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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92화 (1,447/2,000)

1475. 대학 축제-100-

천막에 도착한 정음은 커튼식 입구를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 켜는 게 어딨더라?"

정음이 전구 스위치가 있는 위치를 짐작해 손으로 더듬었다. 어둠 속에서 천막 기둥을 쓰다듬는데 정음의 손에 뭔가가 잡혔다.

'어?!'

그것은 온기가 있었으며 단단했다. 또한 뼈마디처럼 뭔가 돌출되어 있었다.

'뭐, 뭐야!'

소스라치게 놀란 정음이 반사적으로 옆차기를 뻗었다. 생각 이전에 신체가 반응한 것이었다. 완벽한 자세로 뻗어나간 옆차기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컥!"

낯선 사내의 목소리.

정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세요?"

"크흑, 그러는 넌 누군데?"

당황한 정음이 핸드폰을 꺼내 플래시를 비쳤다. 창고 바닥에는 사내 한 명이 쓰러져 있었는데, 배를 부여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음의 발차기에 걷어 차인 모양이었다.

"···지환 선배?"

지환의 얼굴을 알아본 정음이 당황하며 그에게 물었다.

"괘, 괜찮으세요? 저는 치한인 줄 알고."

"무슨 소리야? 나도 불켜려고 했는데 갑자기 네가 나를 공격하는 바람에. 아이고, 옆구리야."

정음은 그제야 어둠속에 닿았던 것이 지환의 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서로 전등을 켜기 위해 스위치로 손을 뻗다, 정음이 놀라 제풀에 발차기를 해버린 꼴이었다.

"죄송해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누가 있길래 당황해서."

"당황한다고 사람을 다짜고짜 걷어차냐? 아흑, 갈비뼈 부러진 것 같은데."

당연히 엄살이었다.

만약 정음의 옆차기가 정통으로 들어갔다면, 지환은 지금 말도 못하고 기절했을 테니까. 하지만 빗맞았다고 해도 통증은 상당했다. 오만상을 찌푸리는 지환의 표정은 엄살이 아니라 진짜였다.

"괜찮으세요? 불 켤게요."

정음은 플래시로 스위치를 찾아 천막 내부를 밝혔다. 그제야 바닥에 쓰러진 지환의 상태가 바로 보였다.

옆구리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진 지환은 숨쉬기가 곤란한지 얼굴이 터질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 보였기에 정음이 놀라서 그에게 다가갔다.

"선배 제가 병원에 데려다 드릴···."

지환에게 다가가던 정음은 순간 뭔가를 발견하고 움찔 놀라고 말았다.

쓰러진 지환의 바지춤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던 것.

처음엔 바지가 접혀서 생긴 주름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갈 수록 그것은 발기된 잦이의 형상임을 알 수 있었다.

'아앗.'

정음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몹시 당황했다. 발로 걷어 찬 건 자신의 실수였다 치더라도, 고통에 쓰러진 사람이 발기된 것은 분명 비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왜 저런 거지?'

그때 지환이 쓰러지면서 떨어뜨린 핸드폰이 뒤집혀 있는게 보였다. 액정이 바닥에 닿았기 때문에 혹시 깨졌으면 하는 걱정에 정음이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선배, 이거 선배 핸드폰이죠?"

정음이 무심결에 폰을 집어 들어 건네려는데 화면을 똑바로 돌리자 영상이 하나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은 노골적인 포르노 영상이었다. 젊고 예쁜 여성이 침대 위에서 힘차게 박히는 장면을 목도한 정음이 깜짝 놀라 핸드폰을 다시 떨구고 말았다. 그러자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음이던 핸드폰에서 갑자기 소리가 나면서 적나라한 교성이 천막 안을 울려퍼졌다.

-하앙, 아앙! 기모찌이-!

야동을 들킨 지환이 얼른 팔을 뻗어 핸드폰을 거두었다.

그는 민망한 표정으로 정음을 향해 투덜거렸다.

"아니, 넌 왜 남의 핸드폰을 훔쳐보냐?"

"죄, 죄송해요."

정음은 어째서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사과부터 했다.

그리고 그제야 지환이 어두운 창고에서 혼자 뭘 하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에. 그럼 여기 숨어서 야동 보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내가 들어오니까 놀라서 불을 켜려다 나한테 걷어 차인 거고? 하필 이렇게 공교로울 때가.'

정음이 모든 걸 눈치 챘다는 사실에 지환이 체념한 듯 말했다.

"너 어디가서 이거 말하지 마라."

"네."

"아씨, 대체 어딜 어떻게 맞은 거야. 진짜 갈비뼈 부러진 거 아니야?"

지환은 겨우 팔을 짚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 균형을 잃은 듯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 앉아버렸다. 그는 천막 기둥에 등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읍-후읍-"

"서, 선배. 괜찮으세요?"

"너라면 괜찮겠냐? 태권도 선수 출신한테 정통으로 얻어 맞았는데?"

지환은 일부러 정음의 책임을 강조하며 죄책감을 유발했다.

동시에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노출하면서 정음을 자극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암튼 너 이거 다른 애들한테 말하기만 해 봐. 나 진짜 쪽팔려서 콱 죽어버릴 거니까."

"안 할게요. 정말로요."

"기척도 없이 갑자기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 진짜 수습도 못하게."

"죄송해요 전 정말 누가 안에 있는 줄 몰랐어요."

지환이 하도 정음을 나무라는 통에 정음은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남들 일하는데 천막안에 숨어 딸이나 치려던 지환이 훨씬 잘못한 것이었으나, 정음은 자신이 지환을 때렸다는 미안함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멀끔해 보이던 지환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것에 살짝 놀랄 뿐이었다.

'지환 선배에게 저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정음이 순진한 처녀였다면 방금 전의 일로 크게 충격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반년에 걸친 도훈의 조련(?)으로 남성의 특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많이 놀라진 않았다.

'남자들은 참 혈기 왕성하구나.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몰래 야동을 훔쳐볼 수 있지?'

이런 상황이란 주점에 밀려 드는 손님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상황을 의미했다.

지환이 계속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자, 정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병원에 안가보셔도 되겠어요?"

"쪽팔리게 뭘 이런걸로 병원에 가. 잠깐 쉬면 괜찮아 지겠지."

지환은 주저앉은 자세로 쌕쌕 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정음은 고통스러워하는 지환을 떠나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면서 옆에서 있을 뿐이었다.

"야. 너 근데 진짜 장난 아니다. 싸우면 내가 지겠는데?"

"아, 아니에요."

어느정도 숨이 돌아왔는지 지환이 농담을 건네자 정음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다행이야. 농담할 여유는 생긴 것 같아서.'

"일있으면 가봐. 난 괜찮으니까."

"어떻게 그래요.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시면서."

"그럼 나 부축 좀 해줄래?"

지환이 뻔뻔하게 손을 내밀었다.

정음은 사람을 때렸다는 미안함에 지환의 손을 맞잡았다.

"천천히 일어나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정음의 손을 붙잡고 반쯤 몸을 일으키던 지환이 갑자기 균형을 잃은 것처럼 도로 주저앉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을 꼭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정음도 빨려 들어갔다.

"아윽."

"어어?!"

정음은 태권도를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근력은 일반 여성보다 좀 더 좋은 수준.

키가 180이 넘는 성인 남성의 몸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지환을 일으키려다 정음마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쿵-

엉겹결에 지환을 얼싸안은 모양이 된 정음이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지환이 갑자기 옆구리를 잡고 신음했다.

"크흑, 정음아. 나 진짜로 어디 잘못된 것 같은데?"

"선배! 안되겠어요, 제가 사람 불러올게요."

정음은 지환을 덮친 모양새가 민망하기도하고 그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기 때문에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지환은 정음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안 돼."

"왜요?"

"여기서 야동보다가 너한테 걷어차였다고 어떻게 말해?"

"아니···."

"일단 조금만 쉬어볼게."

"아프시다면서요?"

"모르겠어. 부러진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도···. 잠시만."

정음은 지환과 너무 붙어있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 일단 그에게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미 지환은 자신의 음흉한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상태였다.

'흐흐. 쓰러지면서 살짝 가슴 닿았는데 개꿀. 눈에 보인대로 엄청 글래머구나.'

지환의 만류로 정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때 지환이 갑자기 상의를 걷어 올리더니 배를 노출했다.

"정음아, 니가 한 번 만져볼래?"

"마, 만져요?"

"아니 뼈가 부러졌는지 좀 봐달라고."

"아···."

도훈이 아닌 사내를 만진 적이 없었던 정음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늑골 부위가 성감대라든가 민감한 부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속살은 속살이었다.

"부러졌으면 뭔가 잡히지 않겠어? 난 차마 무서워서 못 만지겠거든."

"그냥 병원에 가보시는게···."

"부러진 것 같으면 가보려고. 일단 한 번 봐줘."

거듭된 지환의 요청에 정음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어쨌든 자신이 놀라 발로 차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네 이건.'

정음이 손을 뻗어 지환의 옆구리를 어루만졌다. 맨살이 닿자 지환이 "악."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프세요?"

"모르겠어. 너무 예민한 부위라. 천천히 만져봐."

"네."

정음이 조심스럽게 갈빗대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뭔가 부러졌다거나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괜찮은 것 같기도?"

"그래?"

"네. 잘 모르겠어요. 부러졌으면 티가 날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반대쪽이랑 다른지 확인해봐."

지환이 이번엔 반대쪽 갈빗대를 내 놓았다.

자꾸 자신을 더듬으라는 지환의 요구에 정음은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설마 지환 선배가 일부러 나를 놀리는 건가?'

정음은 평소에도 둔감한 편이긴 했지만, 지환의 행동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쓰러진 채로 자꾸 자신의 가슴골을 빤히 쳐다보는 것도 수상했다. 할리 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정음은 가슴골이 과하게 노출된 상태였는데, 지환의 눈길이 계속 가슴 골에 꽂혀 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수상한데.'

정음이 반대쪽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데 갑자기 지환의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음아."

"왜 그러세요?"

"너 왜 이렇게 예쁘냐?"

"네?"

"가까이서 보니까 너무 예쁜 것 같아."

"아, 아니 갑자기 그런 말씀을."

정음이 눈에 띄게 당황하자 지환이 기세를 올렸다. 어리버리한 정음이 자신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

"나 사실 예전부터 너한테 관심이 많았어."

"아니, 선배."

"정음아, 혹시 나랑 사···."

"닥쳐!"

순간적인 고백에 놀란 정음이 갑자기 엘보우를 휘두르더니 지환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그것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지환은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고개가 옆으로 휙-돌아가더니 기절하고 말았다.

"허억, 허억!"

정음이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키는데, 천막 커튼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아니 술 가져오라니까 안에서 뭐하길래 아직까지···. 어? 뭐, 뭐야? 지환이?"

천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지환의 친구 승현이었다.

그는 정음을 천막으로 유인한 것이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리 친구와의 의리도 중요하지만, 순진한 후배를 늑대같은 친구에게 넘긴다는 것이 양심에 찔렸던 것이다. 결국 중간에 훼방을 놓기로 결심한 승현이 예고없이 천막에 난입했고, 마침 정음에게 얻어맞고 기절한 지환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정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뭐야? 지환이 왜 저러냐? 너희들 뭔일 있었어?"

승현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평소 행실로 미루어 보아 친구인 지환이 정음을 보자 흥분해 덮치려 했고, 정음이 반격해 그를 때려 눕힌 것으로 오해했다.

"아니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내가 사과할게. 지환이 이새끼가 그런 놈이 아닌데 요새 약간 제정신이 아니라."

"네, 네?"

"암튼 내 얼굴 봐서라도 그냥 넘어가 주라. 내가 이 새끼 깨어나면 존나 갈굴게, 응?"

다짜고짜 사과부터 박는 승현의 태도에 정음은 어리둥절했다.

때린 건 정음이고 맞은 건 지환인데, 사과는 승현이 대신하고 있었다.

"일단 넌 나가봐. 내가 지환이 깨워서 데려갈테니까."

"벼, 병원에 가봐야 할 수도 있어요."

"걱정마. 설마 죽기야 하겠어? 암튼 오늘 일은 우리끼리 비밀이다? 알았지?"

승현이 신신당부를 하는 바람에 정음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무엇을 비밀로 하자는 것인지는 몰랐으나, 자신이 지환을 때려눕힌 것을 눈감아 주겠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얼른 가봐. 술은 내가 챙길테니까."

승현은 기절한 지환의 뺨을 툭툭치며 그를 깨웠다.

"야이 새끼야. 일어나 인마."

승현이 지환을 깨우는 사이 정음은 뻘쭘한 표정으로 천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지환을 기절시킨 팔꿈치가 시큰하게 아려왔다.

"어떡하지? 나 사고친 것 같은데···."

태권도 유단자가 폭력을 써서 사람을 때려눕혔다면, 고소를 당해도 할말이 없었다. 더구나 지환이 뭘 한것도 아니고 단지 고백하려는데 대뜸 가격을 했기 때문에 난처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 말을 끝까지 들으면 안 될것 같았다.

정음은 문득 도훈이 보고 싶어졌다.

'오빠한테 사실대로 말해야겠다.'

정음은 주점으로 돌아가 도훈을 찾았다.

"혹시 회장님 못 봤어?"

"아니."

"아까 저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어라, 어디 가셨나 보네."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주점에 있는 누구도 도훈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정음은 점점 초조해졌다. 어지간하면 도훈에게 따로 연락을 안하는 정음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도리가 없었다.

'전화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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