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1. 대학 축제-116-
* * *
영상통화 속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넷이나 등장했다. 장소는 차량 안으로 보였는데, 흔히 연예인 수송차로 불리는 고급 밴처럼 보였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의상이 이전의 어설펐던 지망생 시절과 달리 진짜 아이돌처럼 보였다.
"오빠, 안녕하세요!"
"저희 기억하시죠?"
"오랜만이에요."
네 사람이 동시에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린다가 다시 혼자 자기쪽으로 얼굴을 비추며 말했다.
"오늘 축제 공연 끝나고 잠깐 얼굴이나 볼래?"
"오늘?"
"응."
린다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참나, 뻔뻔한건지 아니면 기억을 못하는 건지.'
[린다양이요?]
'왜, 지난번에 내가 물먹였다고 자기 오빠 시켜서 청부업자까지 보냈었잖아. 기억 안나?'
[아아! 민수 말이군요! 생각해보니 괘씸하군요!]
'그 일을 계기로 민수랑 친해지면서 석산파랑도 인연을 맺은거고. 린다나 그 오빠란 새끼도 나중에 한 번 손봐주려다 연속해서 일이 터지는 바람에 깜빡 지나쳤는데 이제와서 입 싹닫고 뻔뻔하게 먼저 연락할 줄이야.'
[혹시 자신이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걸까요?]
'뭘?'
[청부업자가 주인님을 손봐줬다고 말입니다.]
'어째서 그런 착각을 해?'
[당시 린다양이 화가난 건 위험을 무릎쓰고 주인님을 숙소까지 불렀는데, 주인님이 린다양을 스킵하고 링링하고 떡을 쳐서 화났던 거잖습니까?]
'링링도 있고 제희도 있고 미소랑도 했지. 린다는 별로 안 땡기더라고. 아, 그 모유 또 생각나네.'
[근데 청부 이후 주인님이 다른 아이돌과 자연스레 연락을 끊었으니 자신의 경고를 알아 들었다고 착각한 게 아닐까요?]
'헐. 그러니까 내가 조폭한테 불려가서 몇 대 맞고 깨갱했다는 식으로?'
[네. 그리고 아마도 뒷일이 흐지부지 된 것은 주인님도 주인님이지만, 린다양도 이후 데뷔를 준비하면서 더 신경쓸 여력이 없었을 테고요.]
'흐음. 일리가 있네.'
처음엔 그냥 먼 발치서 지켜만 보려고 했지만, 린다와의 일을 떠올리자 갑자기 복수심이 차올랐다. 생각해보면 별 시덥지않은 이유로 칼잡이를 보내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민수는 죽일생각까진 없었다곤 하지만, 당시엔 무공도 없는 상태로 현역 조폭행동대장과 싸우느라 진땀을 꽤나 흘렸었다.
"그럴까? 시간되면 연락 줘."
"응."
짧은 영상 통화 직후 지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미소는 아직도 모유가 나오려나?'
[에이, 설마요. 데뷔까지 했으니 분유로 바꿨겠죠.]
'링링은 진짜 프로 창녀 같지 않았냐? 빼어난 스킬하며 분위기하며.'
[당시엔 주인님이 좀 허덕이긴 했죠.]
'지금은 어림없지.'
[그러고보니 저들은 주인님과 쓰리썸까지 했는데 전혀 위화감이 없는 눈치네요.]
'결국 서로 얘기해서 다 알게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나를 찾는다는 것도 좀 어이가 없네.'
당시 4명을 동시공략하는 통에 1:1로만 섹스를 할 수 없었다.
그 말인 즉슨 최소한 몇몇은 공유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문득 망측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뭐야? 설마 처녀파티 같은 건가?'
[네?]
'생각해보니까 숙소 침입 이후로 한바탕 뒤집어 졌었잖아. 린다가 나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도 다른 애들 다 건드렸다는 걸 눈치채서 였고.'
[그렇죠.]
'그렇다면 결국 서로 정확하게 말은 안해도 은연중에 넷다 나한테 돌아가며 따먹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을 거란 말이지.'
[그럴 확률이 높죠.]
'그럼에도 태연하게 나를 부른다? 그럼 뭐겠어? 딱 처녀파티잖아.'
[처녀 파티가 뭔가요?]
'총각 파티의 반댓말이지.'
[총각 파티는 그럼 뭔가요?]
'왜, 서구권 문화중에 결혼식전 신랑이 친구들하고 창녀 불러다가 마지막으로 질펀하게 노는 거 말이야.'
[아앗!]
'처녀 파티라고, 여자들도 비슷하게 하거든. 호빠 선수나 몸 좋은 남자 하나 섭외해다가 결혼 전 마지막으로 화끈하게 노는 거지. 그 날의 주인공은 물론 예비 신부지만, 가끔 정신줄 놓으면 집단 난교로 이어지기도 하고.'
[아아! 그럼 설마 저들이 공연끝나고 주인님을 부르려는게···.]
'그렇지. 어차피 기왕 구멍동서지간이 된 셈이니 그냥 맘 편히 섹스토이로 나를 부르는 걸수도 있다는 말이지.'
[근데 현역 아이돌이 그렇게 문란하게 놀아도 되는 겁니까? 매니지에서 가만 안 둘 텐데요?]
'당연히 쉽게 못하지. 남자친구 사귀는 것도 철저하게 감시하는데. 하지만 데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절륜 대물남을 공용섹파로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떨거 같아?'
[오호.]
'아이돌이라도 해도 이제 겨우 20대 초반 밖에 안된 혈기 왕성한 여자애들이잖아. 인기는 많아도 정작 남자친구 하나 제대로 사귈수도 없을만큼 금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런 애들에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서로 묵인해 줄 수 있는 공용 생체 딜도가 하나쯤 있다면 솔깃하지 않을까?'
[이럴수가. 그럼 주인님을 창남취급 한다는 뜻이잖습니까?]
'창남?'
[창녀에서 성별만 바뀐.]
'그래도 상관없지.'
[네?]
'아니. 그런 취급을 받아도 좋다는 게 아니라, 린다 저년 혼쭐내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아아, 복수를 위해 창남 취급도 불사하겠다는 엄청난 결의인 것인가요?]
'그냥 겸사겸사 회포도 풀까하고. 아이돌 지망생이었을때랑 아이돌이 된 이후는 느낌이 다를것 같아서.'
[결국 같은 사람인데요?]
'아니야. 이건 마치 알고 지내던 섹파가 유부녀가 된 이후에 재회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남의 여자가 되면 괜히 더 설레잖아.'
[그건 주인님이 변태라···.]
'그러니까 내 말은 지망생 꼬리표를 뗀 진짜 아이돌을 따먹어 볼 수 있다는 거지.'
[주인님의 여성편력에 색다른 이력이 한 줄 더 추가시키려는 거군요.]
'뭐든 상관없지.'
로시와 속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린다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린다 : 도훈아. 우리가 이제 밖을 돌아다니면 얼굴 팔려서 아무 곳이나 못 가거든? 마침 내일 백령도 해병부대 위문 공연이 잡혀서 오늘 늦게 인천으로 넘어가 호텔 잡을 거야. 주소 알려줄테니까 그쪽으로 올 수 있어?
'인천이라고?'
[인천은 너무 멀지 않습니까?]
'차로 쏘면 금방이긴 한데, 이것들이 나를 무슨 콜걸 쯤으로 여기는 건가?'
답장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연이어 문자가 이어졌다.
-린다 : 혹시 차편 불편하면 택시타고 와.
띵동-!
그때 처음 들어온 깨톡 알림음이 울렸다. 뭔가하고 들여다 보니 깨톡의 송금하기 기능으로 나에게 현금 50만원을 찔러준 것이었다.
돈을 받기 전까지만해도 그려러니 했는데, 진짜 현금까지 받고 나자 갑자기 열이 확 올라왔다.
"와 씹, 진짜 나를 창남취급이네?"
[그냥 택시비로 준 게 아닐까요?]
'누가 택시비로 50만원을 꽂아 줘? 아무리 인천이라도.'
[아이돌 데뷔를 했으니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겼을수도 있겠죠.
]
'아니야. 이것들 진짜로 뭔가 작당하는 거 같은데?'
[흐음. 그나저나 주인님보다 돈도 없을 것 같은데 적선을 받으시니 기분이 좀 그렇긴 하겠군요.]
'린다 얘는 정말 혼쭐을 내줘야겠다. 지난 번일도 어영부영 넘어가니까 여전히 정신 못 차렸네.'
나는 50만원을 일부러 수령하며 이를 부득 갈았다.
* * *
"거봐. 내가 올거라고 했지?"
도훈의 받기 완료를 확인한 린다가 피식 웃었다.
"진짜? 새벽녘에 인천까지 오겠데?"
"응, 택시비 낼름 받던데?"
"근데 얼마나 보냈어요? 여기서 인천까지면 꽤 나올텐데."
생계형 아이돌인 미소의 물음에 원래부터 돈 많은 집 딸 린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얼버무렸다.
"그냥 적당히."
"근데 린다 언니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어차피 대학 안에서는 다른 팬들 눈치보여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보잖아. 그냥 우리 숙소로 불러서 편히 보는게 낫지."
"매니저 오빠가 알면 어떡하고?"
"지가 무슨 수로 알겠어? 여자 넷이 자는 팬트하우스에 새벽에 쳐들어 올 것도 아닌데."
린다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녀가 도훈을 부른 이유는 명확했다.
'흐흐. 지난 번에 나한테 호되게 당하고선 말 잘듣는데? 양아치 같은 오빠지만 이럴 땐 제법 쓸만 하단 말이야?'
사실 린다는 그 날 이후 제임스에게 추후 내용을 전해 듣지 못한 상태였다.
기획사측에서 갑자기 8인조 그룹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 8명을 4명씩 두팀으로 쪼개 경쟁을 시켰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사이 도훈에 대해 신경쓸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지나쳐버린 것이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미화되는 것처럼 린다에게 도훈은 한때 하룻밤 재밌게 즐겼던 남자 정도로 기억되고 있었다. 물론 바람기가 다분하긴 했지만 이미 한팀으로 똘똘뭉친 이들 사이에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또 나오네."
그때 미소가 갑자기 가슴쪽을 들추더니 물티슈로 젖가슴을 닦기 시작했다. 차량에 여자 멤버들밖엔 없다고 하지만, 가슴골을 내려 젖꼭지를 훔치는 모습은 무척 민망한 광경이었다.
"또 젖나와?"
"응. 이게 도통 안 멈춰."
"그러니까 모유를 확실히 끊어 버리라니까. 너 집에 갈때마다 계속 수유하니까 안 끝나잖아."
"낸들 어째. 애가 자꾸 젖달라고 보채는데."
미소는 갑자기 나온 젖에 브라가 축축해지자 무척 난처해했다.
제희는 그런 소동에서도 아랑곳 않고 오늘 공연한 곡을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혼자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시크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링링은 도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흐음, 그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됐는데 오늘 만나면 물어봐야지.'
링링은 당시 아이돌 기숙사에 침투했던 도훈이 사라진 것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었다. 마법의 문고리로 도망친 도훈은 말 그대로 증발하듯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암튼, 굉장한 물건이었어. 그만한 사내는 다시는 못 만났으니까.'
링링이 도훈을 추억하듯 노래를 연습하고 있던 제희도 사실 도훈과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갑자기 성욕 폭발할 것 같네. 도훈 오빠가 오늘은 누굴 꽂아 주려나? 설마 우리 넷을 동시에 상대하진 않겠지? 그럼 너무 질투날것 같은데.'
저마다 대놓고 말은 않고 있었지만, 도훈의 재등장은 초유의 관심사였다.
얼른 공연이 끝나고 밤에 그와 질펀하게 놀 생각 뿐이었다.
그때 린다가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선언하듯 말했다.
"뭐, 어차피 서로 다 뻔히 아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도훈이는 내가 불렀으니까 오늘은 내가 일빠야. 인정하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얼굴 보자는 거 아니었어?"
린다가 노골적으로 말했다.
"지나간 일이라고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마. 내가 너희들하고 도훈이랑 한번씩 붙어 먹은 거 모를 줄 알았어?"
"아니, 언니?"
"참나."
"······."
"특히 너희 둘. 레즈비언이라고까지 둘러대면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았었잖아. 그땐 진짜 열받았는데, 이제와서 뭐 그것까지 시시콜콜 따지긴 뭐하고. 암튼, 오늘은 내가 먼저야. 내가 불렀고, 난 그럴 자격 충분히 있으니까."
"잠깐. 정말 다들 도훈 오빠랑···. 링링까지?"
"흠, 이렇게 된 거 그냥 까놓고 얘기해. 난 그럼 2번."
"뭐야? 이러는 게 어딨어? 두 번 먼저 하고 나면 뒤에는 국물도 없는 거잖아. 남자를 여자랑 달라서 하룻밤에 여러번 못 한다던데."
"그래? 그럼 내가 3번 할게."
링링이 잽싸게 껴들었다.
결국 끝까지 순번을 말하지 못한 제희가 마지막으로 밀리고 말았다.
마지막 설거지를 맡은 제희가 억울함에 울먹였다.
"아니 이러는 게 어딨냐고! 정말 다들 이럴 거야?"
"왜? 눈치게임 같은 거 아니었어? 언니가 제일 늦었잖아."
"와씨, 진짜 열받네. 미소 너까지 나한테 이럴래? 우리가 너 미혼모인거 알고도 얼마나 감싸줬는데."
"그 얘기가 또 여기서 왜 나오는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잠자코 있던 링링이 중재를 시도했다.
그룹의 가장 연장자는 린다였지만, 실질적인 리더는 링링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케이. 이건 싸울 일이 아니야. 괜히 좋은 날 감정상하지 말고 우리 공평하게 하자."
"어떻게?"
"방법이 있어? 여자는 넷이고 남자는 하난데."
"있지. 넷이 같이 하면 어때?"
"네, 넷이?"
"그게 말이 돼?"
"여자 하나에 남자 넷이면 모를까."
"그건 어떻게 알아? 해봤어?"
"무, 무슨 소리야. 나 변태 아니야."
다시 의견이 분분해지자 링링이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뭐 어차피 다 까놓기로 했으니 나도 그냥 편하게 말할게. 도훈이는 어쩌면 우리 넷다 감당할 수 있을 거야."
"말도 안돼."
"쓰리섬까진 해봤어도."
"언니가 어떻게 아는데?"
"난 알아."
링링이 자신감있게 말했다.
과거 중국에 있을 때 생계를 위해 몸을 팔던 창녀 출신인 링링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남자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고급 콜걸로 활동했던 그녀는 전문적인 방중술 교육까지 받았기 때문에 성에 대한 지식이 남다른 편이었다.
"도훈이는 가능해. 그만한 정력이 있으니까."
"후. 아무리 그래도 넷은 무리 아닐까?"
"그럼 뭐? 정말로 차례로 한 명식 번호표 뽑고 기다릴까?"
"그건 안되지."
"일단 해보는 거야. 뭐, 힘들것 같으면 또 쉬었다고 또 하고. 어차피 밤은 길잖아? 안 그래?"
링링의 마지막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밤은 길다.
그 말은 정력을 회복할 시간도 충분하다는 소리였다.
"오케이,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