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0. 대학 축제-115-
한송이는 몸에 비해 굉장히 큰 옷을 입고 있어 몸매를 유추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도훈은 예리한 눈썰미로 그녀가 상당한 글래머임과 동시에 비율이 무척 좋은 편이라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몸매보다 빛나는 것은 안경을 쓴 그녀의 외모였다. 보통 여자에겐 디버프아이템이라고 불리는 안경을 쓰고도 놀라울 정도로 우월한 미모를 자랑했던 것.
'뭐야? 우리 학교에 저런 미인이 있었다고?'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게 보이십니까?]
'내공을 쓰면 시력이 4.0까지는 올라가는 것 같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심지어 한송이는 노래 실력도 상당했다. 본인이 직접 통기타를 매고 코드를 잡으면서 IU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독특한 음색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 이번주 금요일. 우~ 금요일에 시간 어때요?"
수줍게 고백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특히 남성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도훈 역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그녀를 주시했다.
'굉장한데? 쟤가 정말 여자부 우승자 출신이라는 거야?'
[정말 다재다능한 재능이군요. 운동이면 운동, 노래면 노래.]
'나는 정음이를 이겼다길래, 프로급 보디빌더처럼 근육질 여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네.'
도훈은 짐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엄친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역대급 재능러의 등장.
그때 머릿속에서 띠링- 하는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주인님, 미션 알림입니다!]
'나도 들었어.' 도훈은 급히 스마트워치를 들어 미션 내용을 확인했다.
<엄친딸을 공략하라.>
-엄친딸인 여성을 공략하는 미션입니다.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세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택받는 자가 된다면 막대한 보상이 기다립니다.
-미션에 성공하면 5000포인트가 제공됩니다.
-미션에 실패하면 -50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모든 아이템 및 정신조작 스킬이 제한됩니다.
-미션 기간은 현 시간부터 이주로 제한됩니다.
-미션 종료까지 D-14
[윽, 주인님 패널티 미션입니다.]
'그렇네. 공략에 성공하면 5000, 대신 실패하면 5000 마이너스 인가?'
[아이템이나 스킬도 제한되는 미션이므로 신중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가 상대니만큼요.]
'못할 건 뭐야? 2주내로만 자빠뜨리면 꽁으로 5000포인트를 버는 건데.'
[하지만 상대가 너무 막강하지 않겠습니까? 인기도 엄청 많을 것 같고요.]
'나보고 한 시간 안에 꼬시라고 했으면 당연히 거절했을 거야.
그건 정말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거든. 근데 2주라는 시간이 있으면 설사 미국 대통령 딸이라도 문제없다고.'
[정말요?]
'물론 뻥 좀 섞어서.' 도훈은 자신감이 충만했기에 곧바로 미션을 받아들였다.
어떤 여자든 시간만 충분하면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기도 했지만, 자신의 최애캐인 육정음을 이긴 상대에 대한 궁금증도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대회 당일 정음이는 분명 풀컨디션이었어. 도저히 질 수 없다고 여겼는데 그런 정음이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으면 대체 몸매가 얼마나 좋다는 걸까?'
노래가 끝나자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사체과 에이스 한송이!"
"한송이! 한송이!"
평범한 일반인임에도 한송이는 굉장한 인지도를 과시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노래를 끝마친 한송이는 매너 좋게 인사를 마친 뒤 기타를 챙겨 물러섰다. 이어서 다른 사람의 버스킹이 이어졌지만, 도훈은 한송이를 쫓아갓다.
'일단 안면부터 익히자.'
하지만 도훈이 한송이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이미 한무리의 인파들이 그녀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마치 연예인처럼 팬클럽이 들러붙은 것이었다. 그녀가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골프 갤러리처럼 떼지어 이동하는 팬들 때문에 도훈은 쉽사리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뭐, 뭐야? 저 줄은 다?'
"송이님! 노래 잘 들었습니다. 사진 좀 부탁드려요."
"한송이님 악수 한 번만 하게 해주세요. 가문의 영광입니다!"
"자자, 물러들 가세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한송이 주변에 몰려든 남자들은 그녀의 열렬한 광팬으로 보였다. 연예인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이 저렇게나 강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실화냐? 무슨 연예인이라도 뜬 줄.'
그때 도훈은 인파들 사이에서 또 다른 정보를 들었다.
"너 어제 스트리밍 봤냐?"
"어. 피트니스 대회 끝나자마자 다시 먹방 시작했잖아."
'잠깐, 먹방이라니?'
"어떻게 저렇게 조그만 몸에 그렇게 많은 음식이 들어가는 건지 신기하단 말이야?"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니까 소화가 가능한 거겠지. 진짜 먹방계의 여신이다 여신.."
"구독자 벌써 20만 돌파했잖아. 어제 우승한 직후인지 별풍 실시간으로 터지더라."
대충 내용을 들으니 몸짱이나 가수 뺨치는 실력을 가진 한송이가, 심지어 유명 먹방BJ로도 활동한다는 내용 같았다. 몰려드는 팬들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는데 실패한 도훈은 핸드폰을 켜 한송이의 이름을 검색했다.
과연 검색창의 맨 상단에 먹방계의 여신이라는 칭호가 붙은 그녀의 썸네일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와, 저 와중에 인터넷 BJ까지 한답니까? 대체 몇 가지 활동을 하는 거죠?]
도훈 역시 놀라워하며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조회수가 무려 300만을 돌파한 영상이었는데, 그녀가 노출이 심한 나시티를 걸치고 화면 앞에서 피자 두 판을 뚝딱 해치우는 내용이었다.
'조명 판에, 고화질 카메라, ASMR 고감도 마이크까지? 이건 취미로 하는 수준이 아닌데?'
한송이의 스트리밍 세팅은 일반인이 취미로 하는 수준을 훨씬 벗어나 있었다. 심지어 편집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었는데 전문적인 디렉터가 손을 본 것처럼 완벽했다.
'뭐지 얘는 정체가?'
[엄친딸이 확실하군요.]
'사람이 이렇게 다재다능할 수 있다고? 그것도 평범한 대학생이?'
"죄송합니다. 한송이님은 이후 막심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서 더이상 사인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쉽겠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세요."
"우우! 당신이 매니저야 뭐야?"
"맞아. 사인 한 장 받으려고 30분 넘게 기다렸다고!"
그러자 한송이를 호위하는 듯한 젊은 대학생이 당당하게 말했다.
"오빱니다. 송이 친오빠."
"아앗!"
"처남! 내가 말이 심했지?"
"아이고, 스케줄 바쁘면 가야지."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흰 이만."
연예인 보디가드처럼 송이를 감싸던 남학생은 그녀를 주차되어 있던 차에 태우더니 그대로 학교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모든 과정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도훈은 그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와, 이거 예상밖의 난적인데?'
[생각 이상으로 너무 유명한 사람이었는데요? 저 정도면 연예인 이상 아닙니까? 인플루언서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사람 같아 보입니다.]
'아니 한송이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 오빠 때문에 말이야.'
[매니저처럼 따라다니는 저 사람 말이죠?]
'동생이 활동을 많이 하니 친오빠가 옆에서 케어해주는 거 같은데, 저래선 뭐 다른 남자가 들러붙기가 쉽지 않겠는데?'
[하아-. 어쩐지 패널티 미션이라더니 함정카드가 숨어 있었군요.]
도훈은 한송이를 공략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그에게 포기란 배추를 셀 때 쓰는 단어일 뿐이었다.
'일단 이번 축제 끝나고 생각해보자. 아직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넵. 주인님이 피같이 모은 포인트를 허무하게 날릴 순 없죠.]
도훈은 아쉬운 표정으로 한송이 공략을 일단 중지했다.
여유를 가지고 차근히 계획을 세워 접근해야 승산이 있어 보였다.
* * *
"오늘 성심여대 찍고 바로 국성대로 가야하는 거 알지? 저녁스케쥴 빡빡하니까 시간 있을 때 푹 자둬."
고급 스타크래프트 차량에 탄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알았어요, 매니저 오빠."
"저희 커피라도 좀 사다주심 안 돼요? 카페인이라도 때려 넣어야 정신 차리겠는데."
아이돌로 보이는 여자의 말에 매니저 알겠다는 듯 주차된 차량에서 나섰다.
"톡으로 메뉴 골라서 보내나. 지금 사가지고 올테니까."
"넹, 오빠 땡큐!"
사내가 나가자 차량에 타고 있던 여자들이 곧 긴장된 자세를 풀고 마음껏 늘어졌다.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링링은 허벅지가 훤히 노출되는데도 불구하고 다리 한쪽을 훤히 내놓은 상태였다.
"어휴, 행사 뛰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겠네. 지난주부터 대체 몇 탕을 뛰는 건지."
링링의 말에 메이크업을 손보던 제희가 답했다.
"그래도 지방 아닌게 어디야. 그저께는 부산찍고 창원에서 진주까지 넘어갔잖아. 힘들어 디지는 줄?"
"10분 노래 부르고 1시간씩 이동하느라 힘들어 죽겠어."
두 사람의 투정에 그룹의 리더인 린다가 말했다.
"너희들 벌써부터 배부른 소리 할거야? 불러 주는 곳이 있을 때가 행복한 거랬어. 데뷔한 지 얼마나 됐다고. 쯧쯧 초심을 잃었네 잃었어."
"알았다고. 린다 언니는 정말 꼰대같다니까?"
"누가보면 아이돌 10년차인 줄? 크크."
"야. 자꾸 비꼴래?"
"맞다. 근데 오늘 마지막으로 가는 국성대 말이야."
"국성대?"
"응. 그때 만난 도훈 오빠가 국성대 다닌다지 않았었나?"
"맞네. 미소야, 네 사촌 오빠 다닌 데가 국성대 맞지?"
"어. 맞어."
"그때 참 재밌었는데. 덩치 큰 오빠도 귀여웠고."
다들 간만에 나온 도훈의 이름에 저마다의 추억에 빠졌다.
데뷔 직전 지망생 시절에 짧게 맺었던 인연. 그리고 서로는 잘 모르고 있지만, 네 명 모두 도훈과 따로 관계를 맺었었다.
그룹의 리더이자 랩을 담당하는 린다 Kim.
싱어송라이터 출신으로 아이돌 출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빼어난 가창력을 소유한 제희.
중국 진출을 염두해 뽑은 비주얼 담당, 링링.
마지막으로 한국 최초 미혼모 아이돌-물론 철저하게 비밀로 숨겼지만-인 미소까지.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네 사람은 모두 도훈과 인연이 얽혀있었다.
그때 제희가 말했다.
"미소. 사촌 오빠한테 다시 연락해볼래? 그래도 학교에 왔는데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그래. 그때 그 멤버 다시 불러도 재밌겠네."
그러자 미소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안 될걸."
"응? 왜?"
"다 잊었어? 그때 종현 오빠 군대간다고 부른 거잖아. 지금은 강원도 고성에 해안경비 서고 있다던데?"
"아! 군대갔구나."
"위문 공연 때나 보겠네."
"근데 꼭 미소 사촌 오빠를 봐야 할 필욘 없잖아? 다른 사람들은 아직 있을 텐데."
"다른 사람 누구? 도훈 오빠?"
"어머, 제희 너 도훈 오빠한테 관심있었어?"
제희가 화들짝 놀라며 부인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그때야 같은 민간이었지만, 지금은 아이돌인데."
"풉-. 아이돌이 뭐 별거니? 그냥 대중 앞에서 예쁜척 하면서 인기팔아 먹는 직업이지."
"그래도 다른 남자 아이돌도 많은데 굳이 민간인을?"
링링이 다리를 반대로 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놉. 솔직히 남자 아이돌 애들 진짜 병신같은 애들만 모아 놓은 거 같아. 하나같이 양아치 마인드에, 틈만나면 껄떡대는 꼴 하며. 제정신 박힌애가 없더라."
"제정신 박힌애면 이미 임자 있거나."
"하긴 도훈 오빠 정도면 왠만한 아이돌보다 훨 낫지?"
다들 도훈 얘기뿐이었다.
다만 그들은 도훈이 모두를 따로 만나 따먹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근데 다시 보고 싶어도 연락할 방법이 없네."
"맞아. 데뷔하면서 핸드폰 다 압수 당했잖아."
"그놈의 사생활 관린지 뭔지."
그때 린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아직 연락처 있을 걸?"
"어? 언니 있다고?"
"어떻게?"
"음, 폰 압수당할 때 인터넷에 연락처 따로 저장해 놨거든.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언니 수상한데? 왜 도훈 오빠 연락처를 아직도 가지고 있어?"
"글쎄, 나도 극너 잘."
"암튼 잘 됐다. 부르자.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게."
"흐흐. 우리 정식 데뷔한 거 알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이미 알고 있을 걸? 그래도 우리가 듣보잡 까진 아니잖아."
"그럴려나?"
대형 벤에 탄 이들은 저마다 도훈과의 추억을 곱씹었다.
아이돌 데뷔 이후 사적인 만남도 모두 통제당한 체 합숙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지만, 그와 보냈던 뜨거웠던 하룻밤은 모두 인상 깊은 추억으로 남아있던 것이었다.
'흐흐, 간만에 도훈이 보면 찐하게 놀 수 있겠지?'
'오빠가 나랑 했던 거 기억하려나?'
'어쩌면 연예인 따먹었다고 소문내고 다녔을지도.'
'후후. 그때 참 좋았는데.'
* * *
한송이를 놓친 후 다시 축제장을 돌아다니던 도훈은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린다Kim : 안녕! 내 번호 아직 안지웠지?
[린다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군요.]
'그 재미교포?'
[네. 맞습니다.]
'참나 뻔뻔하기도 하지.' 도훈은 그녀와 과거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일단 모르는 척 하고 답장을 했다.
-도훈 : 오, 연예인께서 직접 연락을 다주시고? 무슨 일이야?
-린다Kim : 아직 번호 안 지웠구나? 히히. 오늘 우리 너네학교로 축제 공연 가는 거 알고 있어?
-도훈 : 우리학교? 국성대에 온다고? 몰랐는데?
도훈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관심없는 척 했다.
그때 린다로부터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갑자기 셀프카메라가 켜지길래 놀란 도훈은, 곧 영상통화임을 깨닫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써프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