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4. 대학 축제-119-
[주인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건 너무 무지성 구매아닙니까?]
'무지성 구매 맞는데?'
[아니, 그걸 아시는 분이 그렇게 무식하게 투자를 하신다고요?
심지어 주인님은 전생에 제법 투자도 해보셨지 않습니까?]
'했지. 했는데, 주식은 영 소질이 없더라고. 정확하게 말하면 난 투자를 그렇게 잘한 편은 아니었어. 집이랑 상가를 몇개 사놨는데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라 쉽게 돈을 번 것뿐이야.'
[아아, 그렇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투자를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주인님 돈이 아니라고 막 쓰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야.'
[그럼요?]
'너 주식에 고수가 있다고 생각해?'
[있긴 있겠죠. 펀드 매니저라든가.]
'펀드 매니저라.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예전에 영국에서 실험을 한 적 있어.'
[무슨 실험이요?]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 여럿이랑, 침팬치랑 주식 대결을 붙인 거지.'
[사람이랑 침팬치랑요? 어떻게 말입니까?]
'뭐 정확하게는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6개월인가 기간을 주고 마지막에 수익율을 비교하는 실험이었나 보더라고. 누가 이긴 줄 알아?'
[설마 펀드매니저가 원숭이한테 졌다고요?]
'정확히는 진건 아니고, 평균을 내보니 아무 차이가 없었다는 결론이야.'
[말도 안됩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날고 긴다는 펀드 매니저들이 아무리 기업가 치를 분석하고 전망을 예측해봐야 원숭이들이 무지성 구매랑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거지. 이 이야기의 결론이 뭔줄 알겠어?'
[뭡니까?]
'주식은 신도 모른다.'
[신은 전능합니다.]
'암튼 인간들 사이에선 그렇다는 소리야. 실체가 있는 주식이 그러할진데 그보다 변동성이 큰 코인은 또 어떻겠어?'
[흐음.]
'결국 내가 아무리 연구하고 고민해서 종목을 선택하는 거나, 무작위로 아무거나 뽑는거나 실제론 운의 영역일 수 있다는 거지.
'[주인님은 운이 좋은 신 분이니까요.]
'더구나 섹스를 많이 하면 운빨이 계속 올라가는 특성도 있지.'
[오오 설마 그럼?]
'당연히. 앞으로도 미친듯이 섹스를 하는 거야. 섹스를 하면 운빨이 대폭발하게 되고, 그 운이 쌓이다 보면 내가 고른 종목이 터질 확률도 올라갈테니까.'
[역시 주인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아깐 무지성이라며?'
[그게 주인님의 매력이랄까요?]
출퇴근 시간에 걸리지 않아 인천까지 1시간 좀 넘어 도착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5만원권 네장을 찔러주었다.
"편도로 오셨으니 좀 더 챙겨드렸습니다, 기사님."
"아이고, 뭘 이렇게나. 감사합니다. 저 앞이 파라다이스 호텔입니다."
"네."
호텔 앞에 선 나는 인근 건물을 찾았다.
되도록 인적이 드물만한 곳을 찾으니 근처에 성인 오락실 건물이 보였다.
'저기가 좋겠군.'
나는 주변의 눈을 피해 2층 옥상까지 단숨에 뛰어 올랐다.
예전에는 벽을 발로 차고 올라야 가능했지만, 지금은 2층 높이까지는 우습게 뛸 수 있게 되었다.
옥상에 도착한 나는 지상으로 향한 철문을 찾았다. 마법의 문고리는 그간의 sp 포인트가 착실히 쌓여 금세 쿨타임이 끝나 있었다.
"자 그럼 인천 찍었으니 다시 학교로 돌아가 보실까나?"
대학으로 바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빈 건물을 떠올렸다.
축제기간 동안 우리과에서 탈의실로 쓰고 있는 체육관이 적절할 것 같았다.
마법의 문고리를 달고 장소를 떠올리자 반대편으로 포탈이 생성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느새 남자 탈의실에 도착했다.
'정말 편리한 아이템이란 말이지? 인천까지 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되돌아 오는데는 1초도 안 걸리다니.'
그런 생각을 하며 탈의실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여학생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크, 이 시간에 누구지?'
[학과 후배들 목소리 같은데요?]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로 우리과 1학년 후배들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어 코스프레 복장으로 갈아입기 위해 후배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와아, 드디어 마지막 날이네."
"다들 고생했어. 어제 새벽에 일 끝나고 지금까지 뻗어 잔 거 있지?"
"희주 너 근데 얼굴이 좀 부운거 같은데?"
"응, 라면 먹고 잤거든."
"부워도 예쁘다."
"효민이 너만 할까?"
난처한 상황이었다.
남자 탈의실 건너로 여자탈의실이 있었는데, 하필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8선녀들이 우르르 들이닥친 것이었다. 만약 내가 남자 탈의실에서 갑자기 나온다면 의심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어흑, 하필 타이밍이.'
[기다리셔야 겠는데요? 후배들이 옷 다 갈아입을때까지요.]
'그러니까.'
"근데 혹시 누가 숨어서 훔쳐보는 건 아니겠지?"
"누가 있겠어? 우리가 카드키로 문을 열었는데."
"체육관 출입문은 확실히 잠갔지?"
"응,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어."
대화를 훔쳐 듣다보니 빼도 박도 못한 상황이었다.
체육관은 잠겨 있었고, 잠긴 문을 후배들이 열고 들어왔다.
만약 내가 안에서 튀어 나왔다간, 체육관에 미리 들어와 숨어 있었다는 오해를 살 것이다.
'이런 젠장.'
[이젠 정말로 들키지 말아야 겠군요.]
"어? 효민이 너 속옷 입었어?"
"응?"
"설마 속옷 안 입고 타이즈 바로 입은 건 아냐?"
누군가의 지적에 효민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앗, 깜빡해버렸네?"
"조심해. 몸에 꽉 끼면 다 비춘다고."
"으, 응."
내가 알기론 효민은 코스프레 의상을 입는 동안 일부러 속옷을 안 입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효민이도 은근 변태라니까.'
[노출증이 좀 심해진것 같기도 합니다.]
"앗, 정음이 스톱!"
"왜, 왜?"
"뭐야? 너 왜 이렇게 커졌어? 요즘 생리하니?"
"으, 응?"
"아니 가슴 말이야. 원래 이렇게 컸었나? 뽕 넣은 거 아니지?"
"꺄아, 간지러워!"
이번엔 정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의 정액으로 가슴이 커진 정음을 누가 놀리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남자 탈의실에 앉아 여학생들의 대화를 흥미롭게 엿들었다.
"와, 진짠데?"
"진짜?"
"정음이 원래 가슴 크지 않았나?"
"작진 않았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수상한데?"
"아니야."
여학생들은 갑자기 가슴이 빵빵해진 정음을 추궁했다.
하긴 B컵에서 갑자기 C컵으로 커졌으니 누구라도 수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경희야 일루와봐."
"왜?"
"정음이랑 가슴 한 번 대봐. 너랑 비슷한 거 같은데?"
"정말?"
8선녀 중에서도 한 가슴 하는 경희와 정음을 비교해볼 작정인 것 같았다.
소리만 듣고 있으니 점점 궁금해졌다.
"딱 옆으로 서봐."
"시, 싫어."
"뭐야. 사이즈 한번 비교해보자는데."
"맞아 맞아. 우리 누가 더 큰지 한 번 보자."
"민망하단 말이야."
"우리밖에 없는데 뭘 어때?"
"맞아. 우리 캠프때 같이 샤워도 했잖아."
"에잇, 내가 먼저 깔게."
"꺄아 연두 미쳤어!"
뭔지는 모르지만 서로 가슴을 까놓고 자랑하는 모양이었다.
별 생각없이 듣고 있다가 갑자기 성욕이 와락 치밀어 올랐다.
'와씨, 존나 꼴리는데. 여자애들은 다 저렇게 노나?'
[설마요.]
'갑자기 구경하고 싶어지는데.'
[자중 하십시오. 처음 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랑은 또 다르지. 방법이 없을까? 투명인간으로 변한다던가?'
[투명인가요?]
'응. 투명꼬추도 가능하면 재밌겠네. 투명츄라고 해야 하나?'
[으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마법 중에 인비져블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일시적으로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정말?'
[네. 하지만 스크롤이기 때문에 시간이 무척 짧습니다. 모습은 감춰도 소리는 들리고요.]
'소리는 상관없어. 기척을 죽이는 것은 보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정말로 인비져블 스크롤을 구매하시겠다고요? 다른것도 아니고 8선녀를 몰래 훔쳐보려고요?]
'왜? 재밌잖아.'
[포인트가 썩어 나시는 모양입니다.]
'이번에 제법 모았으니 한번쯤 해볼만 하지 않을까? 왜 남자들에겐 로망이라고. 여자 탈의실 훔쳐보는 거.'
[제정신이 아니군요.]
'일단 구매해. 무지성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대신 옷은 모두 탈의하셔야 합니다. 신체만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이니까요.]
'오케이. 벗는거라면 내 전공이지.'
[벗기는 전공 아니셨습니까?]
'그건 부전공.'
나는 재빨리 옷을 벗었다.
곧 로시가 아이템을 구매해 마법 스크롤을 전송시켰다.
양피지 재질의 조그만 쪽지였는데, 마법의 언어가 빛나는 푸른 글씨로 씌여있었다.
[이게 마법 스크롤이라는 겁니다. 마법 능력이 없는 사람도 일시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지만, 원래의 효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작동 시간도 짧습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쓸 수 있는데?'
[길어야 10분입니다.]
'그정도면 충분해.'
[10분에 5000포인트를 태우시다니, 정말이지 주인님은.]
'됐고,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찢으시면 됩니다.]
'찢으라고?'
[네. 마법 스크롤은 찢는 순간 활성화됩니다.]
'오케이.' 홀딱 벗은 나는 마법 스크롤을 손에 들고 북 찢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내 몸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발목부터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어어?"
당황한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두다리가 잘린 사람처럼 상체만 두둥실 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 주인님!]
"응?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나도 들은 것 같아."
"남자 탈의실쪽에서 난 거 아니야?"
"서, 설마 변태?"
여학생들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 내 몸은 가슴과 머리만 남은 채 사라져있었다.
'이런 젠장.'
[그러게 왜 소리를 내셨습니까?]
'나도 당황했다고. 한번에 뿅하고 사라지는 줄 알았지.'
[말씀 드렸듯이 스크롤은 원래 마법보다 훨씬 위력이 떨어집니다.]
"쫄지마. 우리가 숫자가 훨씬 많아."
정음의 목소리였다.
하긴 정음은 변태 여럿쯤은 제 힘으로 제압 가능할 것이다.
"가보자."
"진짜 변태면 경찰에 신고해야지."
남자 탈의실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였다.
발소리를 보니 최소 5명 이상이었다.
'좃됐네. 이거 왜 안 사라지냐?'
[이제 머리만 남았습니다.]
'그게 더 무섭다고! 누가 보면 머리만 허공에 떠 있는 거잖아!'
[그럼 바닥에 바짝 엎드리시지 말입니다.]
'아씨, 그럼 대가리 잘려서 뒹구는 줄 알거 아니야.'
점점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하지만 인비져블 마법은 여전히 느릿느릿 진행되고 있었다.
다리부터 상체까지보다 머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훨씬 느렸다.
'이, 이거 고장품 아니야? 왜 이렇게 작동이 느려?'
[원래 투명화 기술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동공 반사를 처리는 부분입니다. 수정체까지 투명해지면 상을 맺힐수가 없어서 앞을 볼수가 없거든요.]
'아씨, 그런거면 진작 말을 해줬어야지.'
[주인님이 소릴 지를 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덜커덕-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해진 나는 바짝 엎드린 체 상의를 얼굴에 뒤집어 썼다.
"플래시 비쳐봐."
* * *
"플레시 비쳐봐."
긴장한 표정의 여대생들이 불꺼진 남자 탈의실을 확인했다.
맨 앞에 선 정음은 반바지에 힌 티만 입고 있었는데, 급하게 움직이느라 브라를 안했는지 꼭지 부분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뭐지? 아무도 없는것 같은데?"
"분명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 경희가 탈의실 전체 전등을 켰다.
"앗 저기."
경희가 구석에 누군가 벗어놓은 옷가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게 누구 옷이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가 옷을 벗어놓고 갔을까?"
"샤워실도 봤는데 아무도 없는 거 같아."
"혹시 모르니 분실물 보관함에 가져다 놓자."
연두가 바닥에 놓인 옷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직전 도훈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다.
"응?"
"왜그래 연두야?"
"아, 아니 방금 뭔가 있는것 같았는데?"
도훈의 얼굴 촉감을 느낀 연두가 고개를 갸우뚱 했으나, 투명인간이 된 도훈을 찾을 순 없었다. 일촉 즉발로 위기를 넘긴 도훈이 조심스럽게 심호흡 했다.
'와씨, 들킬 뻔. 연두 손이 얼굴에 닿은 것 같은데 괜찮겠지?'
[다행히 모르는 눈칩니다.]
'좆됐네 진짜.'
투명인간이 된 도훈은 바닥에 완전히 엎드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8선녀들 일부가 옷을 벗다 말고 모여있었다.
"우리가 잘못 들었나봐."
"분명 사람 목소리 같았는데."
"착각한 거겠지."
"어, 근데 이 옷에서 익숙한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응? 무슨 냄새?"
연두가 흰티를 킁킁 거리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연두양이 알아차린거 아닙니까?]
'설마. 저런 평범한 흰 티만 가지고 어떻게 내옷인지 알겠어?
물론 체취를 기억할 순 있겠지만 그걸 말하는 것도 더 이상하고.'
[하긴 그렇겠군요.]
"으, 응 아니야. 그냥 내가 착각했나봐. 남자 땀냄새가 다 똑같지 뭐."
그렇게 말하면서도 몰래 티셔츠를 따로 챙기는 연두였다.
"으으, 연두 남자 고픈가 보네. 냄새만 맡고도 좋아하는 걸 보면."
"무슨 소리야? 내가 남자를 왜?"
"하긴 연두는 여자를 더 좋아하지?"
"꼭 그런건 아니고."
"에이, 괜히 긴장했네. 나가자."
허탕을 친 여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남자 탈의실을 나갔다.
바닥에 엎드려있던 도훈은 전진 포복으로 소리없이 여학생 뒤를 따라 나섰다.
홀딱 벗은 체 도마뱀처럼 기어가는 그의 모습인 진짜로 변태처렴 보였다.
[주인님, 이제 일어나셔도 될것 같습니다. 너무 괴상합니다.]
'그, 그런가?' 도훈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여자 탈의실로 따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