 한송이였구나.

공격적인 댓글이 이어지던 중 반박 댓글도 올라왔다.

-존나 익명 뒤에서 숨어서 저격하는 꼴 봐.

-꼴랑 증거라고는 졸업장 표지 사진임? 그런건 나도 구할 수 있음.

-송이가 라방에서 고등학교 때 1년 휴학한 거 병원입원이라고 밝혔는데 개소리 오지네

-하여간 보적보 오졌죠? 송이 잘나가니까 존재감 없던 쩌리 동창생이 대숲에 독을 풀었네.

뒤로 이어지는 댓글은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남녀간 대결로 전쟁이 붙어 서로 간에 인신공격과 욕설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으음, 불륜이라니, 그것도 고등학교때 과외선생님하고. 이게 정말일까요?]

'겉으로 봐선 전혀 안 그렇게 생겼던데?'

[일단 학교를 휴학한 건 사실인것 같군요.]

'그게 불륜의 증거가 될 수는 없지. 또 본인 말로는 아팠다잖아.'

[흐음, 어쨌건 주인님하곤 상관없는 이야기니까요.]

'근데 한송이 얘 말이야. 뭔가 수상하지 않아?'

[네?]

'과거 일은 사실 관심도 없는데,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 느낌을 풍긴단 말이지?'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일단 너무 다재다능해.'

[헬스에, 음악실력에, 인터넷 방송까지. 못 하는 게 없긴하죠.

근데 그게 왜요?]

'···마치 플레이어 같지 않아?' 도훈은 한송이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위화감을 상기했다. 분명 보통 사람과는 다른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저히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개인이 이룬 성취라고 보기엔 너무나 재능이 뛰어나잖아. 내가 그러듯이.'

[그러니까 주인님 생각에는, 주인님처럼 팔방미인에 다재다능하다는 이유로 플레이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단 말입니까?]

'아니. 꼭 그건 아닌데. 근데 상대가 플레이어면 내가 못 알아보나? 혹은 상대도.'

[등급에 따라 다릅니다. 주인님이 랭커였다면 바로 눈치 챘겠죠. 하지만 아직 중수시니까 알 수 없는게 정상입니다.]

'근데 미션이 걸렸잖아. 상대가 정말 플레이어 였다면 미션 대상에선 제외되는 거 아니야?'

[아뇨. 상관없습니다.]

'상관 없다고?'

[그런 미션이 걸리면 절대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판별이 가능해 지니까요. 미션과 플레이어와는 관련 없습니다.]

'플레이어를 따먹는 업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근데 미션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거든.'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공략 시점이 되었을 때나 알 게 되겠지요.]

'흐음. 진짜로 수상한데. 혹시 국성대에 나 말고 다른 플레이어가 존재할 가능성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데, 확률상 0.001%도 안 될 겁니다. 플레이는 그렇게 흔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1프로라.' 도훈이 핸드폰을 보며 계속 생각에 잠겨 있는데, 성수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야, 사회자 나온다. 곧 시작하려나봐."

성수의 말대로 사회를 맡은 총학생회 간부 한명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국성대 총학생회 부회장 김선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회자가 꾸벅 인사를 했지만, 야외 무대 객석에 앉은 관중들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저 아이돌 가수를 보기 위해 모였기 때문인지, 뜬금없는 총학 부회장의 등장에 실망한 눈치였다.

하지만 부회장은 꿋꿋이 사회를 이어갔다.

"이제 공연시작 30분 전입니다. 막간을 이용해 올해 총학생회활동을 영상으로 묶어 보았으니 즐겁게 감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우. 얼른 초대가수나 불러와."

"우린 총학 활동 같은 거 관심 없다고."

"지금 뭐하는 거야? 사람들 밖에다 불러 놓고."

까칠한 관중들의 반응에도 부학생회장은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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