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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94화 (1,449/2,000)

1477. 대학 축제-102-

정음의 복장 때문이었을까? 화장실 줄을 기다리는 정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와, 저기 할리 퀸 좀 봐.”

"엄청 예쁜데? 어디서 행사하나?"

“체육교육과 애들일 걸? 거기 학생들이 코스프레 하면서 서빙한다던데?”

"와, 나 쟤 누군지 알 것 같아. 미스 국성 2위한 여자애잖아. 가까이서 보니 대박 예쁘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자 정음은 몹시 난처해했다. 평생 유명세라는걸 느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어떡해, 아영아.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내가 아까 말했지? 이제부턴 더 피곤해 질거라고."

"아이참, 이렇게 눈에 띄는 복장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정음은 할리 퀸 코스프레가 너무 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에도 늘 주목받는 타입이었다. 둔감해서 본인만 몰랐을 뿐, 수업만 들어가면 남학생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신 스틸러였다.

다만 정음의 외모가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남학생들이 말을 걸어볼 엄두를 못냈을 뿐이다. 아영은 순진한 정음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도훈과의 관계가 떠올라 울컥 질투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눈치없는 정음이가 뭐가 좋다는 걸까, 오빠는.’

아영은 정음과 정반대의 타입.

정음이 뇌까지 청순한 순진무구한 성격이라면, 아영은 매사에 날카롭고 까칠한 예민보스. 서로 풍기는 분위기도 전혀 달랐는데, 정음이 털털하고 누구에게나 사근사근한 이미지라면 아영은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만큼 차갑고 무뚝뚝하기로 유명했다.

사실 아영 역시 정음처럼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편이었는데, 정음이가 몰라서 아는 체를 못 한다면, 아영은 뻔히 알면서도 일관된 무시로 상대를 나가 떨어지게하는 스타일이었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눈치 빠른 아영과, 둔감하고 허당같은 정음은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었다. 아영은 어쩌면 그 점 때문에 자신이 도훈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자들은 저렇게 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건가? 하긴 정음이는 워낙 예쁘니까 둔한 건 문제가 아닐지도.'

갑자기 질투심이 솟구친 아영이 정음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그 코스프레 누가 추천해줬다고 했지?”

"어? 이거? 음, 아까 회장님이."

"그럼 회장님이 직접 골라줬겠네, 그 옷도?"

정음이 알기론 도훈이 직접 발품을 팔아 공수해온 옷이었다.

"으, 응. 내가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회장님이 구해다 줬어."

"그래? 오빠가 여자 옷 되게 잘 고르나 보다."

"왜, 왜?"

"아니 네 치수를 정확히 맞춘 걸 보면 말이야."

여성들 특유의 돌려까기 스킬. 도훈이 정음의 몸매를 상세히 알고 있으니 사이즈를 알맞게 골랐을 거라는 의심. 즉, 둘이 그렇고 그런 관계가 아니냐는 간접적인 추궁이었다.

하지만 정음은 그때까지도 아영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다.

“우연이겠지. 내가 평균 사이즈니까."

"그래?"

"응. 난 키도 평균, 몸무게도 평균이잖아."

정음의 키는 165, 몸무게는 47kg였다.

"하긴 그렇겠다.”

"응."

"도훈 오빠가 정음이 네 몸매를 꿰고 있는 것도 아닐테니까.”

정음이 계속 눈치를 못 채자 아영은 아예 대놓고 정곡을 찔렀다.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이해한 정음은, 순간 너무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누가봐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자 아영은 울컥했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내가 순진한 정음이한테 뭐하는 거람? 정음이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히 쓸데없이 화풀이나 하고.'

"아니, 그게···."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쩔쩔매? 근데 너 평균은 아니지 않아?"

"뭐, 뭐가?"

“아까 대회때 보니까, 상당하던데?”

아영이 물끄러미 정음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요새 들어 부쩍 커진 정음의 가슴은, 이제 옷을 입어도 밖으로 티가 날 정도였다. 본래도 꽉찬 B컵이라 작은 사이즈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누가 봐도 크다고 할 만했다.

“요새 운동을 하도 열심히 했더니···. 하하!”

정음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영은 그런 정음의 반응이 재밌어 꼬치꼬치 캐물었다.

“무슨 운동? 좋은 거 있으면 나도 좀 알려주지 그래?”

“아영이 넌 지금도 충분히 크잖아.”

“아니야. 보기만 그렇지, 실제로 크진 않아.”

“아닌데. 절대 안 작아 보이는데?”

두 사람이 누가 더 크네작네 옥신각신하는데 정음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잠깐만 아영아 나 전화.”

핸드폰에 뜬 발신자를 확인한 정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영을 쳐다보았다. 아영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누군데 전화를 안 받고 보고만 있어?”

“도, 도훈 오빠야.”

“회장님? 근데 왜 안 받아?”

“아니. 내가 아까 사실 천막에서 그 일 있고나서 너무 당황스러워서 회장님한테 전화했거든. 만나면 얘기하자고.”

“그랬었어?”

“응. 근데 너랑 얘기하다 보니까 이걸 회장님한테 말씀드려야 하나 싶어서. 그것 때문에 나한테 전화 건 것 같아.”

한참 울리던 폰은 잠시 후 잠잠해졌다.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도훈 쪽에서 먼저 끊은 것으로 보였다. 전후 사정을 밝힌 정음이 아영에게 물었다.

“어떡하지, 아영아. 다 말하는 게 좋을까?”

“음. 일단 전화는 받지 마.”

“방금 끊겼어. 근데 또 올 것 같아.”

아영은 초조해 하는 정음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정음이가 도훈 오빠한테 사실대로 밝히면 어떻게 될까? 분명 성격상 자기 여자를 건드린 애들을 가만 두진 않을 것 같은데.’

이번 일은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학과 전체에 풍파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모처럼 축제 주점 행사로 단합력이 좋아진 체육교육과에 찬 물을 끼얹는 격이었다.

‘음, 게다가 도훈 오빠가 정음의 일로 길길이 날뛰면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고 사귀는 사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될 거야. 그게 나한테 과연 좋은 일일까?’

아영은 이번일을 계기로 도훈과 정음이 학과에서 공식 커플로 인정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했다.

‘아니야. 이건 그냥 묻어두는 게 좋겠어. 도훈 오빠는 어쨌거나 공식적으로 솔로여야 해. 그래야 내게도 기회가 있을 테니까. 커플이 되어버리면 바람이지만, 어쨌든 썸 정도로 남겨두는 게 나에게 유리해.’

“···정음아. 내 생각에는 아까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게 좋겠어.”

“그, 그럴까?”

정음은 평소에도 아영과 친했고, 늘 의지했기에 아영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편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조언이 본인 스스로를 위한 결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응. 어쨌든 결론은 네가 지환 오빠를 걷어차고나서 기절 시켰다는 것 뿐이야. 그 와중에 지환 오빠가 너한테 무슨 의도를 품었는지는 증거없는 추측일 뿐이고.”

“아···.”

“근데 그 이야기를 도훈오빠한테 다 말했다간, 도훈 오빠도 학과 회장으로서의 입장이 있으니 지환 오빠를 따로 불러 추궁할 거란 말이지. 그럼 지환 오빠는 너한테 맞았다고 말해야 할 거고, 너도 왜 지환 오빠를 때렸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잖아.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서로 곤란해지지 않겠어?”

정음은 아영의 조언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그렇겠다! 아영이 넌 역시 똑똑해! 너한테 먼저 말하길 잘했어.”

“뭘 그런걸로.”

아영은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자위했다.

‘정음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도 너만큼 오빠를 좋아해. 그러니 이것까진 양보 안할래.’

잠시후 도훈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정음은 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다시 받았다.

“네, 오빠.”

-어디야? 주점에 돌아왔는데 너 안 보여서.

“아, 잠시 화장실 왔어요. 근데 줄이 길어서 계속 기다리는 중 이에요.”

-그랬어? 만나서 할 얘기 있다면서?

정음은 아영을 쳐다보았다.

아영은 말없이 손가락 두개로 X를 그리며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아, 그게···. 아영이한테 말해서 잘 해결 됐어요.”

-응? 해결이 됐다니?

“별거 아니었거든요. 괜히 오빠한테 전화 했나봐요.”

-그래? 음, 잘 해결되었다면 다행이고. 알았어. 나중에 봐.

통화를 끊은 정음은 도훈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떨려서 죽는 줄 알았네.”

“잘 얘기 했어?”

“응. 별일 아니라니까 도훈 오빠도 알겠대.”

“다행이네.”

* * *

‘뭔가 숨기는 것 같은데?’

[왜 그러십니까?]

‘분명 아까 통화할 때는 평소답지 않게 다급한 목소리였거든?’

[네.]

‘근데 이제와서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니까 괜히 수상하잖아.

’[정말로 별일이 아닐수도 있죠.]

‘그렇다고 보기엔 정음이는 나한테 전화를 먼저 거는 일이 거의 없거든.’

[그냥 주인님이 갑자기 사라져서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축제기간 동안 정음양에게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그랬을까?’

[코스프레 복장까지 일부러 바꾸시고, 막상 옷 갈아 입고 나오니까 손은주 교수랑 둘이 사라져 버리셨잖습니까? 당연히 정음양입장에선 섭섭할 수 있죠.]

‘맞네. 난 아까 슬쩍 보긴 했는데 정음이는 내가 못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도훈은 정음이 섭섭해서 그랬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단기간에 너무 많은 여자들을 만나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자꾸 뒷전으로 밀리는 정음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아끼는 사람이라고 하면 더 잘 챙겨주셔야죠.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하고 계속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면 아무리 호감도가 100을 찍었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 서운한 감정이 쌓일 겁니다.]

‘오케이 알겠어. 주변을 더 챙기라 이거지?’ 도훈이 속으로 자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뒤에서 솥뚜껑 같은 손이 어깨를 짚었다.

“어이, 체육과 회장님 아니신가?”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사내였다.

“성수형!”

도훈이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1학기까지 체육교육과의 부회장을 역임했던 성수가, 축제 기간 중 지원을 나온 것이었다.

“왓썹 브로!”

성수는 주먹을 들이밀며 터치를 시도했다.

도훈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자 성수가 직접 주먹을 마주대 주었다.

“이 자식, 최신 유행 인사를 모르는 구만. 유행에 뒤떨어져가지곤.”

“형님 요새 공부 안하나 봐요?”

“안하긴 인마. 매일 10시간 씩 공부한다.”

“근데 말투가 왜 그래요? 주먹인사는 또 뭐고?”

“내가 요새 쉬는 시간에 너무 심심해서 쇼미더머니 보고 있거든. 힙합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달까?”

도훈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아니, 수험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인마. 공부만 하면 머리 터져 인마. 하루 30분 깔짝 보는 거여.”

“그래요, 근데 여긴 무슨 일이에요?”

“후배님들 주점하는 거 응원왔지.”

“일부러 3,4학년 선배들은 부르지 말라고 했었는데?”

“2학년 애들 몇명이 연락했더라. 내일이 주점 마지막이니까 시간 되시는 선배님들 잠깐 들르라면서. 나말고 3학년 애들 몇명 더 올거야.”

“참나. 이럴거면 형이 집행부나 계속하지 왜 나를 줬대?”

“짜샤. 원래 일선에서 빠져서 뒷짐지고 지켜보는 쪽이 훨씬 꿀잼이거든. 그것도 모르냐? 너도 내년에 느끼게 될 거다.”

성수는 성황중인 주점 분위기를 보고는 훌륭하다며 도훈을 칭찬했다.

“그나저나 내가 후임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았단 말이지. 역대급 호황이네. 우리과에서 개최한 축제 주점 치고는.”

“1학년 집행부애들이 워낙에 열심이라서요.”

“의상도 네가 생각했냐?”

“코스프레요?”

“어. 눈이 호강하겠는데.”

“침 좀 닦으시죠. 후배들 보기 안 민망하나.”

도훈은 간만에 성수를 만나 무척 기분이 좋았다.

1학기만 해도 학과 내 모든 행사를 그와 함께 했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성수의 역할을 대신 이어 가고 있었다.

“온김에 술이나 한잔 하다 가요. 어차피 공부도 튼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매상 좀 올려줄게.”

성수가 마침 빈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나중에 올 사람들까지 고려해 8명이 넉넉히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었다. 정음을 기다리던 도훈도 그의 옆에 앉았다.

“공부는 잘 돼요?”

“존나 빡새.”

“형이 머리가 나빠서 그런게 아닐까요?”

“너 요새 갈구는 사람 없으니까 아주 기어 오른다? 회장 되니까 봬는게 없나보지?”

성수가 힘을 과시하듯 알통을 뽐냈다. 여전히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이두박근이었다.

“공부 안하고 운동만 하시는 거 아니죠?”

“그럴 시간도 없어. 그냥 간간이 아령만 드는 거지.”

“대단하시네.”

“대단은 무슨. 들었다. 너 피지크 대회 우승했다며?”

성수가 도훈의 입상을 축하하며 가슴을 툭 쳤다.

“오? 장난 아닌데?”

“저도 대회 준비하면서 운동좀 했죠.”

“계집애처럼 피지크가 뭐냐? 다음엔 스트렝스 나가봐. 거기가 진짜 남자의 세계거든.”

도훈은 내친김에 스트렝스에서도 우승을 하려고 했다가 너무 주목받을 까봐 자진 탈락했다는 얘기까지는 참았다.

“됐어요. 형처럼 근육돼지될 생각은 없으니까.”

“새끼, 아주 입만 살아가지고.”

말은 거칠었으나, 주고받는 대화의 분위기는 친형제처럼 훈훈한 두 사람이었다.

그때 연두가 주문을 받으러 성수에게 왔다.

“어머! 부회장님 오셨어요?”

“전임 부회장이지. 연두는 날이 갈수록 예뻐지네? 남자 사귀니?”

“무슨 소리예요? 전 여자가 더 좋은데.”

“엉?”

도훈이 눈치를 주자 연두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물론 농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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